과기노조, 소산별노조운동 11년의 평가와 전망

노동사회

과기노조, 소산별노조운동 11년의 평가와 전망

편집국 0 3,655 2013.05.19 12:57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과기노조)은 11년 전 철옹성 같았던 기업별노조를 허물고 초기업단위 노조로 전환한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조합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체협약과 조합원의 승계 등 기존 기업별노조의 성과들을 보존한 채 어떤 형태의 초기업단위 노조로도 전환이 가능하게 된 모범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구호와 희망에 머물고 있었던 한국사회 산별노조운동이 실천과 현실로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과기노조는 규모가 작고, 그 자체가 완성형이 아니라 출발 때부터 이후 더 큰 산별노조로의 전망과 결의 속에 하나의 ‘경로’로서 채택한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소산별노조’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소산별노조들은 결성 당시부터 산별노조의 조직 형태와 건설경로, 조직 및 재정 운영, 교섭구조, 투쟁방식, 정책 및 정치활동 등에 있어 다양한 논쟁을 형성했다. 그리고 IMF 이후 구조조정 속에서 조직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조직이 정체되고 애초에 설정되었던 더 큰 산별노조로의 질적인 발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 글은 지난 11년간 과기노조의 역사적 경험을 평가함으로써 과기노조와 여타 소산별노조들의 조직발전 전망을 고민해보고 동시에 현 단계 민주노조 운동의 산별노조 논쟁에 실천적 시사점을 제시하기 위해 작성되었으며 쟁점별로 내용을 구성했다. 

소산별이냐 대산별이냐, 미리 정해진 건 없었다

과기노조는 과학기술계 정부출연기관 종사자를 1차적인 조직대상으로 하는 자연과학 연구개발업종 단일노조로 출발했으며, 장기적으로 더 큰 규모의 산별노조로 발전하기 위한 ‘경로’로서 채택된 조직형태였다. 당시 그러한 방침이 설정된 이유는 과학기술계 정부출연기관 노조들의 경우 지금 공공연맹의 전신 중 하나이자 당시 전문직, 기술직 노동자들의 연대체인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전문노련) 내에서 과학기술노조협의회로 묶여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함께 공동투쟁과 공동사업을 전개해왔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사실 전문노련은 다양한 업종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적인 공동의 경험이 별로 없는 상태여서 한꺼번에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나마 인문사회계 정부출연기관 노조들과 연대해온 경험을 근거로 전체 출연기관 단일노조를 목표로 하기도 했지만, 밀접한 연대와 준비가 부족했고 “공공산별노조로 발전할 것인가 과학기술계 산별노조로 진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부족하여 그것 역시 유보되었다. 이러한 조직적인 조건 속에서, 동질성이 큰 과기노협을 1차적인 조직대상으로 하는 초기업단위노조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보았고 결국 전국과학기술노조를 결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과기노조는 조직결성 방식에 있어서도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과기노조는 정부와의 6개월에 걸친 투쟁과 줄다리기 끝에 기업별노조들의 조건부해산과 과기노조 창립 발기인대회를 절차로 조직을 전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체협약과 조합원을 승계하는 등 기존 기업별노조의 권리가 그대로 보존되는 형태로 행정해석을 남기며 합법성을 쟁취했다. 이는 이후 노동법 개정에 반영됨으로써 기업별노조에서 업종별단일노조, 지역노조, 산업별노조 등 어떠한 형태의 초기업단위 노조로의 전환도 규약변경만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한편, 과기노조는 규모와 이후 조직발전 전망을 고려하여 ‘소산별노조’로 불리게 된 것일 뿐, 그 자체로 업종별 단일노조를 기업별노조의 유일한 혹은 유력한 대안이라고 주장하거나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조직형태와 경로를 선택할 것인지는 오직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판단과 결정에 맡겨진 일이었으며 그때까지 발전해온 연맹별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문제였다. 실제로 과기노조가 결성된 이후에 전문노련과 사무금융노련은 산하조직의 업종간 편차와 조직적 차이로 소산별노조의 경로를 채택했고, 보건·대학·금속·언론·화학 등의 연맹들은 연맹 전체의 산별노조 전환을 추진했다. 

민주노총은 1994년 11월 준비위원회가 결성될 당시부터 조직 체계를 산별연맹 체제로 두면서 산별노조의 전망을 명확히 했다. 이에 따라 연맹 간 통합 및 산별노조 전환·건설이 노동운동의 큰 흐름을 형성했다. 그러나 “소산별이냐 대산별이냐” 여부는 연맹에 맡겨진 상태였다. 최근에도 일정 규모 이상의 산별노조 전환 및 건설이 큰 흐름으로 형성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조직 대상, 형태, 경로를 둘러싸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금속·보건·공공의 사례와 경험들은 이러한 논쟁과 실천을 더욱 역동적인 방향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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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2005년 1차 중앙위원회 모습 - 출처 :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

중앙집중과 현장자율성의 어려운 줄타기

과기노조는 중앙이 교섭권, 체결권, 쟁의권, 지부임원 및 운영규정 인준, 지부의 설치와 해산권 등을 갖는다. 그리고 기존 기업별노조 단위로 지부를 설치했고 지부임원에 대해서 조합원 직선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각 지부들은 지부장의 당연직 중앙위원 권리, 기존 지부별 기금의 자율적 집행 권한을 갖고 있다. 즉, 중앙집중과 동시에 조직민주주의 및 현장조직의 자율적 역량이 살아있는, 이른바 ‘한국식 산별노조’를 지향한 것이다. 

조합비는 기존 노조별 편차가 커 규약에 기준만 정하고 지부별 운영규정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되 점차적으로 통일시키기로 했다. 단체협약에 근거하여 본부로의 일괄공제와 지부별 배분체제를 구축했다. 배분비율은 처음에는 본부와 지부의 비율이 3.5 : 6.5였고, 지금은 4.5 : 5.5의 비율이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본부 및 지부사업의 재정연계는 여전히 취약하다. 

산별노조인 과기노조의 조직화방식은 노조결성이 몇 차례 실패하였거나 노조가 없던 소규모사업장을 조직하는 데 기존의 기업별노조의 경우보다 훨씬 유리하게 작동했다. 그리하여 애초 14개 지부로 출발하였던 과기노조는 지금은 39개 지부, 1개 직할 분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들의 조직화는 미흡한 수준이다. 조금씩 실현되고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도 비정규직을 조직대상으로 하지 않거나 가입을 거부하는 지부들도 있다. 이는 정규직 조합원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고, 출연기관 자체가 정부의 예산통제 하에서, 특히 IMF 이후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긴 하지만 과기노조는 2004년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주요 교섭요구로 했고 그와 관련하여 대정부투쟁과 조직화사업을 추진했다. 2005년에도 10대 요구 중에서 2개가 비정규직 관련조항이며, 이는 어느 정도 수용되고 있다. 그리고 별도의 팀을 구성하여 연맹과 함께 조직화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조직화사업은 정책 및 제도개선 투쟁과 정규직 교육사업이 병행되지 않고서는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리고 현재 상황은 이를 추진하는 데 과기노조의 조직형태가 기업별노조의 경우보다 유리하다고 주장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즉, 산별노조가 되면 비정규직을 훨씬 더 잘 조직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만 산별노조가 되어 대정부, 대사회 투쟁을 더 잘 할 수 있고, 그래서 조직화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할 수 있을 듯하다. 

한편 현장이 살아있는 강력한 산별노조의 목표를 얼마나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판단이 가능하다. 과기노조를 처음에 만들어 교섭과 투쟁을 했을 때 확실히 공동의 요구를 관철하는 것과 그리고 탄압을 받는 혹은 소규모의 취약한 지부들의 사용자에 대한 대응이 쉬워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지부간부들의 수동적인, 본부 의존적인 자세를 가져오기도 했다. 본부는 그럴수록 통제를 강화하려고 하는 관료적 자세를 강화함으로써 결국 지부 조직력의 약화, 새로운 현장간부 육성의 어려움, 본부와 지부의 갈등, 지부끼리의 반목, 지도력과 집행력의 약화, 결과적으로 과기노조 전체의 약화를 불러왔다. 

이 와중에 맞이한 IMF 구조조정과 노조탄압은 과기노조의 어려움을 가중시켰으며 조직 내부의 갈등까지 확산되며 조직의 정체와 이완이 지속돼 왔다. 과기노조도 겪었던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업장별 지부나 지회보다는 지역별 조직체계를 중심으로 해야한다”는 주장이 공공연맹의 공공산별노조 건설방안에서 구체적으로 제안되고 있다. 상당한 논쟁이 예상된다. 충분한 토론과 점검,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다. 

 “통일교섭도 못하면서 산별노조인가”는 항상 옳은가

과기노조를 건설한 후 통일된 요구를 갖고 대각선 교섭을 일제히 시작하여 전체 조합원 투표를 통해 내용 있는 산별파업을 실현했다. 이로써 정부의 정책을 변경시키고, 가이드라인 철폐와 통일단협 쟁취 등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대각선교섭을 넘어서 통일교섭의 실현을 과제로 삼아 투쟁했지만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때문에 조직적 무력감이 확산되고 “통일교섭도 못하면서 산별노조인가”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통일교섭이라는 형식적 구조의 중요성에만 매달리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는 것이 조합원들에게 가장 유리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의식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통일교섭이 이루어지더라도 통일교섭에 모두 담지 못하는 지부별 요구들을 어떻게 관철할 것인가가 중요한 고민의 지점이 되어야 한다. 

과기노조는 결성 이후 과학기술계 정부출연 연구기관만이 아니라 여타 공공사업장으로 확대됨으로써 사업장간 편차가 매우 커졌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전체기관의 통일교섭은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그래서 5개 그룹별 통일교섭과 기타 사업장의 대각선 교섭을 병행해서 진행하고 있으며 투쟁과 파업은 통일되게 진행할 계획이다. 통일교섭 구조는 산별노조의 규모가 아니라 사업장간의 동질성과 노조의 조직력이 함께 어우러질 때 가능할 것이다. 

과기노조의 경험을 돌이켜 봤을 때, 공동의 요구나 공동의 분노가 있을 때 정성을 들여 조직해야 공동의 투쟁과 파업이 가능하다. 지부별 현안을 둘러싼 싸움이거나 별도의 대각선 교섭과정에서 결렬되어 투쟁에 돌입하는 경우에는 산별노조도 지원이, 기업별노조 차원의 연대보다야 낫겠지만, 전체가 함께 투쟁하거나 파업하는 구조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따라서 공동의 요구와 분노를 조직해내는 것, 즉 이를 위한 대정부 정책 및 제도 개선투쟁을 어떻게 조직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이 경우 다른 노조들과의 연대 공동 투쟁 또한 매우 중요하며, 민주노총이나 연맹 차원의 공동의 노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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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대전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참과학열린학교'를 개최한 과학기술노조 - 출처 :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

산별노조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들

과기노조의 주요요구와 사업은 사업장의 성격상 기본적으로 ‘참과학’을 실현하고 ‘사회공공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정부와의 갈등과 충돌이 항상 발생한다. 즉 과기노조가 지향하는 바는 정부의 부당한 지배개입과 과학기술 및 공공연구기관에 대한 시장과 관료의 통제를 저지하고 과학기술의 민주주의와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지배구조를 민주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들은 기업별노조 체제에서는 용이하지 않다. 실제로 기업 단위에서는 해결 불가능한 정책적, 제도적 문제들을 산별노조인 과기노조의 투쟁을 통해서 해결해 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조합원의 정치의식 또한 성장했으며, 이는 과기노조 차원의 정치사업, 지역사업에도 탄력을 주었다. 한편 산별노조는 연대사업을 하기에도 유리한 구조임에도 틀림없다. 산별노조 형태는 조합원들의 기업별 종업원 의식을 사회적 의식, 정치적 의식으로 전환 발전시키는 데 유리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 사업, 역량의 강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정책, 정치적 성과도 많은 반면에 아무리 산별노조라고 하더라도 실패와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으면서 반작용으로 정책 대응력과 정치 투쟁력이 퇴보하는 경우도 많았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소산별노조의 경우 이렇게 사업수행이나 이후 조직발전 전망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서 연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과기노조가 IMF 이후 대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이후 더 큰 산별노조로의 발전이 더디게 진행되어온 데는 스스로가 갖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이에 대응하고 조직할 연맹의 역할이 여러 가지 이유로 부실해진 데도 그 이유가 있다. 공공연맹이 공공산별을 추진하려한다면 금속노조와 금속연맹 등 다른 조직들의 경험을 꼼꼼히 살펴보고 이러한 부분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과기노조가 다시 대외 연대활동을 강화하고 연맹과의 결합력을 높여나가는 것은 과기노조의 자체 조직력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이후 조직발전 전망과 관련한 연맹의 역할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새사회 여는 산별노조라는 무기를 벼리기 위해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는 산별노조운동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산별노조운동의 경험 속에서 산별노조 자체가 만능이나 도깨비 방망이가 아닐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조직형태와 발전경로, 조직체계 및 운영방식을 둘러싸고도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과기노조 지난 11년의 성과와 한계는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다. 공공연맹 내의 소산별노조로서 공공연맹의 경험이기도 하고, 민주노조 운동에서 실제 많은 소산별노조들이 과기노조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소산별노조운동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험일 것이다. 또한 소산별노조운동을 넘어서는 산별노조운동 전체의 선례와 경험이기도 하다. 과기노조에서 나타나는 많은 구체적인 문제들은 소산별노조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과기노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시점에서 산별노조운동의 원칙과 방향 관련하여 짚어졌으면 하는 몇 가지를 간략하게 언급하며 마치고자 한다. 첫째, 산별노조운동의 목표와 전망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 전망과 목표란 새로운 사회적 가치가 지배하는 새로운 사회를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건설하는 데 있어 산별노조가 중요한 무기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 신뢰받는 지도력과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화시켜야한다. 셋째, 그러므로 주먹구구식을 넘어서 조직, 정책, 투쟁 및 각종 사업에 대한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투쟁 따로 산별 건설 따로 가는 경우를 막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조직, 정책 및 사업 등의 전략적 연계성을 강화해야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의 목표, 전략, 지배구조, 조직운영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고, 더불어 사회경제적 조건, 제도 및 문화, 이해관계 집단의 구조, 이념 및 아이디어 등 외부적인 요인들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응할 수 있는 ‘사회 이행 전략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