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운동의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하여

노동사회

산별노조운동의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하여

편집국 0 3,121 2013.05.19 12:52

산별노조 운동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평가를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조직적으로는 내부갈등(보건의료노조)과 소수노조의 고군분투(금속노조), 산하조직의 과도한 독립성(금융노조), 그리고 그 외에 직종별노조의 성격이 강한 소산별노조의 영세한 규모 등이 산별노조에 대한 평가와 함께 새로운 전망을 열기 위한 과제가 시급함을 나타낸다.

여기에 산별노조 건설 방향을 둘러싼 논쟁(공공연맹), 산하 조직과 논의나 협의 없이 제안된 민주노총의 대산별 재편 원칙과 일정, 그리고 산별구획에 대한 문제제기는 산별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함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조직 밖에서는 기존의 산별노조 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제출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조직 밖에서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조직이 안고 있는 여러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산별노조의 확대 전망, 특히 대공장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이 짧은 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겹쳐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최근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되짚어보고, 이후 산별노조 운동의 현실적 전망을 열기 위한 제언의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제출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보건의료노조의 내부갈등에 대한 문제, 금속노조의 조직 확대를 위한 현실적 대안 모색, 그리고 민주노총의 대산별원칙에 대한 검토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조직에서의 원칙과 현실

먼저 내용에 대한 판단은 일단 미뤄두고, 보건의료노조와 서울대병원지부의 갈등을 ‘산별노조 건설’로부터 ‘교섭구조 집중화’로 이행하는 과도기에서의 조직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지난 2004년 보건의료노조는 산별노조 건설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산별교섭을 성사시켰다. 그 교섭안건에는 산하조직의 근로조건을 ‘강하게’ 규정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노동운동처럼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하고 있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 가지 어려운 문제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그 하나는 ‘기업의 지불능력’이라는 우산 밑에서 임금, 근로조건의 격차를 용인해왔던 기업단위 산하조직들이 산별노조로 전환한다고 해서 과연 이러한 격차를 한꺼번에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임금이나 특정 근로조건에 대해서 산별교섭이 최저기준을 정하는 순간 지불능력이 취약한 기업들에게는 존립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도래하면서 노사 공히 산별교섭 대열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험은 금속노조 경주지부에서 임금교섭을 둘러싸고 이미 나타난 바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산별교섭이 최저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도, 산별교섭이 최종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도 조직 입장에서는 쉽게 단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서구의 산별노조 경험에서 비롯된 “산별협약이 최저기준이다”라는 명제도 사실은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섭수준에 따라 의제가 달라지기도 하고, 그러한 의제나 상황에 따라 산별협약의 기본원칙을 따르더라도 사업장별로 실정에 맞게 적용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별협약이 무조건 최저기준이어야 한다는 법도 현실도 존재하지 않는다. 각국의 특수한 조건과 조직력, 조직구조, 교섭구조,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각종 제도와 관행의 차이에 의해 달라지는, 한마디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원칙인 것이다.

따라서 보건의료노조와 서울대병원 지부의 갈등과 징계, 탈퇴, 그리고 공공연맹으로의 가입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는 쉽게 잘잘못을 단정짓기 힘들다. 소위 무엇이 원칙인가의 문제는 내용과 형식으로 나누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은 산별교섭의 결과로 나타난 협약 내용을 문제삼아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다른 한쪽은 내용상 문제가 있다 치더라도 조직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조합원 다수의 동의를 얻은 것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논리를 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이 원칙인가’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칙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엇인가? 조직 내에서 관철되어야 할 원칙을 이것이다 하고 단정지어 주장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러한 원칙은 물리학적 법칙처럼 누구에게나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고르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공동의 조직목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과 방법의 차이 때문에 조직 내부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도 있고, 혹은 조직목표는 동의하지만 어느 단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이르러야 하는가에 대해 합의하지 못함으로써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는 사실 보건의료노조만이 아니라 대부분 노동조합에서 직면하게 되는 갈등이기도 하다. 중요한 점은 노동조합이든 아니든, 모든 조직은 외부환경에 반응하고 환경과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조직의 목표와 원칙이 이미 확고하게 세워져 있다고 하더라도 환경을 무시하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조직은 없다. 노동조합의 경우 특히 교섭상대방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목표 또는 원칙의 일방적 관철이 매우 어렵기도 하다.

여러 조건을 살펴봤을 때 산별노조 전환 이후 8년 동안 교섭구조를 집중화시키지 못하고 있던 보건의료노조가 교섭구조의 집중화를 위해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2002년에 산별노조로 전환을 했지만 산별교섭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조직 내부에서 강한 문제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은 이러한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전 조직이 산별교섭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교섭구조 집중화 어지럽힌 서울대병원 지부 

우리사회의 노사관계에서처럼 기업별노조 체계의 관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조건에서는 소위 산별협약의 체결의 성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형식적인 측면, 즉 교섭구조의 집중화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교섭구조의 집중화라는 것은 결국 ‘다수사용자’를 교섭석상으로 끌어내어 협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용자단체는 교섭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로비와 집단적 이익 추구를 위한 협회의 성격을 강하게 갖기 때문에 산하 조직에 대한 통제력이 전무하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노조가 병원협회를 상대로 산별교섭 요구를 아무리 강하게 해도 수용될 수 없었다. 결국 보건의료노조는 개별 사용자를 압박하는 전술을 통해 산별교섭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2004년의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 체결은 직권중재의 망령 때문에 난관에 부딪쳐 왔던, 파업동력의 집중화를 이뤄내고 얻은 성과라 할 수 있다. 2004년 보건의료노조로서는 향후 몇 년간 실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동력을 집중시켰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산별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이 협약은 다수 조합원의 직접 투표에 의해 가결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협약 내용에 대한 조합원의 인식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합원 총회에서의 인준절차는 우리가 조직에서 다수의 원리를 적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선택한 것이다. 때문에 그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서울대병원지부의 문제제기는 그 내용을 떠나서 형식적으로 조직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산별교섭의 측면에서 서울대병원지부는 중요한 반면교사의 교훈을 남겼다. 교섭구조의 집중화를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교섭결과에 대해 노조든 사용자든 산하 조직에 강제할 수 있는 ‘통제력’이라는 점이다. 중앙단위에서 합의한 결과가 조직 내부에서 부정당하고 재교섭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순간, 노사 모두에게 교섭구조 집중화의 유인은 없어지게 된다. 2005년 교섭과정에서 보건의료노조 사용자들이 서울대병원지부의 사례를 들먹이며 교섭을 지연시켰던 것은 극히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다. 서울대병원지부는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단순한 조직구조상의 변화에서 교섭구조의 구축이라는 안정적인 체계로 이행하려는 시점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서 공공연맹 가입을 너무 일찍 선택함으로써 민주노총 전체적으로 산별구획과 관련해 파편적이고 돌출적인 논의를 촉발시켰다는 것 또한 지적할 수 있다.

금속노조 중앙교섭의 발전, 그러나… 

금속노조는 보건의료노조와 달리 단위 사업장의 구체적인 협약내용은 사업장단위 지회의 보충교섭을 통해 체결하도록 하고, 교섭구조의 집중화를 위해 중앙교섭 안건을 최소화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설립 5년 만에 산별노조를 상대로 한 사용자단체의 구성을 구체적으로 합의하였고, 2006년에는 금속노조와 금속사용자단체 간의 명실상부한 산별교섭이 열릴 것을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개별사용자를 압박하는 전술을 통해 사용자단체를 강제하는 성과를 낳은 것이다. 교섭내용에 있어서는 주5일제, 산업별 최저임금, 비정규직, 산업공동화의 문제 등 노동조합운동에서 정치적 유의미성을 갖는 조항들을 체결함으로써 민주노총의 방침을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한계가 존재한다. 첫째 협약적용은 여전히 개별사용자의 위임을 받고 중앙교섭에 참가한 사업장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 둘째 금속노조 내의 대공장지회가 사용자를 중앙교섭으로 끌어낼 만한 힘이 없어서 중앙교섭에서 합의한 협약들의 적용 대상이 많지 않다는 점, 셋째 금속산업연맹이 산별노조 건설을 선언한 지 7년, 금속노조 설립 5년이 경과하는 이 순간에도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의 중심동력이라 할 수 있는 대공장노조의 산별전환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처음 두 가지 문제는 현재로서는 금속노조의 자체 역량만으로는 단기간에 극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금속노조 산하 대공장지회의 조직력이나 투쟁력이 사용자를 중앙교섭으로 끌어내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추측되며,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를 통한 조직 확대의 속도는 더디고 이들 조직에 중앙교섭에서 합의한 조항들을 적용하는 문제 또한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은 당장에 해결하기보다는 전체 산별노조 운동의 진전 정도, 노사정간의 역학관계 등의 변수에 따라 시간을 두고 해결책을 찾아 가야 한다.

그러나 세 번째로 지적한 문제, 대공장노조, 특히 자동차 완성차노조의 산별전환은 금속산업연맹이나 금속노조, 그리고 더 나아가 민주노총 차원의 산별노조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재적인 변수’라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수고스럽더라도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 보자. 기아자동차는 2001년 산별전환 총회까지 공고했다가 조직체계에 대한 현장조직의 이견으로 철회한 경험이 있고, 쌍용자동차는 10여표 차이로 산별전환이 부결되었으며, 현대자동차 또한 내부 현장조직간 이견으로 조합원 투표를 못하다가 2003년 가까스로 조합원 투표를 붙이자는 데 합의했으나 62%로 부결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대우자동차는 부도와 지엠(GM)으로의 조건부 인수 때문에 내부적으로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즉, 자동차 완성차노조의 산별전환은 개별화되어 각개약진하다가 거꾸러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금속산업연맹 또한 이들 노조에 대한 영향력이 부재한 가운데 구체적인 산별전환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단순히 동시총회라는 ‘일정’만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shkim_02.jpg
[ 금속노동자들의 거리행진. - 출처 : 금속산업연맹 ]

대공장노조를 한 순간에 집어삼킬 수 있는가

그렇다면 향후 금속노조의 조직적 확대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자동차 완성차노조 산별전환의 현실적 경로는 무엇일까? 
첫째, 먼저 소위 ‘대공장 이기주의’라는 것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대공장 이기주의를 보다 분명히 인식할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대안이 모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원(인적, 물적, 정치적 자원)이 풍부한 조직(대공장노조)과 그렇지 못한 조직(중소공장노조) 사이에서, 전자 조직은 후자 조직에 의존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요구하는 수준과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기업 내부의 임금,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된 영역만을 놓고 보면, 대공장노조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힘만으로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대규모조직과 중소조직이 분리 정립된 상태에서 대규모조직은, 특별한 상황에 처하지 않는 한, 자신의 생존능력을 높이거나 조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비슷한 자원을 가진 조직과 상호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대공장노조는 대공장노조와의 결합을 더 선호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대공장 이기주의’로 표현하면서 산별노조 전환의 당위성만을 거론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

둘째로 생각해봐야 할 지점은 ‘완성차 대공장노조들이 산별노조로 전환을 했을 때 곧바로 금속노조에 합류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합류했을 때 나타날 문제점은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 금속노조는 주로 규모가 작은 중소사업장 단위의 지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 덕택에 오히려 금속노조의 방침을 기동력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형성됐다. 그런데 완성차노조들이 금속노조로 합류하게 되면 그 노조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금속노조 특유의 기동력을 발휘하는 데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현대자동차란 하나의 기업노조와 금속노조란 산별노조의 조합원 규모가 비슷한 상태에서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에 합류할 경우 조직운영상의 문제(가장 단순하게는 대의원배정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조금 이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완성차노조들이 동시에 산별노조 전환을 결의하고 금속노조에 합류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재 각 기업의 조건이 다르고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내부 논의나 준비정도가 모두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만약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완성차노조들이 산별전환을 한다면 앞서 지적한 것 이외에도 복잡한 조직체계, 운영상의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산별노조 체계로 5년간 유지된 금속노조와 기업별노조에서 바로 전환한 완성차노조 사이에는 단순히 ‘5년’이란 물리적 시간 이상의 간격이 존재한다.

셋째는 금속노조가 그간의 활동을 통해 달성해 놓은 중앙교섭에 관련된 사항이다. 금속노조의 중앙교섭 합의안을 과연 완성차노조가 당장 자신들의 기업에 강제할 수 있는가를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교섭구조, 혹은 협약체결 적용의 문제를 넘어서는 성격을 갖는다. 앞에서 언급했던 5년의 누적된 차이를 단순히 대공장노조라고 해서 한순간 극복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완성차노조들의 단일노조 건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면서 금속노조 조직확대의 가장 현실적인 경로와 전은 무엇인가를 공개적으로 토론해 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금속노조는 현 교섭구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통한 조직 확대를 추진하고, 완성차노조들은 단일노조를 추진하면서 양자가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가장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게 내 주장이다. 

물론 완성차노조들이 단일노조를 추진하는 과정에는 일상적 연대의 강화, 자동차산업 정책에 대한 공동 학습과 공동의 대안마련, 공동임단투를 비롯한 공동투쟁 전술의 운용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완성차노조들의 연대나 공동투쟁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전국 사안에 대한 투쟁결합, 금속산업연맹을 중심으로 한 정책담당자 실무자회의 등을 제외하면 사실 별로 없다. 그리고 동일한 방침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각개약진 하는 방식의 ‘공동투쟁’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장으로부터 발생하는 공동의 사안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모듈화, 교대제, 고령화의 문제 등 완성차 노동자들의 현장에서 절박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공동의 요구안을 제출하거나 이를 기초로 한 공동투쟁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완성차노조들이 금속노조와 조직구조상 일단 분리해 단일노조 건설을 추진하고, 그 방향은 금속노조의 성과를 유지하는 가운데 내용적으로 조정 또는 통합하는 것으로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한다. 다만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은 자동차업종의 산별노조를 주장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점이다. 자동차 ‘업종’의 산별노조는 금속노조가 쌓아왔던 교섭구조의 집중화, 산별노조 조직운영의 소중한 경험은 해체될 가능성이 크다. 금속노조의 주력 사업장은 자동차부품사이다. 따라서 자동차업종 산별노조가 건설되어 금속노조에서 자동차부품이 빠져나가는 순간 금속노조는 그 자체로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업종 산별노조가 금속노조의 다른 업종 지회들을 포괄하는 형태로 가거나, 자동차업종의 교섭결과를 모델로 삼아 확산전략을 취하면 되지 않는가 할 수 있겠으나 그렇더라도 마찬가지다. 금속노조의 조직체계, 운영, 교섭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업종 산별노조를 주장하는 근거로 자동차부품사업장 지회의 입장에서는 완성차노조들과 하나의 조직으로 묶이는 것이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진행된 과정을 보면 원하청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금속노조의 성과를 유지하는 가운데 자동차 ‘업종’이 아니라 ‘완성차’노조들 단일노조를 추진하되, 과도기를 거쳐 양 조직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대산별 원칙과 경로에 관하여

그 세부적인 방안과 계획은 조직 내부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노총 조직혁신안은 2007년까지 6개의 대산별로 재편하는 일정을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 속에서 보아왔던 조직구조 변화의 어려움과 이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저항(이 저항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또는 현재의 문제를 극복할만한 분명한 선택이 부재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을 고려한다면 이는 여전히 ‘일정 제시’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최근에는 서울대병원지부의 보건의료노조 탈퇴와 공공연맹 가입으로 인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산별구획’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조정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한계까지 나타나고 있다.

2007년 예정되어 있는 격렬한 전환기를 거치며 생존이 가능한 조직규모, 더 나아가 산별조직의 역량을 발휘할 만한 조직규모를 생각해야 하는 조건에서 대산별로 묶는 것이 바람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렇게 급작스럽게 인위적으로 묶는 재편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현재의 연맹 내부에서 하나의 교섭단위로 묶을 수 있는 조직들을 끊임없이 산별 형태로 재편하는 한편, 연맹이 각 산하조직에 대한 통합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이후 조직구획이나 통합결정을 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에는 다양한 수준과 형태, 범위의 조직이 공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공연맹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후 산별전환 전망과 관련하여 공공대산별과 운수산별의 관계와 관련한 논쟁이 진행 중에 있고, 보건의료노조와 공공연맹의 갈등으로 비화된 서울대병원지부의 처리, IT연맹 가입 승인 과정에서의 표결처리와 대의원대회에서의 가입승인 취소 요청 등 조직구획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민주노총 중앙에서 산별노조 건설과 일정을 제시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야말로 조직 ‘내부’의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제시한 일정대로 2년 내에 대산별로 일괄 재편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조직구조 변화를 꾀하는 이유 중 하나인 교섭구조의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재편된다 하더라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즉, 조직구조의 문제와 교섭구조의 문제를 동시에 검토하고, 현실에서 가능한 수순을 합의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산별전환과 조직구획에 대한 결정은 민주노총 ‘중앙의 몫’이 아니라 민주노총 ‘전체 조직의 몫’이며, 이는 결국 조직 성원의 합의를 어느 수준까지 이끌어내는가 하는 역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조직 갈등은 목표의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목표가 같더라도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과 방법상의 차이 때문에 빚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산별노조 운영과 체계에 대한 중앙파와 국민파 간의 갈등, 그리고 뒤이은 중앙파와 국민파의 연합, 그리고 이를 야합이라고 비난하면서 산별전환 반대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현장파의 저항 속에서 반쪽짜리 산별노조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금속산업연맹의 경험이 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