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장 산별노조활동가의 아쉬움과 희망

노동사회

대공장 산별노조활동가의 아쉬움과 희망

편집국 0 2,456 2013.05.19 01:20

처음 원고 청탁을 받고 많이 망설였다. 금속노조에 대한 ‘아쉬움’을 주제로 글을 쓰다 보면 아무리 다듬어도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고, 현직 지회장으로서 자칫 조직의 위상을 저해하는 글을 썼다고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금속노조는 ‘아쉬움’보다는 ‘희망’을 더 많이 안겨주고 있다. 그럴수록 조직원의 애정 어린 비판도 많이 제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수렴할 수 있는 포용력도 겸비하고 있다고 자신하기에 부족함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쓴다.

중앙 현장지향성과 현장 중앙집중성의 간극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는 별도로 글을 쓰면서 한 가지 걱정이 앞선다. 내가 현장조합원들의 정서에 상당히 치우쳐 있고 중앙활동에 대해 문외한이기에 시야가 좁은 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쉽지만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도 중앙의 ‘현장지향성’과 현장의 ‘중앙집중성’ 사이의 모순을 아직까지 효율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드는 산별활동의 아쉬움은 현장과 중앙의 ‘어긋남’에서 나오는 고민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러한 경우는 특히 내가 중앙과 현장 사이에서 활동하는 지회장이기 때문에 더 느끼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이나 금속연맹 같은 상급단체들은 빈번하게 투쟁지침을 내리지만, 현장에서는 받아들이기에는 감이 멀다. 중앙에서는 ‘팩스’로 투쟁일정을 날려보내기 바쁘고, 현장에서는 간부나 조합원들이 중앙간부 얼굴 한번도 보지 못하고 파업투쟁을 준비하기 일쑤이다. 중앙활동가들이 현장순회라도 와서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상황은 늘 여의치 않다. 조합원들에게는 중앙간부들이 너무 바쁘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럼 선거 때는 왜 그렇게 귀찮게 자주 찾아오고 문자메시지만 가득 날리느냐”며 투덜댄다. 그럴 때마다 단위노조 대표자들은 터져 나오는 간부와 조합원들의 불만을 달래기에 바쁘다. 그러다가 안 되면 투쟁동참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기업별노조에서보다야 나은 상황이겠지만, 산별노조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 과제가 여전히 존재하고 오히려 중앙의 강한 규제력 때문에 뒤쳐지는 지회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중앙간부와 현장활동가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간부 숫자 부족이 낳는 ‘관료주의’

두 번째 아쉬움은 ‘관료주의’를 양산하는 시스템과 관련한 것이다. 9월에 있었던 금속노조 4기 임원선거 중에 내가 겪었던 경험 한 토막을 사례로서 소개하고 싶다. 지회장 선거등록을 하루 앞두고, 중앙의 본조 임원후보들 중에 한 팀이 지회장인 내게 현장순회를 동행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였던 나는 사전에 지부(지회)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현장순회 동행은 선관위에 등록한 운동원만 할 수 있으며 변경 시에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라고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따라서 이를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현장순회 동행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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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4기 임원선거를 앞두고 정책토론을 벌이고 있는 후보자들. - 출처 : 전국금속노동조합 ]

그런데 이로 인해 여러 가지 곡절을 겪게 됐다. 해서 중앙선관위에 알아보니 “지회장은 본조 임원후보의 현장방문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지회장 후보로서 자신의 선거에 영향을 있을 경우 거부할 수 있다”라는 답을 받았다. 이는 중앙선관위가 현장순회에 대해 중앙의 방침만 확인하고 내가 소속된 지부(지회)의 선거 방침은 전혀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결론이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중앙선관위의 관료적 회의결과였다.

 그리고 그런 문제의식은 선관위원들 개인에게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료주의를 양산하는 현재의 ‘시스템’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선거 직전에 현장에서 조직된 선관위원들에게 ‘관료주의자’ 딱지를 붙이는 것은 너무나 큰 억측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가? 그것은 15개 지부, 2백여개 지회에서 후보들이 경합을 벌이고, 4만여명의 유권자들이 복수로 투표하는 이번 임원선거의 중앙선관위원이 겨우 7명이었다는 데 이유가 있다고 본다. 조직은 비대해졌는데, 조직을 이끌고 가는 지도력(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보기에는 매번 ‘관료주의’로 비춰지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중앙집행위원회, 중앙위원회, 대의원대회 등 각종 회의에서 현안문제를 토론할 때 현장방문과 실사를 통해서 확인한 것을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건’을 두고 토론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문제 때문에 현장출신이 아닌 중앙간부들과 현장의 단위사업장 간부들이 사업을 놓고 마찰을 빚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벌써 4기를 준비하고 있는 금속노조가 지도력(인력)부족으로 현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사업들을 배치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대단히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다. 이는 전 조직원이 책임을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소냐 유지냐, ‘기업지부’를 어찌할 것인가 

세 번째는 회계나 각종회의, 특별위원회 등 다양한 조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조직 형식주의’이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부분은 ‘지부’와 관련된 소모적인 논쟁이다. 금속노조의 ‘지부’ 조직방침은 ‘지역’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기업지부’를 인정하고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현재 유일한 기업지부인 만도지부가 금속노조에 가입할 당시 “3천명 이상 사업장이 3개 시·도 이상 걸쳐 있을 경우에는 기업지부를 한시적으로 인정한다”라는 예외규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는 금속노조 초기 대공장노조를 하나라도 가입시키기 위해 짜낸 궁여지책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이후에 “기업지부를 해소해야 한다”는 측과 “기업지부를 유지해야 한다”는 측이 격한 논쟁을 벌이며 다년간에 걸쳐 혼돈을 거듭하고 있다. 나도 해당지부의 활동가로서 이 논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나름의 견해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우선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양쪽의 주장을 나열해 보겠다. 먼저 기업지부를 해소하자 쪽은 “금속노조 규약과 규정에는 ‘지역지부’가 원칙으로 명시되어 있고, 계급적 단결이라는 산별노조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지역지부를 근간에 두어야 하며, 기업지부를 주장하는 것은 기업별 의식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기업지부는 기업별 노조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업지부를 유지하자는 쪽은, “금속노조는 현재 조직이 과도적 상태(금속연맹 17만 조합원 중에서 4만명만 금속노조 조합원)로서 연맹부터 산별로 전환해야 하고, 기업지부를 해소하면 개별자본 구조조정 투쟁의 핵심 조직역량이 약화될 수 있으며, 또한 해당 조합원들의 의견이 전반적으로 수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기업지부를 고집하는 것은 기업별 의식을 깨트리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현재까지 기업지부가 노조 투쟁지침에 빠져 본적이 없는데, 일부 지회처럼 연대투쟁에 얼굴 한번도 내밀지 않는 곳은 지역지부로 편재된 것 하나만으로 산별의식이 투철한 것이냐”며 울상이 되어 반문하기도 한다. 

양쪽의 주장 모두 과학적이지 못한 분석에 근거하는 면이 있다. 노조의 조직형태는 대중의 투쟁경험이나 의식 그리고 자본의 조직형태, 국가의 제국주의 질서 편입 정도 등을 거시적, 미시적인 차원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해당 단위에 맞게 구성해야 할 텐데, 그런 부분에 대한 명쾌한 제시 없이 “외국 어디는 어떻게 한다더라”, “누구 먼저 하면 하겠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조직 형식주의에 오염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렇게 기업지부 논쟁이 조합원과 간부들의 피로감을 서서히 누적시키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만도지부를 통째로 ‘지역지부(강원지부 준비위원회)’로 명칭만 변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이는 합의라기보다는 절충으로 보인다. 또 다시 조직 형식주의가 나타나는 대목이다. 

조직형식 원칙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찾아야

사실 이렇게 불필요하고 비과학적인 논쟁은 금속노조 창립 전부터 시작됐다. 당시에 산별노조를 주장하는 활동가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일본 노동운동이 망한 이유는 기업별 노조였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나도 그렇게 알고 선전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일본 노동운동이 망한 근본이유는 ‘투쟁성의 결여’인 것 같다. 해고를 당하면 법원에 제기하고 판결기간 2년 정도를 얌전히 기다리는 노동운동이 산별노조였다면 버텨낼 수 있었을까? 게다가 일본에 산별노조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또 한가지 예로 들었던 것은 잘나간다는 유럽의 산별노조였다. 그러나 유럽의 노동운동은 소련을 비롯한 현실 사회주의권의 직접적인 영향을 통해 자본에게 일정한 양보를 제공받는, 상대적으로 편한(?) 운동이었다. 자본의 조직형태가 신자유주의 종주국에 가장 밀접하게 예속되어 있는 우리나라와는 운동의 토대가 전혀 다른 셈이다. 그런데 당시 활동가들은 유럽식 산별노조 건설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과도하게 선전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태어나면서부터 식민지, 전쟁, 분단, 군부독재 등을 거치면서 산별노조와 기업별노조 모두를 경험했고 ‘투쟁성’을 유일한 생존비법으로 터득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가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산별노조를 내세우고자 한다면, 조직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당연히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투쟁성을 극대화시킬 방안이 무엇인가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의 노동운동의 경험은 참고사례일 뿐인 것이다. 금속노조의 ‘지부’ 결성 방식은 이러한 고민 속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직 형식주의에 빠져 ‘보기 좋고 말썽 없는 조건’만 추구한다면, 위기를 극복하는 내용을 갖추기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4기 지도부의 분열

네 번째 아쉬움은 정파들의 대립과 관련한 것이다. 사실 금속노조 3기 ‘통합지도부’는 이러한 정파갈등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집행기간 내내 지도부 내부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중앙집행위원회, 중앙위원회, 대의원대회 등 이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자리는 오히려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경향을 보였다. 앞에서 언급한 지부구성과 관련한 논쟁을 비롯하여 사무처 운영과 회계관리 시스템에서 발생한 문제, 그리고 성폭력 사건 등 조직운영과 관련한 현안들은 과학적인 분석과 정상적인 토론으로 극복되기보다는 상호대립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정파갈등은 조합원들이 중요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고, 따라서 조직에서 합리적인 대안과 실천이 만들어지지 못하게 한다. 이는 현재 금속노조에서 대공장의 산별전환, 비정규직 투쟁, 원하청 불공정거래, 하반기 노사관계로드맵 분쇄투쟁 등 주요 투쟁과제에 대해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정파별로 서로 다른 대안을 수립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하나인데 서로 다른 답을 내놓고 자기 답만 옳다고 다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파갈등이 심해진 상황이다 보니, 모두가 단결하여 쟁취한 성과들, 한진중공업 열사투쟁을 승리했고, 중앙교섭을 통해 손배가압류를 금지시키고 산별 최저임금과 주5일제를 쟁취했던 금속노조의 소중한 성과를 올바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생겨난 것 같다. 그 결과 4기 임원선거는 두 진영으로 분열되어 경선을 치르게 되었다. 3기 통합지도부 때는 두 진영 모두를 자신의 지도부로 두고 있던 조합원들은 이제는 둘 중에 한 진영만 스스로의 지도부로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은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앞에서 열거한 다른 모든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지도부의 분열이 더더욱 안타깝다.

‘희망’은 산별로 연대하는 우리 자신    

지금까지는 금속 산별노조에 대한 아쉬움을 주로 나열하다 보니 어두운 측면만이 강조되고 내용도 괜히 길었다. ‘희망’은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먼저 금속노조는 산별노조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앞에서 ‘아쉬움’이라고 나열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금속산별노조가 끊임없이 전진할 수 있는 것은 조합원 대중들의 자발적인 요구가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꾸준히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방식처럼 개별자본과 싸우는 경제투쟁으로서는 세상을 바꿔낼 수 없기에 산별노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조합원 대중들의 밑바탕에 굳게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앞에서 나열된 ‘아쉬운 부분’들은 산별노조의 걸음마 단계에서 발생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지혜가 모이면 해결 가능한 문제이다.

이처럼 금속산별노조는 민주노조운동이 시작한 이래 최초의 산별노조 시험이며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미 구체적인 성과도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비정규직문제에 대해 여러 민주단체와 조직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위해 최저임금 투쟁을 하고 실질적인 인상을 쟁취한 곳은 금속노조밖에 없다. 자기 조직원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제 그 성과가 토대가 되어 금속노조에 대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신뢰가 더 깊어지면 향후 몇 년 안에 폭발적인 조직화로 나타날 것이다.
이미 전체 노동자의 과반수가 넘어간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투쟁에 나서게 하는 일은 현재 노동조합운동에서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을 금속노조가 실질적으로 해내고 있다. 바로 여기에 커다란 희망이 꿈틀대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