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때 동여맸던 허리띠, 지금 동여매는 머리띠

노동사회

부도 때 동여맸던 허리띠, 지금 동여매는 머리띠

편집국 0 3,394 2013.05.19 01:06

 


yshe_01.jpg중복 때는 가족과 둘러앉아 닭다리를 뜯을 수 있겠지, 말복 땐 가능하지 않을까 하며 파업일 수를 늘려 간지 벌써 백일의 절반이 넘어섰다. 계절이 가을로 바뀌어 맨바닥의 한기를 느끼기 전에 파업을 끝내야 할 텐데…. 본사 로비 맨바닥에서 매일매일 힘차게 부르는 민중가요에 담겨 있는 분노와 결의들이 10여년 전 열정과 패기로 똘똘 뭉쳐 팔뚝질을 하던 대학 때와 비교하여 결코 작아지지 않았음을 몸소 확인한다.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줄곧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직원들의 출근을 파업가를 부르며 맞이해야 하는 우리이기에 때때로 사측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 심한 절망감마저 느낀다. 몇몇 선배들은 해태가 싫으면 그냥 퇴사하면 된다고 한다. 그냥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한다. 좋은 회사 만들 시간에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고 말한다. 

많은 회사 선·후배들이 이번 총파업을 계기로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곤두박질 쳤다고 한다. 현재 대부분의 팀이 사실상 인원 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을 정도로 이직률이 심각하며, 많은 동료들이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측에서는 인원보충에 대한 팀장들의 요구를 거의 묵살하고 있을 정도로 ‘해태 줄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듯 하다.

파업에 참여한 직원들 모두는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내가 더 선배가 되었을 때 후배들이 맨바닥에 새우잠 자며 해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우리를 원망할지도, 아니 공중분해 되어 이름도 없어진 해태를 부여잡고 통곡할지도 모른다”고. 이렇게 우리는 후배들이 투쟁의 머리띠를 동여맬 일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단체협약을 쟁취하겠다는 각오로 입사 이후 처음으로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며 총파업에 임하였다.

힘들 때 같이 했더니 돌아온 건 해고위협

1997년 부도가 났을 때 상여금을 반납하며 해태를 살리겠다고, 가족들의 살을 깎으며 해태를 일구어 왔는데, 올 1월 크라운 컨소시엄에 매각된 이후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윤영달 대표이사가 해태제과에 취임할 당시 3년간 모든 임직원에 대한 고용보장을 약속했으면서도 영업본부장을 포함한 20여명의 임직원을 면직 처리하였다. 그리고 이후 지금까지 노조 집행부를 포함하여 직원들의 의사는 무시한 채 인사명령을 남발하여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이에 따라 직원들의 사기를 고취하고 인사권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인사위원회에 노조의 참여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경영권침해라는 이유를 들어 최소한의 합의마저 하지 않고 있으며, 회사 매각시 합의한 고용보장 조항마저 단체협약에서 삭제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회사측은 이러한 급작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인사 외에도, 난 데 없는 ‘과자 박물관’ 설립을 내세워 후암동 연구소의 짜투리 공간과 안양공장 창고로 본사 직원 100여명을 내쫓았다.

회사측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4년 7월1일부터 주5일근무제의 적용을 받게 됐음에도 근무시간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휴일 근무에 대하여도 근무성과 여부에 따라 교통비조로 3만원을 지급하여 왔을 뿐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시간외수당 및 주휴특근수당을 지급받지 못했다. 결국 노동조합에서는 부당노동행위로 윤영달 대표이사 등을 노동당국에 고소·고발하였다. 회사측에서는 “왜 가만히 있다가 크라운에서 인수한 지 6개월도 안됐는데 이제야 난리냐”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노동당국의 조사 결과를 보고 지급여부를 결정하겠노라”는 어처구니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한 선언

7월, 단식농성에 나선 동지의 건강을 걱정하며 삭발투쟁으로 성원해 주던 동지들과 릴레이 단식으로 연대했던 지부장들…. 그러나 사측에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조합 및 쟁의대책위원회 전원을 피신청인으로 하여 본사 사옥 및 연구소, 공장(안양, 천안 등 8개 공장), 물류거점, 심지어는 전국의 모든 영업소에 대한 출입 금지를 신청하고, 반경 10여미터 내에서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했다.
 
파업 2주째에 들어서 사측은 회사 홈페이지 사원광장에 ‘루머를 밝혀라’ 란을 신설했다. 그리고 노조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사실은 그 공간을 통해 무조건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하며 어떠한 의견도 자유로이 개진되지 못하게 막고 있다. 사원광장에 사원들 본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하지도 못하는 회사, 임원진의 구미에 맞지 않은 글은 아무리 사실이라 할지라도 다른 직원들에게 유포되기 전 삭제해 버리고 해당 글을 임의로 해석하여 ‘루머’ 해명하기에만 급급한 해태존.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한 화장실, 본사 앞 미군부대를 지키고 있는 전경들보다 못한 식사, 맨바닥에 박스 하나 깔고 눕는 잠자리, 가만히 있어도 삐질삐질 흐르는 땀, 이런 생활공간의 악조건 하에서 피부병, 두통, 설사, 비염, 감기, 근육통 등으로 아픔을 호소하는 직원들이 속출하고 있으나 사측에서는 “노조원들의 때깔이 좋다”며 비아냥거리기 일쑤다. 심지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며 업무에 복귀한 노조원들에게 인권을 유린하는 ‘나의 각오’라는 제목의 반성문 제출을 강요하고 있다. 게다가 “거래처와의 원활한 거래지속과 거래처 판매대금의 투명관리”를 운운하며 파업 참가 노조원들의 거래처에 대한 판매대금 실사에 협조할 것을 종용하고, 일각에서는 파업 종료 후 복귀할 업무가 없어질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퍼뜨리는 실정이다.

크라운 매각이 확정된 직후,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소리 높이던 팀장, 지사장, 소장들은 지금 완전히 돌변해 도리어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에 팀장이 강제로 가입하라던 노조 가입서를 거부하면서 노조를 반대했던 파트장급 이하 말단 직원들은 파업에 참여하여 투쟁하고 있다. 이 파업투쟁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노조를 결성하고 후에 후배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경영층에 빌붙어 비겁한 이중적 행동을 일삼는 선배들에게, 해태제과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태제과에 대한 자긍심을 회복하고 신명나게 일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투쟁이다. 동시에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후배들에게 더 이상 부끄러운 선배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파업은 영혼을 성장시킨다

처음 파업에 참여했을 때는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도 몰랐고, 투쟁조끼 입는 것조차 낯설고 지하철이나 버스의 파업에 불평만 늘어놓던 우리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투쟁을 겪으며 고액연봉자라며 여론의 냉소적인 반응을 얻는 아시아나 조종사노조의 파업에도 열렬한 성원을 보낼 정도로 성숙해졌다.

경영진의 구시대적인 사고방식, 종업원을 존중할 줄 모르는 안하무인의 태도에 종지부를 찍고, 수평적 구조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회사, 우리 각자 모두가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존중받는 회사를 건설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50여일 넘게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동안 길들여져 왔던 제도권 언론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당당히 일한 만큼 대접받고 사는 세상을 위하여 이렇게 투쟁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