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다시보기, 각자의 꿈을 우리 모두의 미래로

노동사회

헌법 다시보기, 각자의 꿈을 우리 모두의 미래로

편집국 0 2,717 2013.05.19 01:02

지난 7월15일,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창장과비평사’가 공동 개최한 심포지엄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 헌법과 사회구조의 비판적 성찰’이 열린 프레스센터는 열기로 가득 찼다. 단상과 청중석 곳곳에 자리잡은 강호의 고수들이 우리 사회운동의 방향을 둘러싸고 저마다 일합씩 내공을 선보였다. 마치 예전 80·9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에 열리던 시국대토론회를 연상케 하는 자리였다. 87년 헌법과 87년 체제라는 두 거대한 주제가, 운동가들에게 본능과도 같은 정치적 열정을 불러내는 마력을 지닌 주제였음이 분명하다. 

마력은 늘 밝고 어두운 양 측면을 가지기 마련이고, 가지 많은 나무에는 바람 잘 날 없는 법이다. 거창한 주제에 걸맞게 수많은 오해를 경험해야 했다. 마치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자신들과 공감하면서 개헌을 준비하는 것처럼 갖다 붙이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있는가 하면, 주제가 지닌 마력만큼이나 그 마력의 부정적 측면을 우려하는 분들의 비판도 끈질기게 이어졌다.

‘개헌’에 대한 양 극단의 시각

가장 대표적인 비판이 헌법만 바꾸면 민주주의든 인권이든 잘 될 거라는 개헌 만능론식 발상이라는 것이었다. 한반도 전역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한 현행 영토 조항만 바꾼다고 저절로 평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강렬하게 평화를 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헌법이 바뀌는 것은 그런 의식 변화의 결과일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지적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헌법 다시보기’가 그런 모습을 보였다면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문제는 개헌 만능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개헌 불필요론 내지는 개헌론에 대한 기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지 못하면서 헌법을 건드려서 뭐하냐? 괜히 벌집만 쑤시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시민사회단체들이 지금까지 급진적인 법안을 수도 없이 내어놓았지만 이런 식으로 비판받지는 않는다. 통과될 가능성이 없더라도 이슈 제기 차원에서, 혹은 협상 전략 차원에서라도 급진적 법안을 제안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왜 헌법만 그렇게 조심해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영역이라고 보는 걸까? 개헌 만능주의와 마찬가지로, 이런 입장 역시 헌법을 절대화하는 것이다. 

또 다른 비판 중 하나는 엘리트주의라는 것이다. 우리 일상의 수많은 문제들을 두고 하필 헌법이라는 가장 추상성이 높은 문제를 끄집어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헌법 해석이라는 것이 결국은 헌법 전문가들에게 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을 다시 보는 활동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법 없이도 사는”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것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법을 무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미 많은 활동가들이 실제로 글을 쓰고 입장을 발표할 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법이야 원하는 대로 뜯어고치면 된다”는 식의 권력정치 지상주의적 사고방식은 또 다른 엘리트주의일 뿐이다. 만일 사회운동 전체가 다른 구체적인 이슈들을 내팽개치고 이 이슈에만 올인한다면 모르겠지만, 전체 사회운동의 ‘일부’로서 ‘헌법 다시보기’는 여전히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헌법 다시보기’의 과정은 그 자체로 헌법 논의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넘어서려는 시도이다. 우선, 헌법학자들보다는 사회운동가, 인문학/사회과학자 등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헌법 다시보기’에 참여하고 있다. 또 ‘헌법 다시보기’가 모든 고민과 논의를 독점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활동가들에게 ‘헌법 다시보기’의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끔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급 문제나 신자유주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비판도 곧잘 제기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중요하게 고민하는 부분이다. 최근 공정거래법에 대해 삼성이 위헌소송을 제기하고 나오면서 주목받고 있는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이나 재산권에 대한 우리 헌법의 이해방식 등에 대해서도 논의의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누구’의 ‘어떤’ 가치가 헌법에 담기는가

사실 이런 오해들의 대부분은 현재 정치권의 개헌놀음을 보는 시각 그대로 ‘헌법 다시보기’를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개헌은 ‘헌법 다시보기’의 본질적 관심이 아니다. 물론 권력구조를 포함하여 현행 헌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국민적 합의를 통해 개헌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권력구조 변경은 문제의식의 전부도 아니거니와 핵심도 아니다. 

바로 그 점에서 7월15일의 심포지엄은 성황리에 치러졌음에도 준비한 사람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정희진 선생님의 발표 「헌법의 ‘탈식민화’와 ‘현실화’를 위하여 - 한국헌법의 남성성과 국가주의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 글에서 정희진 선생님은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이미 유엔이 정한 이민국가이며 100만명이 넘는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라이다. 대한민국이 경험하고 있는 출산파업은 역사상 최고이며, 동시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최고이다. ‘국민’국가의 국민 구성이 변화하고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날로 증가하는 이혼율과 한부모가족 비율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국가(國家)의 암묵적 기초인 가족도 변화를 겪고 있다. 

‘헌법 다시보기’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헌법은 곧 국가이다. ‘헌법 다시보기’가 보려는 것은 지금 국가가 직면해있는 여러 가지 도전들 - 지구화와 정보화라는 (자본이 그 변화를 주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국한되지 않는 더 폭넓은) 분명한 변화, 그리고 생태와 젠더, 평화와 문화, 자치와 분권 등 시민사회에서 날로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가치들이다. 

이 점들에 주목하면서 ‘헌법 다시보기’는 구체적으로 두 가지 목표를 가진다. 우선 우리 헌법이 누구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명백히 일국/현세대/인간/남성/성인/비장애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전지구/미래세대/뭇생명/비남성/아동/장애인은 헌법에서 얼마만큼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헌법에 그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이것이 헌법 다시보기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다. 

다음으로 ‘헌법 다시보기’는 시민사회가 확립한 새로운 가치들 간의 대화의 장을 마련할 것이다. 생태, 젠더, 문화, 분권, 평화 같은 가치들은 이제 우리 공동체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이야기할 때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가치들이 되었다. 그러나 전문화에 더욱 치중했던 90년대 시민사회운동은 이들 가치들이 우리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다. 헌법을 다시 보는 것은 이들 사이의 만남과 합의를 촉진하는 좋은 장을 제공할 것이다.   

지금 세계는 개헌 중

사실 지금 전 세계가 개헌 중이다. 가까이에는 일본이 재무장을 위해, 대만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각각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개방경제로의 이행을 위해 수시로 개헌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유럽은 EU 헌법을 둘러싸고 홍역을 치르고 있다. 또 중동에서 중앙아프리카까지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개헌 과정이 뒤따르고 있다. 대부분의 진보적 학자들이 유럽헌법을 둘러싼 논쟁에 뛰어들었던 것도 지금의 변화를 예사롭게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이 바뀌든 안 바뀌든 간에 우리 역시 이미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변화들을 겪고 있다. 단순히 변화에 적응할 것인가, 이 기회에 새로운 가능성들, 새로운 상상력들을 모색해볼 것인가의 선택에서 ‘헌법 다시보기’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