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제(성과 중심 임금체계와 저성과자 해고)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조정이 공공부문에 몰아치고 있다. 국회에서 관련 노동관계법 개정이 공전하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9.15 노사정 합의 파기」선언이 구체화될 즈음, 정부(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22일 소위「공정인사․취업규칙지침」을 발표했다. 정부 차원에서 가장 손쉬운 공공부문을 상대로 성과연봉제와 퇴출제 도입을 본격화하려는 것이다.
공공부문 노사관계 최대 쟁점인 성과연봉제·퇴출제
지난해 정부는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2차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을 시행하려 했다. 하지만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임금피크제만 도입하고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제는 2016년 과제로 설정한 바 있다. 그리고 정부는 끝내 지난 1월28일 성과연봉제 적용 대상을 비간부직까지 확대하는 정부 방침을 발표했다.
성과연봉제는 공공기관에 전혀 낯선 제도는 아니다. 기존에는 전 직원 대비 7% 수준의 간부직(1~2급)이 성과연봉제 대상이었다. 정부 방침은 간부직만 적용하던 것을 70% 수준의 일반직원까지 확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공기업에 대해서는 올해 6월 말까지, 준정부기관에 대해서는 12월 말까지 도입한다는 것이 정부 목표다. 당연히 그 이행실적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연계된다.
정부(기획재정부)는 2월11일 주요 부처의 기획조정실장 및 주요 공기업 부사장을 불러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추진 상황 점검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2월25일에는 공기업․준정부기관의 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성과연봉제 추진 압박을 본격화하는 공공기관 기관장 워크숍을 열어, 정부 제시 기준 성과연봉제의 조기 도입 시 경영평가에서 추가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전면화 하면서 상대적으로 저성과자 퇴출제는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 공공기관(특히 공기업․준정부기관)은 2012년부터 경영평가에 따라 ‘삼진아웃제’를 도입한 상태다. 비록 당장의 실효성은 없지만 제도적 기반이 1차로 조성돼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삼진아웃제는 공공기관 종사자에게 그다지 큰 위협 요소는 아니었지만, 성과연봉제와 결합하면서 한 걸음만 더 나가면(소위 이진아웃제) 성과퇴출제로 연결될 상황에 처했다.
공무원도 예외는 아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2월7일「직무와 성과 중심의 공무원 보수체계 개편방안」을 통해 성과연봉제 확대 추진 계획을 발표했고, 이를 구체화한「공무원 성과평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같은 해 12월22일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2016년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직무 중심의 인사관리 및 성과관리체계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국가공무원법(공무원법) 일부 개정 법률안」마저 올해 1월22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로 이송된 상태다. 공무원법 개정안은 임금체계 개편을 넘어 저성과자 퇴출까지 가능케 하는 조치를 담고 있다. 일련의 조치들 속에는 능력과 성과 중심의 공직 문화 및 성과가 저조한 공무원에 대한 차등이라는 목표가 공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성과연봉제는 선도적 시행 대상인 공무원, 공공기관 종사자 등 공공부문을 넘어 금융기관과 대기업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따라서 노동법(‘대통령 관심 법안’) 개정 움직임 및 고용노동부 지침 발표와 함께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퇴출제는 올해 노사관계 및 노동시장의 최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사진: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성과연봉제, 퇴출제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공공운수노조)
MB 정부 ‘유산’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는 사실 이명박 정부의 ‘유산’이다. 2010년 6월30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의 핵심 의제로「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2010년 말까지 공공기관 간부직원을 대상으로 성과연봉 비중의 확대(20~30%), 누적식 차등 및 최고-최저등급 간 격차를 벌이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를 2011년부터 경영평가 결과에 반영하였다. 물론 성과연봉제는 저성과자 퇴출제(삼진아웃제)와 함께 시행되었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2012년 4월까지 전체 공기업․준정부기관(110개)에 간부직원을 대상으로 정부 권고 기준의 성과연봉제가 도입되었으며 이 중 28개 기관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실적은 정부가 경영평가와 성과연봉제를 연계하면서 나타난 강요에 불과했다. 실제 2012년과 2013년에 발표된 경영평가 결과 우수기관 선정 근거 중에는 전 직원 성과연봉제 실시에 대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간부직(4급 과장급 이상)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공무원 성과연봉제도 2011년부터 전면화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유산을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받아 2015년부터 본격화하고 있고, 올해에는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공기관에는 2단계에 걸친 해고제도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저성과자 퇴출제를 통해 1차적으로 해고를 유도하고, 성과연봉 차등에 의한 지속적 저성과자 낙인으로 2차 해고를 유도한다. 이 모든 정책을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공공기관 종사자에게는 저성과자 퇴출제보다 성과연봉제의 위협 요인이 더 크게 작동된다고 할 수 있다. 공공기관 성과관리 체계의 한계로 인해 전자는 결정 과정에 대한 타당성 검증(해고 적격 여부 심사)이라도 가능하지만, 후자는 성과연봉 운영과 관련한 형식적 요건 마련 시 검증마저도 봉쇄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성과연봉제 강행을 둘러싼 노정 간 대립은 올해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핵심 정세로 자리 잡을 것이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의 폐해
문제는 이러한 공공부문 성과연봉제가 공공기관 선진화 및 공공기관 정상화의 핵심 의제로 추진되고 있음에도 그 실효성이 제대로 검증되거나 실행 과정에서의 오류가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 운영 및 성과관리에서 필수 불가결하고 절대적으로 옳다는 전제 아래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 거꾸로 그 전제에 대한 타당성 검증이 결여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최근 박근혜 정부의 정책 전반에서 나타나는 불통과 억지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다. 비정규직법과 파견법 개정이 일자리 창출 및 경제 활성화와 직결된다고 억지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시장 개악의 폭력적 발상 속에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의 폐해는 공공부문노조를 중심으로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현재의 공공기관 임금체계는 유형별, 산업·업종에 따라 심한 격차를 발생시키고 있다. 기관 내부로는 간부직과 일반직 간의 격차와 비정규직 차별의 문제도 심각하다. 정부도 이 같은 격차를 시급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은 방치되고 기관 내부의 계량적 평가기제 역시 취약한데도 정부가 공공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성과연봉제를 강제할 경우 그 폐해는 자못 심각할 수밖에 없다. 계량적 성과 측정이 가능한 주요 민간기업에서도 성과연봉제의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정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공공부문에 관철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문제가 성과차등의 기준 미비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성과연봉제의 핵심인 상대평가를 통한 강제 서열화 및 차등 보상의 원리가 공공기관에 과연 적정한가 하는 근본 문제가 있다. 조직 구성원 간의 협업보다는 경쟁을,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공공서비스 비전이 아닌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조직 운영은 공공기관의 존립목적과 분명 거리가 있다. 성과연봉제에 따른 실적과 직접 연계된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의 실효성 논란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게다가 노사관계 측면에서 성과연봉제는 기본적으로 임금결정을 둘러싼 집단적 노사관계(교섭구조)를 무력화하고, 성과경쟁을 통해 공공기관 종사자에 대한 개별적 통제를 용이하게 만드는 통제수단으로 작용한다. 정부가 직접 통제가 가능한 공공부문에 대해 제도를 선도적으로 강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공공기관에 대해 경영혁신을 압박하는 흐름 속에서 공공기관 노조활동 자체는 ‘경영의 위험요인(risk factor)’으로 간주되었고,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주요 내용으로 설정되어 왔다. 공공기관 성과관리에서도 기업경영 원리에 입각한 성과 차등 및 경쟁 확대가 필수 요인으로 설정됐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및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구체화된 성과연봉제는 이러한 발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경영평가와 기관장 인사권이라는 ‘특별권력관계’를 앞세워 공공부문 전반의 노조활동 및 노동조건 통제를 용이하게 하려는 후진적이고도 비정상적인 발상의 단면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노조의 무기력함은 재연될 것인가
성과연봉제를 전면에 앞세운 성과퇴출제에 대해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10년 간부직원에 대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도입된 이후 공공기관노조들은 간부직 대상 성과연봉제가 당장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이를 정면으로 막지는 않았다. 더 나아가 경영평가에 따른 인센티브에 포섭되어 전체 직원들에 대해서까지 비록 ‘무늬만 연봉제’이지만 이를 받아들인 곳도 상당수에 이른다. 그러나 올해 정부가 시행하려는 성과연봉제는 세부 운영기준마저 분명히 제시되어 있고 이 기준들이 이후 경영평가에서 이행 여부를 판가름하는 만큼 공공기관노조 대부분이 이전처럼 이중적 태도(대외적 수용, 내부적 조정)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앞서 공공기관노조들은 2014년 방만경영과 2015년 임금피크제 대응과정에서 양대노총 공동투쟁을 앞세우고도 무기력하게 무너졌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노사정 합의가 파기된 현 상황에서 한국노총 공공부문이 정부 정책에 강하게 저항하고 있고, 민주노총 공공부문(공공운수노조, 공무원노조, 전교조, 보건의료노조) 역시 성과연봉제 및 퇴출제에 대한 공동투쟁 결의를 다지고 있다. 성과연봉제는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고 노동조건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따라서 그 어떤 공공기관노조도 경영평가라는 위협에도 쉽사리 성과연봉제를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4년과 2015년의 무기력함이 그대로 재연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투쟁으로 정부의 광란 멈춰 세워야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의 도입에 있어서 관건은 공기업노조들이다. 정부가 올해 6월 말까지 공기업에 대해 선도적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완료토록 방침을 세우고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데다, 공기업은 경영평가에 따른 인센티브 성과급의 탄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경영평가를 앞세운 정부정책에 대한 대응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2014~2015년의 양상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따라서 6월 말까지로 예정된 공기업노조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싸고 노정 간 대립이 어떻게 결론 날지에 따라, 준정부기관 등 대다수 공공기관노조 및 공무원노조 등의 대응도 중대한 기로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올해 공공부문 성과연봉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30여 개 공기업노조들이 굳건히 연대해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전체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판을 짜는 것이다. 현재 공공부문 조직 중 가장 다수를 포괄하고 있고 그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맞서 투쟁해온 철도·가스부문 등의 조직을 관장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를 당연히 주목할 수밖에 없다. 공공운수노조는 2월18일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성과연봉제 등과 관련한 교섭권을 중앙에 위임하고 6~7월 1차 집중 총파업투쟁(2차 9~10월)을 통해 당면 정세를 돌파하겠다는 결의를 모았다. 공기업노조에 대한 정부의 전면 공세에 맞선 총파업투쟁 전술이 정세에 맞게 적절하게 운영되고, 교섭권 위임 과정에서 실질적인 권한 위임과 이에 따른 책임 있는 집행이 전제된다면, 이는 현 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대응방안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투쟁을 공공운수노조의 주요 공기업노조에게만 맡기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공공운수노조의 주요 준정부기관노조(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국토정보공사, 철도시설공단 등)와 기타공공기관노조(국립대병원, 출연연구기관)도 똑같이 책임 있는 투쟁계획을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민주노총 내 공공부문(보건의료노조 등)과 한국노총 공공부문(공공노련, 공공연맹, 금융노조) 이 성과연봉제를 저지하겠다는 방침을 실천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공공운수노조의 투쟁계획에 버금가는 방침을 세워야 할 것이다. 감히 한 마디 더한다면, 공기업노조가 다수 포진된 한국노총 공공노련이 적어도 올해는 특별한 실천방침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노조들이 ‘6월 말 전선’에서 무너질 경우 마치 댐의 둑이 무너지는 것과 유사한 대재앙이 공공부문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닥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 공공부문은 성과연봉제와 퇴출제라는 후진적·비정상적인 ‘쉬운 해고’가 한국 사회에 도입되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광란(狂亂)’을 중단시키는 변수를 만들어 나갈지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 이 투쟁은 단지 공공부문의 노조활동과 노동조건에 대한 전망을 넘어 전체 공공부문의 존립목적과도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