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시대 경제정책과 민주주의

노동사회

신자유주의시대 경제정책과 민주주의

편집국 0 4,524 2013.05.19 01:37

문제제기

이 글의 목적은 IMF 경제위기 이후 신용불량자(현 금융채무 불이행자)의 대규모 증가를 가져온 김대중 정부의 신용카드정책이 결정되고 지속될 수 있었던 원인과 구조를 분석하는 데 있다. 분석의 초점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정책환경의 변화 속에서 민주정부가 경제정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 직면하게 되는 여러 제약들과 정부의 경제정책이 동반하게 된 갈등과 연합의 구조이다. 

분석의 대상으로 김대중 정부의 신용카드정책에 주목하는 까닭은 이것이 신용불량자의 급격한 증가를 통해 한국 사회에 미친 심대한 영향뿐 아니라 민주화 이후 나타나고 있는 정부의 경제정책 결정구조(decision structure)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신용카드정책은 민주화 이후 정부의 경제정책이 왜 경제관료 중심적 정책결정으로 나타나고, 그 결과로서 정부-기업 간 지배연합이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경제위기에 처한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경제개혁이 실패하게 되는 원인과 구조를 탐색하도록 이끈다. 

재벌기업의 신용카드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동시에 신용카드의 발급 및 신용대출 관련 규제를 크게 완화함으로써 신용카드 시장을 급팽창시키고, 궁극적으로 경제활동인구의 16%에 이르는 사람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든 경제정책이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부 하에서 결정되고 집행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신용카드정책을 통해 나타난 민주화 이후 정부의 경제정책 결정구조의 특징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나? 경제위기에 직면한 민주정부의 경제개혁이 실패하고 정부-기업 간 연합의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김대중 정부의 신용카드정책과 신용불량자 

한국의 신용불량자수는 1997년 말 143만명에서 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 한해 동안 50만명이 증가하면서 193만명으로 늘어났으며 이후 계속 증가하여 마지막 공식집계가 이루어진 2004년 12월 말에는 361만명을 넘어섰다. 흥미로운 것은 2000년 말까지 대략 200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신용불량자 수가 2001년부터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3년 한해 동안 무려 108만 4천명이 증가하였다는 사실이다. 경제위기 직후 기업도산 등 경제사범의 증가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증가하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경제성장률이 1999년 10.9%, 2000년 9.3%에 이르고,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등 경제가 회복되던 2001년 이후에도 신용불량자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이것이 경제위기의 직접적 결과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보다도 두 배 이상 많은 신규 신용불량자가 2003년 한해 동안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 말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 수는 전체 신용불량자 208만 4천명의 21%인 44만 4천명에 불과하였으나 2004년 12월 말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 수는 243만명을 넘어 여섯 배 가량 늘어났다. 이는 2000년 말 전체 신용불량자 수 208만명을 훨씬 넘는 수치로서, 이후 신용불량자 증가의 절대적 원인이 신용카드와 관련된 것임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보통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통해 거액의 현금대출을 받는 것은 물론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일까?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힘은 정부의 신용카드정책에 따른 ‘신용의 상품화’ 때문이었다. 신용카드사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현금서비스 한도가 폐지되고 현금대출을 통해 연 30%에 이르는 고금리를 적용하는 것이 가능해진 신용카드사들은 고금리에도 무릅쓰고 현금대출을 필요로 하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경쟁적으로 신용을 팔기 시작했다. 경제위기 이후 대량실업과 불안정고용에 시달리면서 실질소득 감소를 경험하고 낮은 수준의 사회복지체계에서 고통 받던 저소득층에게 신용카드를 통한 손쉬운 현금대출이 가능해졌다. 생활비와 병원비, 교육비가 필요했던 서민들에게 신용카드를 쥐어주면서 소비가 미덕이며 그것이 국가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부추겼다. 그리고 소득이 낮을수록 고금리를 적용하여 연체가 되면 다시 강박적인 채권추심을 통해 자살, 범죄를 양산하도록 만든 ‘약탈적 대출시장’이 허용됐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채무재조정 제도나 신용불량자 등록제도의 폐지 등과 같은 단순히 수를 줄이려는 정부의 정책은 이들 신용불량자의 부채를 해소하거나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근본적으로 한계를 갖는다. 더군다나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제도가 아닌 워크아웃이나 배드뱅크와 같은 채권자 중심의 민간신용회복 지원 프로그램에 기댄 정부의 대책은 그 실효성을 상실하여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신용불량자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새로운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신용불량자 문제의 해소와 관련하여 미국의 사례는 중요한 비교준거가 될 수 있다. 미국 역시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금융의 규제완화, 실질소득 감소, 복지체계 축소라는 상황 속에서 가계대출의 확대와 파산자의 증가를 경험했다. 하지만 오히려 미국에서 파산자의 증가는 관대한 파산제도의 결과라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 미국은 개인의 과다채무 문제를 파산제도를 통해 사회화시킴으로써 해결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심각한 채권추심을 허용하면서도 파산제도는 활성화하지 않음으로 인해 개인의 과다채무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경향을 보인다. 

파산제도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경제적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이들 경제적 실패자들에게 다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보장책으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개인의 과다채무 정도를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개인 과다채무 문제의 심각성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개인의 과다채무 문제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소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로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개인파산 신청 건수의 차이가 나타난 것일까?

우선 ‘도덕적 해이’ 담론이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뿐 아니라 파산제도의 활성화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위기 이후 한국정부가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을 기업과 금융기관을 회생시키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신용불량자의 부채 탕감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금융기관의 부실대출로 인해 도산에 직면한 기업은 공적자금을 통해 회생시켰지만, 신용카드사의 부실대출로 인해 파산에 직면한 신용불량자들에게는 도덕적 해이 가능성 때문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이율배반적이다.

사실상 신용불량자의 도덕적 해이 담론을 사회에 지속적으로 유포하고 재생산하는 것은 보수언론들이다. 이들은 개인부채에 대한 탕감이나 원리금 대폭감면과 같은 조치 등은 성실하고 정상적인 채무상환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올 뿐 아니라 상습 연체자의 도덕적 해이를 증폭시킬 수 있다며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을 비판한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개인파산제도 역시 자신의 분수를 넘는 과소비를 통해 막대한 부채를 진 사람들이 빚을 한 푼도 갚지 않고 탕감받을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신용카드를 통해 신용불량자가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위기 이후 불안정고용에 시달리면서 실질소득 감소를 경험했던 저소득층이다. 이들은 신용카드 현금대출을 통해 생활비, 교육비, 병원비 등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였고 ‘카드 돌려막기’를 통한 고금리로 인한 이자로 인해 자신이 사용한 금액의 몇 배에 이르는 부채를 지고 과다채무자가 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세계최고의 저축률을 자랑하며 근검, 절약을 미덕으로 삼던 한국인들 가운데 4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신용카드를 사용해 과소비를 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신용카드 연체자의 대부분이 신용카드를 통해 과다한 물건을 구입해서가 아니라 현금대출을 받아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신용카드 과다사용=과소비’라는 주장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보여준다.      

민주주의와 경제정책

그렇다면 사회의 최하층 사람들을 신용불량자로 내몬 신용카드정책이 김대중 정부 하에서 결정되고 지속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정당이 선거를 통해 정부로 선출된다는 점에서 정당과 정당체제의 발전은 정부의 정책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사회적 기반을 갖지 못한 정당체제는 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선호들이 집약되고 폭넓게 표출되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선출된 정부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받은 위임(mandate)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게 한다. 한국과 같이 협소한 범위의 사회적 갈등에 기초하고 있는 정당체제는 사회의 중요한 이익과 갈등, 요구들을 정당을 통해 조직하여 대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정치인들이 선거를 통해 표출된 국민의 위임에 따라 행위해야 할 합리적 이유도 갖지 못하도록 한다. 즉, 사회적 기반을 갖지 않는 허약한 정당체제는 정부를 구성하여 민주적 대표성(representation)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정책결과에 대한 민주적 책임성(accountability)을 갖는 데 있어서 심각한 장애로 작용한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정당체제가 사회의 요구와 이해를 대표하지 못하면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집권 정치엘리트는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지지를 동원하지 못하고 다음 선거의 표를 의식한 ‘단기적 선호’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유권자의 선호를 집약하고 표출할 수 있는 정당이 저발전되거나 정당과 대통령의 연계가 없거나 약할 때, 정책에 대한 평가는 다음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가는 당장의 표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단기적 이익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비용이 많이 드는 선택보다는 쉬운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당장 소비를 증가시켜 경제가 활성화되는 성장주의적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임기 중 자신의 경제적 업적을 성취하는 데 있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이러한 구조가 김대중 정부가 경제침체 상황에서 경제개혁을 위한 구조조정을 지속하지 못하고 빠르게 단기적 경기부양책으로 선회하면서 신용카드정책을 선택하게 되었던 배경이 되었다. 

또한 정당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결집되어 정책으로 산출되고 그러한 정책결정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민주적 정책결정구조가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경제정책 결정이 경제관료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책결과에 대해 책임성을 요구하는 민주적 정치과정은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중립적 전문가들을 정책의 결정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정책의 공정성을 보장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정부의 위원회제도를 중심으로 한 ‘관료기술적 정책결정’은 오히려 민주적 책임성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경제위기 이후 사외이사제도가 확대되면서 사적 기업의 사외이사들이 정부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하는 일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의 중요한 정책결정이 기업들의 사적 영향력 하에 이루어질 수 있는 위험이 확대된 것이다. 민주화 이후 상황은 이렇게 정책결정구조에서 정당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국회와 정당을 배제하고 행정부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정책결정구조와 큰 차별성을 갖지 않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정책은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하는지가 투명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선출된 정당과 정치가의 경제정책에 대한 영향력이 약하고, 임명된 관료와 선출되지 않은 민간 전문가의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렇게 정책결정이 단기적이고 불투명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신용불량자의 양산이 사회문제가 되고 감사원의 감사와 국회의 국정감사가 이루어졌지만, 실제로 정책을 결정한 부서는 어디이며 누가 정책을 기획했는지, 책임질 주체가 누구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정부-기업 간 지배연합의 형성과 변화

경제위기의 결과로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그동안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었던 재벌개혁에 대한 기대를 가능하게 했다. 더군다나 경제위기의 원인이 재벌들의 막대한 차입을 통한 방만한 경영 때문이라는 지적에 대해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 민주화 이후 강화되어 온 재벌의 힘은 어느 때보다 약화되었고 정부가 재벌을 개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는 재벌을 개혁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제공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끝없이 하락하는 경제상황에서 현존하는 재벌중심 경제체제를 무시하고 재벌의 동원 없이 경제활성화가 가능한가라는 현실적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김대중 정부 집권초기에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정부주도의 경제구조조정으로 대표되는 ‘정부 우위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국가가 빅딜 등을 통해 보여준 재벌에 대한 규제력은 막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9년 들어 정부의 선택은 변화되기 시작한다. 한국의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장기적 기획은 소비감소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는 인기를 떨어뜨리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가는 전환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을 회피하게 되고, 그 결과 재벌개혁은 실패하게 됐다. 사실상 정치가의 단기적 경제활성화 선호는 기존 개혁을 봉합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단기적 선호를 갖는 집권 정치엘리트와 성장주의적 경제관료는 빠른 경제회복을 위해 신용카드정책과 같은 단기적 경기부양책을 선호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경제개혁의 대상이었던 기존의 재벌기업을 정책의 파트너로서 동원하는 구조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자본에 대한 집권엘리트의 구조적 자율성은 일시적으로 커졌다. 하지만 결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오히려 재벌과 같은 거대자본을 이용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자율성이 다시 약화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노태우, 김영삼 정부가 집권 초 재벌개혁을 시도했지만 민주화 이후 영향력이 확대된 재벌의 저항에 의해 실패했던 것과는 맥락이 다르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는 재벌의 경제력에 대한 적극적 필요에 의해 재벌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87년의 민주화로 재벌을 비롯한 기업은 경제력에 걸맞은 독자적 위상을 확립하였고 정부는 재벌에 대한 통제수단을 상당부분 상실하면서 정부-기업 관계는 ‘기업우위’로 급격하게 재편되었다. 한편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연합의 구조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철저히 배제되었다. 다시 말해 민주화 이행으로 정권의 집권초기에 재벌개혁과 관련한 경제민주화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이러한 것들이 재벌기업의 성장과 견제로 상쇄되면서 기업우위의 정부-기업 간 지배연합으로 귀결되는 패턴을 반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신용카드정책을 통해서 나타난 김대중 정부의 정부-기업 간 지배연합의 형태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우위 관계나 민주화 이후의 자본우위 관계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이는 정부와 기업의 상호의존성에 기반한 관계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처럼 권위주의로부터 민주화를 거쳐,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기업 간 관계는 일정한 변화가 있긴 했지만 정부-기업 간 지배연합이 구축되고 지속되는 패턴은 김대중 정부 하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이루어진 신용카드정책과 신용불량자의 증가는 이렇게 정부-기업 간 지배연합이 지속되는 구조 속에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민주정부의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와 신용카드사의 단기적인 경제적 이해가 만나서 이루어진 정부-기업간 연합은 서민의 미래소득을 담보로 이들을 경제성장을 위해 동원했다. 그 결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신용불량자의 급격한 증가라고 하는 사회문제를 야기하였다. 신용카드정책을 통한 정부-기업의 연합으로 서민들의 부채는 사실상 몇 년 동안 몇몇 재벌을 비롯한 신용카드사들의 이익으로 고스란히 이전되었다. 경제위기로 인한 충격이 사회적으로 공평하게 부담되었어야 함에도, 경제위기 직후 실업과 도산 등으로 큰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이들이 또 다시 국가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희생되었고 그 수익이 재벌을 비롯한 거대 기업들의 수중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부-기업 간 정치연합의 구조가 정부든 정당이든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어떠한 대응책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도록 만든 핵심적인 이유였다. 

결론

민주주의는 평등한 주권에 기초하여 시장의 불평등효과를 완화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화가 정당체제의 발전과 병행하지 못한다면 집권 정치엘리트는 선거에서의 표를 의식하든 안정적 집권을 위해서든 ‘경제성장’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국내총생산과 같은 거시경제지표로 환원될 때 기존의 재벌중심 경제체제도, 경제관료의 성장주의도 존속·유지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또한 현재와 같이 정책의 책임을 묻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실상 기업과의 사적 네트워크로서 기능하는 관료기술적 결정구조가 지속되는 한 기존의 정부-기업 간 연합의 구조는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신용불량자의 증가와 같이 사회 중·하층의 생활상의 하락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신용카드정책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정당체제의 발전을 통해 민주적 대표성과 책임성의 원리가 경제정책 결정과정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정책환경 하에서 어떤 개혁적인 정부가 들어서도 서민을 위한 사회경제정책은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선택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