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우정 민영화와 9.11 총선

노동사회

일본의 우정 민영화와 9.11 총선

편집국 0 4,561 2013.05.19 01:31

9월11일에 실시된 일본 중의원 선거는 모처럼 유권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투표율 67.5%는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가 처음 도입된 1996년 선거 이후 가장 높은 것이었다. 이 선거에서 자민당은 296명을 당선시켜 1960년 선거를 제외하고 자민당 창당 이후 가장 높은 61.7%의 의석률을 기록했다.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 31석을 합치면, 집권당이 중의원 의석의 3분의2인 320석을 초과하는 역사적 승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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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의 압승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번 선거는 “고이즈미에 의한, 고이즈미를 위한, 고이즈미의 선거”로 불릴 정도로 선거과정 전반에 걸쳐 고이즈미의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되었으며, 고이즈미 개인에 대한 높은 대중적 인기에 힘입었다고 볼 수 있다. 아사히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자민당 압승 요인으로 유권자의 18%만이 “자민당을 지지해서”라고 답한 반면, 58%가 “고이즈미 수상을 지지해서”라고 답했다(『아사히신문』, 2005년 9월14일). 그러나 중의원 해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이즈미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37%(『마이니치신문』 7월18일)~42.6%(『교도통신』, 2005년 7월6일)에 불과했고, 우정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매우 낮았다. 대다수 국민들은 고이즈미 내각이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정책과제로 ‘경기대책’, ‘연금개혁’ 등을 꼽았으며, ‘우정 민영화’는 17개 항목 중 16번째에 불과했다(『요미우리신문』, 2005년 6월14일). 고이즈미 내각에 대한 지지와 우정 민영화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고조되기 시작한 것은 8월8일 중의원 해산 직후부터다. 따라서 자민당의 압승 요인에 대한 설명은 고이즈미 주도 하의 소위 ‘우정(郵政)선거’의 특징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분석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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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8일 일본 참의원에서 우정공사 민영화 법안이 부결된 후 고이즈미 총리는 내각해산을 결정한다.  - 출처 : 오마이뉴스 ]

자민당의 역사적 승리, 고이즈미의 사무라이 정치

smg_02.jpg첫째, 이번 선거는 단일 이슈 선거였으며, 자민당이 이 이슈공간을 선점했다. 중의원 해산을 공표할 때만 하더라도 민주당 의원들은 마치 집권이 눈앞에 다가오기라도 한 듯이 환호했다. 평소 유권자들이 우정 민영화보다 연금개혁 등 민주당에 유리한 쟁점에 훨씬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중의원 해산을 ‘우정 해산’이라 명명하고, 다가오는 총선을 ‘우정 총선’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우정 민영화야말로 구조개혁의 핵심”이며, 우정 민영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민당이야말로 개혁정당이고 이에 저항하는 야당과 자민당 내 반란파(중의원 의원 중 반대 37명, 기권·결석 14명)는 기득권 수호에 급급한 낡은 세력으로 규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략이 주효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이후 장기불황이 지속되면서 기존 질서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일본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는 점, 집권당을 꿈꾸어왔던 민주당이 우정 민영화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 있는 정당임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 반란을 주도한 자민당 하시모토(橋本)파와 가메이(龜井)파 의원들이 파벌정치의 온상이자 특정우편국장 등 이익집단과 후원-수혜관계를 통해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극장형 선거’로도 불리우는 이번 선거는 말 그대로 고이즈미 감독에 의해 자민당 내 민영화 찬성파와 반대파라는 두 주인공 사이의 대결이 선거전 내내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고이즈미는 중의원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37명의 의원들을 사전에 경고한대로 가차 없이 자민당 공천에서 배제하였으며(그러나 기권·결석한 의원은 공천), 이들이 출마한 33개 선거구에 33명의 ‘자객’을 보내 반대파와 대항하도록 독려했다. 유권자들은 자민당 대 민주당의 대결구도 못지않게 주군을 배반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돌진하는 충성스런 ‘사무라이’들의 모습을 연상하며 흥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연금개혁 등 사회정책 이슈를 부각시키기란 매우 어려웠다. 

셋째, 우정 민영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도시 유권자층의 비교적 높은 지지이다. 자민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농촌(町村)지역의 우정 민영화 찬성 비율이 47%인데 비해, 대도시지역의 찬성 비율이 58%(『아사히신문』, 9월5일)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시지역은 우정 민영화가 되더라도 우체국 통폐합, 축소 등에 따른 폐해가 농촌지역보다 적다. 게다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농촌지역에 대한 각종 보조금정책의 철회나 축소, 대도시에서 거둬들인 세수를 공공사업 등의 형태로 지방에 돌려주던 기존 자민당정책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도시 유권자들의 상당한 호응을 살 수 있었다. 자민당은 동경도 25개 선거구 중 23개 선거구에서 승리했으며, 각 도·부·현청(道·府·縣廳) 소재지인 제1선거구에서 유난히 의석 획득에 실패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 선거에서는 일방적인 승리를 거둬(자민당 32명, 민주당은 13명 당선), ‘역1구현상’을 낳았다. 

일본의 행정구역
일본의 행정구역은 모두 47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를 흔히 도도부현(都道府縣)이라 한다. 도(都)는 도쿄도를 지칭하는 말로 도(都)가 붙는 행정구역은 도쿄도뿐이고, 도(道)는 홋카이도를 가리키는 말로, 도(道)가 붙는 행정구역은 홋카이도뿐이란 뜻이다.
부(府)는 오사카부와 교토부 두 곳이 있고, 현(縣)은 총 43개가 있다.
도쿄도의 경우, 도 밑에 구(區)가 있고, 그 밑에 초(町), 그리고 번지수가 붙는 형태의 주소체계를 갖고 있으며, 일반 현의 경우에는 보통 현→군→초(町)→번지의 순서가 일반적이다.


넷째, 자민당은 그 외에도 득표율과 의석률간의 불비례성을 특징으로 하는 소선거구제로 인해 과대당선되는 이점을 누렸다. [표]에서 보듯이 자민당의 압도적 승리는 비례구보다 소선거구에서 민주당과 크나큰 격차를 벌인 데 있다. 소선거구 득표수에서 자민당은 민주당보다 1.3배 많은 표를 얻었지만(자민당 3,252만표, 민주당 2,480만표) 의석 수에서는 무려 4배 이상의 격차(자민당 219석, 민주당 52석)를 벌였다. 

자민당의 표밭, 신뢰받는 공공서비스 그런데 왜?

1980년대에 이르러 케인즈주의 시장관리체제에 대한 광범위한 회의는 탈규제적 시장화를 향한 정책역전(policy reversal)을 수반하였다. 그 가운데 국·공영기업을 민영화하려는 신자유주의적 물결은 오늘날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 볼 수 있는 두드러진 현상이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에 행·재정개혁의 일환으로 3공사(전매, 전신전화, 국철)의 민영화를 단행한 이래, 약 20년 동안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유지해 왔다. 일본에서 국영 우정사업(우편, 우편저금, 간이생명보험)은 하시모토 행정개혁회의의 최종보고(1997년 12월3일)에 따라 일본우정공사로 전환(2003년 4월1일)되었고, 고이즈미 내각 하에서는 공사체제를 민영화하기 위한 시도가 내각의 사활을 걸고 진행되었다. 고이즈미는 우정 민영화를 “메이지(明治)이래의 대개혁”이자 “구조개혁의 핵심”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우정개혁 이슈는 적어도 하시모토 내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정치에서 하나의 금기 대상이었으며, 본격적인 정치의제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그 주된 이유는 우정 관료, 특정우편국장회, 그리고 이들과 연계된 자민당 내 족의원(族議員, 조쿠기인: 관료의 정책입안 노하우를 몸에 익히고, 특정 이익집단과 성·청의 이익추구를 위해 발언하고, 정치력을 발휘하는 국회의원을 지칭하는 말로, 특정분야를 오랫동안 틀어 쥔 의원에 대한 부정적 표현으로 사용된다)들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우정공사에 소속되어 있는 노조는 ‘일본우정공사노조’(약칭 JPU, 구 전국체신노조, 조합원 수 14만 7천명)와 ‘전일본우정노조’(조합원 수 8만 5천명)가 있지만, 노조의 압력은 자민당 의원들의 태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야당의 표밭인데다, 일당우위체제라는 일본의 정치구조상 주요 법안은 자민당 의원들이 분열하지만 않는다면 쉽게 통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특정우편국장들은 전통적인 자민당 지지세력으로, 이들이야말로 자민당 의원들에게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고 볼 수 있다. 

2003년 말 현재, 일본의 우편국은 총 24,715개로, 이 가운데 70% 이상인 약 18,935개가 특정우편국이다. 특정우편국 제도는 메이지(明治) 시대 초기, 지방의 명사에게 맡겨졌던 우편취급소가 그 기원으로, 이들 대부분은 세습공무원이다. 이들은 우편국 직원의 월 평균임금 68만엔을 초과하는 고액의 급여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다. 공무원의 정치활동금지조항에 묶여 이들은 직접적으로 선거활동을 할 수 없지만, 전직 특정우편국장과 전현직 특정우편국장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대수회’(大樹の會)라는 이익집단은 약 28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자민당을 지지하는 여러 직능단체들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들은 한 선거구당 평균 2만표의 집표능력을 갖고 있어, 선거과정에서 대수회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된 자민당 의원들이 선거가 끝나면 다시 우정부문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족의원으로 활약하는 양상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우정사업이 다른 국공영기업들과는 달리 대체로 흑자기조를 유지해 왔으며, 일본 국민들에게 안심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공서비스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고령인구가 특히 많은 과소지역(過小地域)에서는 우편국 직원이 독거노인들에게 연금을 자택으로 전달하거나 1주일에 한 번씩 가정방문을 통해 안부를 묻는 등 지역 생활에 밀착된 서비스를 실시해 왔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어 한정된 예산 범위 안에서 효과적인 복지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미 구축되어 있는 우편국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현재의 공사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경영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다는 민영화 반대론자들의 논리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고이즈미 내각도 이 점을 고려하여 일정한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표적으로 우편사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민간업자는 전국에 10만개 이상의 우체통을 설치하여 일률적인 전국 서비스를 실시할 수 있어야 하고, 민영화가 되더라도 인구 과소지역의 금융서비스가 유지될 수 있도록 2조엔의 ‘사회·지역 공헌기금’을 조성키로 한 것이다. 

소비세 인상과 우정민영화는 한고리

그렇다면, 우정 개혁문제가 정치의제로 등장하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는가? 하시모토 내각 하에서 우정 개혁안이 제기된 직접적인 계기는 무라야마(村山) 내각시기의 소비세 인상 결정과 연동되어 있다. 무라야마 내각은 1994년 9월23일, 소비세 5% 인상을 중심으로 하는 세제개혁안을 결정하였고, 2년 반 후인 97년 4월 제2차 하시모토 내각 하에서 소비세율 인상이 실시되었다. 1980년대 소비세 파동에서도 나타났듯이 증세는 유권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재정적자의 심각성에 비추어 소비세율 인상은 불가피했지만 정부가 세출 삭감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증세를 감행할 경우 국민의 맹렬한 반발이 예상되었기에, 이를 완화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해서 무라야마 행정개혁에서 부상한 것이 특수법인 개혁이었고, 특수법인의 비대화와 비효율을 조장하는 재정투·융자제도(이하, 재투)의 개혁, 그리고 때마침 주택금융전문회사의 파산처리와 관련한 구 대장성(한국의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의 기능을 합한 조직)의 금융행정 실패와 관료의 접대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대장성이 관할하는 정부계 금융기관의 통합문제가 동시에 거론되었다. 이 대부분의 과제가 하시모토 내각으로 이전되었으며, 하시모토내각은 재투 슬림화를 추구하는 한편, 재투 자금의 원천인 우정 개혁의 필요성을 1997년 3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밝히게 된다. 

하시모토 내각 당시의 우정 개혁 문제는 행정개혁회의의 중간보고(1997년 9월3일)에서 사업별 분할, 우편저금 및 간이보험의 민영화안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자민당 의원들의 저항으로 무산된다. 우정개혁은 다만 국영의 우정사업을 독립채산제 아래 민간기업의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자율성, 효율성, 공개성을 추구하는 공사체제로 전환시키는 데 머물렀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라면, 1951년 이래 우편저금과 연금자금의 전액을 대장성 자금운용부에 예탁해 왔던 재투제도를 폐지하고, 당해 자금 전액을 공사가 자율적으로 운용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걸림돌이란 이유로…

전반적으로 하시모토 내각 하에서 우정 개혁을 둘러싼 찬성파와 반대파 간의 갈등은 반대파의 승리로 평가할 수 있다. 우정공사는 첫째, 우정3사업 일체의 전국적 네트워크 유지 및 전국 균일의 보편적 서비스 실시, 둘째, 우정직원의 국가공무원 신분 보장, 셋째, 예금 및 보험에 대한 국가의 지불보장 등 핵심 사항에서 기존 국영체제의 제도적 틀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우정 민영화 문제가 재론되는 것을 법적으로 아예 금지시켰다는 점이다. 1998년 6월에 제정된 ‘중앙성청등 개혁기본법’은 “이후 민영화 등의 수정은 하지 않는다”(제33조 제6항)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는 2001년, 2003년의 자민당 총재선거와 2003년 중의원선거, 2004년 참의원선거에서 일관되게 금융·세제·규제개혁과 더불어 우정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국적인 선거 때마다 그는 개인적 인기를 이용하여 우정 민영화의 필요성을 유권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방식으로 당 내 반대파의 고립을 시도한다. 중의원 해산, 우정 선거 결정은 ‘신자유주의적 민중주의(Neoliberal Populism)’를 동원하여 반대파를 제압하고자 하는 고이즈미식 대립정치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고이즈미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우정 민영화에 집착하는 것은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현행 우정공사가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우정 민영화에 저항하는 당내 반대파를 무력화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어떤 개혁사안들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금융자본의 동맹, 우정사업 민영화

우정사업은 그 동안 소위 ‘일본식 금융사회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2004년 3월말 현재 우편저금 잔고는 227조엔으로,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의 절반에 해당하며, 2006년 1월에 통합될 예정인 일본 최대 민간은행인 UFJ와 도쿄미츠비시(東京三菱)가 보유하고 있는 총 저금잔고의 약 2배 이상에 달한다. 우편저금과 간이보험 자금의 비대화는 정부의 지불보증, 법인세 면제, 민간금융기관보다 높은 예금금리의 보장, 잘 발달된 전국 우체국 네트워크, 총액제한 한도의 지속적인 완화 등에 기인한다. 더욱이 1990년대에 들어와 민간은행이 버블붕괴 후의 불량채권 처리의 중압에 견디지 못하고 차례로 파산하는 가운데, 국영인 우편국에 대한 신뢰는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우체국과의 불공정한 경쟁여건이 시정되지 않는 한, 민간은행은 더욱 경영압박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개혁론자들의 주장은 90년대 경제불황과 맞물려 서서히 힘을 얻게 된다. 이와 동시에 우정개혁은 관치금융제도의 온상인 재투제도의 개혁, 약 26만명(2003년 말 현재)에 달하는 일본 최대의 공무원조직에 대한 개혁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대단히 매력 있는 개혁대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정 민영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해 온 집단을 보면, 그 동안 사실상의 국가독점사업이었던 우편사업으로 인해 시장진입이 금지되었던 민간 물류회사들(야마토운수, 사가와큐빙, 일본통운 등), 국가의 지원 하에 나날이 비대해져가는 우편국과는 달리 파산 혹은 영업손실 위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민간 금융기관들을 꼽을 수 있다. 민간은행으로는 미즈호그룹, 7개 도시은행 등을 들 수 있으며, 민간 생명보험회사로는 일본생명, 제일은행, 메이지야스다생명(明治安田生命), 스미토모생명(住友生命) 등을 꼽을 수 있다. 민간금융기관들은 우편저금과 간이생명보험의 비대화가 원금과 이자에 대한 국가의 지불보증 및 법인세, 주민세, 사업세 등의 세금면제에 따른 ‘관업으로서의 특전’ 때문에 발생하였으며, 이는 사실상 정부에 의한 ‘숨겨진 보조금’이기 때문에 민영화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일본물류협회, 전국은행협회, 생명보험협회, 경제단체연합회 등은 우정사업의 완전 민영화를 주장해 온 대표적인 이익집단들이다. 

요컨대 우정 민영화노선은 정치인과 금융자본 간의 신자유주의적 동맹이자, 자민당 우위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농촌형 정당에서 도시형 정당으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전략적 포석인 것이다.

일본 민주주의의 어두운 전망

총선이 끝나고 소집된 9월21일의 특별국회에서 고이즈미는 국회의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제89대 수상으로 재지명되었으며, 3차내각을 발족시켰다. 자민당의 압승으로 일본 사회는 정치적 보수화, 경제적 신자유주의화의 길로 빠르게 달려 나갈 전망이다. 자민당은 오는 11월에 헌법개정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미 자민당, 공명당, 그리고 민주당은 9월14일 헌법개정 절차를 정하는 국민투표법안을 심의하기 위해 상임의 ‘헌법조사위원회’(가칭)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헌법 96조에 의하면, 헌법개정을 위해서는 중·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 2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을 필요로 한다.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고이즈미 내각 하에서 헌법개정론은 상당한 세력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한편, 우정 민영화 관련법안은 다만 민영화 개시시기를 2007년 4월에서 6개월 연기시키는 형태로 수정되어, 무난히 중·참의원에서 통과될 전망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불확실성의 제도화, 정당간 정책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일본 민주주의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자민당 우위체제의 지속은 선거를 통한 불확실성의 제도화가 아니라, 확실성의 제도화를 의미한다. 설사 제1야당인 민주당이 집권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하더라도 이는 자민당의 실책에 의한 반사효과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며, 자민당과 정책적 차별성을 결여한 또 다른 자민당의 집권이 될 것이다. 사회·경제정책에서 민주당은 자민당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이며, 외교안보정책영역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제외하고 자민당과 거의 차별성을 갖고 있지 않다(『아사히신문』 2003.11.11, 2005.9.13.). 호헌을 주장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공산당과 사민당은 그나마 비례제 덕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너무나 허약하여 자민당을 견제할 능력이 없다. 이것이 현재 일본의 모습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