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정’ 논란 이후 정국전망과 진보정당의 과제

노동사회

‘대연정’ 논란 이후 정국전망과 진보정당의 과제

편집국 0 2,759 2013.05.19 01:25

한동안 정계는 물론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한나라당과 대연정’ 제안은 없었던 것으로 되어버렸다. 지난 9월7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노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에서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힌 데 이어, 지난 9월21일에는 이병환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연정 논의 종료를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실로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지난 7월28일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서 밝힌 노 대통령의 대연정은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이었고, 이 연정은 “대통령 권력 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가지는 연정”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권력을 한나라당에게 완전히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의 동참이라는 조건을 붙인 것이었지만.

“연정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한나라당이 국가권력을 실질적으로 넘겨주겠다는 노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어차피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독자적으로는 어떤 정책도 통과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을 텐데, 선거제도를 개선해서 의석이 줄어들지도 모르는 방향으로 양보해야할 부담을 질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경제정책 등 민생과 직접 관련되는 정책분야는 물론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에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각을 장악할 경우 책임만 지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다. 간단히 말하면, 한나라당은 대연정에 참여할 경우 얻는 것보다는 잃을 것이 더 많다는 판단에서 대연정을 거부했을 것이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권력이양이라는 엄청난 양보를 담은 대연정을 제안한 까닭은 무엇일까? 노 대통령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두 가지 목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목표, 즉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선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설령 한나라당이 수용하지 않더라도 더이상 잃어버릴 게 없다. 오히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권력까지 포기했다는 명분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여소야대의 정국이 가하는 제약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지난 4·30 재보선 결과 열린우리당이 거대여당에서 144석의 과반이하 정당으로 전락함으로써 여소야대의 정국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독자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청와대를 장악하고 있다는 이유로 잘못된 국정운영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려고 했을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대연정 제안이다. 하지만 내각을 통째로 한나라당에게 넘겨준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결재가 없는 정책은 어차피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에 내각을 장악한 한나라당도 대통령과의 타협은 불가피하다. 그렇지 않고 실제로 대통령이 도장만 찍는 역할을 하고 국민들도 그렇게 인식할 경우에도 잘못된 국정운영에 대한 책임은 면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입장에서 볼 때 한나라당이 대연정을 받아들일 경우 당장은 행정권력을 잃어버릴지 모르지만 잘못된 국정운영에 대한 책임을 상당 부분 면할 수 있다. 나아가 선거제도 개선(과 이를 통한 영남권 진출확대)으로 중장기적으로 지지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한나라당이 거부할 경우에도 한국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권력이양이라는 엄청난 양보를 했다는 명분과 선거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것이 노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한 진정한 동기가 아닌가 싶다. 물론 실제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느냐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지만.

대연정 정국이 낳은 것, 선거제도 개선필요성 인식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한 배경 또는 동기와 한나라당이 거부한 이유가 이러했다면, 대연정의 실현가능성은 애초부터 희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연정 논의로 해서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특별하게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대연정을 둘러싼 논란은 노 대통령의 ‘특이한’ 정치방식으로 인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선거제도의 개선방향을 둘러싼 논란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내부로부터 선거제도의 개선방향과 예상되는 결과를 놓고 벌써부터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향후 정국은 한편으로는 국정감사와 입법을 둘러싼 공방전과,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선거제도의 내용과 예상되는 정계개편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계개편의 공방전이 예상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무엇보다도 과거와 같은 지역감정에 기반을 둔 정당체계의 개편 필요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광범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열린우리당 내부의 복잡한 사정과 관계가 있다. 즉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경우 한편으로는 내각(특히 신자유주의자 각료들)과 당(특히 당내 좌파그룹)의 갈등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내 좌우파간 갈등이 상존해 왔다. 하지만 과거의 ‘3김’처럼 대통령이 이를 ‘교통정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카리스마가 없다. 

노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정치가 민주화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과거처럼 대통령이 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지배한다면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이 당을 지배할 수 없게 된 현실에서는 당정 간에 주도권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제도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상징적인 권위와 지도력으로 이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동안 이 모순을 관리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당정분리를 지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총리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위임하여 그로 하여금 당정협의를 하게 했다”고 한탄조로 말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 재보선 이후 과반 미만 정당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입법안의 통과를 위해서는 다른 정당 또는 의원들의 협조는 불가피하게 되었고, 정치연합(연정)의 대상으로 민주노동당과 같은 좌파정당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계개편의 방향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할 일 많은 진보정당이여, 짝사랑은 이제 그만!

그러면 진보정당은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보정당 내에서도 한때 논의되기도 했던 소연정과 같은 열린우리당 전체와 연합하는 형태는 피해야 한다. 그보다는 다당제 속에서 독자적인 제1야당을 지향하는 것이 정치적 영향력에 있어서나 진보정당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지금까지 드러난 현실인식과 정책처방에 근거하여 판단한다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주류)은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직접 관련이 있는 노동문제나 경제문제에 대해서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진단·처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다를 바가 별로 없다. 경제관련 장관 중에서 신자유주의자가 아닌 이가 없다는 사실이나 지금까지 기업지배구조나 비정규직문제로 두 당이 극한적인 대립으로 치달았던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이 점을 분명히 입증해준다. 노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은 다른 정책분야를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라크파병문제나 주한미군기지 이전문제 등과 같은 대미 외교정책에서 두 당이 얼마나 다른 입장을 취했으며 혹시라도 있었던 차이 때문에 극한적인 대립으로 치달았던 사례가 있었던가? 최근 들어서는 대북정책에서도 이렇다할 차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재벌의 이익을, 그리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외국자본의 이익을 더 많이 두둔한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두 당이 극한적으로 대치했던 이슈는 거의 대부분 정치문제(국가보안법 등)이거나 자신들의 정통성이나 이해관계와 관련되는 문제(과거사, 측근비리, 사립학교법, 연금법 등)였다. 오히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게 있어서 더욱 심각한 문제점은 서로 모순적인 정책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지역구도 타파를 주장하면서 지역갈등을 야기하는 행정수도이전과 같은 정책을 추구하거나 비정규직 보호를 주장하면서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앞서 지적했듯이 열린우리당은 내부적으로 너무나 다양한 인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에 상대적으로 가까운 중도좌파성향의 의원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10명에 지나지 않는 진보정당이 열린우리당과 정치연합 또는 연정을 할 경우 중도좌파들의 입지를 약간 강화시켜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정책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이런 정당과의 연정은 진보정당의 정체성이나 이미지만 흐려놓을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라

결론적으로, 정치연합이든 연정이든 그 기준은 ‘정책’이어야 하고, 그 중에서도 종속적인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정책에 대한 협력 가능성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 대통령과 (지금과 같은) 열린우리당과의 연정은 진보정당의 정체성과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혹자는 과거사 청산이나 정치관계법 개정 등 정치개혁을 위해서라도 열린우리당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식의 문제점은 첫째, 열린우리당과 협력하여 잘 처리하더라도 이들 과제의 성격상 그 공은 모두 열린우리당에게 가거나 진보정당의 공이 인정된다하더라도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과, 둘째, 진보정당과의 협력을 열린우리당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가볍게 평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개혁적인 입법을 처리하면서 열린우리당이 진보정당과 연대한 적이 있었는가? 오히려 보수정당과의 협상처리에 더 매몰되지 않았던가?

따라서 향후 선거제도와 정계개편에 대한 논의와 협상이 본격화될 경우 진보정당은 열린우리당과의 (소)연정에 대해서 기대를 갖지 말고 오히려 보수정당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폭로하는 한편 노동자와 빈민 등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