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하루 8명의 죽음보다 그가 횟집 주인이라는데 분노하는가

노동사회

우리는 왜 하루 8명의 죽음보다 그가 횟집 주인이라는데 분노하는가

편집국 0 3,310 2013.05.19 01:55

1990년에 건설된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산재노협)는 산업재해를 겪은 노동자들이 산재를 추방하고 자신의 권익을 찾는 활동을 자주적으로 펼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산재노동자인 회원과 산재노동자는 아니지만 이 단체의 목표에 동참하고자 하는 후원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재노동자들을 위해 상담과 교육을 하고, 노동자건강권과 관련한 각종 투쟁과 사회적 활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2005년부터는 재정사업국에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가 신설됐다. 여예닐곱명의 산재노동자들로 구성된 자활공동체는 DM(direct mail, 광고·선전 등을 위하여 예상 구매자에게 직접 우송하는 인쇄물) 발송작업을 대행하는 일을 한다. 주 고객은 민주노총의 『노동과 세계』, 비정규센터의 『비정규노동』, 그리고 우리 연구소의 『노동사회』 등 노동계의 정기구독물이다. 

talk_01.jpg
[ 김재천 회장(가장 왼쪽)과 산재노협 사무실 ]

산업역군도 산업폐기물도 아니다 

차가운 비가 한번 흩뿌리고 많이 추워진 늦가을 오후, 서울 구로시장 근처 어느 교회 반지하방에 자리잡은 산재노협의 사무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널찍한 공간에 DM 발송용 물품들이 여기저기 박스 채로 쌓여있고, 사무실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책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약속 시간에 무척 늦은 내가 쭈뼛거리며 인사를 하자 김재천 회장이 나와 반겨줬다. 웃는 모습이 무척 선하다. ‘어, 나랑 별로 다르지 않네. … 가만, 그럼 나는 산재노동자들이 나랑 뭐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산재노동자들이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본 적 결코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산재노동자들과 직접 관계를 맺거나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본 적도 한번도 없었다. “산업역군이라고 추켜세우다 다치면 산업폐기물 취급”하는 봉건적인 경제논리는 작업장을 넘어서 어쩌면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무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주류언론은 산재사고로 하루 8명씩 죽어나가는 현실이나 정말 열악한 사회적 안전망보다는 횟집을 운영하면서 산재보험을 타갔던 한명에게 분노하는 것일 터다. 이는 열악한 조건에서 주체로 선 산재노동자들을  무척 지치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산재노협 활동가들은 환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병원방문을 하는데, 그게 인상 참 힘들고 고통스러웠어요. 제가 산재를 겪어서 더 깊이 공감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환자들, 산재불승인받아서 괴로워하는 환자들, 특히 영세사업장노동자나 이주노동자들, 그런 환자들 만나면 아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생각하면서도 정말 괴로워요. 그 사람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없다는 것을 아니까…. 그리고 산재처리를 하다보면 사실 아주 간단한 일인데도 공단이나 그런 데하고 자꾸 소소한 싸움이 많이 일어나요. 그러면 일이 진행되질 않는 거죠. 가뜩이나 역량도 부작한데 자꾸 싸움이 일어나니까 지치기도 하죠. 

산재노동자들을 노조가 조직했으면

노동자건강의 문제를 부차적으로 취급하고, 산재노동자들의 고통을 그들만의 것으로 가둬뒀던 것은 사실 사회 전체의 공모로 이뤄진 것이었다. 노동운동도 거기서 면죄부를 받기는 힘들다. 지금이야 노동조합들이 단위노조에서까지 노동안전부서를 신설하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이러한 흐름이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많이 취약하기도 하다. 산재노동자운동을 하는 이들은 노동조합에게 아쉬운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김재천 회장은 노동조합에게 첫째, 노동안전사업을 성명서 따위의 당위성만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업으로 만들어 갈 것, 둘째, 재해당사자들을 각 노동조합이 조직할 것, 셋째, 사고가 나서 다치기 전에 미리 노동강도 완화투쟁이나 단체협약을 통해 작업중지권을 따내는 등의 활동을 할 것 등을 부탁했다. 노동조합이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들이다. 

모든 사람이 건강할 수 있는 권리는 중요하지만 ‘건강한 사람’만이 일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사회는 끔찍하다. 산재노동자들처럼 어려운 조건에 있는 이들이 주체로 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우리 사회의 그러한 끔찍함을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일 터다. 그리고 그 고통은 더 조화로운 건강함을 위한 고통이다. 곧 겨울이다. 산재노협 반지하 사무실은 무척 춥겠지만, 그들의 활동이 더 커다란 연대 속에서 결실을 내며 따뜻해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산재노협은 올해 산재노동자들로 구성된 자활공동체를 출범시켰습니다. 산재노협 자활공동체는 대량우편물 발송을 대행해 주는 일을 합니다. 관심있는 노조나 단체는 02)868-2379로 연락하세요.
************************************************************************************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