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투쟁이 세계화될 때까지!

노동사회

희망과 투쟁이 세계화될 때까지!

편집국 0 2,674 2013.05.19 02:28

 


kh_01.jpg지난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이후 쌀을 제외한 거의 모든 농산물이 개방됐고,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은 급격하게 몰락하기 시작했다. 식량자급률이 급속하게 하락하고 농산물 값이 떨어지면서 농가부채가 폭증했고, 농민들은 더 이상 농사짓기 어려운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정부의 농업구조조정 정책 자체가 농민들을 농촌으로부터 쫓아내고 있는 형편이었다. 더군다나 이제 농촌은 심각할 정도로 고령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04년부터 시작된 쌀 관세화유예 연장협상은 우루과이라운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었다. 이 협상은 다른 나라의 식량주권을 탐내고 있는 미국 등 강대국의 압력을 받으며 진행됐고, 그 결과 합의내용은 미국이 불러준 것을 그대로 받아 쓴 것에 불과했다. 그러한 협정이 지난해 11월23일 우리 국회에서 비준되면서 이제는 농민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생존권이 벼랑 끝에 놓이게 되었다.  

농민들이 간다 WTO 각오해라

이런 상황을 만든 근본적 원인이 바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가만둘 수 없었다. 농업 뿐 아니라 서비스, 의료, 교육 등 가리지 않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상품화시키고 부자들의 배만 불리는 WTO는 우리에게 더 이상 필요 없다! 그러한 절규를 공유한 세계 여러 나라 민중들의 함성이 한데 모이는 자리에, 우리 농민들도 사활을 건 임무를 갖고 모였다. 드디어 머나먼 이국 땅 홍콩에 도착했다. 

 12월13일: 으랏찻차! 물 속에서도 “WTO 반대!” 
개막투쟁이 시작되었다. 세계 민중들에게 빈곤과 절망을 안겨줄 뿐인 WTO 6차 각료회의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빅토리아 공원에서 시작한 집회를 마치고 각 지역마다 준비한 선전물들을 들고 행진에 나섰다. 컨벤션센터 앞 완차이에 도착하자 경찰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 3백여명의 농민들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WTO 반대”를 외치면서 컨벤션센터로 헤엄쳐 나갔다. 모두들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고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렇게 해서라도 막아내야만 한다’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결국 당황한 경찰들이 수습에 나섰지만 우리의 의지를 막아서진 못했다. 개막투쟁은 그렇게 우리들의 승리로 끝났다. 

  12월14일: 비아캄페시나 단결과 친화의 밤 
우카이샤 캠프(전농 투쟁단 숙소) 운동장은 징이며, 꽹과리며 풍물소리가 가득히 울려 퍼졌다. 풍물소리에 맞춰 동그랗게 둘러선 세계 각국의 농민들은 서로의 처지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손에 손을 잡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술 한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쌓고 선물을 나누었다. 이후 투쟁을 더욱 더 단결된 모습으로 진행해 나갈 것을 결의하는 시간이었다. 

  12월15일: 희망으로 함께 가는 걸음, 삼보일배 
손에 장갑을 끼고 무릎에 단단히 보호대를 채웠다. 빅토리아 공원(이번 투쟁의 주요 중심지)에서부터 컨벤션센터 앞까지 삼보일배(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함)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삼보일배는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폭력집단’으로 매도당하고 ‘악마’로까지 비화된 여론을 일순간 무너뜨린, 절박함이 절로 묻어나는 투쟁이었다. 길게 늘어선 대열 모두가 북소리에 맞춰 같이 절하고 같이 구호를 외치며, 한 걸음 한 걸음 이어가는 힘든 행진이었다. ‘WTO는 절대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며,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모두가 잘 사는 희망의 세계’라는 절박한 마음을 절 한 번 한 번마다 싣고서 진행하는 터였다. 땀방울이 쉴새 없이 흘러 눈앞을 가렸지만, 모두들 멈추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12월17일: “컨벤션센터로 전진! 전진!”
12월17일, 이번 각료회의 결과가 나오느냐 마느냐 하는 마당이었고, 우리는 반드시 컨벤션센터로 가서 우리의 의견을 전해야만 했다. 우리는 홍콩경찰이 아니라 각국 대표들과 함께 논의하고 이야기 나누기를 바랬다. 하지만 우리가 대면한 것은 이중삼중으로 둘러쳐진 경찰의 단단한 봉쇄선이었다. 뚫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돌아온 것은 최루 가스와 최루액이었다. 고무총탄까지 날아드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사람들의 머리와 몸으로 곤봉세례가 날아들었고 속속 부상자가 생겨났다. 그러나 오늘 이 회의를 막지 못한다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도로 위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그러자 연행이 시작되었다. 연행은 새벽부터 18일 오후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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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쿤퉁 법원 앞 WTO반대시위 관련 기소자들의 석방과 구치소 처우 개선을 위한 항의 집회. 집회에 참가한 홍콩시민과 투쟁참가단들은  "정당한 저항을 탄압해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 출처 : 참세상 ]

  촛불집회: 홍콩시민들의 “꽁이 싸이 무(WTO 반대한다)!”
빅토리아공원 근처 소고백화점 앞에서는 매일 촛불집회가 진행됐다. 이곳은 한국 민중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홍콩시민들의 관심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우리들은 지난 11월15일 전국농민대회에서 벌어진 경찰폭력을 담은 영상을 상영하며 홍콩 시민들에게 진정 폭력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려냈다. 홍콩의 시민들은 물이며 먹을거리 따위를 우리 손에 쥐어주었고, 응원과 지지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희망과 투쟁의 세계화를 위하여

홍콩의 시민들에게 받은 것은 단지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실제 함께 구호를 외치고 함께 삼보일배를 진행하기도 했다. 어린 학생들부터 시작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도와줄 것이 없겠냐는 연락도 끊이지 않았다. 우리들의 투쟁이 남긴 것은 홍콩시민들의 냉담한 반응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를 지켜본 홍콩시민들은 저항하는 것이 무엇인지, 저항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함께 느끼고 겪은 일주일이었다. “희망과 투쟁의 세계화”라는 우리의 기조가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은 개운치 않았다. 12월17일 투쟁으로 기소된 11명의 한국 민중투쟁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 경찰의 ‘엄중 처벌 방침’에 대해서도 분노가 일었지만, 더욱 화가 난 것은 이런 홍콩 정부에 대응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자국의 국민들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는 우리나라 정부 때문이었다.  

결국 홍콩에서 있었던 WTO 6차 각료회의는 세계 민중들의 끈질기고 단결된 행동으로 무산되었다. 각료회의 기간 내내 진통을 겪으며 진행된 협상이 아무런 합의를 보지 못하고 끝이 난 것이다. 그러나 회의는 끝났지만 아직 정리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민중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세계화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며, 우리 역시 새로운 투쟁을 준비할 것이다. WTO가 그 생명을 다할 때까지! 투쟁과 희망이 세계화될 때까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