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잘해 나가실 수 있겠습니까!”

노동사회

“2006년, 잘해 나가실 수 있겠습니까!”

편집국 0 2,608 2013.05.19 02:25

 


jhl_01.jpg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 대기업노조 간부들의 채용비리와 양대노총 임원들의 권력형 비리, 사내하청과 특수고용직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들의 완강한 투쟁, 일부 대기업에서 불거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어느 해보다 자신감 넘쳤던 보수언론의 노조 때리기, 노동부의 2회에 걸친 긴급조정권 발동, 양대노총 공조 속에 진행됐던 비정규입법관련 교섭과 투쟁…. 언뜻 떠오르는 것만 나열해 봐도, 지난 2005년은 노동조합운동에게 참 굵직하게도 다사다난했다. 그 속에서 노조운동에 종사하는 활동가들은 무엇에 절망하고 무엇에서 희망을 찾았을까? 2006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는 노동조합활동가들은 어떤 기대와 포부들을 갖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3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노조활동가 10여명에게 직접인터뷰 혹은 이메일 설문조사를 통해 물어봤다. 편파적으로 구성됐을지도 모를, 겨우 여남은 사람의 목소리가 전체 노동조합운동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재미삼아 참고삼아 일단 한번 들어보시라. 

2005년 노조운동 예년보다 잘했다? 

2.5점과 4.3점. 앞의 것은 2005년 노동조합운동을 둘러싼 ‘구조적 조건’이 예년과 비교하여 어떠했는가를 묻는 질문에 노조활동가들이 9점을 만점으로 해서 매긴 평점의 평균이고, 뒤의 것은 그러한 구조적 조건에 대한 노동조합운동의 ‘주체적 대응’이 어떠했는지를 마찬가지로 9점 만점으로 매긴 평점의 평균이다. ‘예년과 비슷했다’고 생각했을 시에는 각각 5점을 주도록 했다. 즉 앙케트조사에 응한 활동가들은 2005년 노동조합운동이 예년(5점)에 비해 ‘상당히 불리한 여건(2.5점)’ 속에서 ‘약간 퇴보적으로 대응(4.3점)’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주체 대응의 부족보다는 구조적 조건의 어려움에 더 비중을 두고 2005년 노조운동을 평가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정도 차이는 조금 있지만 2005년 노동조합운동을 둘러싼 ‘구조적 여건’이 예년에 비해 불리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즉 5점 이상을 매긴 활동가는 한 명도 없었다. 이러한 판단은 주로 그칠 줄 모르는 비정규직 규모의 증가세(2005년 약 25만명 증가)와 제어되지 않는 고용불안이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여전히 노동자들의 숨통을 옭죄고 있다는 데 근거하고 있었다. 또한 노조활동가들이 아무리 좋게 보려고 노력하더라도 현대하이스코, 하이닉스매그나칩, 울산건설플랜트 등 전국적인 이슈가 된 비정규투쟁사업장에서 나타난 사용자들의 철저한 노동기본권 무시와 유례없이 한해 두 번씩이나 긴급조정권을 발동한 노동부의 행태, 그리고 그 수장이 지난해 노동운동을 향해 수도 없이 뱉어냈던 ‘막말’을 우호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노조운동의 ‘주체적 대응’에 대한 평가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에 따라 2점에서 7점까지 그 폭이 상대적으로 컸고 다소 양극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낮게 점수를 매긴 활동가들은 주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 등에서 나타난 극한의 정파갈등과 총연맹 임원들의 권력형 비리와 같이 “상급단체의 지도력을 위협하는 사건들에 대한 노조운동의 무기력한 대응”에 판단의 중심을 뒀다. 이러한 사건들이 “해묵은 모순에 대한 성찰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노조운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줬”고, 혁신 내용들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불신과 무기력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준 활동가들은 “자발적으로 터져 나와 완강하게 진행된 비정규노동자들의 현장투쟁”에 더 큰 비중을 두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선도적인 투쟁이 “상층에 실망한 활동가들과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큰 용기를 줬”고, “굉장히 불리한 지형 속에서 정체됐던 노조운동이 조금이나마 돌파구를 열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2006년 노조운동 첫걸음은 실질적인 산별건설부터

이렇게 양극화된 평가(평점) 경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낮은 평점’과 ‘높은 평점’을 거칠게, 각각 ‘대표 중심의 평가’와 ‘현장 중심의 평가’라고 이름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대표 중심의 평가’를 하는 이들은 상급단체 활동가들이 많고, 현장 중심의 평가를 내리는 이들은 지역일반노조 종사자 등 비정규투쟁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를 ‘현장’과 ‘상층’의 괴리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낮은 평점’과 ‘높은 평점’을 각각 활동가들의 ‘절망’과 ‘희망’ 혹은 ‘무기력’과 ‘자발적 에너지’로 해석하여 하나는 부정해야 할 것, 하나는 지향해야 할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

물론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없진 않지만, 당연히 둘 다 아니다. 다소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평가 경향들은 현재 노동조합운동이 겪고 있는 커다란 혼돈과 변화를 일관되게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보다 발전적인 성숙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의 양면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상급단체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모색과 비정규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투쟁의 확산을 위한 노력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며, 현실에서는 구체적인 조건에 따라 실천 양태는 다를지라도 어떠한 ‘매개고리’를 통해 만나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 매개고리를 노조활동가들은 대부분 ‘산별노조’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006년 새해에 노동조합운동이 꼭 이뤄야 할 것”을 묻는 질문에 가장 빈번하게 나온 대답이 “산별노조 건설과 강화”였다는 것이다.
 
앙케트조사에 응한 활동가들은 개인들마다 강조점이 다르긴 하지만 종합하자면 2006년에는 노동조합운동이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본격적인 발돋움을 시작하고 강화해야 하며, 현장간부들의 자기 혁신과 조직사업 강화를 통해 활동가들을 육성하고 비정규직을 조직해야 하고, 상층중심의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극복하고 지역연대의 기풍을 전국적으로 확립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결국 “노동운동의 위기를 혁신하기 위해 제시된 대안들이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현실화되어야 한다”는 새로울 것 없는 주장이기도하다. 그렇지만 그 새롭지 않은 내용에는 지난했던 2005년을 넘어서며 쌓인 위기의식의 무게가 실려 있다. 새로 내딛는 첫발자국의 깊이는 이전보다 훨씬 깊을 거라는 걸 활동가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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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안했던 것을 해나가는 게 혁신”

또한 앙케트조사에 응했던 활동가들은 2006년에는 자신들이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지치지 않고 해나갈 수 있길”, “산별노조 건설의 밑거름이 되는 마지막 기업별노조 전임자가 되길”, “지역연대의 전국적 강화를 위해 복무할 수 있길”, “삭막한 운동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보다 많은 만남과 소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길”, “좀 더 충실한 활동을 위해 집단적으로 학습하며 내용을 채워갈 수 있길” 바랐다. 결국 이러한 개인적인 다짐들부터 성취하기 위해 좀 더 진지하게 노력하는 것이 노동조합운동이 집단적으로 부닥치고 있는 어려움을 뚫고 가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몰라서 안 했던 게 아니라 알면서도 못 한 것, 알지만 안 한 것”을 실질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결국 혁신의 시작이다. 2006년 새로운 희망을 더 크게 일궈나가는 노조활동가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