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 농성해야만 노조로 인정합니까?”

노동사회

“점거 농성해야만 노조로 인정합니까?”

편집국 0 3,962 2013.05.19 02:06

 


chj_01.jpg금속노조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는 노동조합 출범과 동시에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교섭을 요구하고 투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정당한 조합활동에 대해 현대하이스코와 하청회사는 부당노동행위로 일관했다. 정당한 집회에 참가한 조합원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근무성적이 불량하다며 해고해 버리는 등 노동부의 묵인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을 서슴치 않고 자행해 왔다. 심지어 단병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과 이용식 최고위원, 조충훈 순천시장과 시민대표의 면담요구까지 거절하는 오만함도 보여줬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길거리로 쫓겨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은 지난 10월15일 삼보일배를 시작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현대하이스코의 만행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전국에 알리고자 공장 크레인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그제서야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던 회사측을 대화의 자리에 불러낼 수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정권과 현대자본으로부터 되돌려 받는데 150일이라는 피눈물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비정규직노동자가 목숨을 걸지 않고,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는 자본과 대화조차 하기 힘든 기가 막힌 현실, 불법과 탈법을 일삼는 자본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자본의 탄압에 항거한 노동자는 차디찬 교도소에 수감하는 이 현실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점거 농성해야만 노조로 인정합니까?”

점거 농성 후 한 조합원이 인터뷰에서 한 이 말은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실태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아니 우리나라의 모든 노동자, 서민들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나타낸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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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을 마치고 공장을 나서고 있는 61명의 노동자들 - 출처 : 매일노동뉴스 ]

“지역총파업까지만 버티자”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는 10월24일 전까지 합법적인 투쟁이란 투쟁은 다 해보았다. 거리 선전전(매일 아침), 천막 농성(8월24일부터 계속), 서울 상경투쟁(10월4일~5일), 삼보일배 투쟁(10월15일), 서명운동(10월 18~20일) 등 법의 테두리에서 무수히 많은 투쟁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현대 하이스코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마침내 우리는 점거 농성을 결의했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우리는 점거 농성 당시 너무나 많은 것들과 싸워야 했다. 현대 하이스코의 구사대와 싸워야 했고, 추위와 배고픔과 싸워야 했고, 경찰과 심지어 우리 자신과도 싸워야 했다. 점거 농성 시작 직후부터 회사는 구사대를 결성하여 밤낮으로 우리를 압박해 왔다. 몇십명씩 무리 지어 다니면서 온갖 욕설로 협박했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쇠파이프를 두드려 우리를 잠 못 이루게 만들었다. 그리고 비조합원들의 동조를 막기 위해 협력업체 직원들의 출근도 막았다. 또한 가족들과 시민단체, 지방 자치단체장, 국회의원의 줄기찬 요구에도 아랑곳없이 음식물 반입을 철저하게 봉쇄하여 우리가 스스로 지쳐 쓰러지기만을 기다렸다.

11일간을 생쌀과 생라면, 쵸코파이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배고픔과 추위를 견뎌내며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만은 버리지 않았다. 배고픔과 추위, 사측의 탄압 같은 것들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며 밖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희비가 교차했지만 10월25일에 있을 지역총파업까지만 버티면 최소한 사측과의 대화는 가능하리라 확신했다. 

그렇지만 소방관들이 소방호스로 물을 쏘아 대고, 경찰 특공대가 도끼로 지붕을 뜯어내고 마침내는 뜯어낸 지붕 위에서 조합원들을 바라보며 자기 목을 도끼로 긋는 시늉을 할 때에는 정말 두려움 그 자체였다. 죽음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1월3일 마침내 협상은 타결되었고 지금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바뀐 것은 협상에서 받아 낸 확약서 한 장이다.

지역연대의 기틀속에 싹터오는 희망

이번 점거 농성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점거 농성과 10·25 지역 총파업을 통하여 정말 끈끈한 동지애를 느꼈다. 초코파이를 나눠 먹고, 버려진 담배꽁초를 나누어 피운 동지와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지역 총파업 투쟁에서 자기 일과 같이 연대하고 싸워 준 지역 노동자들의 헌신성은 그 어떤 사랑보다도 값진 동지애였다. 이 끈끈한 동지애와 연대정신이야 말로 우리 노동자에게는 가장 큰 힘이 되고 무기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명확하지 않은 확약서의 내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뿐만 아니라 전 조합원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번 점거농성은 겨우 1라운드를 마쳤을 뿐 끝은 아니다.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어낸 것이다. 노동조합을 인정받고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앞으로 교섭을 통한 해고자 복직투쟁을 위한 2라운드, 정규직화라는 고단한 3라운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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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안으로는 확약서 내용을 강제할 수 있도록 조합원들의 결속력을 다지고, 밖으로 시민사회단체의 공고한 연대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실제 사용사업주인 현대하이스코에 맞서 투쟁할 것이며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정규직화 쟁취를 위해 전국의 노동자와 연대해 투쟁할 것이다.

현대자본의 부당노동행위를 수수방관하는 노동부가 끝까지 비정규직노동자 탄압을 동조하고 묵인한다는 이유로 우리가 투쟁을 멈춘다면, 이 땅의 자본가들은 이 땅의 주인인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계의 부속품으로 취급할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대판 노예가 될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11일간의 점거 농성장에서…

10월25일
보급품과 음식물은 어제부터 단절이다. 저들은 아마도 우리를 고립시켜 굶기려나 보다. 밤이되자 불도 꺼버렸다. 두렵다. 후회가 된다. 밤 근무시간에 혼자있으니 눈물도 난다. 왜 왔을까?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나가는 길은 승리의 환호성을 올리며 동지들과 웃으며 나가든지, 송장이 되어 들려 나가는 길뿐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코일이 잔뜩 쌓여 있다. ‘차라리 이대로 잠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말길….’ 그런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10월26일
아침을 맞이하자마자 방어벽 정비에 다들 분주하다. 작업을 마치고 보니 나름대로 완벽하다. 이내 시장기가 밀려든다. 배도 고프고, 밤이면 추위가 뼛속까지 시리게 만든다. 2~3일이면 끝날 줄 알고 집에 두고 온 동복잠바가 자꾸만 떠오른다. 

10월27일
경찰이 지게차를 앞세워 침탈해 온다. 뭔가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내 짐작으로는 우리의 대응상태를 점검하기 위한 수작인 듯 싶다. 구사대를 꾸릴 것인지 공권력을 투입할 것인지 곧 결정이 내려질 건가 보다.

10월28일
날이 밝자 저들은 어제 버려 둔 지게차를 앞세우고 다시 침탈해 온다. 상상 할 수도 없다. 끌려간다 생각하니 한기가 더욱 파고든다. 다시금 마음을 다진다. ‘죽어서 나갈지언정 끌려서는 못 나간다.’

10월29일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다. 순천경찰서장이 병력을 철수시켰다는 말이 들리고 한편에선 도경이 나선다, 서울 경찰청이 나선다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노동자의 권리일 뿐인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그 노동조합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노동자다. 그런데 저들은 우리를 테러리스트로 취급하는가 보다.

10월30일
다들 불안해한다. 이제 진압 당하는 건 시간문제라 생각한다. 천장에 구멍이 뚫리고 옥상 문을 봉쇄하고, 공장 모든 입구에 경찰 병력을 투입해 지키고 있다. 공장 내 각 건물마다 피로와 추위, 배고픔에 지친 동지들이 있다. 그러나 자꾸만 자신감이 사라져 간다.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보이는 경찰특공대가 두렵다. 언제 진압해 들어올지 모르는 적들. 그러나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11월1일
춥고 배고프고 지치고 후회도 되고, 여전히 밤은 두렵다. 버티다 보니 어느덧 달을 넘겼다. 밖의 상황이 궁금해 지회장에게 물어 보니 각종 매스컴에서 우리 얘기가 다뤄지고 노동청장, 경찰청장, 심지어 청와대에서까지 나서고 있으나 현대 자본이 모든 걸 무시하고 있다고 전해준다. 정말 겁없는 자본이다. 역시 21세기에는 돈이 최고인가?

11월2일
이틀만 버티면 민주노총 동지들이 총파업으로 응원해 줄테니 상황이 호전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경찰특공대가 지붕을 도끼로 뜯어내고 벽을 모두 부숴버리는 걸 동지들은 보고만 있었다. 방어할 힘이 없는 게 아니고 기다리는 것이다. 결전의 그 날을! 

11월3일
새벽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젠 끝났어!” 무슨 소린지 자세히 들어보니 협상이 임박했다고 한다. 모두들 기분이 들떠 보인다. 낮부터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흥분할 것을 염려한 지회장이 얘기를 하지 않았던가 보다. 다시 잠을 청하려 하지만 잠기운은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배식 담당자가 특식이라며 과자를 주는데 여태 먹어 보았던 어떤 과자보다 달고 맛있다. 정말 꿀맛이다.

새벽 3시경 드디어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눈물이 눈가를 적신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우리가 승리했다는 기쁜 사실에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지 다들 말이 없다. 서로 껴안고 “고생했다. 수고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나눈다.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었겠는가. 이제 땅을밟아 볼 수 있겠지. 
협상을 마친 간부들이 올라온다. 기자도 보인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이 기분. 이내 협상결과가 발표된다.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내려가는 건 다행이지만 협상결과는 개운치 못하다. 예순 한 명의 동지들이 승리자의 당당한 걸음으로 출구를 향해 걸어간다. 연신 터지는 카메라 후레쉬에 눈물이 쏟아진다. 이를 악문다. 

                         - 어느 노동자의 점거농성 후기 중에서-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