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마저 비리로 얼룩지는가!

노동사회

고용허가제마저 비리로 얼룩지는가!

편집국 0 2,818 2013.05.19 02:48

지난 해 12월 중순, 이주노동자 인권보호단체인 <용인이주노동자쉼터>로부터 놀라운 제보를 받게 되었다. 현재 고용허가제 인력도입 계약을 맺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불법적인 노동력 송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송출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 해 5월부터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입국이 잠정 중단된 상태였다. 관련자료를 확인하여 실태를 파악 해보니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인도네시아인 노동자 시딧(가명, 27세)씨 등 총 10명은 지난 해 11월20일 이후 약 한달 동안 고용허가체류비자(E-9)를 취득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상적으로 한국에 입국했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나, 문제는 공항 도착 직후부터 발생하였다. 공항에 당연히 마중 나왔어야 할 산업인력공단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길게는 12시간 동안이나 공항에서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출국 전에 알게 된 대사관에 전화를 하여 도움을 청해 봤지만, 공단 직원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된 일이지만, 산업인력공단에서는 이들의 입국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합법적으로 입국한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이 졸지에 국제미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송출비리 없애겠다는 고용허가제마저

산업인력공단은 고용허가제도 운영규칙에 의해 한국 내 업체와 고용계약이 체결된 송출국가 노동자에 대해 현지 노동부에 명단을 통보하고 ‘입국사증발급확인서’를 발급하고 있다. 해당 국가의 노동부에서 확인서를 현지 한국대사관에 제출한 후 노동자가 한국 정부로부터 입국비자를 발급 받아야 출국이 가능하다. 만약 한국업체와 고용계약이 체결되어 ‘입국사증발급확인서’를 발급했으나 도중에 취소가 된 경우 산업인력공단은 이를 회수하게 된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이를 회수한 이후에도 버젓이 현지에서 비자가 발급되고 있었다. 산업인력공단 측에서는 자신들이 ‘입국사증발급확인서’를 회수했으나 현지에서 원본이 위조되어 대사관에 제출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을 뿐,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어떤 경위를 통해 이들이 입국하였던 간에 이들이 체결했던 고용계약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용계약서에 명기된 회사에 확인한 결과, 2005년 5월 경 고용계약이 체결된 바 있으나, 이후 이들의 입국이 지연되자 회사측에서는 산업인력공단에 고용계약을 취소하겠다는 통보를 했다고 한다. 산업인력공단에서도 이를 접수받아 인도네시아 노동부 측에 이들의 명단을 보냈다고 한다. 결국 열 명의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은 막대한 브로커비용을 들이고도 쓸모없는 종이짝과 다름없는 고용계약서를 받아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가장 큰 문제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리가 심상치 않다는 데 있다. 한국 정부의 공식 문서마저 제대로 회수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위조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국가 간 업무처리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이런 결함이 노동자의 송출과정에서 발생하고 있고, 여기에는 현지 국가의 공무원들이 개입하고 있을 정도로 비리의 수준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노동자를 송출하는 것이 이미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산업연수생제도를 통해 브로커들이 합법적으로 활개를 치는 상황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송출비리를 근절하겠다는 목표로 시작된 고용허가제에서조차 송출비리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으며, 이러한 사례가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 장사가 대수인가

더큰 문제는 현지 국가의 송출비리로 허위 공문을 가지고 입국비자를 발급 받은 이들이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데도 한국 정부는 이를 방치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송출계약이 취소된 상태이므로 입국대상자에서 제외되어 있어 입국심사만 제대로 했어도 이들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없었을 것이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 항의를 하며 문제점을 지적하자, 관련 담당자는 “버젓이 여권에 입국비자가 찍혀 있는 외국인에게 어떻게 입국을 금지시키느냐? 이들이 범죄자가 아닌 바에는 입국을 막을 수가 없다”고 말할 뿐이었다. 산업인력공단에서 고용계약이 취소된 이들의 명단을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 통보하지 않고 있기에 자신들은 누가 입국대상이고 누가 입국대상이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들 10명 중 2명에 대해서는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측에서 법무부에 전화를 걸어 명단을 알려주기까지 했으나 이들마저 입국했기 때문이다. 제보전화를 형식적으로만 받았을 뿐, 실제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은 법무부의 분명한 업무태만이라 하겠다. 

이렇듯 한국 정부의 입국자 관리시스템이 허술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에서는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려는 노동자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입국한 이들은 모두 440만원 가량의 돈을 브로커에게 지급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의 업체와 고용계약을 맺었으나 한국으로 가지 못해 초조해지자 브로커가 요구하는 대로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돈을 받은 브로커들은 관련 서류를 위조해 현지 대사관으로부터 비자를 발급 받은 후 아무런 대책 없이 이들을 한국에 보낸 것이다. 브로커들은 이들이 한국에 도착한 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불법 ‘사람장사’를 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한 이들은 오갈 곳이 없게 되자 한국에 먼저 와 있는 친구와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인 브로커가 연결되어 편법적인 취업알선을 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12월13일 아침 일찍 도착한 수기오씨 등 4명은 한국 측 담당자의 마중도 전혀 없고, 송출회사에서 알려주는 전화번호로 연락해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결국 이들은 공항에서 오후 2시경까지 기다리다가 버스를 타고 공항을 떠나 용인시 소재의 한 모텔에서 잠을 잤다. 며칠을 불안 속에 지내던 이들은 한 친구로부터 고용허가 대행업체를 자처하는 최모씨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 최모씨는 12월17일 이들 네 명을 한 청바지업체에 취직하도록 알선해 줬으나, 합법적인 취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나절을 일한 후 각각 1만5천원을 받고 쫓겨나게 되었다. 회사에서 쫓겨난 후 이들은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데려다 줄 것을 요청했으나, 최 모씨는 대사관의 직원을 자신이 잘 안다면서 연락하겠다고 했으나 데려다 주지 않았고, 이후 평택으로 옮겨 회사를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측에서 최씨와 전화통화를 하며 이러한 행위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에게 취업을 알선하고 돈을 받는 것은 불법행위이며 비인간적인 것이라고 항의하자, 그는 “외국인에게서는 돈을 받지 않고 회사 측으로부터만 돈을 받을 뿐”이라고 태연하게 답했다고 한다. 고용허가제도가 사람을 매매하는 인력장사의 수단으로 추락하고 있는 실상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송출비리 없앨 근본대책 마련해야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관계부처에 대한 실태파악을 한 후 엄중한 항의를 했다. 나아가 문제의 심각성이 크고 이후에도 계속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크기에 작년 12월27일 고용허가제의 송출비리 근절을 촉구하고 비리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에 이르렀다. 이 자리에는 ‘합법적’으로 입국했는데도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게 된 인도네시아인 노동자 3명이 함께 참석하여 브로커에게 돈을 준 경위와 입국과정을 진술하였고 현재의 불안한 심경을 토로하였다. 

이러한 문제가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 보완 의지와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지적을 받아 온 산업연수생제도가 수많은 송출비리를 양산하며 그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고용허가제조차 비리로 얼룩지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비리와 인권유린의 피해는 결국 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하게 될 수밖에 없으며, 고용허가제도가 이제 시행 1년을 갓 넘긴 상황에서 초기에 비리를 근절하지 않는다면 합법적인 제도 아래에서 인권유린 행위가 고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용허가제하에서 송출비리가 계속 발생되는 국가에 대한 인력도입 MOU(양해각서)를 파기하는 식의 강력한 대응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국내 체류 중인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송출과정 및 인권침해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국내에서 고용허가제를 빌미로 고개를 들고 있는 취업 브로커들에 대해서도 엄중한 조치가 이루어짐으로써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람장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산업연수생제도의 즉각적인 폐지와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에 대한 개선조치, 노동허가제 도입을 통해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보장되도록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