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공화국’ 성역을 넘어

노동사회

‘삼성공화국’ 성역을 넘어

편집국 0 3,562 2013.05.19 02:46

지난해 우리 사회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는 ‘삼성’이었다. ‘삼성’은 지난 반세기 동안 고착된 재벌중심 경제체제와 정경유착 고리의 최대 정점인 동시에 이건희 회장의 1인 왕국 체제를 굳건히 유지하면서 이제는 그 지위를 3세에게까지 승계 시키려 하고 있다.

그동안 시민사회의 수많은 문제제기 속에서도 ‘삼성’은 막대한 자금력과 로비력으로 정관계 및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정치권과 언론에게 삼성은 금기영역으로 여겨져 왔었다. ‘X 파일’ 사건에서도 그 실체의 일부가 드러났듯이 ‘삼성’은 정관계와 법조계, 언론계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인맥을 관리해 왔다.

‘삼성’이 아니면 대한민국도 없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삼성’에 대한 정부의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2002년 대선자금과 관련해 여권으로 흘러 들어간 500억원에 이르는 삼성채권의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출범 이후에는 돈뿐 아니라 ‘머리’마저 빌리고 있는 상황이다.

참여정부가 국정목표로 내세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론’은 삼성에서 차용해 왔으며, 2004년 9월 국무총리실을 시작으로 12월엔 통일부, 2005년 1월에는 기획예산처, 2월에 외교통상부, 4월에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 기획예산처, 5월엔 재경부 등 정부 핵심부처 고위공무원들이 삼성인력개발연구원에서 삼성경제연구소 임원 및 연구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당시 행해진 연수 프로그램들을 보면 삼성경제연구소의 핵심 임원들이 직접 나서 삼성식 조직관리 및 경제관, 가치관을 교육했다.

또 진대제장관, 홍석현 전 주미대사 등 주요 인물들을 삼성인맥에서 충원하고 있으며 삼성이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삼성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에도 노 대통령은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재벌 총수의 선처를 호소했고 수사결과 이건희 회장은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X 파일’에 대한 수사 역시 이건희 회장을 비켜 갔다. 삼성의 1인 왕국체제를 개혁할 수 있는 ‘금융산업구조의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산법)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의 분리대응론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보유를 인정해 주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그러나 17대 국회에서는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17대 총선결과로 따라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면서 ‘삼성’ 문제는 정치권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해 국정감사는 가히 ‘삼성국감’으로 불릴 만큼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삼성문제’가 전면에 제기됐다.

순환출자고리를 끊는 것이 삼성을 건전하게 한다

2005년 8월 국회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주최한 토론회 하나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삼성의 정경언 유착이 나라 망친다’는 주제의 이 토론회는 그동안 시민사회영역에서 제기되던 ‘삼성문제’를 정치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계기였으며 삼성의 소유지배구조 문제, 언론지배, 불법비리 문제들을 망라하면서 정치권의 해결을 촉구하는 자리가 됐다.

특히 삼성문제의 핵심은 이건희 회장 1인 지배체제를 가능하게 해주는 소유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건희 회장 일가는 금융계열사를 동원한 순환출자고리를 이용해 0.84%의 지분으로 삼성그룹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는 총수가 존재하는 38개 기업집단 중에서 유일하게 1% 이내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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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일가가 가진 0.84%의 지분은 계열사의 순환출자고리를 거치면서 52.62%의 내부지분율로 늘어나게 된다. 더구나 의결권 있는 지분만을 기준으로 의결권 지배력을 계산하면 이건희 일가의 의결 지분율은 4.41%에서 31.13%로 7.06배에 이르게 된다. 7.06배의 의결권 승수는 상법에 명시된 ‘1주1권’원칙을 허무는 것으로 프랑스 1.07배, 독일 1.18배, 영국 1.12배와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수치다.

이처럼 의결권 부풀리기가 가능한 이유는 순환출자고리에서 찾을 수 있다. 삼성은 핵심기업을 이용해 무려 6개의 순환출자고리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고객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금융계열사를 이용한 지분율 늘리기는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 금산법은 재벌금융사가 동일 계열에 속하는 다른 기업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1997년 제정 당시 법 위반에 대한 벌칙이나 시정조치가 아예 누락돼 있었으며, 2000년 개정될 때 신설된 벌칙조항도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가벼운 벌칙만 명시됐다. 결국 초과지분을 매각하는 등의 시정조치가 없어 법의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초과지분을 5년 이내 강제매각하는 내용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에 의해 입법 발의됐다. 법안이 발의되면서 법을 위반하고 있던 다른 재벌사들은 초과지분을 처리하겠다고 밝혔으나 금융계열사를 통한 순환출자가 그룹 장악의 핵심고리인 삼성의 경우는 초과지분에 대한 시정을 거부하고 있으며 정부마저 이를 거들고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의 경우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5%를 소유하고 있으며 삼성카드도 에버랜드 지분 25.64%를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에 대한 분리대응론을 들고 나오면서 삼성생명의 초과지분 소유를 인정해 주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더구나 정부안에 대해 ‘삼성봐주기’라는 반발이 거세지자 청와대가 내사까지 벌였으나 결국 “절차상 문제는 있으되 정실개입은 없다”는 모순적인 결론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은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지분을 2년 이내에 매각하는 법안을 추가로 발의하면서 정기국회에서 법안 관철을 위해 정부와 대립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원외투쟁으로 촉발된 국회파행으로 법안에 대한 결론을 보지 못한 채 다시 올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지게 됐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국민의 요구 벗어날 수 없다

국정감사에서는 또 삼성 등 재벌들의 2~3세로의 증여과정에서 회사의 기회를 편취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현행 상속 증여세 법은 삼성의 탈루 방식을 뒤쫓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이 열거주의의 허점을 이용해 새로운 증여방식을 만들어 내면 이를 뒤쫓아 법안이 보완되는 형식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 상속 증여세 포괄주의가 도입됐으나 아직 국세청에서는 포괄주의에 따른 과세를 한번도 하지 않고 있다. 역시 회사기회편취에 의한 상속증여세 탈루 의혹에 대해서도 국세청은 현실적 과세의 어려움만을 내세워 적극적인 과세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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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삼성상용차의 분식회계, 삼성자동차에 대한 채권단 손실금 보전문제 등도 국정감사 과정에서 제기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은 이건희 회장의 1인 지배체제를 보호하려는 세력과 번번이 부딪혀야 했다. 그들은 “정치가 경제를 억누른다”, “삼성을 공격해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논리를 동원하며 삼성에 대한 성역 지키기에 나섰다. 이는 이건희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는 과정에서 더욱 거세졌다. 

심상정 의원이 요구한 이건희 회장의 증인채택 문제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는 수 차례의 회의를 연기해 가면서도 결정하지 못했고 결국 국정감사가 시작된 이후에야 증인채택 요구를 받아들였다. 기아차의 부도과정에 대한 개입여부, 1998년 삼성생명 주식매입 과정에서 증여세 탈루 여부, X 파일에서 드러난 2002년 대선 당시 380억원의 불법정치자금 소유주에 대한 규명, 2005년 금산법 개정안 마련과정 개입 여부 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의 직접 증언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결국 외유를 이유로 증인석에 서지 않았으며 민주노동당은 이에 대한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진정한 국민의 ‘삼성’으로 만들어야

정치권은 이제야 삼성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수준이다. 앞으로 험난한 금산법의 개정과정이 남겨져 있다.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려 할 때마다 삼성을 보호하려는 역공 역시 거세게 제기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삼성에 대한 국민경제 시각에서 종합적인 손익계산서가 제출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이 잘 나가면 국민이 행복하다는 착시현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삼성그룹이 2004년에만 12조7천억원에 이르는 순이익을 거뒀으나 과연 삼성의 성공이 서민들에게는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보아야 한다. 특히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삼성에 대한 직간접의 지원과 특혜의 규모도 밝혀져야 한다. 수출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환율관리비용만 2004년에 28조원이 들었고 그 혜택은 삼성에 고스란히 돌아갔다.

또한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구조의 해체 이후 우리 경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이다. 대안적 경제모델을 구체화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작업은 결국 삼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총수일가의 비민주적인 지배체제를 걷어 내고 민주적으로 통제될 때에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으며 재벌체제 개혁의 성패 역시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