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스탠다드를 따르니 국가체제가 흔들린다?

노동사회

글로벌스탠다드를 따르니 국가체제가 흔들린다?

편집국 0 2,794 2013.05.19 02:44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1월9일 종합적인 인권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위해 위원회가 작성한 권고안에 기초하여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기로 결정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3년여 동안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이하 인권NAP)’ 권고안을 작성해 왔고, 정부는 이 권고안에 기초하여 중장기의 인권정책 청사진이자 범국가적인 인권정책 종합계획인 인권NAP를 수립하게 된다. 1993년 비엔나의 유엔세계인권회의에서 결의된 ‘비엔나선언과 실행계획(Vienna Declaration and Programme of Action)’은 국가마다 인권NAP를 수립하라고 권고하였고, 2001년 5월 유엔의 경제·사회·문화 권리위원회가 인권NAP 수립에 대해 2006년 6월까지 보고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인권NAP 권고안은 한국 사회의 인권을 증진하고자 향후 5년간 정부가 우선 실시해야 할 분야를 전략적으로 선택하여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인권을 우선 보호하고, 자유권과 사회권을 포괄할 인프라를 구축하는 법과 제도 개선을 핵심 추진과제로 제시하였다. 권고안은 긴급히 구제가 필요한 분야, 당사자 스스로 의제설정이 어려운 분야 등을 기준으로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난민, 시설생활인, 성적소수자, 새터민(탈북자) 등 총11개 대상영역으로 구성하였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의 제안

자유권과 관련해서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 일정범위 확대, 주민등록번호의 무분별한 수집제한 및 오남용 방지, 정부에 의한 일률적인 인터넷 내용규제 최소화, 집회시위에 대한 규제완화, 양심의 자유보장을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및 적절한 대체복무제 도입 등을 포함하고 있다. 사회권과 관련해서는 쟁의행위에 대한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 폐지 또는 필수공익사업장 범위 축소,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대상 확대, 최저임금 결정방식 개선 및 적용대상 확대, 작업장 감시기술 도입운영 정보 공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인권교육 강화를 위해 학교 부문, 공직 종사자의 인권교육, 시민사회 인권교육 등의 강화를 추진과제로 제시했다. 

노동권 내용은 집단적 노사관계, 개별적 근로관계 그리고 비정규노동자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집단적 노사관계는 노사자율원칙을 강화하여 노동기본권을 신장하는 것을 국가 정책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핵심 추진과제로는 노동조합의 결성과 운영의 자율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대상 확대와 노동관계 지원 제한 규정 폐지를 통한 자율적인 단체교섭 촉진을 들고 있다. 

또 쟁의행위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형사처벌과 민사책임 부과를 완화하여 쟁의행위를 보호하고, 쟁의조정 대상 범위 확대,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제도 폐지 또는 필수공익사업장 범위 축소, 긴급조정제도 요건 명확화 및 절차 개선, 실질적인 쟁의조정을 위한 관련기구 강화 등을 통해 단체행동권 증진을 기한다는 것도 들어 있다. 그리고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협약 가운데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제98호), 강제근로에 관한 협약(제29호), 강제근로 폐지협약(제105호)의 비준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개별적 근로관계는 유엔세계인권선언, 유엔사회권규약, ILO고용정책협약 등의 국제기준 그리고 헌법과 근로기준법의 정신을 반영하여 공정한 노동조건에서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국가 정책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핵심 추진과제로는 부당한 해고를 예방하고 해고를 둘러싼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리해고의 실체 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연령·장애, 비정규직근로 등을 이유로 고용 차별을 금지하는 법과 제도 정비를 비롯하여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하고, 농림업·수산업·축산업과 감시 또는 단속적 노동자의 근로기준 제고를 들었다.

또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개선하고, 법정 최저임금 수준을 향상시키며, 장애인·감시 또는 단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령을 정비하여 퇴직급여제도의 5인 미만 사업장 도입 시기를 단축하고 비정규 노동자에게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사전예방 중심의 근로감독행정을 시행하고 근로감독관의 증원 및 교육훈련 강화를 통해 근로감독행정의 전문화를 제고함과 아울러 노동권 침해 사건의 행정·사법 구제절차의 적절성·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감시기술의 도입과 운영의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고 노동자를 감시할 우려가 있는 장비를 설치할 경우 노동자와 사전에 협의하는 것을 의무화 할 것도 제안하였다.

비정규노동자에 관해서는 비정규직 고용의 사유를 예외로 제한하여 비정규직 남용을 방지하는 것을 국가 정책방향으로 설정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시정하도록 했다. 특히 동일가치노동 동일보수 원칙이 확립될 수 있도록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보험료 부과체계를 개선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장권을 강화함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의 교육과 훈련 강화를 통해 능력을 개발하여 정규직화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환영할 만한, 인권의 기준을 제시한 안

인권위의 NAP 권고안에 대해 노동계는 ‘환영’의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노총은 “인권위의 권고안이 다소 선언적 수준이지만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이제부터 정부의 책임”이라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민주노총도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 일정범위 확대라든지, 쟁의행위에 대한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 폐지 또는 필수공익사업장 범위 축소 등은 마땅히 권고돼야 할 사항”이며 이 밖에도 “집회시위에 대한 규제완화, 양심의 자유보장을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인권교육 강화를 위해 학교부문, 공직종사자의 인권교육, 시민사회 인권교육 등의 강화에 대한 권고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인권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인권운동가들은 이번 권고안에 대해 “미흡하지만, 일단 환영한다”는 입장이며, 특히 “비정규직 문제의 대안으로 ‘사유제한 도입’과 ‘동일노동 동일처우’의 원칙을 확인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이라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은 아쉬운 지점”이라고 평했다. 

한편 권고안 내용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1월10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은 “인권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했다”고 환영한 반면 한나라당은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국가체제를 뿌리째 흔드는 처사”라며 정반대의 논평을 내놓았다. 민주노동당은 “권고안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소중한 가치의 요약본”이라며, 특히 “공무원과 교사의 참정권 확대를 위해 즉각 법 개정에 나서야 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폐지와 쟁의행위 시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 폐지 등의 권고안은 그 자체로 인권위의 존재이유를 설명해 주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권고안 내용에 강하게 반대하며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고 국가체제를 송두리째 흔들어 지배세력을 교체하겠다는 거대한 조합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며 “이런 국가기관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회의하게 된다”고 혹평했다.

혹은 헌정 질서를 부인하는 행위?

이 권고안에 대해 경제5단체장은 1월17일 공동으로 입장을 발표했다. “권고안은 국가차원의 인권정책을 제시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일부 진보세력의 주장만을 반영하여 균형감각이 결여되어 있고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비판하고, “실정법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조차 무시하고, 국민정서와 일반적인 법감정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어” 만일 이 권고안이 그대로 정책에 반영될 경우 “크나큰 혼란이 초래될 것”을 우려하였다. 기본적으로 “인권은 안보와 안정적인 사회질서 하에서만 보장이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공무원·교사의 정치활동 허용, 집회와 시위에 대한 장소·시간제한의 폐지 등은 “안보와 사회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으로서 인권의 존립 기반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하였다.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을 허용할 경우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될 것”도 경고하였다. 

경제계는 심지어 “인권위는 ‘헌법 위의 기관’이 아니다. 종교적 신념 등에 의한 병역거부 인정 및 공무원·교사의 정치활동 범위 확대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이미 그 부당성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인권위가 헌법정신과 보편타당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단에 거스르는 권고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국가기관 스스로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필수공익사업장 파업에 대한 직권중재제도의 폐지와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완화, 그리고 비정규직 고용억제 및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등은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지극히 이상론적인 ‘노동인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발상으로서 산업현장에 갈등과 혼란만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자녀에 대한 양육받을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양육비와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회복지체제를 구축한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장기 불법체류와 정주화를 조장하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하였다.

재계는 인권위의 활동범위와 역할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특히 노사갈등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인권위가 더이상 노사문제에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 하였다. 경제계는 한걸음 더 나가 정부 각 부처에서 담당하고 있는 각종 차별시정 업무를 “비전문적인 인권위가 모두 맡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았다. 이와 같은 “인권위의 독선적 결정”을 막기 위해서는 차기 인권위 위원의 재구성 시에는 “균형된 시각과 사회적 덕망을 쌓은 인사들이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라 하였다.

경제계는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가 중소기업 경영자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는 경우도 있고, 대기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중소기업의 정규직 근로자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문제를 인권의 일률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경제 현상마저도 이념 영역의 문제로 탈바꿈시키려는 의도로 밖에는 볼 수 없다”고 하여 이념문제로 비화시키고 있다. 재계는 850만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면 “그것은 이미 인권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통해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 하였다.

권고안은 우리가 피해갈 수 없는 과제들

인권위원회에 대해 재계가 불만스러운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번 경우처럼 초강수로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이상주의에 입각한 인권위의 정책권고들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방치할 경우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이 권고안의 상당부분이 아직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권고안에 대하여 긍정하는 입장은 우리나라의 헌정사에 비추어 인권 보장을 위한 진일보한 내용이라고 하고 있으며, 국제인권기준에 비추어 도리어 미흡하다고 한다. 반면에 비판적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동안 헌법재판소나 사법부 또는 다른 국가기관의 입장과 배치되는 위헌적인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권고안에는 국가보안법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집회와 시위의 제한 철폐,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 허용 등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줄 만한 상당히 전향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쟁의행위 민형사책임 완화, 비정규직 고용억제, 필수공익사업에 대한 직권중재제도 폐지 등은 현실을 고려할 때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큰 사안들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정책이 바뀌면 정도 차이는 있지만 부작용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새로운 정책과 현실간의 괴리감이 크면 클수록 부작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NAP 권고안의 주요 내용들은 이미 우리사회에서 의제로 부상해 폭넓게 논의되어왔던 것들로 인권의 보편성과 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사회가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과제들이다. 더구나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보호하고 평등을 실현하자는 데에는 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국가인권위는 국민의 정부에 들어오면서 설치된 기관이다. 이 기관은 입법·사법·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으로서 그동안 소수계층의 인권이나 인권보장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인권의 문제를 제기하여 우리 사회의 인권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해왔다. 그 와중에 현실과 다소 괴리가 있는 입장 표명으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의 폐지 문제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인권위의 입장 전개는 다른 국가기관과의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신중을 요한다. 그러므로 인권위는 인권에 관한 정책 권고를 할 때 다른 국가기관의 견해를 고려하고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하여 입장을 개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당연하다.

권고안을 이념 논쟁으로 끌고 가지 말아야

인권위의 업무에는 인권침해행위 및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뿐만 아니라 인권에 관한 법령·제도·정책·관행의 조사와 연구 및 그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관한 권고 또는 의견의 표명도 포함된다(법 제19조). 권고안에 대해 “헌법정신과 보편타당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단에 거스르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으나 법원과 인권위의 기능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법원은 현행법에 대한 엄밀한 해석을 그 임무로 하는 데 비해 인권위는 법제도의 개선을 위한 의견표명을 할 권한이 있다. 뿐만 아니라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의 요청이 있거나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의견제출권까지 갖고 있어(법 제28조) 사법기관에 비해 포괄적인 활동영역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법원이 현재의 법질서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면 인권위는 미래의 법질서의 형성에 적극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NAP 권고안은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갖춰야 할 인권의 가치와 방향에 대한 일반론을 제시한 것이며, 향후 우리 사회가 도달해야 할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정부는 이를 실효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NAP 권고안에 담긴 내용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사회가 우리 사회에 요구해 온 것이고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상식적인 내용이며 일부 언론처럼 NAP 권고안을 이념적인 문제로 매도하고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