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보건의료산업 단체교섭에 관한 사례연구 [1]

노동사회

선진국의 보건의료산업 단체교섭에 관한 사례연구 [1]

편집국 0 3,525 2013.05.19 02:43

1. 머리말

최근 금속, 보건의료, 금융 등의 산업에서 산별노조 결성 및 산별 단체교섭이 이루어지면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산별노조-산별교섭’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산별교섭의 본격적 도입과 더불어 산별 교섭과 관련된 각종 현안도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산별교섭체제에서 노사 간 교섭구조, 교섭내용, 사용자단체의 구성문제, 중앙교섭과 지부교섭간의 관련, 산별임금체제 등 기업별교섭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현실이 급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산별 노조, 산별 교섭과 관련된 각종 문제들을 조사, 연구하고 산별노조, 산별교섭의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연구자들에게 또 하나의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그 동안 몇몇 연구소를 비롯하여 노동운동 관련 연구자들은 산별노조의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이와 관련하여 선진국의 산별노조 사례를 소개하는 데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해 왔다. 그러나 막상 산별교섭이 현실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정책대안 제시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는 데 불과하다. 국내에 소개된 선진국의 산별교섭 사례들도 대부분 산업별로는 금속산업, 국가별로는 독일에 치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편중된 선진국의 사례를 일반화하여 국내 현실에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점 역시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이 글은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산별노조 건설과 산별교섭을 추진해 온 보건의료산업이 앞으로 어떠한 교섭구조와 교섭내용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방향 제시를 위한 기초 자료로써 우선 선진국의 보건의료산업의 산별교섭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글의 순서는 선진국 보건의료산업의 단체교섭을 전체적으로 살펴본 다음에 영국, 미국, 독일, 스웨덴 등의 보건의료산업의 단체교섭 상황을 살펴보고, 결론에서 한국에 대한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2. 선진국 보건의료산업의 단체교섭구조와 변화 과정

1) 보건의료산업의 단체교섭구조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

선진국 가운데서도 미국, 일본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보건의료산업이 공공부문에 속한다. 이는 2차 대전 후 선진국에서 복지국가체제가 발전하면서 국가가 의료산업의 주요 부분을 떠맡았기 때문이다. 국가는 보건의료 서비스를 비롯한 공공부문 서비스의 독점적 공급자로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민간부문 경쟁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보건의료산업은 유럽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에서 공공부문에 속함에 따라 보건의료산업 내의 노사관계 역시 공공부문 노사관계의 일환으로 발전해 왔다. 2차 대전 후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공공부문의 노사관계는 노자 간 타협체제에 토대를 두어 왔으며 이에 따라 공공부문 노동자의 고용안정 및 상대적 고임금 등이 확보되었다. 더욱이 보건의료부문이 속한 공공서비스 부문은 비교역재(非交易財)이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 수출, 수입될 수 없으며 외국인 투자도 거의 금지되어 있어 비경쟁적 시장을 이루고 있다. 많은 민간부문에서 1980년대 이후 세계화에 따른 경쟁격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양보교섭 등이 나타났지만 보건의료부문은 이러한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았으며 노동자 및 노동조합에 대한 타격도 비교적 작았다. 이는 공공부문의 재원이 국가재정에서 직접적으로 조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기존의 공공서비스 부문 고용관계는 공공부문 지출의 성장이 지속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증가함에 따라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고 있고, 나아가 공공부문의 규모와 범위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지고 있다. 일단 증가한 사회적 서비스를 줄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공공부문의 지출은 계속 팽창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저성장, 고실업, 인구의 고령화 등으로 선진국은 재정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지출 등 이전지출(transfer payments)을 줄여야 하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에 정책결정자들은 공공부문 서비스 및 그 노동력에 조정 부담의 일부를 전가했다. 즉 공공 서비스의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단체교섭제도를 개혁하여 임금상승을 억제했던 것이다.

이전지출(Transfer payments)
정부의 이전지출은 실업수당이나 재해보상금 사회보장기부금과 같이 정부가 당기의 생산활동과 무관한 사람에게 반대급부 없이 지급하는 것이다. 즉, 생산적 활동에 대한 대가로서의 소득발생에 수반하는 지불이 아니고 단순히 각 경제단위 상호간의 소득의 이전에 불과한 지출을 말한다. 


지난 삼 십여 년 동안 서유럽의 보건의료지출은 크게 증가하여 왔다. 예컨대 의료보건비 지출액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년 동안 두 배로 증가했는데, 고령화 및 소득수준 향상에 따른 보건의료수요 증대와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른 의료비용의 증대라는 수요와 공급 요인이 작용한 때문이다. 

공공서비스의 비용에 대한 우려 외에도 공공서비스 공급의 질 저하나 일반 국민의 기대 충족에 미흡한 점(접근성, 공평성, 서비스 속도, 효율성) 등에 대한 비판이 높아졌다. 특히 보건의료부문에서 접근성, 전문 책임성, 효율성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었다. 생활수준 향상과 더불어 민간부문의 고객 서비스는 크게 개선된 반면, 공공부문 서비스는 그렇지 못하다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자 공공부문의 신뢰성을 개선하고, 소비자의 욕구에 보다 잘 부응하기 위한 개선이 이루어졌다. 공공부문의 낮은 생산성에 대한 비판은 높았지만 노동집약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생산성 개선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유럽의 경제통합과 정치통합이 진전되면서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의 3%, 총 정부부채는 60% 이내이어야 회원 자격을 가진다는 강력한 규제조건이 생겨났다. 그러자 국가마다 이 자격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공공지출을 억제했고, 공공부문의 일자리는 위협받기 시작했다.

보건의료산업은 매우 노동집약의 산업으로서 전체 비용의 50~75%를 인건비가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의 효율성과 우수한 질이 전체 의료산업의 성과에 핵심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보건산업의 개혁과정은 주로 인력에 대한 관리에 집중된다.

의료보건 지출의 보다 엄격한 통제에 따라 임금상승에 대한 억제책이 강화되고 있다. 또한 중앙집중식인데다 한결같아 다름이 없는 임금 결정방식을 지역 차원에서 유연하게 임금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보다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노동시장에서 직종이 무엇이냐에 따른 수급을 반영한 시장임금제나 성과급 등이 확대되고 있다. 

고용 측면에서도 비용 절감과 효율성 증대를 위해 비정규직 고용(기간제 고용, 파견노동자 등)이 크게 확대되고 있으며 기존 업무의 일부를 떼어 외주·용역을 주는 현상 역시 뚜렷해지고 있다. 고용관행 면에서도 업무의 재조직, 재배치, 직종 통합, 정규간호원을 간호보조원으로 대체하는 현상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보건의료제도의 개혁과 민영화, 시장화는 보건의료산업에 종사하는 노동력에 다양하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업무 강도의 강화, 비정규직화, 실업 등으로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병원 내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직종 간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기존 근로조건의 악화와 위협에 대응하여 보건의료산업 노동운동의 대응 역시 빨라지고 있다. 여러 선진국에서 보건의료산업 부문의 노사분규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기존의 산별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새로운 자생적 조직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에서의 보건의료산업의 개혁과 보건의료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에 끼친 악영향, 그리고 노동조합의 대응 미흡 등은 보건의료산업 노동조합에 새로운 도전으로 등장하고 있다.

2) 보건의료산업의 단체교섭의구조의 변화

유럽의 보건의료산업은 주로 국가가 고용주 역할을 맡아 왔으며 그밖에 지방정부, 교회, 민간조직 등이 부차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정부는 이윤동기보다는 유권자 여론에 보다 민감한 편이기 때문에 공공서비스 부문의 노사관계 역시 매우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공공서비스 부문 노사관계는 정교한 행정적, 법률적 규칙체계를 통해 매우 안정한 상태로 질서정연하게 작동하여 왔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 특히 남부 유럽 국가의 정부는 노동의 보호자인 동시에 ‘최후 수단의 고용주’로서 실업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로 경영책임과 효율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유럽의 보건의료산업은 단체교섭의 구조에서 강력한 중앙집중식, 다층식 교섭구조를 창출하였다. 중앙정부나 그 산하기구와 산별노조 간의 중앙집중형 단체교섭이 임금 및 기타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교섭수준이며 그밖에 지방정부, 정부산하기관, 혹은 민간부문 등으로 다층적인 교섭체계가 구성되었다. 일부 민간부문 고용주가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민간부문 역시 직접, 간접으로 공공부문 임금결정의 영향을 강력히 받고 있다. 

이 구조 하에서 보건의료부문의 노동조합 역시 매우 안정되어 있으며 강력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보건의료부문 노동조합들은 대체로 높은 조직률과 안정한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 구조는 대체로 매우 집중되어 있고 관료제도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공공서비스 노조는 민간부문 노조에 비해 여러 가지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다. 새롭게 조직을 건설할 때 고용주의 반대가 거의 없으며 조직형태에도 제약이 없다. 왜냐하면 잠재하는 노조원은 대체로 대규모 고용단위에 집중되어 있으며 고용안정성이 높고 노조 가입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유럽 국가마다 보건의료부문의 임금결정구조는 결정방식 및 교섭수준에서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의 단체교섭구조는 고도로 집중해 있다. 프랑스는 강력한 국가의 개입에 의해, 독일은 산별단체교섭 구조가 고도로 집중하여, 임금과 기타 고용조건이 중앙집중적이고 통일된 형태로 결정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둘째, 영국, 스웨덴 등은 분권화를 강조하며 공공부문의 개별 요소마다 차이가 상당하다. 스웨덴에서는 군(郡) 정부가 보건의료 서비스의 공급을 책임지고 있으므로 임금 및 근로조건의 결정을 위한 단체교섭구조 역시 상당히 분권화되어 있으며, 영국에서는 보건의료산업 내의 직종마다 별개의 단체교섭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90년대 이후 기업별 교섭으로 정책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셋째, 덴마크,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은 완전한 중앙집중화와 완전한 분권화 사이의 중간적인 교섭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이들 국가에서는 교섭구조가 다층화(산별과 직종별/지역별/기업별 교섭)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아일랜드에서는 공공부문의 매년 임금인상폭을 결정하는 전국적 교섭과 더불어 간호사 등 직종별 교섭이 따로 이루어진다. 덴마크에서 기본임금은 전국교섭에서 결정되지만 지역별 보충교섭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중교섭 제도 하에 있는 나라들에서는 지역별 유연성이 전국 수준의 공공부문 임금정책의 목표를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상이한 교섭수준 간의 조정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경제와 정치의 환경 변화에 따라 기존의 보건의료산업 고용 패턴에 긴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한된 민영화, 예산 및 인력결정권의 분권화, 공공서비스를 보다 소규모 단위로 분할하는 조짐 등이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서비스 부문의 노동자들이 누리던 상대적 우위가 잠식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확산, 성과급 도입, 책임성 강화 등 일련의 공세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지위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특히 유럽의 보건의료산업은 의료비 지출의 급속한 증대, 경기침체에 따른 재정적자의 누적증가, 유럽통합에 따른 재정건전화 요구, 보건의료부문의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 증대, 급속한 기술변화, 접근 곤란한 의료 서비스, 인구의 노령화로 인한 의료 서비스 수요의 증대, 장기실업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보건의료부문에서 다양한 개혁이 단행되고 있는데, 효율성의 개선(비용절약), 서비스 질의 향상, 의료 접근성의 개선, 노동력의 성과 개선(교육훈련, 성과급 도입, 업적 평가제도 도입, 직무평가제도 도입, 보상체계의 개선 등), 경영성과 및 기술 개선, 민영화, 외주 용역화, 비정규직 노동자의 도입, 공공-민간혼합체제 도입, 보건의료 조직의 분권화, 부가급부의 구조조정, 시장 및 경쟁요소의 도입 증대, 수익자 부담원칙, 서비스 구조의 개혁 등이 그것이다.  

또한 보건의료산업의 노동조합도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도 보건의료산업의 개혁조치로 인해 기간제, 파견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노조 조직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기존의 근무관행을 변경시키거나 보건의료부문 노동자들의 직종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고용주의 노력 역시 보건의료부문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을 동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여성노동력이 많은 보건의료부문에서 구조조정의 영향은 압도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건의료부문 예산삭감에 따른 인력삭감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것도 저숙련 여성노동력이며, 고용의 유연화 조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것도 주로 저숙련 여성노동력이다. 

이상의 여러 변화들은 결국 종합적으로 보건의료부문의 전통적인 고용안정성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보건의료지출의 큰 부분을 인건비가 차지하는 보건의료산업에서 민영화나 시장화는 결국 인건비 삭감을 의미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다시 고용조정이나 비정규직화, 또는 임금 및 기타 인건비의 억제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보건의료산업의 고용불안정과 임금상승 억제는 결국 보건의료 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사기저하와 교육훈련 축적의 저해, 그리고 궁극으로 보건의료서비스의 공급 부족 및 질 저하 등으로 나타나고, 환자들을 비롯한 온 국민의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보건의료부문의 노동조합은 이상의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조직화와 조합원 동원의 효율성, 연대의 유지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보건의료산업의 노동력 구성은 다른 부문에 비해 여성의 비율이 높고, 화이트칼라 및 전문 직종이 많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노조의 성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선진국에서는 보건의료산업의 많은 노조들이 간호사단체 등 전문직 단체로부터 변화되었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들은 그동안 전문직 지위 때문에 누렸던 특혜, 서비스 질, 국가정책에 대한 영향력 등이 감소할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따라서 단지 고용조건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조합의 구조면에서 공공서비스 부문 노조는 노동조합의 총연맹단체로부터 분리되어 있거나 완전히 공공부문으로만 이루어진 연맹에 가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으로 노조원 수가 감소함에 따라 노조 간 통합 움직임이 흔히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유니손(Unison, 공공부문연합노조)과 독일의 베르디(Ver.di, 통합서비스노조)이다. 이들은 공공부문, 혹은 민간부문을 포함한 전체 서비스 산업의 여러 노동조합이 통합한 거대한 조직을 구성하고 있으며 보건의료부문은 이 거대노조의 일부로 반(半)독립적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보건의료산업을 포함한 공공서비스 부문 단체교섭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공서비스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 서비스로서 법률적 규제를 받고 있어 단체행동에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다시 단체교섭의 불가결한 부문을 제약하게 된다. 단체교섭에 대한 국가의 태도 역시 애매한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는 국가에 의한 임금 및 근로조건의 일방적 결정과 다른 한편으로는 단체교섭을 통한 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게 된다. 지금까지는 유럽 국가들의 경우 보다 많은 공공부문 노동자 그룹에 단체교섭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추세였다. 이에 따라 민간부문과는 달리 공공부문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증가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민간부문과 마찬가지로 공공부문에서도 교섭의 분권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둘째, 선진국에서 공공서비스 산업의 단체교섭 과정은 다변화되어 있다. 즉 고용주 측에서는 중앙정부, 주정부, 정치가, 공공서비스 관리자 등으로 고용주가 분산되어 있다. 그리고 때로는 고용주 내부에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여 교섭구조는 더욱 복잡해진다. 따라서 고용주, 노조 양쪽 모두 내부적인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셋째, 교섭수준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공부문에서는 민간부문 만큼 뚜렷하게 교섭수준의 분권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유럽의 공공부문에서도 중앙단위 교섭으로부터 지역단위나 개별 기업단위 교섭으로 권한을 위임하는 분권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추세이다. 그러나 공공부문에 속하는 보건의료산업에서는 분권화의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민간부문에서는 개별 기업 차원의 노사 주도로 산업별, 직업별 등 ‘다(多)고용주 교섭’을 버리고 분권화된 교섭체제를 택함으로써 기업 차원의 근로조건을 스스로 결정하는 데 초점이 두어지고 있다. 반면 공공부문에서는 그 출발점이 정반대이다. 즉 국가가 원래 임금결정의 책임을 지니고 있었는데 고용조건의 일부 책임을 하부수준의 교섭으로 위임하여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이처럼 분권화된 단체교섭을 허용함으로써 공공부문의 임금결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것을 우려하여 완전한 분권화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에서 공공부문의 분권화는 ‘조직화된 분권화’로 특징지어진다. 전체 총지출은 엄격히 통제하면서 지방, 개별기업 수준에서 유연화 협약을 교섭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고 있다. 분권화와 동시에 집중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유럽 공공서비스 부문 단체교섭의 특징이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예산제약에 관한 중앙정부의 통제가 종전보다 강화되어 어떤 측면에서는 임금결정 수준이 보다 중앙집중 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단체교섭의 분권화와 집중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 보다 현실에 가까운 모습이다.

넷째, 단체교섭의 내용 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민영화, 시장화, 외주 용역화, 비정규직의 도입, 업적급 도입 등 고용관행의 유연화나 경쟁요소 도입 등에 관한 사항이 단체교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다섯째, 단체행동과 관련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공서비스 부문은 민간부문에 비해 파업이 잘 일어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에 대해 법률과 단체협약에 의해 단체행동이 제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상황이 변화하여 공공부문에서 훨씬 노사갈등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갈등과 조정은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예컨대 민영화 및 노동강도 강화에 대한 방어적 투쟁을 비롯해서 공식적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지켜주지 못하는 데 대한 비판으로 직종 그룹이 제기하는 보다 공격적인 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전체로 볼 때 유럽의 공공서비스 부문에 지난 90년대는 국가, 고용주, 노동조합의 정책이 커다란 변화를 겪었던 시기였다. 유럽 국가마다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와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공공서비스 부문의 노사관계 구조를 개혁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개혁 요구로 보건의료산업을 비롯한 공공서비스 부문에서는 현대화, 분권화, 업적중심주의, 민영화 등의 요구가 거세게 불어 닥쳤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공공서비스 부문의 노사관계가 동일한 형태로 변화한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다양한 정치제도, 경제정책, 법률제도, 사용자와 노동조합의 구조와 정책 등에 따라 변화의 방향, 범위, 속도에도 다양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차이를 국가마다 나타난 보건의료산업 단체교섭구조의 구체적인 변화를 통해 살펴보게 될 것이다. 

3. 영국 보건의료산업의 단체교섭구조와 변화

1) 보건의료산업 개관

영국의 보건의료산업은 중앙집중적인 공공기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전국보건서비스청(National Health Service: NHS)이 바로 그것이다. NHS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 전체 일반예산의 14%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공공부문 보건의료지출을 관장하는 거대조직이며, 전국에 걸쳐 1백만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고, 그 임금총액은 전체 공공부문 임금총액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당 정부 집권 당시인 1948년 창설된 NHS의 재원은 국민들이 내는 조세로 충당하여 모든 국민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하고 있는데 바로 그러한 점에서 영국 국민들의 특별한 애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1979년 이래 보수당 정부가 경쟁체제를 도입하여 보건의료산업을 구조조정 하려던 움직임은 보건의료부문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을 야기한 바 있다. 

영국에서 보건의료제도는 거의 완전히 일반조세로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1990/1 회계연도 이전까지는 NHS→지역보건국(RHA)→지구보건국(DHA)으로 재원이 직접 수직으로 할당되는 구조였다. 예산배정기준은 인구수를 기본으로 하되 인구구조 및 기타 요소에 따라 조정되었다. 지구보건국(DHA)은 관할구역 내의 병원과 기타 공공의료서비스 조직들에 예산을 배정하고 인원을 고용하며 그 임금과 근로조건은 전국 단일기준을 따라 정했다. 병원 소속 의료진과는 달리 일반개업의사(General Practitioner)들은 개인자영업으로서 보건당국과 중앙단일계약을 맺고 환자를 치료하며, 이에 대한 보수로서 ‘1인당 고정급+환자 치료 등 의료 서비스 실적에 따른 실적급+의료보건 목표치(예컨대 아동 예방접종률) 달성 시 받는 보너스’ 등이 혼합된 보수를 지급받았다. 

이러한 보건의료제도는 두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NHS가 전 국민에 대해 그들의 지불능력과는 상관없이 거의 완전한 무상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줌으로써 의료 서비스에 대한 비교적 공평한 접근이 가능하였으며 이는 국민들을 만족시켰다. 둘째, 중앙집중적인 구조로 인해 NHS는 비용 면에서 매우 효율적인 성과를 보여 왔다. 1992년에 영국은 국내총생산(GDP)의 7.1%를 보건의료비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의 평균보다 낮은 수치였다. 예산을 배정하고 지출결과를 감시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책임으로서 중앙정부는 엄격한 ‘지출한도(cash limits)제도’를 사용함으로써 보건의료 서비스 부문의 관리자들이 예산 범위를 초과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일반개업의사는 제2차 진료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함으로써 종합병원 진료에 대한 수요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러한 NHS의 강점이 90년대 초가 되자, 주된 약점으로 묘사되면서 개혁 요구를 받게 되었다. 중앙정부에 의한 엄격한 의료지출의 통제는 결국 NHS의 재원부족과 재원배정 상의 경직성을 가져왔다. 비록 보수당 정부가 1980년대에 NHS의 예산을 실질액 기준으로 증가시키기는 했지만 이는 이전 시기에 비해서는 훨씬 낮은 증가율이었고, 특히 고령인구의 증가와 새로운 의료기술 채택에 따른 의료비 수요의 증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다. 그결과 영국의 공공부문 보건의료지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 이하로 떨어졌다(예산총액의 14% 차지). 예산삭감과 인력감축으로 의료 서비스 공급이 제약됨에 따라 치료를 기다리는 대기 환자 수가 80년대에 급격히 늘어나 75만명 이상에 달하게 되었다. 

80년대에 보수당 정부는 보건의료부문의 효율성 제고와 상업성 증대를 위한 정책수단들을 도입하였다. 그 가운데는 병원인력의 감축을 위한 인력목표치의 도입, 보건의료당국의 추가수입원 확보 의무(병원 내에 상가를 만들어 추가수입 확보 등)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정책조치는 청소, 식당, 세탁 등 병원관련 서비스 제공에 경쟁입찰을 의무로 한 것으로서 이에 따라 병원에서 기존의 고용관행이 변화되고 근로조건이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보수당 정부는 이와 관련한 다른 중요한 조치로서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보장하는 한편, 정부의 개혁조치를 방해하는 의사, 간호사 등 병원 전문 인력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병원 관리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대처 정부는 이를 위해 1985년 주로 비(非)의료인 출신의 경영진을 임명하여 해당 경영단위의 실적에 대해 개별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단기계약으로 채용된 경영진들은 업적에 따라 보수를 받기 때문에 예산목표치를 달성하고자 하는 강력한 유인동기를 갖게 된다. 이를 통해 정부는 NHS의 방향과 정책수행에 대해 보다 확실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보수당 정부는 1990년의 입법에 의해 NHS의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하였다. 이는 NHS의 조직 및 경영을 시장원리에 따라 개혁하는 동시에 임금 및 고용관행의 개혁도 가속화하는데 목표를 둔 것이었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의료 서비스의 구입과 공급을 분리시켜 경쟁을 강화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의료서비스를 구입하는 책임은 지구보건국에 있지만 종전처럼 관할구역 내의 병원들로부터 독점적으로 의료서비스를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상호경쟁적인 공공 및 민간부문 의료 서비스 공급자들과 계약을 통해 이를 공급받게 된다. 

의료서비스 공급 측면에서 핵심적 개혁조치는 NHS 트러스트(trusts)를 설립한 것인데 이는 여러 개의 병원을 그 산하에 두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으로서 보건성으로부터 독립된 공영사업체 조직이다(그밖에도 외래환자 트러스트, 지역사회 의료서비스 트러스트 등이 있다). 현재 영국 전국에 273개의 NHS 트러스트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매년 보건당국이나 일반개업의사회 등과 계약을 맺고 위탁을 받아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는 이들 트러스트에 대해 보다 큰 경영 자율성을 허용하고 이들 기관들이 민간부문의 관행을 벤치마킹하도록 장려하였다. 각 트러스트는 공사 형태이며 독자적인 이사회를 가지고 있고 직원들을 직접 채용하며 독자적인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다. 또 트러스트마다 서로 다른 노사관계 정책이나 관행을 만들 수 있다. 트러스트들은 자산에 대한 보수율 목표를 달성해야 하며 연간 재원 한도 내에서 차입도 할 수 있고 잉여자산을 처분할 수 있다.

이러한 개혁조치들은 NHS 경영진에게 상당한 불확실성을 가져왔다. 트러스트의 수입은 주로 다양한 보건당국과 일반개업의사들(1차 진료기관인 일반개업의들은 보다 전문적인 병원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2차 진료기관인 트러스트에 소개한다)로부터 계약을 얼마나 많이 따내느냐에 달려 있다. 더욱이 NHS가 개별 트러스트들로 파편화되어 각 트러스트들은 더욱 취약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이제 더이상 지역보건국 혹은 지구보건국으로부터 재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트러스트들은 그러한 재정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인적자원 관리에 있어 유연성을 증가시키도록 장려 받고 있다.

따라서 트러스트 경영자들의 핵심적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충분한 계약수입을 확보하는가 하는 것과 더불어 비용을 어떻게 하면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비용 가운데서도 특히 트러스트 지출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비용의 통제가 핵심적이다. 충분한 계약수입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트러스트의 폐쇄나 합병 등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상당한 인력이 실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밖에도 비용 절감을 위해 직종간의 통합을 포함한 조직혁신, 숙련노동력을 미숙련노동력으로 대체, 임시직 혹은 단기계약직의 사용 증대, 정원 부족에 대한 미충원 혹은 직위 제거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정리해고까지 나타나고 있다.

1997년 노동당의 재집권에 따라 보건의료정책 및 고용관행은 다시 변화하였다. 노동당 정부는 집권 후 곧이어 준(準) 시장적 개혁조치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997년의 보건성 백서 및 1999년의 보건법에 이를 제도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보수당 정부 이전 시절의 체제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노동당 정부의 새로운 조치는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위로부터 개혁’과 ‘자의적이고 낭비적인 아래로부터 발생하는 비효율’ 사이의 제3의 길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동당 정부의 새로운 방식은 경쟁의 도입이 자원의 낭비만 가져올 뿐, 뿌리 깊은 핵심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하에 협력과 파트너십에 보다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당 정부는 여전히 의료 서비스 구입자와 공급자의 분리(NHS 트러스트 설립) 등 보수당 정부가 도입한 개혁조치 가운데 많은 요소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당 정부는 보수당 정부 하의 엄격한 공공지출 억제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보건의료부문의 임금 인상을 위한 자금은 여전히 제약받고 있다.
 
그러나 보건의료부문의 서비스의 양과 질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높아짐에 따라 노동당 정부는 2000년 NHS 플랜을 발표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향후 국내총생산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유럽 평균인 9%대까지 인상하고 NHS 예산을 연평균 실질 7.4%씩 증액한다는 것이다. 그 재원조달을 위해 2003년도부터 국민보험료율을 노사 1%씩 인상하여 NHS에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또 NHS의 경영업적에 대한 감독 강화, 노동조합과의 교섭에 의한 노동생산성 제고 등을 추진하였다. 노동당 정부는 다시 2004년 6월 총선거에서 공약으로 NHS 개선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서비스의 질적 변혁을 촉진하기 위해 환자 대기기간의 단축, 환자선택의 확대, 개별대응형 서비스로 전환 등이다. 이를 위해 지역조직에 권한과 재원을 이양, 민간위탁의 확대와 분권화 등도 발표하였다. 

2) 보건의료산업의 단체교섭구조와 변화

NHS 창립 이후 1990년대 초까지 영국 보건의료산업의 단체교섭구조는 중앙집중식 임금 결정구조를 유지해 왔다. 1990년대 초까지 영국보건의료산업 단체교섭구조의 특징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의료직과 간호직 및 기타 의료관련 전문직의 보수(임금 및 봉급) 수준은 정부가 결정하였다. 원래 영국에서 간호사의 임금은 단체교섭의 결과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러나 대처 보수당 정부의 집권 후인 1983년, 영국 정부는 간호사의 임금에 관한 단체교섭권을 박탈하고 정부가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이는 전후 영국 노동운동의 최대 후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조치였다. 그러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정부로부터 임명받는 반 독립적 기구인 보수검토기구(Pay Review Bodies)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기구는 전문직 직종 그룹의 보수 수준을 검토하고 이를 정부에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보건의료부문의 보수 수준 검토기구는 직종에 따라 세 개가 구성되어 있는데, 의사 및 치과의사, 간호사 및 조산부, 기타 의료관련 전문직 등이다. 이들 보수검토기구는 매년 정부 각 부처와 NHS 경영진 및 노동조합 등으로부터 수집한 자료와 의견을 바탕으로 하여 중기(中期) 보수 동향에 대한 결정을 한다. 이 기구는 검토 결과를 정부에 권고하며 정부는 “명백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 권고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보수검토기구의 임금인상 권고를 전면 거부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지만 임금인상률 권고의 완전한 실행을 연기하거나 단계적으로 인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연간보수비용을 상당히 줄이는 경우는 많았다. 어쨌든 보수검토기구라는 제3자 기구를 통해 노사는 여전히 간접적인 단체교섭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둘째, 보수 수준을 제외한 고용 및 근로조건에 관한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은 중앙교섭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중앙단위 교섭을 담당하는 기관이 바로 ‘휘틀리위원회(Whitley Council)’이다. 영국 공공서비스 산업의 전통인 휘틀리위원회는 일반위원회(모든 하부그룹에 공통된 사항 교섭)와 10개의 기능별 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노사는 각 기능별 위원회를 통해 직종별 교섭을 한다. 앞에서 본대로 의료관련 전문직은 임금을 제외한 사항만을 교섭하며 행정직, 사무직, 기타 비 의료관련 여러 직종은 임금 및 근로조건을 모두 휘틀리위원회에서 교섭한다. 이때 가능한 한 노사 간 공동합의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노사 간 이견이 있을 경우 미리 합의한 절차에 따라 해결하도록 하되 여기에는 중재절차도 포함된다. 

셋째, 단체교섭구조는 고도로 중앙집중식이며 중앙교섭에서 상세한 고용조건 및 근로조건이 합의되어 일단 보건담당 국무장관의 승인을 얻은 뒤 전국 모든 병원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넷째, 영국 노사관계의 전통인 직종별 교섭이 보건의료부문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보건의료부문 내의 다양한 전문직 및 직종 간에는 오랫동안에 걸쳐 형성된 구별이 존재하고 있으며 휘틀리위원회 역시 이러한 구별을 인정하고 별도로 교섭을 벌인다. 휘틀리위원회의 노사교섭에서 최소 한 명 이상의 위원을 인정받고 있는 직종 노조는 모두 39개에 달하고 있다. 예컨대 한 병원 내에서도 열 개 이상의 노동조합 및 직종별 단체와 교섭해야 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다섯째, NHS 소속 의료직, 간호직 등 전문직원의 보수는 공식 혹은 비공식으로 외부의 비교가능한 직군의 보수 수준과 연동되는데 주로 공무원이나 지방정부 직원 등의 보수 수준과 비교하였다. 이는 대체로 물가상승률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었다. 반면 비숙련직종인 비 의료직의 경우 강력한 예산억제정책에 따라 임금상승이 억제되었으며 그결과 이들의 임금수준은 원래 공공부문보다 낮은 수준이었던 민간부문 노동자 임금수준과 비슷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교섭의 구조와 절차는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특히 보건의료부문 노동력의 규모가 크고 구성이 복잡하며 NHS가 다층의 조직구조를 갖고 있는 것 등이 주로 문제가 되었다. 보건의료부문의 다양한 직종군은 곧 다양한 직원조직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부문의 직원을 대표하는 조직은 크게 보아 영국노동조합총연맹(TUC) 산하의 여러 산별-직업별 노동조합들(이들 상호간에도 조합원 충원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과 TUC와 관련 없는 전문직 노조들(이들은 주로 의료직 종사자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로 나뉜다. 좁은 범위의 직종별 혹은 전문직별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조직들 사이에서 단체교섭의 목표 및 전술을 둘러싸고 경쟁과 갈등이 격심하게 나타나서 전국 교섭과 지역별 협의 양쪽 모두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TUC 산하 노조와 TUC 비 가맹노조간의 이러한 긴장관계는 지역별 임금결정방식을 둘러싼 1995년의 NHS 노사분규 과정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부문의 중앙집중식 임금결정구조는 1980년대에도 별다른 변화 없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종군의 보수 수준은 예산당국의 엄격한 예산한도 억제와 병원경영진의 예산한도 엄수 의무화의 영향 때문에 제약되었다. 이 상황은 결국 노동조합과 고용주가 임금과 고용 사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산한도제에 따라, 만약 임금억제가 지켜지지 않으면 인력삭감이나 생산성 향상 혹은 서비스 삭감 등으로 임금상승에 따른 추가 비용을 메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시작된 보수당 정부의 보건의료부문 개혁은 단체교섭구조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는 미국의 자유방임형 시장제도에 기초한 노사관계정책을 영국에 도입함으로써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지역의 개별 임금결정을 촉진하겠다는 것으로 영국에서 최대의 중앙집중식 단체교섭구조를 갖고 있던 보건의료부문의 기존 제도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개혁조치에 따라 반 독립적인 트러스트가 설립되었고 이들 기관들이 인사문제 및 노사관계정책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얻었다. 단체교섭 역시 기존의 전국 단일교섭으로부터 각 지역별 교섭으로 이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보수당 정부의 의도였다. 정부의 엄격한 예산한도제와 경쟁입찰제, 그리고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에 대한 공격적인 대응 등으로 여러 직종에서 전국적인 단체협약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었다. 1990년대 초가 되면 대부분의 직종별 단체협약에서 임금 및 봉급구조가 유연화되고 임금에 대한 지역별 보충협약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개별 NHS 트러스트들이 보수당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그들에게 주어진 자율성을 인사문제 및 노사관계정책에 전면적으로 행사하지는 못했다. 노동조합, 특히 TUC 산하 노조들은 트러스트의 설립 및 지역별 교섭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으며 이 과정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노력하였다. 그결과 90년대 중반까지 기존 단체교섭구조로부터 이탈한 트러스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정부는 1995/6년 교섭에서 지역별 교섭을 각 트러스트에 강요하였다. 간호원 보수에 관한 검토기구에서 전국 임금인상률을 겨우 1%로 결정하고 지역별 교섭에서 그 효율성이나 실적에 따라 총 1.5~3.0% 범위 내에서 차등 인상할 수 있도록 권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노동조합은 지역별 교섭에서 무조건 2% 인상(차등인상이 아니라)을 주장하였다. 종래 파업 등 단체행동에 반대해 왔던 정규간호사 노조조차 단체행동에 찬성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996년 말에 정부와 노조가 타협을 하였다. 즉 트러스트별 교섭을 허용하되 그 임금인상률이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미리 정해진 최저 인상률을 정부가 보장한다는 ‘안전판 규칙(safety rule)’에 합의한 것이다. 만약 어떤 트러스트가 전국 협약에서 정해진 인상액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인상에 합의했을 경우에는 그 차액을 다음해에 보충 인상하도록 하였다. 

1997년 노동당 정부가 집권한 후 지역별 교섭체제를 중단함으로써 지역별 교섭은 겨우 1년의 시도만으로 끝나고 다시 구체제로 복귀하였다. 다시 말해서 영국 보건의료부문에서 지역별 교섭은 별다른 의미 있는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동당 정부는 의료비 지출의 대폭 인상을 공약함으로써 보수당 정부 하의 엄격한 예산통제 역시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트러스트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의 트러스트들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있으며 아주 소수의 기관들만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조 조직률도 여전히 매우 높은 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개혁조치 이후 직장단위 노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개별 단위에서 노사협조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