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특수고용 노동자 투쟁의 쟁점과 전망

노동사회

2006년 특수고용 노동자 투쟁의 쟁점과 전망

편집국 0 2,783 2013.05.19 02:39

 

작년은 어느 때 보다도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국 차원에서 분출된 해였다. 한국노총 충주지부장 김태환 열사의 타살과 화물연대 김동윤 열사의 분신 등 우연적 계기에 의한 투쟁도 있었으나, 신생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세 차례의 파업을 수행한 덤프연대와 비록 파업에 돌입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정부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화물연대가 대정부 요구안에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3권 보장’을 주요사안으로 명시했다는 것은 특수고용 투쟁의 성격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 특수고용 대책회의는 작년 10월4일부터 국회 앞 천막농성을 시작해서 100일간 농성을 이어갔고 그 중 58일 동안은 특수고용 노조 대표자들의 단식투쟁이 이어졌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바야흐로 생존권 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 단위노조의 투쟁에서 공동투쟁으로 확대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의 흐름에 비춰봤을 때 올해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조직 역량이 있을 때 한판 승부를 내야

해를 넘겨서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법안, 노동시장 재편을 노리는 노사관계 로드맵, 산별노조 전환 문제와 복수노조 교섭방식 결정 등 올해 노동정세를 판가름할 굵직한 사안들과 함께 특수고용 노동자 권리보장 입법 문제를 올해의 주요한 노동현안으로 꼽는 이유는 운동 내외의 조건이 그렇기 때문이다.

우선 운동 내적 조건의 측면에서 특수고용 노조 내부의 상황인식이 매우 절박하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노조인정과 단협 체결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기울인 노력에 비해 성과는 매우 부진한 상태이다. 부당한 해고(일방적 계약해지)에 대한 대응과 각종 수당, 퇴직금 등 법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천편일률적 법원 판결에 의해 여지없이 무력화되고 있다. 화물, 덤프 등 비약적으로 조직화를 이룬 사례가 있지만 노동자들 간의 동질성이 매우 높다는 점과 생존권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를 향해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요인들이 작용한 것이지, 조직화 그 자체가 특수고용 투쟁의 발전적 성과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직적 성과가 분명하지 않을 경우 이들 노조 역시 당분간은 조정과 퇴보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노동자성 인정에 대한 입법적 해결이 계속 미뤄질 경우 현재 조직되어 있는 노조들도 몇 년 버티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판단이 다년간 투쟁을 해온 노조 지도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작년 말 대법원에서는 학습지 교사의 노동자성을 부정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가 아닌 사람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노동조합의 합법성마저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힘입어 학습지 업계의 ‘삼성’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교자본은 학습지노조 대교지부장을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2월4일부로 해고예고를 통보했다.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입법화가 이뤄지기 전에 노조를 전면으로 무력화시키겠다는 대교자본의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대교지부장의 해고는 단위사업장의 문제, 또는 개별 해고자의 문제가 아니라 특수고용 투쟁의 상징적 사례로 봐야 한다. 생존권 요구를 중심으로 단위노조별로 진행되어 온 예전의 투쟁 흐름으로는 더 이상 조직의 확대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유지조차도 힘들게 된 것이다. 그나마 조직역량이 있을 때 한판 승부를 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노정, 의도는 다르나 입법 논의를 피할 수 없어

정부 입장에서도 특수고용 문제를 더 이상 모르쇠로 일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는 것과 함께 특수고용 문제도 같은 범주에서 사회문제화 되고 있고, 4년 동안 진행된 노사정위 논의도 종료된 마당에 더 이상 핑계꺼리도 없어진 것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특수고용 문제가 입법으로 다뤄지는 것은 아무런 법적 규제가 없는 지금과 비교할 때 크든 작든 불리해지는 것이고, 따라서 현재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보수적 법원 판결을 믿고 ‘법대로 하자’는 식으로 대응하면 그만이다. 특수고용 문제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태도는 결과적으로 이러한 자본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노동자들의 투쟁이 점점 정치화, 집단화하고 있으며 비정규직 일반에 대한 국민 여론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결국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써 특수고용 문제를 구조화, 안착화시키려는 시도가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예상은 이미 ‘비정규 보호법안’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노동유연성은 강화하고 정규직과의 차별은 일정수준 줄이겠다는 정부의 거시적 노동정책이 특수고용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관철될 것이다.

이렇듯 입장은 상반되지만 노동계와 정부의 특수고용 문제에 대한 각각의 상황인식이 구체적인 입법논의의 형태로 올해에 본격화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만든다. 주체의 투쟁이 항상적 변수로 남아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입법논의의 양상은 기간제법과 파견법이 겪고 있는 경우와 비슷한 흐름을 이루지 않을까 예상된다. 올해에 입법논의가 구체적으로 시작되겠지만 올해 안에 모두 마무리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조건이다. 시기문제 뿐만이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서도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노동계는 이미 특수고용 문제와 관련해서 2004년 7월에 단병호의원 대표발의로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제기해 놓은 상태이지만 적극적으로 의제화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 보호법안’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매우 개악된 내용으로 입법안을 던질 것이고 거기에서 논의가 출발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입법논의 구도를 극복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입법국면을 만들어 가야하는 과제가 노동계의 눈앞에 놓여 있다.

 

정부 입장의 계속된 후퇴, 그 결정판인 노사정위 ‘검토의견’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계속적으로 후퇴되어 왔다. 2000년 10월 국무회의 보고를 통해서 노동부는 ‘비정형 근로자 보호방안’을 확정하여 근로기준법에 ‘근로자에 준하는 자’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근로기준법을 부분 적용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 당시에 노동조합법 적용은 기본이었고 근로기준법을 특수고용의 업종별 특성에 맞게 부분 적용하는 것이 정부의 논의 수준이었다. 당시 노동부의 근로기준법 부분 적용 내용으로는 임금보호, 해고제한, 산재보험 적용 등이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의 공약도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특수고용 논의수준은 계속 후퇴했고 그 결정판이 작년 10월에 공개된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검토의견(이하 ‘검토의견’)이다.

노사정위에서 특수고용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01년 7월이었다. 당시 노사정위 비정규특위 제2분과에서 특수고용 문제를 논의하다가 결국 논의를 매듭짓지 못하고 2003년 9월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별위원회로 조직을 개편해서 논의를 지속하다가 결국 작년 6월에 ‘검토의견’이라는 형태로 지금까지의 논의내용을 정리했다. 노동계위원이 사퇴한 가운데 ‘공익위원안’도 아닌 ‘공익위원 검토의견’이라는 격하된 형태로 공개되었지만, 이후 노동부 입법안의 기준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3개의 복수안으로 되어 있는 노사정위 검토의견은 전반적인 관점이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있고, 최소한의 보호조항도 노동법의 적용이 아닌 특별법이나 경제법을 통해 별도의 개별적 보호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검토의견을 요약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표]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검토의견

구 분

1안

2안

3안

준 용

배 제

근로기준법

A직군

(일부 조항은 배제)

B직군

(별도의 공통적 보호방안, 직군별 보호방안 마련)

배제

(B와 동일)

배제

노동조합법

C직군

(일부 조항은 배제)

D직군

(별도의 보호방안 마련)

배제

(D와 동일)

준용

(일부 조항은 배제)

 

개별적 보호방안으로는 계약조건 명시, 일방적 계약해지 금지, 임금 보호, 모성보호 등의 내용이 담겨 있으나 불이행에 대한 벌칙을 두지 않음으로써 실효성 확보가 미지수이다. 집단적 보호방안으로는 노조가 아닌 단체를 조직할 수 있고, 교섭이 아닌 협의를 할 수 있으며, 쟁의행위 등 단체행동은 금지하는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검토의견의 출발점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검토의견의 적용대상으로 근기법상 근로자가 아닌 자,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닌 자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정의하고 있다. 노동자성을 인정할 것인지 아닌지, 인정한다면 어느 선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자성 배제를 전제로 논의를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직군별로 차별 적용함으로써 특수고용 문제가 마치 직군의 고유한 속성으로 인해 발생된 듯이 보이게 하는 착시현상을 조장하고 있다. 검토의견과 유사하게 입법화될 경우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개념을 제도화함으로써 기존의 정상적 고용관계도 사용자의 노무관리 방침의 변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노동자성을 합법적으로 박탈할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특수고용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는 처음부터 자영인 형태로 위탁, 도급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원래는 정규직 형태로 근무했던 노동자들이다. 업무의 성질상 노동자인지 사업자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해 계약의 형식만이 바뀐 것이다. 이것이 특수고용 문제의 핵심이다. 문제가 이렇다고 했을 때 특수고용 문제에 대한 논의는 위장된 개인사업자로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권리박탈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검토의견은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것을 논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또한 “법원의 판단이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해석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입법적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논의의 배경에도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6월에 특수고용 노조 대표자들이 노사정위를 항의 방문했다. 노조 대표자들의 요구사항은 노사정위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지금까지의 논의결과를 폐기하라는 것이었다. 논의가 계속 되면서 노동부의 핑계꺼리로 작용하는 것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것과 노사정위 논의 내용이 기존의 노동계 요구사항과 너무 거리가 멀다는 이유에서였다. 최소한의 균형도 유지하지 못한 검토의견 내용이 입법논의의 기준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무엇을 할 것인가

운동의 관점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입법 국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선 입법의 최소기준에 대해 노동계뿐만이 아니라 범사회운동 진영까지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여론을 광범위하게 조직해야 한다. 기간제법과 파견법에 대한 요구안을 둘러싸고 작년 말에 보여준 노동계 내부의 분열과 시민사회단체 일부의 이견표명은 특수고용 법안을 통해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동 2권이냐 3권이냐, 직군별 차별적용이냐 동일적용이냐, 기존법의 확대적용이냐 특별법이냐 등 운동주체의 이해관계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노동기본권의 보장은 흥정이나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느 수준의 기본권’이라는 표현은 형용모순이다. 특수고용 입법은 사법적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 ‘어느 수준’을 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단순하게 접근할 일이지 뭔가 있는 듯이 복잡하게 접근할 일이 아니다.

또 하나는 특수고용 노조 내부에서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이다. 작년 말 특수고용 노조 가운데 대중적 파업이 가능한 업종인 화물, 덤프, 레미콘의 연대파업이 기대한 만큼 진행되지 못했다. 몇 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호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투쟁이 생존권 요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것은 상당부분 현장의 정서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의 시각을 단위 사업장, 단위 업종을 벗어나서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단일 요구안으로 모아내야 한다. 이를 통해 가장 강력한 압박 수단인 대중 연대파업의 가능성을 계속적으로 높여나가는 사업이 올 한해 주요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특수고용 노조별로 볼 때 내부 사정이 간단치만은 않다. 5, 6년 동안 투쟁해온 학습지, 레미콘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라 신생조직이라 할 수 있는 덤프연대도 업종별 특성에서 비롯된 내부의 복잡한 사안들을 해결한 후에 노동자성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성 투쟁을 통해 내부문제를 정리해 나가고자 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