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양심을 찾아가는 사람들

노동사회

스스로 양심을 찾아가는 사람들

편집국 0 2,829 2013.05.19 02:36

2005년 10월 초, 부천에서도 민주노동당의 열풍을 다시 기대하며 10 · 26 재보궐선거를 한참 진행하고 있을 무렵의 일이다. 인터넷에서 부천에 관한 기사만 나오면 모니터링을 하는 필자의 눈에 부천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선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실망을 하긴 했지만, 부천에 위치한 가톨릭대학의 한 학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톨릭대학교 휴학생 고동주(26)씨가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군대문제와 교육문제는 함부로 이야기하면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군대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나는 바라는 게 있다. 도저히 총을 쏴서 사람 죽이는 법을 배울 수는 없으니 차라리 다른 일을 시켜달라고 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문제가 화제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나도 갔다 온 군대니까, 부모 잘 만나 빠지는 놈 없게 모두 다 갔다 와야 한다는 과녁을 잘못 찾은 형평성 논리나,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만 하면서 경험자들끼리 ‘군대스리그’의 추억만을 되새기는 안주거리에서 벗어나, 병역의 현주소와 문제를 냉정히 바라보고 대안을 궁리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대충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휘젓고 다니는 순간 어느 덧,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과 후원인들의 모임인 ‘전쟁없는 세상’의 문 앞에 도착해 버렸고, 책임활동가인 오영은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부르주아운동?

‘전쟁없는 세상’은 평화의 신념을 알리기 위하여 수감되었거나 재판 또는 수사 진행 중인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은 물론, 다양한 행사·집회·캠페인 참여, 소식지 발행, 해외자료 번역, 민가협 목요집회 참여, 매달 평화인권 열린대화마당 개최, 다큐멘터리 상영회와 간담회 등등 많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2004년 대법원과 헌재판결 이후 병역거부활동가의 다수가 수감되고, 활동이 부진한 시기도 있었지만 현재는 책임활동가 6명이 병역대체입법을 위한 활동과 평화운동 캠페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시절, 소수자운동과 인권에 관한 관심으로 시작하여, 평화운동의 길을 걷고 있는 오영은 씨가 ‘전쟁없는 세상’에서 일한 지는 2년이 지났다. 사실, 병역거부 운동을 보는 세상 눈초리가 곱지 않을 텐데 이 운동을 굳이 하는 그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군대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했고, 병역거부 논란이 사회문제화 되어 억압적인 군사문화에 대한 심층적 고민의 폭을 대중화시켜 내는 데에 일정정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미약하나마 차츰 운동의 진정성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는 말일 게다.
“다닐때 조심해라, 사무실로 찾아가겠다.”
“국가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위하는 자, 너희들은 매국노들이다.”
얼마 전, 황우석 교수 논란으로 인해 진실규명을 요구하던 네티즌들에게 쏟아졌던 누리꾼들의 댓글들과 비슷하지만, ‘전쟁없는 세상’의 자유게시판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누리꾼들의 댓글들이다. 책임활동가 오영은 씨가 지금까지도 겪고 있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군사독재를 거친 한국사회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린 군사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한다. 이 반응에 진보진영은 ‘열외’일까?

“그래도 그런 거 하면 안 된다. 그거 부르주아 운동 아니야?”

2003년 11월 이라크 추가파병 찬반논란이 거셀 무렵,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현역병 신분으로 병역을 거부한 강철민 씨에 대한 지지활동을 벌이던 중, 소위 운동하신다는 분이 하신 말씀이란다.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과 평화운동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진보진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조차도 군사문화의 잔재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소수자운동을 운동의 한 축으로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던 대목이다.

내 양심은 뭘까? 양심을 찾아가는 작은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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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가 종교적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서  “병역법 상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 상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면 헌법상  보호해야할 양심의 자유에 속한다”며 무죄를 선고하는 진보적 성향의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이때, 양심적 병역거부와 평화운동 활동을 하고 있는 책임활동가 오영은 씨는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그 동안 ‘내 양심은 뭘까’하고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어 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이 운동을 하고 부터는 사회가 강요해서 무의식적으로 체득한 가치관을 갖고 사는 삶이 아니라 내 양심을 찾아가는 삶에 대한 생각을 해요.”

오영은 씨에게 2005년은 어떤 해였을까? 오영은 씨는 “사무실을 충정로로 옮기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병역거부자들이 많이 수감되어서 빈자리가 많이 느껴졌지만, 그 공백을 채워야하는 새로운 모색을 할 수 있는 시기였다”고 평가한다. 특히 2005년 6월, 전쟁없는 세상, 평화네트워크, 평화인권연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등이 공동으로 개최한 2005 동북아시아평화국제회의를 통해 많은 아이디어와 더불어 반군사적 활동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6년 그의 소망은 무얼까?
“2006년 병술년에는 병역대체입법안이 통과되었으면 좋겠고, 양심적 병역거부, 반군사주의 운동, 평화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대중을 상대로 즐겁고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탐방을 마치며, 진보진영 활동가들에게 한마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양심적 병역거부, 평화운동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평화운동에 대한 고민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