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나는 노동운동 활동가들에게

노동사회

'겨울'을 나는 노동운동 활동가들에게

편집국 0 2,785 2013.05.19 02:35

모든 분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나 같은 해고자에게 겨울은 추위와 함께 유독 배고픔(?)을 느끼는 계절입니다. 추운겨울을 이겨내면 곧 따듯한 봄이 온다는 걸 삶이 가르쳐주기는 했지만 겨울 문턱부터 봄이 그리워지는 마음을 다잡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봄’이 상징하는 ‘희망’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이겠지요.

노동자의 희망은 노동자 자신과 노동조합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던가요? 그런데 왜 해고자들의 아픔은 나누고 나눠도 반이 되지 않을까요. 모두들 해고의 아픔을 나눠 갖고자 노력 하지만 해고자들의 아픔이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투쟁, 승리, 복직 같은 기쁨은 쉽게 나누고 함께 어울려 축복 할 수 있지만, 가정, 생활, 삶 같은 아픔은 쉽게 나누어지지 않는 게 현실인가 봅니다. 

혹시 해고자를 보고 머뭇거리는 이유가 그가 받을 지도 모를 상처 때문이라면, 해고자의 입장에서 동지들께 권유합니다. 주위에 해고자 동지가 있다면 사소한 것이라도 망설이지 말고 도움을 주십시오. 그토록 나누어 갖기 힘든 해고의 아픔도, 도움을 주고 받다보면 어느새 반이 되어 해고자들에게도 봄은 희망이라는 단어로 찾아 올 것입니다.

새해가 밝습니다. 이제는 정든 직장에서 쫓겨난 지도 1년이 넘어 가고, 다시 돌아가 일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투쟁한 지도 1년이 넘었다는 얘기네요. 어떤 동지들은 1년이 뭐 기냐고 핀잔을 줄 지 모르겠습니다만, 나에게 지난 1년은 정말 긴 날들이었습니다. 그나마 1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복직하는 날까지 열심히 투쟁하자던 동지들이 있었기에 길게만 느껴졌던 1년도 열심히 투쟁하며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동지들을 믿고 앞으로 남은 기간도 열심히 투쟁해서 반드시 복직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노동운동에 뜻을 둔 동지들에게 딱 한 가지만 당부 드립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하고, 활동해달라는 겁니다. 노동자의 희망은 노동자 자신이요, 그 자신들이 모여 만든 노동조합입니다. 왜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해왔습니까? 지금도 최저임금을 받고 휴식도 없는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보십시오.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나 ‘하나’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할 때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해결 되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노동자도, 노동조합도, 우리 모두라는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봄과 같은 희망의 메시지만 가득할 것입니다.

초심을 잃지 말길 당부하며

생각해 보면 2003년 ‘118일간의 파업’ 이후로 회사의 끊임없는 노동조합 활동 방해 공작, 그에 맞선 노동조합의 줄기찬 투쟁, 그 투쟁 속에서 지쳐가는 조합원들…. 자본의 강한 압박에 속절없이 물러서야만 했던 내 자신이 그렇게 나약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열심히 싸웠지만 명예퇴직, 희망퇴직, 기구개편 등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인한 조합원들의 불안정한 마음을 노동조합이 잡아 주지 못하고, 우리 모두라는 정신이 무너졌을 때,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노동조합도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조합원들의 강력한 힘이 아닌 간부들만의 투쟁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그 진리를 저는 활동가들의 초심이 무너져서 지켜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아픔만큼 성숙해 진다고 하던가요? 내가 속한 노동조합도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일어서리라 믿습니다. 저 역시도 그 성장과정에 밑거름이 되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아픔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합니다.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고통을 겪는 이들은 우리 해고자들로 그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노동운동에 뜻을 두고 계신 많은 동지들은 꼭 초심을 잃지 마시길 당부드립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