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동지들, ‘어차피 법은 우리 편이 아니다’는 아닙니다!”

노동사회

“임원동지들, ‘어차피 법은 우리 편이 아니다’는 아닙니다!”

편집국 0 2,659 2013.05.19 02:34

‘전 노동자 편인데요…’

그래, “노조는 일단 조직력이고, 투쟁력이다!”라는 사실은 나도 인정한다. 그래도, 내가 명색이 법규담당인데, 내 앞에서 조합원들을 향해 “어차피 법은 노동자편이 아니다!”라면서 열변을 토하시는 임원들을 뵈면 드러내지는 못해도 참 난감하다. 사실 법규업무라는 게 그리 튀는 것은 아니지만 조합원교육이나 교섭지원과 같은 일상적인 노동조합 활동에 이래저래 상당한 도움이 된다. 또 결과가 좋으면 가끔씩 결정적인 한방을 날려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언제나 법규업무는 노동조합의 가장 후미에 위치해야 하는 현실이라니….
솔직히 법규담당자인 나도 법이 얼마나 권력과 자본 편향적인지 절감한다. 그래서 조합원들을 향한 임원동지들의 “어차피 법은 노동자의 편은 아니다!”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속으로 되뇐다. ‘가끔은 노동자 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 노동자 편인데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

“법률부장, 나 ○○지부 ○○○인데. 우리 조합원 하나가 일전에 연차를 쓰고 쉬었거든, 그런데 회사 놈들이 결근을 처리를 했어. 아무래도 법률적으로 대응을 해야 될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결근처리를 한 회사측에 대한 분노보다는 전화한 간부에 대한 분노가 먼저 치밀어 오른다. 게다가 전화를 한 간부가 얼마 전까지 “조직력과 투쟁을 통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모두들 법률로만 문제를 풀어갈려는 ‘법률만능주의’가 팽배해져 있으니 큰일이여~”라고 말한 경우라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입속에서 맴도는 그 한마디

유일교섭단체 조항 삽입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대해 사용자측이 교섭 개시 이후 계속해서 거부하면서 이게 중요 쟁점사항이 되고 말았다. 유일교섭단체 조항이 조합활동과 노사관계에서 실질적으로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유일교섭단체 조항은 법적으로 의미가 없어요. 협약에 명시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라는 말이 계속해서 입속에서 맴돌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법규담당자들이 통상 경험하였을 법한 에피소드들을 몇 개 나열해 봤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 노동조합운동의 법에 대한 편견과 그 속에서 활동하는 법규담당자의 혼란에 관한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긴 하지만, 많은 활동가들이 현행법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동시에 ‘투쟁’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법을 필요로 한다. 이른바 ‘법률만능주의’와 ‘현장투쟁중심주의’ 사이의 동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을 가장 직접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게 노동조합 법률담당자들이다.     

‘법률만능주의’와 ‘현장투쟁중심주의’ 사이에서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노동조합활동은 그야말로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이었다. 때문에 비합법적인 완강한 투쟁이야말로 권력과 자본에 맞선 ‘노조 본연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암묵적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필연적으로 법제도의 테두리 속에서만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법규업무를 성에 차지 않아 하는 활동가들이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법은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노조 법규활동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태도는 해롭다. 이러한 태도는 권력과 자본의 공세를 막아내고 조합원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해야 할 노동조합이 새롭고 다양한 방식을 추구하는 것을 막고 퇴행적으로 행동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법규업무를 조직·쟁의 활동과 대립시키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다. ‘법률중심주의’니 ‘현장투쟁중심주의’니 하며 어느 한쪽 손만을 들어주고 비판하는 것은 거울에 대고 손가락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의’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그동안 우리 노동조합에서 법규업무와 조직·쟁의 활동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질곡으로 작용해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일 터이다. 때문에 현재 노동조합 법규담당자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도 법규업무가 조직, 교육, 교섭, 쟁의, 산업안전보건 등 노동조합의 다른 업무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즉 법규업무가 사전에 계획되어 능동적으로 진행되는 사업보다는 ‘법률상담과 사건수행’이라는 사후적이고 수동적인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법규업무담당자들에게 지워지는 과다한 업무량 또는 법규담당자 개인의 왜소한 역량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은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노조 활동가들의 법에 대한 인식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구체적인 것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노동조합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과 맞닿아 있는 것이고,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그러한 해법의 첫걸음이라도 놓여지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