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노사관계 주요 쟁점과 전망

노동사회

2006년 노사관계 주요 쟁점과 전망

편집국 0 3,092 2013.05.19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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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06년 2월8일 (수)
곳: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발표: 배규식(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토론: 김태현(민주노총 정책실장)
      이용범(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
사회: 이원보(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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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금부터 노동사회연구소 제43차 노동포럼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2월인데 시간상으로 2006년도 노사관계를 전망해 보는 자리가 좀 늦었습니다. 이런 자리가 보다 빨리 마련되어 각 단체나 조직들이 사업계획을 세우고 활동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드렸어야 했는데 많이 늦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지금의 노동운동계가 서로 헝클어지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떤 계기로든 빨리 정리를 해서 가닥을 잡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보고 늦었지만 포럼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발제를 맡아주신 노동연구원의 배규식 박사님을 소개합니다. 토론에는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과 한국노총 이용범 기획조정본부장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2006년 노사관계 환경과 노사단체의 태도

배규식 올해는 전반적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경제도 작년에 비해 성장률이 약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제조업의 경우 환율이 변수가 될 수 있는데 환율변동으로 원화가 절상되면서 수출제조업을 중심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또 5월 말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따른 정치의 선거국면화로 정치적 불안정성은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예정된 법제도 개선이 정치쟁점화해, 정책추진력이 약화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108_forum_03.jpg'2007년 노사관계시스템'의 태동이라는 전화기적 상황에 대해서, 사용자는 물론이고 노동계도 인식과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계 지배구조와 의사사통구조의 문제점이 드러날대로 드러났는데도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낮고 내부혁신이 진행되질 않고 있습니다.

올해 영향을 미칠 법제도적 변화로는 우선, 1월28일 발효된 공무원노조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2월 중에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 관련법의 통과가 시도가 될 겁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처리가 대단히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만약 비정규직 관련법이 2월에 통과가 안 되면 6월에도 국회통과는 어려울 것 같고, 상당히 늦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신 유예됐던 복수노조와 전임자 관련된 법이 내년부터 시행을 앞두고 시급한 사안으로 부상할 겁니다. 올해는 비정규직 문제와 복수노조․전임자 문제가 맞물려 이의 처리를 둘러싸고 노사정 사이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자칫하다간 이 세 가지 사안 중 어느 하나도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외에도 정부는 지금 대체근로 허용, 직권중재 폐지, 부당해고 금전보상제도, 정리해고 협의기간 단축 등의 핵심내용을 담은 노사관계 로드맵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엔 비정규직법과 복수노조, 전임자 이 세 가지 문제만 풀 수 있어도 굉장히 많은 일을 하는 게 될 겁니다. 

다음으로 사회적 대화와 관련된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대책 연석회의’를 출범시켜 새롭게 사회적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노동계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다루기보다는 포괄적인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려고 하는 것이죠. 노사정위원회와 대체관계에 있다기보다는 보완관계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새롭게 시도가 되더라도, 각 주체에게 유·불리한 요인이 병존하는 가운데 정치적 요인이 결합되면서, 올해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는 풀어가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렇지만 노동부 장관의 교체 등 사회적 대화에 긍정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쟁점에 대한 노사단체 태도

이제 노사 각 주체들의 입장을 중심으로 몇 가지 이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사용자측 입장입니다. 산업별 노조와 산업별 교섭에 대해서 사용자측은 기존에는 가능하면 산별 쪽은 다가가기도 싫고 얘기하기도 싫다는 입장이었는데, 앞으로는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에는 산별교섭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기존의 입장과 기왕 산별교섭을 해야 한다면 사용자 단체를 직접 구성해서 교섭에 임하겠다는 두 가지 대응이 분리해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후자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노무관리 및 교섭전문가의 양성을 통해 사용자측의 입장을 관철 시키려는 노력이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복수노조의 전면 허용에 따라 사용자들은 기업 단위에서도 ‘노무관리의 선진화’에 주력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를 테면 기존의 노조가 민주노총 소속이었던 사업장에서 사용자들이 알게 모르게 지원하는 노조들이 설립되는 경우가 나타날 것이고, 한국노총 소속이었거나 아니면 아예 노조가 없었던 경우에는 새로 좀 더 강성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될 것이라는 겁니다.  

한편 현재 사용자들은 공식적으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2007년에 그대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상당히 기회주의적이어서, 실제로는 ‘온건노조’에 대한 지원 등의 명목으로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비공식적으로 지급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들이 관철시키려는 법 자체가 사용자들의 담합을 통해 무력화되겠죠. 

다음으로 노동계 입장입니다. 최근 노동계는 내부비리와 갈등이 표출되고, 노동자 내부연대의 실패, 전투적 실리주의 고수 등의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과 일반 노동자들로부터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잃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노동계 내부에서 이런 위기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1987년 이후 자신들이 쌓아온 대사회적, 대국민적 영향력이 현재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상태인지에 대해서 문제의식조차도 희박하다는 점이 노동계가 ‘위기’라고 판단할만한 근거가 될 것 같습니다. 

현재 노동계는 내부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갈등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양 노총 간의 공조체제 균열과 계파 간, 상층부와 현장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 등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크게 보면 현재의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 기업별 노사관계시스템에 매몰되어 비정규직 등 새롭게 형성되는 주체들의 이해를 총괄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노조들은 대개 기업별노조 시스템에 매몰되어 현실 안주적이고 실리적인 양상을 보이고, 기존 시스템의 바깥에 있는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중소규모 사업장 노조들은 지역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요구를 실현하고자 하며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전투적인 면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의 법·제도적 변화와 관련하여 노동계는 현재 산별노조, 업종별노조, 일반노조로의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노조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 노조들, 중소기업노조들이 산별노조로의 전환 등 조직개편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죠. 산별교섭은 기존의 금속, 병원, 금융산업은 물론 올해에는 화학산업 및 소업종별로도 계속 시도는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은 아직 산업별교섭에 대한 이해가 낮고 고민도 ‘이행전략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입장은 한국노총은 적극적이지만, 민주노총은 새로 뽑히는 지도부가 ‘한시적 지도부’라는 한계와 내부의 심각한 이견으로 아예 입장이 없거나 소극적인 측면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2006년 노사관계 전망

2006년 노사관계를 큰 틀에서 조망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가 2007년부터 시행되는 데 따른 새로운 ‘노사관계 시스템’ 정립을 준비하는 시기라는 겁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 시스템은 10년을 주기로 변화를 맞았는데, 1987년의 폭발적인 노조건설은 굴종적이고 어용적인 시스템 아래 있었던 노동조합들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조직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1997년은 IMF 경제위기와 정리해고 합법화를 통해 분배구조 우선으로 진행되던 교섭 틀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계기였죠. 이제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축으로 형성될 ‘2007년 시스템’은, 이전의 전환기보다 더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 아직 노동계에서 아무런 논의도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복수노조 허용

우선 전임자 임금지급과 관련한 상황을 보겠습니다. 노동계는 노조전임자 급여지급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24조 제2항(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및 제81조 제4호(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간주)를 폐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반면 경영계는 현행 노조법 관련 조항을 존치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노사관계 로드맵에서는 최소범위 내에서 급여지원을 허용하는 기준설정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방안은 △노조 전임자 제도의 남용으로 인한 기업효율성 훼손을 방지하고,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지배와 개입 및 경비 원조를 금지해 노조의 자주성을 보장해야한다는 입장과 △노조의 경우 전임자수의 증대와 급여지급을 노사 간의 단체교섭을 통해 확보한 전리품으로 인식해온 관례를 인정하고 급여지급 금지에 따른 노동조합의 재정적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두 가지 입장을 절충한 것입니다. 

특히 중소규모 사업장이 많은 한국노총의 경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사용자측도 매우 완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죠. 민주노총 역시 산별노조 및 산별교섭에 대한 법·제도적 지원과 단체교섭 효력확대 등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이렇게 서로 완강하게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노사가 어떻게 수용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의 폭이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다만 사용자측이 복수노조 허용에 따라 상대적으로 온건한 노조나 (산별노조와 대립하며 건설된) 기업별노조에게 전임자임금을 지급하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또는 기존 노조와 전임자 인정을 허용하는 비공식적인 합의를 하거나 기존 노조의 교섭력에 밀려 부분 전임자를 다수 두는 방식으로 노조전임자를 허용하는 경우에는 법 자체가 사문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된 상황입니다.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하여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창구단일화 방식과 관련한 것이죠. 창구단일화 방식은 △과반수 교섭 혹은 배타적 과반수 대표제, △비례 대표제, △자율교섭제 등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는 좀 다른 측면에서 하나의 기업 혹은 사업장을 기본단위로 간주하자는 의견과 조직대상이 중복되는 경우에만 교섭창구를 단일화하자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섭창구라는 입구보다는 교섭결과 즉 단체협약 적용이라는 출구에 초점을 맞추어 교섭단위별로 한 개의 협약을 적용하는 방안이 주장되기도 합니다. 또 단일화 자체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하며 법적으로 규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 쪽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현재 노동부가 갖고 있는 안은 원칙적으로 기업이나 사업장 단위로 하나의 교섭단위를 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만일 노동부의 안대로 창구단일화의 기본단위를 사업장으로 하는 상황에서 생산직, 영업직, 사무직 등 서로 다른 직종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갖는 각각의 복수노조들에게 창구단일화를 강제할 경우, 노·노 갈등이 발생하고 노·사관계 안정화를 해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취약한 노동자들이 사업장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일 경우 이들의 이해가 대변되기 어렵죠. 게다가 산별교섭이 사실상 어려워져 비정규직 문제 등을 산별교섭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동계의 시도와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부는 이러한 복잡한 부분들에 대한 조정을 노동위원회에게 맡기겠다고 하는데, 그럴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의 업무가 폭주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해서 사용자들은 교섭비용의 최소화, 노사관계 합리화의 관점에서 보고 있고, 노동조합들의 경우 노동3권 보장, 근로소득 보존, 부당노동행위 가능성의 차단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별노조와 산별교섭 

사용자들은 산별노조 전환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고, 개입할 여지를 찾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올해에는 산별노조 인정문제를 두고 노사갈등이 커질 우려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두산중공업 같은 경우가 상징적인 사례인데, 두산 사측은 노동조합은 인정하지만 업종별이나 산별교섭은 거부하고 여전히 기업별교섭만을 고집하고 있죠. 올해 만약 산별전환이 대규모로 이뤄지더라도 대다수 대기업들은 두산중공업과 같은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산별노조에 대한 태도는 매우 이중적입니다. 즉 기업별 노조의 전임자들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를 주장하면서, 또한 산별노조 전환이라는 노조의 외부화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죠. 즉 노조를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기업 내부에 두고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만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사용자들은 전임자 임금지급을 인정하여 노조의 영향력을 기업내부로 잡아두는 방식과 산별전환 등의 외부화를 수용하는 것 중에서 결국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노동계가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속도나 범위를 판단하는 데는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노조들의 산별전환 결의가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산별구획에 따른 조직분쟁이나 내부이견이 새롭게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이미 작년 서울대병원지부노조를 둘러싼 산별노조의 논쟁에서도 드러난 것이죠.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특히 지역일반노조 같은 곳에서 큰 혼란이 발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혼란은 노동계의 단결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정리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지만 복수노조가 시행되기 이전에 노동계 내부에서 미리 정형화된 규범을 만들어서 추후에 발생하는 분쟁사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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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밖 노사관계와 사회적 대화

2006년에는 기존의 제도적 틀 외부에서 강한 충돌이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용직,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노동자들의 산별노조 조직화가 이뤄지고 처우개선, 제도개선 요구가 거세지면서, 기존 시스템의 밖에서 ‘전투적 노사분규’의 중심이 형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무원노조도 기존 시스템의 밖에 있는 노조죠. 현재 6급 공무원 가운데 ‘총괄하고 지휘․감독하는 업무’에 있는 사람은 약 3만8천명입니다. 정부 법안에 따르면 가입이 제한되는 사람들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공무원노조가 법외노조로 남을 경우 2006년 노정 갈등은 매우 격화될 것입니다.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올해 상황을 보면,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는 전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정부도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라는 보다 확장된 틀을 고민하고 있죠.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앙의 대화가 막힌 가운데서도 지역이나 업종 수준에서의 노사정대화는 올해 더 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가속화되는 FTA 협상도 노사관계에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최근 한미 FTA협상이 속도를 내면서 노동계에서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계의 관심사는 자유무역에 따른 일자리와 노동조건 변화 등일 텐데, 노동계가 FTA 협약의 ‘노동헌장(Labor Chapter)’에 주목하고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노동계는 한․칠레, 한․싱가포르 FTA 협상 등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동계의 전문가들이 좀 관심을 가지고 준비를 하고,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야 할 것입니다.

‘2007년 노사관계시스템’과 노동계의 대응

아무래도 오늘 포럼에 참여한 사람들의 관심사는 주로 이쪽일 것 같은데, 이제 앞에서 말씀드린 쟁점들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을 중심으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노동조합 내부혁신과 정비문제가 중요하다고 판단합니다. ‘2007년 노사관계시스템’의 태동이라는 전환기적 상황에 대해서, 사용자는 물론이고 노동계도 인식과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계 지배구조와 의사소통구조의 문제점이 드러날 대로 드러났는데도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낮고 내부혁신이 진행되질 않고 있습니다.

2005년 드러난 노조간부 비리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는 노동운동의 민주적 의사결정과정 파괴와 계파갈등이 노골화되는 상징적 계기였습니다. 그러한 의사결정과 실행의 괴리 속에서 총연맹의 잦은 총파업 결정에도 소수의 조직만이 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 왔고, 민주노총의 총파업 결정은 희화화되고 조직내부의 냉소주의와 불신감이 확대됐습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의 뿌리는 역사적입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운동이 주요 사회세력으로 등장했는데, 그 때 기본적인 구조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기존 한국노총의 지배구조를 직선제도와 소위원제도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답습했던 거죠. 물론 ‘노조민주화’라는 경험은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습니다만, 사실 노동조합을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효율성과 민주성을 조화시키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지나치게 위원장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현장에서의 논의 없이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소수에 의해 투쟁결과에 대한 고려도 없이 투쟁방침이 결정되고, 선거가 점점 더 고비용화 되고 있습니다. 개혁되어야 합니다. 더불어서, 뿌리 깊은 기업별노조 중심주의와 그로 인한 행정기능의 원시성, 전문적인 노하우 축적의 부재 등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노동조합의 의사결정구조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두를 위한 결정’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노동계급 내부에는 이해를 달리하는 내부 분할이나 계파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이 요구수준을 결정할 때 반영되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물론 내부구성원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뤄지면 좋지만,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상태는 누군가 손해를 보는 결정이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모두가 손해를 보지 않는 결정을 하려면 요구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현실적 요구’ 관철을 위해서 결국 ‘타협 없는 전투적 투쟁’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많은데, 투쟁력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대개의 경우 객관적인 조건에 막혀 큰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요구수준이 높다고 관철결과가 좋아지는 건 아니죠.

정말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연쇄고리가 노동계 내부에서 투쟁에 대한 피로감을 누적시키고, ‘성과 없는 투쟁’에 대한 참여 주저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노동조합이 성장하는 초기에는 이러한 방식이 내부적인 의지를 축적시킬 수도 있지만 이런 현상이 장기화되면 패배주의가 만연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과거 민주노총 총파업의 대부분이 이러한 과정에 있었다고 봅니다. 누구나 총파업이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총파업을 결정하고, 그 총파업이 성사되지 않아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결과 민주노총 총파업이 ‘종이호랑이’라고 희화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의사결정시스템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조직화사업과 정책활동을 강화해야 합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이지만, 노동조합의 대표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방식은 조직화사업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급박하게 변하고 있는 외부환경, 정부정책, 노동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여 노동운동이 전략과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활동의 비중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을 보면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활동가들과 기조도 모조리 바뀝니다. 양 노총의 정책활동 수준이 미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정책활동은 일관성과 축적이 중요합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독일의 금속노조나 스웨덴 노총 등의 정책활동을 보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전문적입니다. 대기업들이 부설연구소를 두는 것처럼, 양 노총도 정책활동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서 예산과 인력을 과감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이제 노조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와 관련된 노동조합의 대응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이 그대로 관철된다면, 기업별노조체제를 뒷받침했던 전임자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특히 일부 중소기업에서는 노조가 해산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대기업노조들의 산별전환이 촉진되는 등 노조가 기업별 테두리를 넘어 외부화되는 경향도 동시에 나타나게 될 테고요. 저는 그러한 혼란에 대해 노조가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노동계는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공식 입장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조만간에 전임자임금 금지 법안을 개정하는 투쟁을 벌이거나 비공식적 노사합의를 통해 현재의 전임자임금을 유지하는 방안과, 산별전환 등 노조의 기업외부화에 집중하여 이 공세를 타고 넘는 방안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리라 봅니다. 이러한 전략적 선택을 위해, 양 노총이 함께 대책팀을 만들어서 구체적인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고 세부적인 대응지침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복수노조가 허용됐을 때 단지 사용자가 개입하는 문제를 넘어, 노조 조직의 경계, 조직대상 등을 둘러싸고 양 노총 간, 산업별 노조 간, 산별노조와 지역노조 혹은 기업별노조 사이에서 복잡한 조직경쟁, 조합원 경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다소나마 예방하기 위해서는 역시 미리 대책팀을 구성하여 양 노총 사이에서 일정하게 협정을 맺고, 또 각 총연맹이 산하의 산별연맹 등과 조직원칙을 정립하는 과정을 가져야 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상급조직이 이렇게 원칙을 정립한다고 해도 기업별노조의 편의에 익숙해져 있는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사실 기업별노조가 일반 조합원들의 불만이나 민원을 해결하기에는 훨씬 편합니다. 산별노조는 일반 조합원이 보기에는 불편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구조일 수 있죠. 때문에 원칙을 분명히 한다고 해도 전환의 과정에서 혼란을 겪으며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영국의 경험을 토대로 ‘노조 현대화기금’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고 노조가 그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자기정립을 하지 못하면 사용자와 정부에게도 어려운 점이 발생하는 것이니, 그 전환과정에 필요한 기금의 일부를 정부와 사용자 측에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공무원 노사관계 틀 형성과 공무원노조의 대응 


마지막으로 공무원 노사관계 문제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부는 현재 법외노조로서 공무원노조를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조직인 전국공무원노조는 당분간 법외노조로 남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 여기저기서 설립신고를 하는 노조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노조들이 실제 교섭에 들어가서 실리를 챙기게 되면, 그 과정이 초기 공무원 노사관계를 지배할 틀거리가 될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관행이 만들어지면 3~4년 뒤에 공무원노조가 합법화하더라도 그 틀을 깨기가 상당히 어려워질 겁니다. 만약 지방자치단체 별로 교섭하는 관행이 굳어져서 그게 기업별노사관계시스템과 비슷한 구조를 형성한다면, 전국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더라도 형해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심각하게 고려한다면, 소위 ‘6급 문제’와 관련해서 투쟁을 통해 풀 것은 풀되 정부와 대화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정부법안이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는 ‘총괄지휘감독’ 업무를 엄격하게 해석해서 주무 직책을 제외한 6급 공무원들에게 조합원 자격을 주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현행법을 고치지 않아도 되고, 노동조합으로서도 다소간 양보는 어쩔 수 없지만, 합법화의 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굴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초기에 만들어지면 쉽게 바꿀 수 없는 게 제도입니다. 초기부터 어떻게든 다잡을 생각을 해야지, 그 부분을 방치하다가는 전국단위 산별노조 만든다고 거창하게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구더기 새끼들 기어 나오는 것 마냥 산하조직들이 모두 탈퇴해서 공무원노조가 껍데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피해를 안 받으려면 굉장히 지혜로워야 합니다. 

토론

사회 노사관계 쟁점 분석이라기보다는 노동운동에 대한 권고 성격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배규식 박사님의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이해합니다. 경청할 부분도 있고, 아이디어 차원에서도 검토할 것들이 많습니다. 이어서 이용범 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의 토론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용범 반갑습니다. 현장에서 일을 풀어나가다 보면 쟁점이 아닌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 법안, 노사관계 로드맵, 사회적 대화 모두 맞물려 있는 상황이 미묘하고 첨예합니다. 제가 정책담당자는 아닙니다만 한국노총에서 기획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 ‘아, 한국노총이 그런 생각 때문에 이렇게 행동했구나’ 하는 점을 여러분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두서없이 말을 꺼내볼까 합니다.  

독자적 행보 강화할 한국노총  

먼저 비정규입법안과 관련해서 한국노총은 조기에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저희도 원칙상 사유제한을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어쨌거나 한국노총만이라도 싸움을 책임지고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필요할 때는 민주노총과 연대하겠지만 그 연대 때문에 책임지고 마무리해야할 때 마무리 하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비정규문제에 대해서 싸움은 안하고 뒷거래로 마무리하겠다는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108_forum_04.jpg전임자 임금문제와 관련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한국노총 입장에서는 전임자 임금문제가 해결 안 되면 산별연맹과 총연맹에서 일하고 있는 파견간부들이 상당수 그만둬야 합니다. 완전 무력화되는 거죠.

전임자 임금과 복수노조 문제는 정말 간단치 않습니다. 발제자가 말씀하신 대로 이른바 ‘2007년 체제’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조직 간 경쟁이, 양 노총 상층부의 입장을 떠나, 첨예화 될 것입니다. 지금은 양 노총이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고 대기업노조들도 별로 상관을 하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를 테면 현대중공업이 중간노조를 만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올해 하반기부터는 논쟁과 조직 간 물밑 경쟁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심각하게 제기되리라 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회적 대화를 지지하고 전면화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작년의 경험에 미루어 현재 노사정 체제를 만들어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차라리 중앙단위 노사 간 대화를 더 활발히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발제자가 말씀하신 사회단체까지 참석하는 연석회의나 지역단위 업종단위 노사정 대화를 포함해서, 한국노총의 입장은 노정대화, 노사대화, 노사정대화를 중층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총체적인 대화구조를 추진하는 것, 그리고 함께 고민은 하겠지만 선택의 순간에서 민주노총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 현재 한국노총의 분명한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올해 사회적 대화는 잘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노총이 전임자 임금문제 갖고 대화를 하고 물밑으로 뭔가 받아내려고 할 텐데, 노정관계가 안 좋아서 지금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전임자 임금문제와 관련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한국노총 입장에서는 전임자 임금문제가 해결 안 되면 산별연맹과 총연맹에서 일하고 있는 파견간부들이 상당수 그만둬야 합니다. 완전 무력화되는 거죠. 정부가 어떤 식으로 타협안을 내놓는다고 해도 개별 노조든 상급단체든 이러한 부분을 소화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발제자는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와 관련해서 성공 가능성이 없는 법개정 투쟁을 하거나 산별전환을 통해 돌파하거나 양단의 결단만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이렇게 상대방이 내놓는 의제에 끌려 다니며 싸울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의제를 내놓고 주도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즉 전임자 임금을 법으로 규제하는 경우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면서, 오히려 우리가 주도적으로 산별노조를 법으로 규정하라고 정부에게 요구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밖으로는 산별노조를 법으로 강제하도록 요구하고, 내부에서는 산별전환 운동 전선을 단일화하는 전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사관계 로드맵이 국회에 상정되는 것을 노동계가 계속 막아왔는데, 계속 막을 수만은 없을 겁니다. 정부 입장은 3월 입법, 4월 논의, 6월 처리하겠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입법예고가 나오는 순간 최소한 앞의 3개월, 뒤의 3개월은 노정관계가 파탄으로 치달을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아무튼 한국노총은 이 문제에 관해서 일체 타협의 의지가 없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 문제, 교섭과 투쟁의 병행 문제 등을 어찌 처리할 건지는 고민거리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현재의 상황이 한국노총의 독자적인 행보를 강화하도록 추동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노총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만들어진 ‘1987년 체제’ 속에서 뭐랄까, 일종의 피해의식 비슷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노동시장이 양극화되고 대공장과 공공부문의 노조들이 보수화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노총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고민들이 사회적 대화, 연대활동, 민주노총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노총의 독자행보를 지난 시기보다는 훨씬 더 강화하지 않겠냐는 게 제 판단입니다. 

김태현 지금 민주노총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와 있는 상황인지라, 조직을 대표하는 입장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몇 가지 개인적인 생각들을 언급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발제에 대한 전체적인 평을 말씀드리자면, 많은 부분 정부의 입장이 확정된 상태에서 노동조합이 어떻게 적응해 갈 것이냐를 언급하고 있는데, 답답한 측면이 있습니다. 현재 노사관계가 중층적으로 시스템이 바뀌는 과정이고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지적에는 동의합니다.

힘 있는 산별전환과 산하 조직들의 이해관계 

비정규직문제는 현재 국회에서 다루고 있는 관련 입법문제가 설사 6월 이후에 일단락되더라도 이를 둘러싼 상황이 마무리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입법은 아직 시도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고, 국회를 통과한 법이 불법파견투쟁 등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를 둘러싸고 갈등이 생길 것입니다. 또 이번 법안의 차별시정절차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라 갈등과 투쟁은 엄청나게 증폭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이 지난 해 야심차게 내놓았던 비정규직 조직활동가 양성을 위한 50억 기금모금이 현재 10억원 가량 모인 가운데 중단되어 있습니다. 이걸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하고, 중앙과 연맹, 지역본부가 역할과 위상을 조정해서 제대로 된 조직화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 과제로 남겨져 있습니다. 어쨌든 작년 민주노총이 새로운 의미를 던졌지만 새로운 총의로 만들어내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108_forum_05.jpg지금 노동운동의 사회적 위상은 많이 추락했습니다만, 노동운동에는 아직 성실하고 진지한 많은 활동가들과 열정이 있습니다.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현재의 어려움을 뚫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노사관계 로드맵 관련해서는 모두들 잘 알고 계신 것처럼,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그야말로 자다 봉창 두들기는 식으로 악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생겼고, 한나라당의 똥고집 때문에 남아있는 악법 조항일 뿐입니다. 그런데 왜 새롭게 ‘선진화’한다는 과정에 이런 것들이 껴들 수 있는지, 국제적으로도 심각하게 지적받는 문제 있는 사안을 정부가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이 지속적으로 밀고 들어오면서 노동조합에게 이거 할래, 저거 할래 식의 선택을 강요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민주노총은 이러한 쟁점들을 산별노조 전환을 통해 돌파하려 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기업별노조시스템과 현재 법체계 속에서 이 문제를 풀어가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발제자는 산별노조 전환을 위해 기업별노조들의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것 이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산별 전환은 기업별노조 조합원들이 새롭게 노동조합을 선택하여 형성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정규직 중심의 노동시장 규율을 비정규직까지 포함하여 산별노조 단위로 재정립하자는 의미 또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자의 측면 때문에 산별협약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사용자와 정부의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을 테고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민주노총 산별전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속연맹에서는 상반기에 산별전환 투표에 들어갈 것을 결의했고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안이 확정되어 있습니다.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위기감과 목적의식을 갖고 추진하고 있으며, 산별전환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지난해 보건의료노조와 공공연맹의 갈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내부에서 조직적 이해관계와 관련된 논란이 아직 조절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를 정리하지 않고는 힘 있는 전환이 힘들기 때문에, 올해는 산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이와 관련된 여러 논쟁들을 풀어가겠다고 확정지은 상태입니다.    

민주노총은 1996~97년 총파업 이후 합법성을 쟁취했습니다. 재야의 노동운동이 일정하게 제도적 게임의 틀 즉 권력의 시스템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민주노총은 자신이 원하던 원치 않던 제도적 논의 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노사정위원회든 노정대화든 사회적 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틀이든 민주노총이 원하는 의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들어가서 우리 입장을 이야기하고, 하다가 수틀리면 뛰쳐나오고 투쟁하고, 이러면 되는 겁니다. 거기다가 복잡한 논리를 갖다 대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조직혁신에 관련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직혁신은 이번 보궐선거 지도부에게는 비정규 입법문제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합니다. 그러나 어떤 집행부가 들어서던 간에 정파 갈등은 더욱 깊어질 테고, 조직혁신과 관련한 대중적 합의도 여기에 발목 잡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좀 더 깊고 폭넓은 문제의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어쨌든 이 문제를 차근차근 정리하고 가야지만, 민주노총이 변화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제자가 말한 대로 지금 노동운동의 사회적 위상은 많이 추락했습니다만, 노동운동에는 아직 성실하고 진지한 많은 활동가들과 열정이 있습니다.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현재의 어려움을 뚫고 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원보: 이제 토론까지 들었습니다. 쟁점이 형성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는 것 같습니다. 발제자께서 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배규식 우선 이용범 본부장이 말씀하신 것 가운데 ‘정부가 퍼트린 논리에 휩쓸려서 안 된다’는 부분은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측면이 다분히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슈나 의제 자체의 성격이 그것이 논의되는 방식과 과정을 규정짓는 부분이 큰데, 노동계가 의제설정을 잘해서 갈등을 키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더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대립해야 할 이슈와 협력해야 할 이슈를 적절히 배분해야 하리라 봅니다. 또 지적하신 산별노조 법제화와 관련해서는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사례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현 실장께서 제가 정부와 사용자의 입장을 고정불변으로 놓고 이야기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셨는데, 지금 이곳이 주로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모인 자리이기 때문에 제가 강하게 이야기 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용자들 앞에서는 이런 얘기 안하죠. 아무튼 제 입장에서는 노동운동이 내부적으로 변화해서 외부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권위주의 시대에 형성된 자기 틀을 스스로 돌파해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는 것이죠. 이런 식의 문제제기를 통해서나마 좀 더 풍부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원보 전임자와 복수노조 등의 법제도 변화, 비정규직, 공무원노조, 노사관계 로드맵, 노동조합의 내부혁신 등 2006년 노사관계의 주요 쟁점과 관련하여 풍부한 이야기들이 오간 것 같습니다. 이제 발제, 토론은 다 마쳤고 객석의 질문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