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인권운동, 추상적 보편성 뚫고 민중생존권과 결합하라

노동사회

전환기 인권운동, 추상적 보편성 뚫고 민중생존권과 결합하라

편집국 0 2,753 2013.05.19 03:09

우리사회 인권운동은 3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1974년, 박정희 유신체제에서 엄혹한 정치적 탄압이 자행되던 그 시기에 기독교와 가톨릭의 인권위원회가 성립되어 정치범 석방을 중심으로 투쟁했던 것을 인권운동의 시작으로 삼는다. 그 뒤 한국의 인권운동은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일익을 담당하면서 국가의 폭력에 맞서는 치열한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러다가 1990년대 민주화 이행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이전의 종교진영 중심의 운동을 넘어서 다양한 인권활동가들이 전문적인 활동을 펼치는 단계로 성장했고, 양심수와 시민·정치적 권리(자유권) 중심의 운동에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사회권)의 확보를 위한 투쟁으로 영역을 넓혔다. 최근 소수자들의 차별문제가 주요하게 제기되기도 하지만, 현재의 인권운동은 여전히 국가 폭력과 사회권의 후퇴에 따른 민중생존권과 빈곤의 문제를 주요 영역으로 삼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런 역사를 지닌 우리사회의 인권운동이 도달한 지점은 어디이며, 현재 인권운동의 고민은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권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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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 없는 세상을 꿈꾸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어머니들의 목요집회가 지난달 600회를 넘어섰다. - 출처:코리아포커스>

인권운동 30여년 역사가 맞닥뜨리고 있는 지점 

국제사회에서 인권운동의 발전은 눈부신 것이었다. 인권운동 단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활약했고, 이들은 세계인권선언 제정 과정에서도 정부 대표들을 압박하여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보다 진보적인 방향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후 인권단체들은 유엔의 경제사회이사회의 협력단체로서 지위를 획득하면서 국제인권조약들의 생성과 발전 과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국제사회 인권운동의 발전에 비하면 한국 인권운동 역사는 짧다. 그렇지만 한국의 인권운동은 독재 권력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다른 운동진영과는 달리 국가와 자본에 포섭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운동의 독자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등장하면서 그간 인권운동의 성과를 잠식하고, 이에 대해 인권운동이 적절한 전략을 구사하지 못해 어려움을 맞고 있긴 하지만 인권운동의 이런 ‘독자성’은 운동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역할을 해왔다. 

아울러 인권운동은 ‘자생성’을 갖는다. 1990년대 이후 인권운동은 인권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단체를 형성하던 단계를 넘어서 다양한 전문적인 영역을 개척해 왔다. 이러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인권의식을 가진 활동가들이었다. 이들 인권활동가들은 소규모의 그룹으로 출발하여 온라인에서 집단을 형성하고 자체적인 단체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등장한 것으로는 성소수자들의 운동이 대표적이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 평화권 운동 등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자생성에 바탕하여 생성되는 운동은 이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구조나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기존의 조직이 소멸된다고 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조직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인권운동이 억압과 착취가 있는 곳에서는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런 자생적인 인권운동은 대개 소규모 그룹으로 형성되는 것인데다가, 자체적으로 운동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여야한다. 때문에 자칫 ‘자족적인 운동’으로 머물 수 있는 한계와 구조적인 취약성을 갖는다. 

어쨌든 우리사회 인권운동이 1990년대를 경과하면서 인권 감수성으로 무장한 인권활동가들을 배출해내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다. 이들 활동가들은 단체를 운영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경제적인 여건이 어려운 속에서도 헌신적인 활동을 통해 재정적인 어려움, 조직적인 취약성을 극복해왔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인권운동이 매우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운동의 전문성은 강화되었지만 반대급부로 운동이 인권활동가들의 기획과 실천에 너무 의존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직접 대중을 접촉하는 공간을 스스로 축소하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대중이 없는 인권운동은 그만큼 정치적인 영향력 면에서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인권운동의 성장이 오히려 각 운동단위를 파편화시키면서 ‘연대성의 위기’를 낳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할 부분이다. 사안의 상대적 독자성이 강조되다 보니 사회의 종합적인 변화를 목표로 하는 인권운동 내의 연대가 잘 이뤄지지 않고, 다른 운동진영과의 연대에 대한 요구나 목적의식도 흐려진 것이다. 또한 인권운동이 대응해야 할 사안에 비해서 활동가 층이 너무도 엷고, 인권운동단체들이 소규모 구멍가게 수준으로 재정운영을 하는 점도 인권운동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식 인권악화와 청산 안 된 과거사의 뒤엉킴 

신자유주의 지구화시대에는 국가는 약화되며,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강화되고, 시민사회는 분절화하며, 사적 영역은 개인정보의 통제·생체인식 기술의 발전 등으로 보호받지 못하게 되어, 전반적으로 인권상황이 후퇴한다는 지적들이 있다. 따라서 이런 지구화시대의 영향 속에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기능을 회복해야 하고, 시민사회의 공공성이 강화되어야 하며, 사적 영역의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의 마련이 요청된다는 게 국제적인 인권운동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지구화시대의 인권문제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초국적 자본의 공세에 의해서 노동권이 크게 도전받고, 민중의 생존권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국가는 자본과 시장의 자유를 위한 노동과 사회의 양보를 기본 정책방향으로 삼았다. 자본(또는 기업)의 권력화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인권보장 체계로부터 강제적인 배제의 결과인 빈곤층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사회는 개인의 정보인권에 대한 인식도 매우 낮다. 주민등록제도, 그리고 지문날인제도가 합헌이라고 인정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청과 감청, 생체인식정보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인터넷 실명제 등이 새로운 인권문제로서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차별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 비정규직노동자는 정규직노동자에 비해 임금을 절반만 받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은 결성하기조차 힘들다.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은 차별을 받는 대표적인 소수자로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화시대, 국가와 시민사회, 사적영역에서 모두 인권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세계적인 보편적 인권문제에 더불어, 한국적 특수성이 반영된 인권문제 중 최근 제기되는 것으로 ‘과거청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일제시대 때의 정치, 사회, 문화적 유산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특히 인적인 청산은 더욱 어려웠다. 거기에 군사독재 권력이 저질렀던 학살, 암살, 의문사, 정치적 의혹 등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물론 김영삼 정권 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재조명이, 김대중 정부에서는 의문사사건과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일부 이루어졌고, 노무현 정부에 와서는 좀 더 많은 정치적 의혹과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도 과거청산 작업은 그 첫 단계인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또 개별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정이 ‘책임자 처벌’이라는 원칙을 방기한 채 진행됨으로 인해서 과거청산의 왜곡현상까지 등장했다. 과거청산은 아직도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인 구조의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여러 영역의 인권문제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한국의 인권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허울뿐인 형식 뒤로 후퇴하는 민주주의
 
지구화시대의 인권문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 후퇴와 맞물려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것처럼, 자본과 시장의 자유를 위한 정책을 근간으로 국가가 운영되다보니 정치적 자유를 통한 민중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민간정부들은 나름대로 군사독재 정권시절의 반민주적인 권위주의 정치를 청산하는 과정을 밟아갔다. 특히나 김대중 정부 이후에는 ‘인권’을 화두로서 제기하여 이전의 정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모습들을 정치권력이 선도해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경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재벌과 맞서기보다는 이들의 헤게모니에 편승하고 이에 흡수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민주화시대의 청산대상으로 지목됐던 수구정치세력 역시 그 과정에서 서서히 자신들의 힘을 회복했다. 냉전 보수주의로 무장한 이들은 냉전 해체 이후의 정치상황에서도 이념적 대립구도를 고집하며, 국가보안법과 같은 반공주의의 낡은 질서가 온존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이전에는 정치권력의 시녀로 독재권력의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법권력이 민주화를 통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작동하게 되면서, 단순히 정치적 사건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행정부와 의회의 정책결정까지 좌지우지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법권력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강화를 위해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수구냉전적인 기득권세력들의 이해에 편승하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행정수도법에 대해서 위헌,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의회의 정책결정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법원은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수십억원의 배상금을 노동조합에 물리는 판결을 내려서 노동조합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결정이나 판결들은 결과적으로 민중들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오로지 자본의 권력을 강화하고 반공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데만 보탬이 된다. 선출되지도, 마땅한 통제시스템도 없는 사법권력이 국가의 주요정책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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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문제는 인권운동진영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냐 없느냐는 인권운동의 지속성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12월 같은 날 열린 보수진영의 '북한인권국제대회'와 진보진영의 '한반도 평화와 인권을 위한 대안적 접근 토론회' - 출처:오마이뉴스>

그런데 이런 과정은 내용적인 면에서 민중들을 배제하고 자본과 냉전 보수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므로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성장에 역행하는 것이지만, ‘권력의 분화’라는 점에서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시켜가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지금까지 명백하게 ‘인권침해자’로 인식됐던 국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외양을 인권옹호를 위한 행위를 하는 인권행위자로 탈바꿈시키려 하고 있다. 국가가 구조적인 폭력을 은폐하면서 인권의 담론을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권운동 지속성 가늠할 북한 인권문제 주도권 

한국사회의 인권상황은 이처럼 다양한 요소들이 뒤엉켜 있어서 단일한 의제에 집중할 수 없도록 하는 복잡성을 보인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의 인권상황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는 존재한다. 바로 ‘분단’이다. 현재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으며,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중·러·일이 서로 각축하면서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중에서 특히 미국의 패권주의가 군사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한국의 인권상황을 규정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 갖는 정치적 규정력 또한 막강하다.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은 미국의 세계 패권구도를 한반도에서 깬다는 것이 된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면 이는 동북아만이 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도 거대한 진보를 이루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의 보수화, 일본의 군국주의화, 중국의 패권주의, 러시아의 민주주의 후퇴 경향이 우리 사회의 보수화를 자극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눈여겨봐야 한다. 

그런데 최근 한국정부가 해외 주둔 미군의 ‘전략적 기동성 유연화 전략’에 합의해 준 사실이 폭로되었다. 이제 주한미군은 세계를 향한 선제공격 부대가 될 것이고, 지금 그 부대가 이전하려고 하는 평택은 전쟁을 자극하는 전략적 기동군들의 근거지가 될 것이다. 결국 한반도의 남쪽이 미국의 침략전쟁의 기지로 활용되고(특히 서해안 벨트), 이로써 한반도의 평화가 크게 위협받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은 단지 그곳 농민들이 생존권 투쟁으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성장하기 시작한 평화권운동의 맹아는 사실 아직 제대로 싹을 키우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한반도 내에서 평화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 성공적으로 전개된다면, 이는 다른 인권 위협요소들을 제거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권운동이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인권운동진영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후 인권운동의 지속성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북한체제가 갖는 불안정성을 감안하여, 미국과 국내외 반북단체들의 정치공세에 대한 방어를 넘어서 북한의 인권을 개선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북한의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보다는 이념적 대결구도를 만들어내 냉전 수구적 질서를 강화하려는 우익세력들의 정치적 술수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미국의 보수집단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면서 북한체제를 붕괴시키는 일에 인권을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매우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제기하는 그 집단들의 정치적인 의도를 폭로하는 일이 북한 인권사업의 선차적인 과제로 등장한다. 북한의 인권에 대한 보수진영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하면, 그간의 인권운동의 성과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반공주의적인 인권관으로 무장한 세력들이 이념대결로 몰아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보편성’을 넘어 민중생존권, 대중투쟁과 결합해야 

지금까지 한국사회 인권운동이 처한 상황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말해온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다른 영역의 진보적인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인권운동도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권운동이 보다 급진화될 필요가 있다. 이념의 급진화만이 아니라, 운동이 취하는 행동방식의 급진화도 요구된다. 

인권이념의 급진화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불평등, 빈곤 등 민중생존권의 위기를 구체적인 ‘체제적 대안’까지 고민하면서 제기하는, 그런 이론작업을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의 인권이념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자본주의 체제에서 탄생하여 발전한 서구의 자유주의에서 수입해 온 것이거나, 더 나간다고 해도 유엔의 ‘보편적’ 인권기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지만 인권의 ‘보편성’은 지금 지구적 자본에 의해서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고, 또 그 자본의 작동을 은폐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보편성보다는 ‘누구의 인권인가’를 문제로 삼아야 할 때다. 진보적 운동으로서 인권운동이라면 응당 보편성의 원리를 옹호하면서도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분명하게 인권침해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 민중의 편에 서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한편으론 자유주의 개혁을 추동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그램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라고 강변하고 폭력적 수단으로 민중생존권을 억압하는 국가권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국가는 이제 물리적인 폭력을 민중생존권의 억압에 집중하고 있다. 단지 경찰력을 동원해 강제진압에 나서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제 자본에는 관대한 검찰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등에게는 사소한 법률 위반으로도 기소하고, 법원은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하여 기정사실화한다. 또 언론은 유독 시위대의 폭력만을 부각하면서 그들의 절박한 생존권은 외면하고 있다. 이처럼 절차적 민주주의의 이면에서 이뤄지는 폭력에 맞서 인권운동은 적극적으로 민중들의 투쟁을 옹호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인권은 민중들의 저항담론이 되고, 저항의 무기로서 제대로 쓰이게 될 것이다. 인권의 역사는 민중들의 소수특권층에 대한 피어린 투쟁의 역사였다. 이를 현재의 인권운동도 계승해야 한다. 

이러한 이념의 급진화에는 또한 소수자 차별에 반대하고, 반 평화적인 질서에 저항하며, 시민사회를 분절하는 것들 맞서는 연대의식의 강화가 중요하게 포함되어야 한다. 인권운동은 그런 토대 위에서 대중적 기반을 만들어야 하고 스스로를 ‘대중운동’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그럴 때만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운동의 잠식 현상, 폭력을 본질로 하는 국가가 인권행위자인양 행세하는 현상 등으로 인한 혼란을 이겨내고 인권운동이 진보운동으로서 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타의 많은 과제들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인권운동이 민중들의 생존권적 투쟁과 긴밀히 결합해 나가는 것, 그리하여 운동의 전망을 공유하는 것이 절실하다. 인권운동의 현재 지형은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2007년의 전환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인권운동에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요구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