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다시 만난 아름다운 청년 ‘김산’

노동사회

20년 만에 다시 만난 아름다운 청년 ‘김산’

편집국 0 3,541 2013.05.19 03:00

중국 공산혁명의 생생한 현장을 목격하며 25명에 이르는 중국혁명가들의 자서전을 쓴 님 웨일스는 1937년 김산(1905~38, 본명 장지락)을 만난 후 22번의 인터뷰를 거쳐 1939년 초고를 탈고하고, 삼 년만인 1942년 『아리랑 (Song of Ariran)』을 출판하였다. 국내에선 1984년 동녘출판사에서 발간되었지만 군부정권 하에서 당당히 ‘금서’의 대열에 낀 책이다. 

song_01.jpg『아리랑』은 1920~30년대 격동하던 동아시아의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나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살고자 한 젊은 지식인의 성장사이며, 현실의 족쇄를 가장 정직하게 끊고자 했던 젊은 혁명가의 운동 기록이다. 이 책은 3·1운동, 중국혁명 및 항일투쟁 등 거대한 역사적 사건에 참가한 개인의 체험을 씨줄로 하고, 개인의 일상사 및 가족사, 역사적 당위에 대한 정당성과 수단에 대한 올바른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하던 개별적 질문들을 날실로 하여 쓰여졌다. 

아름다운 청년 ‘김산’

완전무결한 ‘순결’과 청렴결백을 고집해 로베스피에르(프랑스 혁명기의 정치가)라 불리기도 한 청년 김산. 스스로 자신의 온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으며 오직 자신에 대해서만 승리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 언제나 소송에 패한 사람들이나 억압받는 소수에게 마음이 끌리며 타인에게 고통을 주기보다는 자신이 그런 운명에 떨어지는 쪽이 더 견디기 쉽다던 사람. 슬픈 것을 좋아하며,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해 습작하던 사람. 기독교와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적 훈련의 영향을 받았지만 억압받는 사람을 위하여 그들(지배계급)의 무기를 가지고 싸웠던 사람. 

추위로 손이 얼어붙는 것조차 모른 채, 그때까지 어깨에 지고 있던 인류의 짐이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첫사랑 여자의 허리에 손을 감으며 이처럼 젊고 행복했던 때가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고 사랑의 감격에 떨던 사람. 살인과 자살의 유혹, 절망을 뛰어 넘고 다시 자신의 신념을 위해 굳건히 싸웠던 사람. 일본어와 중국어와 한국어와 영어로 책을 보며 의학과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하였으며 중화소비에트에 파견된 조선대표로 군정대학에서 경제와 물리, 화학을 가르치던 지식인. 동시에 최연소로 군관학교를 졸업하며 단련된 의지와 강철같은 결의뿐 아니라 감성과 지성을 갖춘 사람. 지, 정, 의가 합의 일치된 사람. 『아리랑』은 바로 우리가 꿈꾸며 닮고자 하는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다. 

왜 다시 아리랑인가?

지난해 김산(1905~38, 본명 장지락)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 분단된 조국 한반도의 남쪽 정권에서는 광복 60주년 8·15 기념식에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였다. 이에 앞서 1983년에 중국에서도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잘못된 처형이라며 복권조치하였고, 1992년 북한에서도 복권조치 된 바 있다. 

20여 년이 지난 이 책을 오늘 두 번째로 읽었다.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그대로인가? 금서의 주인공이었던 인물이 당당히 대한민국 국영방송에(2005년 7월30일 김산의 삶을 조명한 <KBS 스페셜> 참조) 소개가 되고,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인구에 회자될 수도 없던 금기를 깨고 정부로부터 독립운동의 공로가 인정되어 서훈까지 받았다.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헤겔이 말한 “역사의 발전이란 곧 자유의 확대 과정임”을, 즉 보다 많은 사람이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민주적 자유를 누리는 것을 의미함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긴 눈으로 보면, 인간의 역사는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더 자유스러워지고 고루 풍부해지고 더 평등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또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인간사의 양상이 올바르게 더 빨리 확대되게 하려면, 그 길이 역사의 옳은 길임을 알고 개인사나 민족사나 인류사 전체를 그쪽으로 가져가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이 쌓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 수많은 김산과 같은 젊은이들이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자신을 헌신함으로써 역사는 조금이나마 제 방향으로 느리지만 중단 없는 길을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승리와 정의를 꿈꾸며 역사의 진보를 믿는 우리 모두의 싸움에서 우리는 결코 한 차례의 승리도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투쟁의 깃발을 거두지 않으며, 우리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을 때 생명을 억압하지 않는 자유로의 무한한 항해를 쉼 없이 해 나갈 수 있으리. 우리의 패배는 결코 헛되지 않으리.(김산, 님 웨일즈 짓고, 송영인 옮기고, 동녘 냄. 1만5천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