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노동사회

노사관계 로드맵,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편집국 0 2,798 2013.05.19 02:56

 

* 이 글은 KBS 노동조합 신문에 실릴 글입니다.

 

2003년 9월 정부(노동부)가 마련해 노사정위원회에서 중간보고한 [노사관계 법·제도선진화 방안], 소위 노사관계 로드맵은 내년부터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법령이 정한 범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현행 노동조합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의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을 개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1997년 3월에 제정된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 전임자가 그 전임 기간 동안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 받아서는 아니 되고, 또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는 것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부칙에서 이 관련 조항들의 적용을 2001년까지 유예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법조항은 경영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서 노동조합운동은 이를 노동조합의 기초를 흔드는 것으로 간주하여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관련 조항의 삭제를 요구하였다. 결국 노사정은 노사정위원회에서 관련 조항을 다루었는데, 논의 결과 관련 조항의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잠정적으로 합의되었다. 이에 따라 부칙을 재개정하여 2006년까지 관련 조항의 적용이 유예되어 있는 상태이다.

 

노사관계 로드맵에서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문제를 다룬 것은 금년으로 그 유예기간이 끝나고 내년부터는 법규가 적용됨에 따라 이 문제를 매듭짓고 가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다음의 두 측면에서 접근될 수 있다. 첫째, 노동조합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문제는 사실상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며 법률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현행 노동조합법이 제정된 직후인 1998년 3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서, 노동조합의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입법 대상이 되는 사안이 아니며, 따라서 관련 규정이 폐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대체로 산별노조 형태를 취하고 있는 외국의 경우에도 기업 내 노동자 대표에 대해서는 임금 지급 금지를 법률로 정하고 있지 않으며, 노사 자율적인 협약 또는 협의를 통해서 유급으로 노동시간 면제권이나 전임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노동조합 전임자의 임금지급 문제를 법률로 강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에서 로드맵에 대응하는 것은 소극적인 방식이다.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노사 자치주의를 주장함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를 돌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노동조합 조직 형태의 전환과 관련되어 있다.

 

둘째,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 체계가 여전히 기업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로드맵에 따른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및 규제는 노동조합 활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게 된다. 이러한 방안이 제도화되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불문하고 유급 전임자 규모가 제한됨에 따라서 현재의 전임자 규모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기업별 노동조합 운영은 파행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산업별 노동조합을 기본 조직형태로 하는 외국 노동조합들은 자주적으로 노동조합 재정을 운용하며 사용자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고 있지만, 임금 및 단체협약 등 노사 간의 단체교섭이 초기업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현실과 크게 차이가 있다. 게다가 외국에서는 단체협약이나 협의를 통해서 기업 내 노동자 대표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 유급 활동이 보장되어 있다. 반면 한국의 대부분 노동조합들은 기업 수준에서 노사 교섭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필요로 하는 전임자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상급단체로 파견된 전임자에 대해서도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관행을 고려하면, 로드맵의 방안은 조직의 사활을 거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전임자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조직 형태를 기업별 노동조합에서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것과 연결하여 적극적으로 사고할 것을 노동조합운동에 요구한다. 주지하듯이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조직 형태를 전환하는 문제는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의 중요한 의제로 이미 오래 전에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노사관계 로드맵의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에 대해서 노동조합운동은 한편으로는 노사 자치주의 원칙을 견지하기 위해 투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 형태 전환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통합적인 대응을 하여야 한다.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은 산업별 노동조합이라 하더라도 기업 내 노동조합 대표자의 활동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 또는 작업장 내에 노동조합 활동의 기초를 세우지 못한 산업별 노동조합이라면 사실상 껍데기에 불과한 조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드맵을 계기로 삼아 산별로 전환하자는, 또는 그러한 점에서 로드맵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산업별 노동조합은 무엇보다도 기업별로 흩어져있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도모하고 교섭력을 높이는 동시에 기업별 노동조합의 비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합리화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노동조합의 재정 자립을 위해서 산업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업별 노동조합 건설과 함께 노동조합의 재정자립이 따라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문제는 기업(또는 작업장) 수준에서의 노동조합 일상 활동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이 때 기업 내에서 활동하는 노동조합 활동가의 유급 여부와 그 적용 수준 및 범위는 노사 간의 협의 또는 협약을 통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등 제반 노동관계법은 기본적으로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에서 노동자들의 지위가 구조적으로 열위에 있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에 관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물론 이러한 법제화는 노동자들의 줄기찬 투쟁의 결과이다. 따라서 노동관계 법제도는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 가능하다. 노동조합운동의 과제는 이러한 법제도적 환경이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변화시켜갈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노동조합운동 진영의 내적 연대는 이것을 위한 기본 전제이며, 산업별 노동조합 건설 운동은 연대를 위한 조직적 기초이기 때문이다.


 

<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노동조합 전임자 관련 조항 >

제24조 (노동조합의 전임자)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자(이하 "전임자"라 한다)는 그 전임기간동안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아니된다. 

제81조 (부당노동행위) 사용자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이하 "부당노동행위"라 한다)를 할 수 없다. 4.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와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

부칙 <1997.3.13> 제6조 (노동조합 전임자에 관한 적용의 특례<개정 2001.3.28>) ①제24조제2항 및 제81조제4호의 규정(노동조합의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원에 관한 규정에 한한다)은 이를 2006년 12월 31일까지 적용하지 아니한다. <개정 2001.3.28>

②노동조합과 사용자는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원 규모를 노사협의에 의하여 점진적으로 축소하도록 노력하되, 이 경우 그 재원을 노동조합의 재정자립에 사용하도록 한다. <개정 2001.3.28>

 

<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중 노동조합 전임자 관련 주요 부분 >

- 노조법 제81조 제4호 개정 : 예시)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와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 다만, 근로자가 … 최소한의 규모의 노동조합사무의 제공 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는 것은 예외로 한다.” 

- 기업단위에서 조합원규모를 기준으로 하여 유급 완전전임자의 수를 결정

- 부당노동행위 예외로 허용되는 유급 완전전임자의 수는 최소범위(예컨대, 최대 20명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설정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