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장애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하여

노동사회

이 땅에서 장애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하여

편집국 0 3,149 2013.05.19 03:32

2005년 2월, 내가 일하던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에 당시 한창 인기 있던 <좋은 나라 운동 본부>라는 프로그램의 작가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다. 사유인즉 임금체불을 당한 장애노동자의 사연을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다. 전혀 어려울 게 없는 부탁이었다. 안 그래도 정말 사연을 알리고 싶은 분이 너무 많은 상태였다. 임금체불은 기본이고 명의 도용으로 법인세 세금을 뒤집어쓴 사연이나, 부당해고, 임금착취, 산업재해 등등 실로 다양하고도 답답하고 분통터지는 사연들이 너무 많았던 때문이다.

msk_01.jpg

방송 안 된 ‘좋은 나라 운동 본부’

다수의 임금체불 피해자가 발생했던 경기도 광주의 모 가구공장사례를 추천한 후 이틀이 안 되어 방송작가가 찾아왔다. 일단 기초취재를 한다며 장애노동자 몇명과 모 노동단체의 간부와 함께 해당 사업체를 찾아가게 되었다. 피해자는 대부분 청각장애인이었는데 장기근속자가 많았다. 모두들 일인 당 수백만원씩의 임금체불을 당한 데다 퇴직금도 못 받은 상태였다. 그리고 회사는 체불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노동부에 고소한다고 해도 “할 테면 하라”며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임금체불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명의상 사장’과 면담했다. 그러나 “장애노동자들이 사직한 후에 공장을 인수했기 때문에 나랑 무관하다”며 되려 “장애노동자들은 지금까지 대접을 잘 받아왔고 다만 임금인상이 원하는 대로 안 되니까 그만둔 것뿐이다”라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런데 장애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공장장’으로 되어있는 사람이 실질적 사장이라는 것이었다. 명의상 사장과 공장장은 서로 한통속으로 서로 사장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바꿔가며 세금 등 각종 귀찮은 문제를 편법으로 피해가는 수법을 쓰고 있었고, 임금체불 문제도 마찬가지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장시간 오갔지만 끝내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면담 방문을 했던 이들은 그만 돌아가서 후속취재를 의논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과정에서 마침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비장애인 노동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분도 반년 이상 밀린 임금을 못 받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사장을 믿지 마라. 공장장하고 사장은 한통속이다. 우리들이 지쳐 포기 할 때까지 버티는 상습범들이다. 노동부에 고발해봐야 별다른 도움도 안 되고 있다. 장애노동자들은 노동착취의 도구로 이용하기위해 고용된 것이다”라는 그이의 증언을 들었다. 그러나 정작 후속취재는 불발되었고 아무것도 방영되지 않았다. 기껏 취재에 협조했더니 아무 성과가 없자 장애노동자들은 매우 실망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노점상이나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일까?

장애노동자들에게 임금체불 문제는 비장애인에 비해 훨씬 심각하게 다가온다. 빈곤선에 겨우 턱걸이하며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한달간의 노동력 제공을 대가로 받아야할 임금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하루하루 먹고살기에도 바쁜 이들에게 저축은 거의 기대 할 수 없기에 임금체불이나 실직에 따른 충격이 훨씬 큰 것이다. 또 장애노동자들의 구직기간은 비장애인보다 훨씬 길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어도 그만두면 새 직장을 얻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도 없다. 실직의 공포감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웬만한 임금착취나 부당대우도 참고 넘기게 된다. 결국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된다. 

“체불임금을 포기하라”는 ‘진심어린’ 충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시민실천사업의 일환으로 장애인 노동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 일을 하면서 장애노동자들의 노동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게 다가왔는지 가슴이 저리고 서리가 내릴 정도였다. 사업초기에는 노동상담 서비스만 제대로 제공되면 장애노동자들이 실업문제를 능동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으나, 이는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장애노동자들은 노동상담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처지가 아니었다. 당장 하루 먹고살기에도 급급한 이들에게, 몇년이 걸릴지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지도 모르는 민사소송을 권하는 것은 정말 뻔뻔하고 민망한 일이었다. 설사 용기를 가지고 노동부에 고발한들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으며, 도리어 일부 사무관에게 “어차피 못 받을 확률이 높다”는 ‘진심어린(?) 충고’를 듣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체념이 빠를수록 삶이 나아진다는 경험적 진리를 설파하는 장애인마저 있다. 노동상담 서비스를 받은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상담 자체에 대해서는 높은 만족도를 보이지만 거기서 그쳐야 하는 데는 강한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일부 사업주들은 “우리 회사에서 고용하지 않았다면 어디 가서 일하지도 못할 사람들”이라며, 장애인고용은 동정과 시혜의 차원에서 이뤄졌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말 우리사회에서 장애노동자들은 어떤 존재인 것일까?

전국에 많이 존재하는 ‘장애인자립작업장’의 예를 들어보자. 이곳에서 보호고용되어 있는 장애인들은 현행법으로는 ‘훈련생’이다. 그러므로 한달 월급(어떤 곳은 ‘훈련수당’이라고 함)으로 3만원을 지급받기도 있다. 만약 이들을 ‘노동자’로 본다면 도저히 이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훈련생이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대다수 장애인자립작업장은 사실상 기업형태로 운영되고 있고, 그곳에서 일하는 장애인들도 장기 근속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고도 아직 ‘훈련생’이라는 명목으로 한 달 3만원을 지급받는 상황이니, 장애아동의 부모가 겪어야 하는 인간적 모멸감과 좌절감은 감당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고용을 ‘재활’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즉 의료와 사회복지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장애인당사자와 부모들에게도 아직 상당히 남아있는 의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장애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게 하는데 큰 지장을 초래한다. 또한 부당한 대우를 받고서도 별다른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도록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들에게 장애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설명하면 대부분 거부반응을 보인다. 어떤 경우는 ‘공포감’을 보이기도 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아직 우리사회의 어느 누구도 장애인노동권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질 않으니, ‘모난 돌’로 튀어나왔다가 괜히 ‘정’으로 두들겨 맞기 싫은 것이다.

노동권을 두려워하는 일부 장애인단체들

전국에 수많은 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단체들은 단순한 서비스 전달자의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장애인노동권이란 멀리하고 싶은 껄끄러운 존재다. 단체 운영예산의 대부분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및 기업의 후원금에 의존하는 그들에게 있어 장애인노동권이란 개념자체는 일종의 ‘독립선언’과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체를 말아먹기로 작정한 것이 아닌 이상, 장애인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임금체불을 일삼는 기업을 향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장애노동자들도 임금체불이나 해고 등등 노동관련 문제가 불거졌을 경우 이들 단체들이 인간적으로 좋게 해결해 주기를 바랄지언정 맞서 싸워주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수년 전 대구 상신브레이크 청각장애노동자들의 노조탈퇴 공작사건에서도 해당 장애인협회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에 사태가 악화되었던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립회관 민주화투쟁의 과정에서도 반노조적 성향을 보이는 일부 장애인단체들이 사태의 원인인 이완수 관장 측에 서서 시설 민주화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기존 장애인단체들 중에서 일부는 장애인노동권과 시설민주화의 개념이 결합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아예 노동권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나서야 한다

이런 상황을 뚫고 가기위해서는 어찌 됐든 노동단체들의 관심이 필수적이다. 각종 미디어에 다중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훈훈한 미담이나 장애극복기가 넘쳐나지만 정작 노동현장에서 자신과 가족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상당수 장애인들의 삶의 모습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이들의 삶도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좀 더 불편하고 좀 더 가난할 뿐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들이 자신 곁에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종종 잊고 지낸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는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장애노동자들에게 아직 “좋은 나라”가 아닌 듯하다. 물론 앞으로 “좋은 나라”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투쟁’의 과정이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렇더라도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니 반드시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시급한 임금체불 문제부터 해결하는 모범을 보여줄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 장애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기업에게 지급되는 고용 장려금의 일부를 임금체불을 보호하는 데 사용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일한 대가만큼은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현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장애인노동자들과 노동단체들이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