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불 켜진 민주노총의 민주주의

노동사회

빨간 불 켜진 민주노총의 민주주의

편집국 0 4,198 2013.05.19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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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3월 8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제44차 노동포럼 ]


 

이원보 반갑습니다. 오늘 주제는 <빨간 불 켜진 민주노총의 민주주의>입니다.  조직 민주주의, 노조 민주주의, 조합 민주주의 등 노동조합 교과서 제1조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잘 알고 있지만 그 원칙이 현실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고, 급기야 최근에는 민주노총의 침체, 위기론과 결부되면서 다시 검토 되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오늘 포럼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노광표 안녕하십니까. 오늘 발제를 맡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입니다. 오늘 얘기할 내용은 ‘노동조합 민주주의’의입니다. 민주노총의 내부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상황을 보면서 노조 민주주의를 재강조해야 하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지금껏 노조 민주주의란 주제는 별로 공론화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노동조합 운동의 역사성 때문일 텐데,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한국노총 소속의 노조들이 노조 민주화의 과정을 거쳤고, 신생 노조들은 민주노조라는 이름을 걸고 탄생하면서 굳이 노조 민주주의를 조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노동조합운동이 다양한 내외부의 어려움에 놓이면서 노동조합 내부의 갈등이 비화되고, 공식적인 회의구조가 훼손되기조차 하면서 노동조합 내부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forum_01.jpg이런 노조 민주주의의 쟁점과 그것의 해결방안은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쟁점은 산별노조의 조직운영 원리인 중앙집중성이 관료주의로 발전할 위험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관료주의를 배격하기 위해서라도 산별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정신이 훼손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사례로는 보건의료노조의 2004년도 중앙교섭 과정에서 10조 2항을 둘러싸고 벌어진 서울대병원 탈퇴 문제로, 이 당시 산별 관료화 문제가 본격 제기되었습니다.
둘째로는 노선 및 투쟁 방침 결정 과정에서 다수파의 수적 우위에 기초한 형식적 ‘민주집중제’에 대한 비판입니다. 민주노총의 의결에 대해서 한쪽에서는 토론은 치열하게 하지만 결정한 것은 공동으로 책임지자는 논리를 제기하고, 다른 쪽에서는 토론과정도 치열하지 못하고 머릿수만으로 민주주의를 재단한다는 반발이 있습니다. 어느덧 민주노총이 제기하는 총파업에 대해서 누구도 신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한다고 하더라도 투쟁 강도에 대해서 의심할 정도로 결정과 집행이 불일치하고 있습니다. 
셋째로는 자주성 회복의 원칙으로서 제기되는 민주주의입니다. 과거에는 일부 어용노조에서나 일어났던 간부비리 문제가 이제는 일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앙조직의 수석부위원장에게까지 퍼지면서, 노조 관료주의의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고,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의 자주성 즉, 정권과 자본에 대한 자주성을 회복될 수 없다는 주장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것 같습니다 
넷째는 각급 조직의 위상과 역할을 둘러싼 갈등문제입니다. 전노협 시절에는 지역활동이 중심이었던 반면 민주노총의 건설과 함께 활동의 중심은 산별연맹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자 지역과 연맹 사이에서 역할과 위상을 놓고 불협화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의 조직체계를 전국 단일노조로 재편해야 하고, 산별노조 차원이 아니라 민주노총 중앙을 본부로 하고 연맹은 지역본부 산하로 귀속되는 조직개편 방안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다섯째는 활동가들의 간부 회피 현상이나 현장 공동화가 문제가 되자 노조운영 및 활동 과정에서 조합원의 직접적인 참여를 높이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흐름입니다. 이를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닌 ‘내용적’ 민주주의의 강화가 대안으로 제시되었고, 모든 권한을 조합원에게 돌려주자는 입장이 등장했습니다. 이른바 노동자는 ‘스스로 결정한 것만을 실천 한다’는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죠. 
이처럼 다양한 차원에서 조직 민주주의가 제기된다는 뜻은 이제 ‘민주노총’도 민주주의적 조직운영과 활동 정립에 있어 더 이상 성역이 아님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좋든 싫든, 조직 민주주의의 확립과 운영 쇄신을 통한 조직 발전의 새로운 방향을 형성하기 위한 내부 성찰과 제도 개편 방안이 시급히 모색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거죠.

관료제와 관료주의의 혼동

민주노조 진영에서 조직 민주주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은 네 가지 영역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 노조 상층간부의 관료화 및 관료주의의 문제, 둘째 조직 의사결정 구조 및 임원 선출 방식의 문제, 셋째 조직체계 및 운영방안 즉, 산별노조의 위상 및 각급조직의 관계(연맹과 지역본부 간), 넷째 의견그룹 즉, 정파의 위상 및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관료제와 관료주의의 문제를 말하자면, 결론적으로 한국의 노조운동, 특히 민주노총에 있어 ‘노동조합 내부의 근본 문제는 관료주의의 문제다’는 주장은 ‘관료제’와 ‘관료주의’를 혼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조운동의 현실도 왜곡한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관료주의의 기원은 서구산별체계에서 상층간부와 현장 조합원의 괴리가 생기면서 나타났던 쟁점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지도부의 교체가 잦고, 관료주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중앙의 전문위원(스텝)의 숫자도 약 40명에 불과한 상태입니다. 이런 현실 조건을 놓고 볼 때 행정의 효율성을 위해서 오히려 관료제의 강화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간부 비리사건과 민주노총의 약화를 연결 지으면서 관료주의라는 오도된 결론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대기업 사업장에서 현장 조합원들의 실리주의와 소수 간부들의 관료주의가 결합된 문제를 어찌 타파할 것인가가 더 큰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칙에도 안 맞고 피해도 많을 ‘직선제’

두 번째, 총연맹 대의원과 임원 직선문제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 세 후보 모두 임원직선제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민주노총의 임원을 직선으로 선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의 임원 직선제는 관료주의와 패권주의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뿐더러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고, 원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우선, 중앙조직의 조직 구성 원칙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실제 민주노총은 단위노조나 조합원의 결사체가 아닌 ‘연맹의 결사체’인데 직선제를 도입하게 되면 조직의 구성원은 연맹인데 위원장 선출은 조합원이 하는 두 개의 시스템을 갖게 됩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 세계 어느 나라 중앙조직도 임원선출을 직선으로 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둘째, 임원 직선제는 중앙조직 역할의 혼선 및 혼란을 초래할 위험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직선제를 주장하는 많은 동지들은 민주노총의 현 대의원 구조가 정규직과 대기업노조의 이해만을 대변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직선제를 도입하면 정규직과 대기업노조의 이해만을 대변하지 않는 다른 방도가 나올까요? 저는 여과장치가 없는 임원 직선제는 정규직과 대기업노조의 이해를 구조화하고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활동가들 중에는 직선제가 유효할 수 있지만 ‘실무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서 아직 때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문제를 잘못 짚은 것입니다. 보다 큰 문제는 실무적인 준비가 아니라 민주노총의 내부문화, 선거문화입니다. 과거의 사례도 있지만 지금도 선거결과에 대한 불승복 문제가 빈번합니다. 게다가 조합원 숫자는 60만이지만 조합비 납부자 평균은 40만에 불과한데 선거권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직선제가 한번 도입되고 나면 총연맹의 중요 방침은 ‘대의원대회’가 아닌 현장조합원의 ‘총투표’로 결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또한 총연맹의 임원직선은 요구하면서 도대체 왜 기업별노조의 가맹조직인 산별연맹의 직선제는 도입이 안 되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것은 정파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총연맹의 간선제 임원은 대표성이 없지만 산별연맹의 간선제는 대표성이 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입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은 민주성도 중요하지만 투쟁력과 일사불란한 행동력을 갖기 위해서 효율성과 규율성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합니다. 극단적 사례로, 모든 조직에 직선제가 도입되면 노동조합운동은 선거로 시작해서 선거로 끝난다는 게 기우만은 아닐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임원 직선제는 노조 민주주의를 성찰할 계기는 되었지만, 노조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관료주의와 패권주의의 극복방안은 아닐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의 선거 구도가 과거의 대중적 명망가를 지도자로 선택했던 과정에서 지금은 각 정파, 의견그룹 간의 후보경쟁으로 바뀐 민주노총의 위상변화입니다. 이런 구도에서는 직선제도 간선제도 통합적 지도력을 반영할 수 있는 대안은 아니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논리적 대안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과거의 정파 구도를 깨고 이념 및 노선에 기초한 정파연합을 구성하고 통합 지도부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성이 부족합니다. 둘째로, 51%를 얻은 후보가 49%를 얻은 후보를 배제하는 ‘승자독식’의 선거시스템을 지지율이 반영되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정파별 지지율이 반영되는 브라질 노총 선거와 프랑스 사회당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한편, 민주노총 ‘대의원’의 직선제도 임원 직선제와 마찬가지로 조직구조에 부합하지 않으며 도입을 하더라도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민주노총 대의원을 직선제로 뽑으면 의결과 집행의 분리 현상, 대의원의 일상활동 보장방안, 대의원 선거구역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난제들을 해결하지 않는 한 임원직선제와 함께 대의원 직선제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제출된 민주노총의 ‘혁신방안’은 계급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여성 및 비정규직 그리고 중소사업장에 대한 할당제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연 민주노총의 대의구조가 이것 이상을 도입할 정도로 구조적인 병폐에 사로잡혀 있는지 우선 논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방안 즉, 시스템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대의원대회의 내실화를 이뤄내고 의사결정 구조의 내실화를 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민주노총의 대의원 수를 생각해 봅시다. 현재 대의원은 900명이 넘어가는 상태고, 공무원노조가 가입하면 천명을 넘어갈 텐데 천명 이상이 모여서, 물론 대의원의 40%는 일상적으로 안 오니까 대의원대회를 개최할 수야 있겠지만,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의원대회를 할 수 있는지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300명의 대의원이 모인 것과 1천명의 대의원이 모인 것이 뭐가 다른지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나라의 중앙 조직의 대의원, 그리고 정기 대의원대회라는 것이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만큼 총파업을 많이 하는 조직도 없고 그만큼 대의원대회를 많이 하는 중앙조직은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대의원대회가 많다고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결정된 사안이 집행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대의원대회가 남발되고 있는 것은 의사결정구조의 문제점이 대외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맹과 지역본부의 위상과 관계

연맹과 지역본부의 위상과 관련해 가장 쟁점은 민주노총의 조직 체계를 바꿀 것인가 말 것인지가 핵심 사안입니다. 민주노총 조직골간은 산별을 종축으로 지역본부를 횡축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인데, 이런 시스템을 탈피해서 전국 단일노조로 재편하자는 논의가 있습니다. 이는 노조운동의 역사성과 산별노조 추진 방향에 역행하는 잘못된 문제해결 방향입니다. 지역본부의 역할이 축소된 까닭은 지역본부 역할에 대한 조직적 합의가 없고, 재정 및 인력배치의 부족에서 나타난 문제이지 조직 골간을 바꿔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 각급 조직의 임무와 역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전국중앙조직(national center)은 이념의 정립, 사회공공성 투쟁과 정책참가를 포함한 정책과 제도개선활동, 정치세력화 등을 기본임무로 합니다. 산업별 조직은 단체교섭과 조직확대, 산업정책 등에 활동의 중점을 둡니다. 지역본부는 지역정치활동의 중심이 되며, 지역 내 공동투쟁 및 조직화 사업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현재 민주노총 조직의 지역본부는 역할이 많은데도 임금지급 기준으로 따져 겨우 99명의 인원이 상근으로 활동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지역본부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역할에 대한 논의뿐만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시급합니다. 
산별 전환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은데, 산별의 큰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좋지만 ‘계급적 산별’, ‘투쟁을 통한 조직 건설’ 식의 비판은 적절치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산별노조가 왜 요구되는지, 산별노조를 통해서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2006년도에 산별노조라고 하는 신기원을 이뤄내지 못하면 복수노조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 ‘2007년 체제’ 속에서 위기는 더 증폭되리라 생각됩니다.

의견그룹의 역할 정립

제가 지금 발제를 하고 있지만 한국노동사회연구소도 의견그룹 가운데에 하나라는 얘기가 있어 의견그룹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현장조직의 순기능이 아직도 남아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이번 대의원대회 파행 양상도 여러 가지 다른 요인이 있지만 정파적 이해관계가 임원 선거를 계기로 폭발했다라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현재 민주노총 내부의 주요 의견그룹들은 민주노총 건설 10년을 경과하면서 상호를 인정하는 게임 규칙조차 형성하지 못할 정도로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상식 이하의 깽판집단’이라든가, ‘상종할 수 없는 비리주범’으로까지 매도하고 있습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정파운동이 실천력을 상실했다는 점입니다. 독자적인 투쟁을 조직할 힘은 없어 그저 성명서만 써제끼고 있습니다. 정파를 검증할만한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정파의 문제점을 지적하더라도 운동조직의 건강성과 발전을 위해서는 정파의 해체가 아닌 순기능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파의 공개적인 활동과 검증장치가 대중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각 정파가 판단하는 노동운동의 방향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도 등이 대중에게 제시되고 평가받아야 합니다. 정파의 주장은 실천을 담보로 검증되어야 하고, 거리에서나 성명서를 통한 일회적 주장이 아닌 현장의 동력을 기반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모범적인 실천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정파의 순기능은 확대될 수 없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앞서 많은 비판을 제기했습니다만, 현재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힘을 강화해 운동주체 간의 통 큰 단결을 모색할 수 있는 방안을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오늘 제기되고 있는 조직민주주의 더 나아가 민주노총 내부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노조운동의 위기상황, 노조운동의 과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부 변화를 통해서 조합원 힘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승리를 앞당기는 지름길이고, 이를 위해서는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와 통합적 지도력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파편화된 기업별 조직체계, 취약한 계급적 연대, 부족한 정치 자원으로는 2007년의 복수노조 시대를 돌파하기 어렵습니다. 2006년에 노조운동이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는 말과 행동의 일치, 비난이 아닌 비판, 상호존중의 조직문화를 통해서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을 막고 한국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앞당기는 것입니다. 민주노총의 발전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원보 수고하셨습니다. 기조발제문은 제가 반복하지 않더라도 단락별로 배경과 쟁점과 나름의 대안을 잘 정리해준 것 같습니다. 특히 강조되는 것은 논쟁보다는 실천이 강조되어야하고, 비난보다는 비판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결론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이제 토론으로 넘어 가겠습니다.

토 론

한석호 민주노총의 조직 민주주의의 문제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과도하게 판단하는지 모르지만, 민주노총의 선거문화가 노동조합 민주주의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부분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발제자도 말했지만 승자독식 구조, 선거에서 반드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토가 만연합니다. 
forum_02.jpg발표자의 의견에 대해 대부분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서, 몇 가지 지점만 비판 내지는 제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임원직선제는 대안이 아니다라고 발제자는 말했지만, 저는 직선제가 상당부분 타당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제자가 직선제 반대의 근거로 제시한 서구 유럽의 노동운동은 안정화된 조직의 사례라 할 수 있어 우리의 상황과는 매우 다릅니다. 물론 제가 속한 의견그룹인 ‘전진’ 내에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직선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동지들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직선제를 영구적인 제도로 전제하지 않는다면 현 시점에서는 긍정성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유럽처럼 산별이 중심이 되어 투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산별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할 만큼 산별들이 안정화되어 있지 못하고, 규모도 위력도 없습니다. 제반 투쟁들을 민주노총으로 집중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여건입니다. 즉 ‘현재’ 민주노총은 다른 나라의 내셔널센터와는 다르게 투쟁과 실천의 구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 방침도 내려야 하고, 각종 실천 방침도 내려야 하고, 직접 현장을 순회하면서 투쟁도 독려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런 역할이 부여되는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면 직선제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선거의 승자독식 구조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저 역시 이 부분이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이전의 조직혁신 과제는 다시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담 삼아 말하지만 사실 임원선거 전에 전진그룹의 동지들이 모여서 선거구조의 문제를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부위원장 투표 방식은 1인1표가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이걸 공개적으로 제안하면 “전진이 소수에 몰리니까 저런 의견을 내놓는구나”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걱정되어 쟁점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거과정에서 다른 후보들 진영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와서 이제는 자신 있게 논의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원장은 안 되더라도 부위원장에 대해서는 1인 1표제를 실시한다면 독식구조의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를 통해 다양한 의견그룹이 지도부를 형성하고, 대의원대회나 중앙위원회에 안건이 나오기 전에 임원들 사이에서 한 차례 걸러서 안건상정이 되는 방식이 되면 좋을 것입니다. 단순히 승자독식 구조의 해결을 넘어서 민주노총 임원이나 사무총국 내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검토되고 순화돼서 나오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선거제도의 개편방안으로 브라질 노총과 프랑스 사회당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노선과 방침에 관한 사항은 국가보안법이라는 굴레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가 전제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파를 공개한다는 것은 자기 노선과 색깔들을 들어내야 하는데 여전히 국가보안법이라는 족쇄가 옭아매고 있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배려’ 없는 민주주의는 경계해야

조직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려면 형식적 민주주의 절차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내용적 민주주의라 표현할 수 있는 ‘배려’를 고려해야 합니다. 가령, 2005년 대의원대회 파행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전 대의원대회인 속리산 대의원대회에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사태를 경험하면서 저희 전진을 포함해 몇몇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그 전까지는 대의원대회 현장에서도 안건발의를 하면 받아줬는데, 속리산 대의원대회에서는 민주노총 규약을 이유로 안건발의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동지들이 민주노총 회의규정에 30명 이상의 서명을 받더라도 찬반토론을 거친 후에 대의원의 50%의 찬성을 얻어야 안건이 성립된다는 걸 그 날 처음 알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회적 대화에 반대하는 동지들은 소수의견이 무시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과거 민주노총 대대의 회의진행 방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면서 집행부가 토론도 없이 사회적 교섭을 대의원 수로 밀어붙이려 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 교섭과 관련해서 내부 논의가 진행될 때 정말 흉흉한 소문이 이미 민주노총 안팎에서 돌고 있었습니다. “○월○일까지 민주노총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임원 ○○○가 ○○○에게 얘기했다”는 것이었고, 심지어는 “노동부 직원 ○○○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돌아 다닌다”라는 소문이었습니다. 내부 논의도 하기 전에 이런 소문이 돌면서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측의 격렬한 반응은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소수의 의견이 있을 때 제압해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절차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배려할 문제들을 심도 깊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 사례를 말하면 저를 정말 좁쌀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지만,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례로 보아주십시오. 전재환 위원장이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한 달 이상했는데, 그 한 달여 동안 전재환 위원장 얼굴을 『노동과 세계』에서 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설사 사진이 실리더라도 명함판 사진으로 나오기 일쑤였고, 배강욱 집행위원장은 전면 얼굴이 작게라도 나오는 반면, 전재환 위원장은 ‘옆얼굴’만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한번은 누가 『노동과 세계』를 들고 다니면서 도대체 전재환 비대위원장 어디 갔냐고 따지고 다니는 걸 본 적도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그전부터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과 세계』를 보면서 그런 점을 느꼈을 텐데 계속해서 그런 편집이 이뤄지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닌 민주노총 내부의 문화가 그렇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물론 의도적인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상대책위원회를 일주일밖에 맡지 않았던 남궁현 비대위원장은, 제가 남궁현 위원장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례로 이야기 하는 것이니 오해하지는 마시고, 1면에 담화문을 실으면서 사진으로 반면을 채우는 걸 보면서 숨어있는 종파주의적인 입장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런 배려 없는 처사가 ‘상식 이하’의 격한 행동을 자초한 것이라고 봅니다.

정파끼리 공론장 형성할 가능성은?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를 하자면, 조직 문화에 따른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의견그룹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21세기에 활동하는 의견그룹에게 필요한 것은 ‘일사분란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운동처럼 상부에서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민주노동당의 중앙위원회나 대의원대회에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회의 진행과 상관없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표결할 때가 되면 ‘신호하는 사람’을 보고 손을 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파갈등이 정말 심각한데,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민주노총 내 민주주의 문제도 상당부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파들의 만남의 장, 문제들을 공론화하는 장이 필요합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책임감 있게 운동하는 정파들이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고민들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없는 게 아쉽습니다. 공식 조직을 중심으로 해야지 왜 의견그룹들이 움직이느냐고 할 수 있지만, 실제 선거를 보면 공식 조직 중심으로 후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각 의견그룹들이 후보를 내고 있습니다. 연맹 위원장들이 모여서 이 안건에 대해 이렇게 처리하자고 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의견그룹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의견그룹들에게 같이 모여서 논의하자고 몇 번 제안을 해봤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선거가 끝나고 재차 제안하니까, 꼴도 보기 싫다며 마음 가라앉으면 보자고 하더군요. 내부 민주주의와 관련해 의견그룹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겉돌 수밖에 없고, 똑같은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원보 간과하기 쉬운 작은 문제이지만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배려의 지혜, 문화, 정파그룹의 공론장 등의 의견은 지금까지 듣기 어려웠던 의견이었던 것 같습니다.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광호 민주노조운동이 안고 있는 다양한 과제들이 해소되고 극복되지 못한 채 민주주의 문제까지 논쟁이 될 상황까지 온 걸 보며, 민주노조운동이 정말 바닥으로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석호 동지가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내용과 실질적 민주주의도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형식 민주주의조차도 깨지고 있으니 민주노조운동은 바닥이 났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민주노총은 선거하나 제대로 치루지 못하는 조직이 되어버렸습니다. 부정선거 시비나 이런 것들이 슬쩍 문제제기 되었다가 유야무야 되어버립니다.  
forum_03.jpg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내용없는 정파, 권력투쟁의 도구로 전락한 정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답을 찾지 못하는 무능이 가장 커 보입니다. 그리고 공식 조직이든 정파든 진보성과 전투성은 사라지고 내부 정쟁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신뢰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는데 신뢰를 제공한다는 것은 불신 또는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신뢰가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 쌓이지 않으면 불신이 누적됩니다. 불신은 이견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견을 두고, 누구는 도저히 노동운동을 같이 하지 못할 ‘자본의 앞잡이’라든지 ‘배신자’라는 식으로  표현하기까지 하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그 정도로 서로 견해들이 다른가하면 막상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회적 교섭 노선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도 저는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투쟁과 교섭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일방적으로 하나를 선택해야 할 성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지도부도 사회적 교섭의 필요성을 최대한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어야지, 여기서 밀리면 안 되고 이겨야 한다는 식으로 처신을 한 점은 안타깝습니다. 아쉽게도 다들 토론과 논쟁이 필요한 사안들을 ‘이기느냐 지느냐’는 식의 승부의 관점으로만 봅니다. 공멸해도 좋으니 싸워서 이겨야겠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게 결국은 지는 것입니다. 노선투쟁을 한다고 하는데 노선투쟁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가령 투쟁만 앞세우는 조직의 내부 평가 문건에서는 자신들도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권력도구로 전락한 의견그룹

전 스스로를 우스개 소리로 ‘박쥐’라고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은 국민파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좌파라고 하는데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파적 생각과 비슷한 부분도 있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중앙파적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책임 있는 주체라면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선거는 경쟁이기 때문에 선거과정에서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불거질 수는 있지만 일상의 모든 것에 대해 줄을 서서 표결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컨대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라고 하면서 보수 정당의 독점구조를 욕합니다. 하지만 지금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은 패밀리들의 독점으로 가득합니다. 보수세력의 독점적인 정당구조를 욕하지만 노조 내부나 민주노동당내에서도 의견그룹들이 권력도구로 전락한 채, 스스로 변화하거나 자기문제의식을 제기하지 않고 형해화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정부·자본·언론 ‘삼각동맹’의 공격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는데 운동진영은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조합원 직선제 논의에는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무책임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대안에 대해서는 저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조합원 직선제를 반대하는 것은 반민주적이고 기회주의적이라고 얘기하는 비지성적인 행태는 없었으면 합니다.
한석호 동지가 선거 끝나고 정파들에게 공동 논의의 장을 제안했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지금의 공동 과제를 풀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정도로 정파들이 망가지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새로운 각도에서, 이전의 게임의 룰을 모르는 싱싱하고 젊은 사람들, 80년대의 추억이 없는 사람들이 나서준다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 생각입니다. 후배들이 해야 할 일이 많은 거죠.

김승호 바로 어제 연구소 한 동지에게 노동운동 경력 5년 이상은 다 죽어야 한다고, 답답한 심정에서 농담 아닌 농담을 했습니다. 저는 단위노동조합, 연맹, 짧은 시간이지만 민주노총 경험도 해봤습니다. 그리고 양쪽 진영 모두에게 활용을 당하고 있고, 욕도 많이 먹어본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활동가들과는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 하는 편입니다. 
기왕에 민주주의 문제로부터 출발했으니까 도대체 노동조합에 조직민주주의가 왜 중요하며, 노동조합에서 민주주의가 어떤 의미일까를 먼저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조합원 다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그 어떤 역량도 발휘하기 힘든, 즉 밑바닥의 역량을 동원해야만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노동조합의 특성 때문에 노동조합 민주주의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는 권력을 누가 장악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원들의 힘을 결집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란 얘깁니다. 그런데 지금 이 부분이 거의 무너져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과연 새삼스러운 걸까요? 전 오래 전부터 그랬다고 봅니다. 
직선제를 실시하자는 얘기를 포함해 다양한 얘기들이 나옵니다. 조합원 다수를 동원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데는 여러 가지 근거를 들 수 있습니다. 발제문과 관련해서 풀어보면 우선 관료제와 관료주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민주노총이 관료화되고 있다는 비판의 내용이 무엇인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내용이 없는 비판 같습니다. 관료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가령 투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면, 실제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총파업을 수행하는 조직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다들 알다시피 몇 개 조직에 불과합니다. 총파업이 성사가 안 되는 이유는 중앙간부가 관료화되어서라기보다는 파편화된 조직구조 때문이라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기본 상식도 지켜지지 않는 조직

forum_04.jpg권력을 현장에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입니다. 현장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중앙 조직이 결정한 사항에 대해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책임 공방에서는 마치 중앙 조직 탓인 양 몰아붙이는데, 이러한 주장의 허구성은 대의원대회 회의록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 방침을 주되게 결정하는 단위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입니다. 그런데 대의원들이 결정한 결정을 산하조직이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발표자가 지적한 것처럼 관료제와 관료주의라고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기본적인 관료적 체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민주노총입니다. 관료제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조직 내에서 어떤 업무처리를 하고, 어떤 결정을 할 때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룰’을 만든다는 점입니다. 한석호 동지가 이야기 했듯이, 규정이 있음에도 10년 동안 안 지키다가 느닷없이 필요할 때 그 규정을 들이대는 것은, 민주주의와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내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룰조차 서로 잊어버리고 있다가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 끄집어내고 반대편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 반박하는, 어떻게 보면 조직의 기본 상식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이없는 사례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표결문제를 예로 들어 볼까요.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성원은 대략 60명쯤 됩니다. 60명을 성원으로 잡고, 31명이 참석해서 과반수가 되었다고 합시다. 뭔가를 결정해야 해서 표결에 부쳤고 찬성 16표로 가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집행을 담당하는 실장이 10명에 가깝습니다.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의사결정구조일까요? 중앙집행위원회는 민주노총의 모든 방침과 지침을 결정하는 첫 출발일 수 있는데, 이런 의사결정구조가 정파별, 연맹별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상승작용을 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하강작용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내려진 결정이 과연 민주노총 전체의 결정이라고 그 누가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승자독식형 의사결정 구조의 전형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사무총국에서 일하는 사람도 역량이나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배치하는 게 아니라 지도부가 바뀌면 지도부의 색깔을 따라 일색으로 바뀝니다. 
위원장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요직에 앉히는 행태나, 민주노총의 지도부가 특정 정파의 대표체라고 인식되는 상황을 극복하는 것, 이것이 바로 노동조합 내부 민주주의의 회복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이런 상황에서 현장이 지도부를 따를 것인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노동조합 내부의 상호 배려의 차원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실제로 통합을 추구하면서 사업을 하지 않으면 조직 전체가 굴러가기 힘든 구조에다가 정파적 조건이 겹치면서 민주노총의 내부 문제가 이제 외부화 되고 있습니다. 
대의원대회 파행과 관련해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저는 쇠파이프를 들거나 각목을 드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전진그룹이나 노동자의 힘 쪽에서 징계를 해야 한다고 주장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소리냐면 이런 겁니다. 실제로 소수의견을 반영할 만한 통로를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은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만 그런 식의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종파적 논리 때문에 감싸 안는,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징계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앉아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권력은 다차원적인데, 다수의 권력과 소수의 권력, 즉 뭔가를 추진할 수 있는 권력이 있으면 그걸 막아낼 수 있는 권력도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파행으로 이끌었던 조직 내 현실 지형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 내 현실 지형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입장이 다른 부분을 감싸 안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충분히 참여할 기회의 장을 제공하면서 조직 내부적으로 소화하는 과정을 밟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직선제를 민주노총 혁신 문제와 연동시켜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재처럼 민주노총 내부에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고, 구조가 파편화된 상태에서 직선제의 유용성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조직분위기를 바꿔보자’, 중앙판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 대해서 관심 없는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을 각인시켜주는 분위기 전환용입니다. 둘째는 현재는 모든 권력자원과 물적자원, 인적자원이 기업별노조 내지는 산하 연맹에 있지만 조합원 다수의 총의로 선출된 집행부가 들어선다면 기존 집행부와는 다른 성격의 권한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즉 권한 자체의 위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처럼 매우 분권화되고 파편화된 구조에서 좀 더 집중화된 권한을 부여받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은 직선제의 긍정적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기술적인 문제가지고 논란을 벌일 이유는 하등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은 알 거 없고, 딱지부터 붙이기

다음은 연맹과 지역본부의 관계 문젠데,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서 민주노총 초기에 산별을 과도하게 강조한 데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민주노총 조직체계의 역사적 기원은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산별체계로 이행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업별 노조가 현존하는 딜레마에 부딪쳐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유의미하고 파급력이 있는 주요 대공장과 사업장들이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년 동안 산별연맹을 과도하게 강조하다 보니, 기업별노조의 분단현상이 산업․업종별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역에 가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노조 사이에서 수평적 연결고리이자 사업의 구심체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역할에 대하여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회의록을 보니까 “돈은 연맹이 내고, 쓰기는 지역본부에서 쓰고”라는 불만조의 발언 대목이 있었습니다. 기업별노조 의식이 그대로 잔존해 있는 반증 사례입니다. 산별연맹에서는 지역본부를 굳이 내 조직이라고 고집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단지 구획을 이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훨씬 큰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발상은 공식조직에서 이제는 사라져야 합니다. 민주노총 혁신관련해서 조직, 사람, 문화 가운데 어느 하나를 바꾼다고 해결될까요? 혹은 구조를 한꺼번에 바꿔서 산별체계로 가던가, 아니면 어느 쪽에서 주장하듯이 현재 기업단위 이상 조직에 있는 사람 다 내쫓은 후에 일괄 지역체계로 바꾸면 해결될까요? 한번 형성된 것은 바꾸기도 어렵거니와 사람이 바뀌어도 구조가 그대로면 원래대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저는 그것보다는 조직이든 정파든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눈여겨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이수호 집행부에 왜 ‘사회적 합의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사회적 교섭을 하자”라고 했을 뿐인데 내용은 보지도 않고, 합의주의자라고 먼저 딱지붙이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치 다른 곳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꼴입니다. 두 번째는 각자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에 근거나 이유가 없습니다. 대표적인 게 관료화입니다. 투쟁하지 않는 이유가 관료화의 문제라면 논리적으로는 민주노총 집행부야 말로 가장 관료적이지 않은 조직입니다. 언제나 총파업을 선언하는데 그 총파업 지침을 수행하지 못하는 하부 조직이야말로 관료주의에 빠진 거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결국 상대방을 규정하기 전에 내가 주장하는 근거와 내용을 제출하면 상호 보완할 지점이 생길 텐데, 서로 취할 장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회적 교섭을 하자는 쪽은 반대하는 쪽의 입장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만 취급하는데 이건 옳지 않습니다. 반대 하는 쪽의 주장을 가만히 뜯어보면 사회적 교섭을 왜 지금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몇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투쟁동력이 없다는 가장 큰 이유가 있습니다. 이건 양쪽 다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그럼 투쟁동력이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 양쪽 모두 생각이 같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하는데 머리 맞대고 논의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번 민주노총 총파업과 관련해서 좌파에서는 “조준호가 위원장이 되니 우파만 파업하네”라는 비아냥조의 이야기를 온갖 게시판에 도배를 하다시피 합디다. 또 우파에서는 “그토록 투쟁 투쟁하던 좌파는 왜 안하냐”는 비난의 글들로 응수하더군요. 
전 요즘 정파문제와 관련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대안을 찾기 힘들어선지 자꾸 원점으로 돌아가 우리나라 노조운동에서 현장조직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되짚어보게 됩니다. 첫째는 1980년대 이후부터 다수 노동자를 의식화하기 위한 메커니즘의 기능을 했던겁니다. 이것은 여전히 유효하고 매우 중요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요즘 현장의 어느 활동가를 만나 봐도 정기적으로 학습하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둘째로, 같은 현장조직에 있어도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그나마 그룹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어떻게 설득하고 조정해 나갈 지에 대해서 상호 이해의 폭이 넓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조직 내부 민주주의 문화와 토론, 의사결정 과정을 훈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현장 조직은 거의 없습니다. 현장조직은 이미 선거조직화 되어 있고, 계파간· 정파간 이익을 우선으로 사업을 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현장조직의 기제가 무너져 내린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장 토론 활성화가 관건

문제제기만 많이 했는데, 대안과 관련해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거를 직선으로 하든 간선으로 하든, 대의원대회를 3일을 하든 8일을 하든, 이런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현장에서 뼈 빠지게 일하다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대의원을 붙잡고 7박8일의 대의원대회를 해봐야 별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의 전체 사업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동원된 대의원들은 정파 이해관계에 따라 누가 문자 보내주면 그대로 투표할 거고, 결국 이런 관행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관료제의 문제든 민주주의의 문제든 선거방식의 문제든 조직 내부의 토론과정을 최소한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조직하고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교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본부나 산별연맹에 토론했냐고 물어보면 공식 단위의 토론보다는 사무처 몇 명 또는 몇몇 활동가가 모여 토론한 결론을 마치 전체 조직의 입장인 양 중앙에서 떠듭니다. 이러니까 하층과 상층의 분리, 현장 조합원과 간부의 분리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이게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식 조직체계 내에서의 토론과정을 충실히 밟고, 소수에 대해 공식적인 틀 내에서 참여할 기회를 확대시켜 주는 것, 이 과정에서 집행부 성향이 어떻게 바뀌던 일단 권력 지분 51%를 가진 집행부가 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수호 집행부가 가장 잘못한 것은 한석호 동지가 지적했듯이 조직 내부에서 이견이 있는 세력들 사이의 교섭 혹은 협의를 간과했거나 혹은 과소평가했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그걸 무시하고 정부와 교섭한들 힘이 실릴 수 있겠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단위노조 같으면 조합원 총회를 통해서 결정하는 관행이 자리 잡혀 있어 별문제가 없는데 중앙으로 갈수록 서두에 이야기했던 파편화된 구조 때문에 교섭절차를 제대로 밟고 의견을 모아내지 않으면 동력도 모아지지 않고 “너 혼자 해라”는 식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원보 아마도 기회를 주면 밤을 지새워 이야기를 해도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직접 경험한 내용들이어서 대부분이 구조의 관행부터 의식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대안으로는 현장토론의 확산과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의 정착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김명호 현재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 아프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민주노총 바닥쳤다”는 내용이 토론 주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뚜렷이 드러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민주노총이 위기다” 그러는데 민주노총에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 것인가, 민주노총의 민주주의가 위기라면 왜 위기인지 검증해보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민주노총은 80만명의 조합원이 속한 조직이라 절차상으로 민주주의적 제도를 필요로 하고, 설립목적, 즉 강령으로 표현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과 조직운영의 형식을 담고 있는 게 민주주의라고 지칭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총 조직 민주주의의 속성을 자유민주주의라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80만명이 자유롭게 말하고, 원하는 대로 하는 건 아닐 겁니다. 그보다는 민주노총의 조직 민주주의의 근본이 단결에 있고 단결을 통한 투쟁에 있다고 해야 적절할 겁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를 먼저 꺼낸 이유는, 만일 민주노총 내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면 그 위기의 정체는 단결과 투쟁을 가로막는 것이며 민주노총의 설립목적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몇 가지 중요한 쟁점에 대해 발제자께서 이야기 해주셨는데 관련해서 몇 가지 언급을 하고 아울러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발제 중에 관료제, 관료주의 관련해서는 결론에 동의합니다. 저도 월급 얼마 못 받습니다. 사무총국 인원이 40명 되는데 출퇴근 시간이 모호할 정도로 늘 숙식을 사무실에서 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일이 많아서 힘들지 시간이 남아돌아서 힘든 건 없습니다. 민주노총이 관료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자신의 견해나 다양한 견해를 수렴하지 못하는 경직성 때문에, 소위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간부들이 자기 견해에 빠져 있기 때문에 관료적이지 않은지 문제제기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구조가 관료주의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직선제 안 하면 반민주적이라고?

forum_05.jpg아울러 직선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직선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준비 없는 직선제는 무책임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민주노총의 사업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지만, 전체 조합원 가운데 40만명만이 의무금을 내는 풍토가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유지돼왔습니다. 당연히 내야할 의무금을 선거권과 연결짓고 선거권 안 주면 답답해서라도 의무금 납부를 행사하지 않겠냐는 식의 구조를 10년동안 방치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문제를 방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무시되어 왔던 10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의무금을 내지 않는 사람에게도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투표권을 주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혁신과제입니다. 또한 15개 지역본부 중 5개, 18개 연맹 중 5개 밖에 직접선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부정선거 시비로 두 군데 지역본부에서 시비가 붙어 있고, 작년 1월 선거 결과 때문에 아직도 사고지역 본부인 곳도 있습니다. 
왜 그런지에 대한 진단은 없고, 직선제 안하면 반민주적이라는 주장은 틀렸습니다. 왜 그런 주장들이 끊임없이 나오는지도 짚어보지 않고, 직선제냐 아니냐를 가지고 혁신토론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직선제를 가까운 시기에 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무금을 100% 내야 합니다. 가령 현대자동차노조가 4만8천명 분의 의무금 가운데 7천명 분을 빼먹고 조합비 내는 걸 10년 동안 해왔습니다만 이제는 고쳐야 합니다. 이런 행태를 유지하면서 혁신을 이야기한다면 누가 그 주장을 믿겠습니까. 연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충적으로 대의원 직선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발제자가 제시한 문제점에 동의합니다.
직선제냐 아니냐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맹과 지역본부의 위상과 관계에 대해서는 제기하신 바에 공감합니다. 지역본부에 의무금을 많이 내려주고, 사업비 많이 주고, 인원을 늘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민주노총의 사업을 제대로 집행하는 단위는 오직 지역본부밖에 없습니다. 연맹은 취사선택을 합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역본부에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광역 및 도 단위 지역본부에 월 300~400만원 주고 운영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100만원 정도는 사무실 운영비와 유지비로 들어가고 나머지 300만원을 출장비로 사용하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그러면서 사업하라니 6개월 동안 양말 팔러 다니지 않고는 지탱할 수 없습니다. 지역본부 예산으로 연간 적게는 7~8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주는 건 고작 3천~4천만원입니다. 모자라면 단위노조에 분담금을 또 책정합니다. 단위노조는 총연맹에 내고 지역본부에 또 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이게 10년째 누적되어 있는데 이거 안 고치고 지역본부 강화하는 게 말이 됩니까? 위상만 높지, 돈 없고 사람 없어 일을 못하고, 정치세력화 중요하다고 하면 뭐합니까? 연맹과 지역본부 위상문제에 대한 김승호 동지의 제안에 저는 동의합니다.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은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지역본부의 위상을 재정리하고 지역본부 사업을 할 수 있는 구조를 짜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이런 것들에 대한 방안, 혁신안을 8월까지 내놔야 한다고 민주노총 중앙위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런 방안은 민주노총 내에서도 해결책을 찾거나 개선하는 데 동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민주노총이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민주노총 간부들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원은 민주노조 운동을 포기할 생각도, 민주노총을 포기할 생각도 없습니다. 조합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식의 근거 없는 주관적인 판단이나 말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노총 간부들이 지난 10년 동안, 길게는 19년 동안 민주노조 운동을 하면서 합의하고 제도화했던 것에 대한 자기 평가가 필요합니다. 규정과 규약을 지키지 않는 것이 관행화되어 왔고 적당히 타협하고 원칙은 있으되 현실에서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습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결정 사항을 안 지켜도 된다는 얘기를 대의원대회 장소를 빠져나가자마자 공공연히 합니다. 결정해도 안 해도 된다는 것, 의무금 안 내도 된다는 의식을 타파하지 못한 채, 이걸 간부들이 제도를 뛰어넘는 관행으로 적당히 굳혀 왔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그 점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간부들의 위기입니다. 간부들의 편법, 간부들의 주관적이고 절충적인 태도, 원칙과 현실 사이를 엄격히 구분 하지 않은 점 때문에 조직운영에서 무원칙하고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실, 간부의 위기다

둘째는 다들 노동운동이 정파적이라고 얘기하지만 정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견해를 빌미로 해서 파벌적 이익을 추구하는 게 문제입니다. 정파들의 실천 강령은 대동소이합니다. 그것이 자주․민주․통일이든, 노동해방이든, 실제 투쟁 강령을 보면 대다수 조직이 거의 일치합니다. 도대체 지금 자주적 민중정부냐, 민주정부냐를 갖고 논쟁을 해야 합니까? 노동운동의 강령이라고 하는 민주노총 강령 안에는 자민통도 들어있고 노동해방도 들어있습니다. 물론 정파 간에 정치적 견해 차이가 완전히 없다고는 못하나, 더 큰 문제는 파벌적 이익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가령 민주노총 사무총국 간부 중에 한명이 회계부정을 저질러 징계를 해야 하는데 징계를 내린지 며칠 안 지나서 징계를 사면하자는 의견이 회의기구에서 나옵니다. 부정을 저질러 만인으로부터 지탄받고 있는 강승규 전 수석위원장을 총연맹 위원장이 제안을 해서 일주일 만에 제명을 했습니다. 반면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에서 취업비리를 일으켰던 사람 중에 간부들은 전혀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가만히 있습니까? 현대자동차 조합원들 중에 취업비리에 연루됐던 전․현직 간부들도 징계 안 받았습니다. 왜 가만히 있습니까?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편취되는 것이 분파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자민통 조직 안에도 있고, 소위 자민통이 아닌 조직에도 있습니다. 노연에도 있고, 전국회의, 전진, 노힘, 사회진보연대에도 다 있습니다. 이게 노동조합 간부의 위기의 연장입니다. 조금만 궁색해지면 정치적 견해 차이인 냥 떠벌입니다. 소위 정치적 견해라는 것을 무슨 방패막이로 삼고 이익을 추구하는 짓을 공공연히 합니다. 예를 들어 자민통 그룹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는 이수호 집행부가 들어서자 노조운동 망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계급성을 포기한 민족주의자들이 아니냐”,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과 무엇이 다르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수호 위원장의 사무실은 1년 8개월 동안 늘 점거되어 있었습니다. 중집회의도 늘 점거되어 정상적으로 회의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2005년 1월 대의원대회 사태도 진작부터 벌어졌던 일의 연속선에 있는 일이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교섭을 사회적 합의주의라고 합니다. 투쟁하고 파업하는데, 투쟁할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욕합니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 안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진 심각한 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우리 간부들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자기중심적인 태도, 엄격히 말하면 철학의 빈곤상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맑스-레닌주의도 사라지고 동유럽이 무너진 1990년대 이후 10년 동안 공부하는 기풍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말은 원칙이고, 남의 말은 원칙이 아니라고 합니다. 시너를 뿌리고 쇠파이프를 휘둘러도 그것이 합목적적이라면 가능하다고 얘기합니다. 민주노총 중집에서는 그것이 폭력행위였으므로 그에 따른 조치가 필요하다는 공식 보고가 이미 작년에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속조치를 취하려고 하면 다수의 힘으로 공격하려고 한다며 결정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규율이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