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입법안 논의'과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노동사회

비정규입법안 논의'과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편집국 0 2,427 2013.05.19 03:27

기간제 노동, 단시간 노동, 파견 노동 등 비정규노동 관련 입법안이 파행을 겪다가 마침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였다. 그동안 국회에서 다루어진 비정규노동 관련 법안들의 기본 취지는 “부당하게 차별적으로 대우받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법제적 장치를 통해서 보호”하는 데에 있었다. 그렇지만 입법 논의과정에서 비정규노동 사용의 규제방법 그리고 부당한 사용 시 처리방법 등에 대해 여·야가 서로 다른 안을 제출했고, 결국 민주노동당이 배제된 상태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의안이 통과되었다. 
그동안 민주노동당은 비정규노동자의 규모를 줄이고 강력한 보호장치를 도입하기 위해서 비정규노동 ‘사용사유’가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방향으로의 법제화에는 일단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환노위 통과 법안은 비정규노동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사용기간이 2년을 초과할 경우 무기근로로 간주하는 것, 파견노동자의 2년 이상 사용 시 사용사업주가 고용의무를 지는 것 등으로 되어 있다. 주지하듯이 노동운동 진영은 이러한 법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서 비정규노동 관련 입법안 자체에 대해 시비하는 것은 기존 노동운동의 입장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동안 논의과정이 노동운동에 어떠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곱씹어 보는 것이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두 개의 큰 문제제기를 중심으로, 이와 관련한 나름의 생각을 전개해보도록 하겠다.

사유제한, 정말 ‘당장’ 관철할 수 있었을까?

첫 번째 문제제기는 입법 논의과정에 임하는 노동운동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비정규노동 관련 논의들은 노동시장제도의 ‘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개혁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최대한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힘겨루기 과정이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특정한 집단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방식으로 추진되기 매우 어렵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 세력은 이번 논의과정에서 모든 요구 사항을 한꺼번에 관철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실의 힘 관계를 고려할 때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목표였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비정규노동 관련 입법의 핵심쟁점은 기간제 노동의 문제였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여당과 민주노동당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는데, 그것은 기간제 ‘사용기간’의 제한이냐, 기간제 ‘사용사유’의 제한이냐 하는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실상 이러한 차이는 노동시장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에 따른 것이었다. 사용기간 제한을 주장하는 쪽은 사용사유 제한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가져올 것이고 그것은 소위 기업환경의 악화 및 실업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 위에 있었다. 반면 사용사유 제한을 주장하는 쪽은 사용사유의 전면 허용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급격하게 증대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 상황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렇게 전혀 다른 관점에서 노동시장 상황을 바라보는 양측이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관점이 다르면 같은 ‘사실’도 다르게 보는 법이다. 어느 쪽도 상대방을 자신의 논리로 설득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결국 힘의 논리가 작동하게 된다. ‘투쟁으로 돌파하기’가 현실적으로 힘의 열위에 있는 쪽에게 마지막 카드이겠으나, 그걸 활용한다고 사정이 쉽게 뒤집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힘이 열위에 있는 쪽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개다. 하나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그것이 관철될 수 있는 힘 관계로의 상황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우위에 있는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완전히 내줄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입장이 관철되는 상황에서도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최대한 유리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지 못하지만, 상대방이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은 막을 수는 있다. 
비정규노동 관련 입법과정에서 노동조합운동이 보여준 모습은 어느 쪽에 가까운 것이었을까? 수적 열위에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입장을 훼손하지 않고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이 민주노동당에 있었을까? 대의원대회도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는 총연맹이 “세상을 바꾸는 파업”을 통해서 당장 힘 관계를 극적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었을까?

교착 넘어서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준비했어야

이처럼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 할 때 판단 기준은 ‘그 선택을 통해 자신이 대표하고자하는 집단을 책임질 수 있는가’하는 점일 것이다. 또한 ‘차선일지라도 무엇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하는 점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물론 차선에 만족하지 않고 최선의 전망 속에서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인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하지만 대표를 자임하는 조직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하며, 또 그 사정을 대중에게 책임 있게 설명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번 비정규노동 입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규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부·여당의 법안이 비정규노동자들의 차별적 처우개선을 ‘명시’하고 있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 및 방법에 대한 이견이 문제였지만 그리고 노·정 간의 기본적인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적 처우개선을 위한 법률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취지 자체의 의의를 간단하게 폄하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정부·여당이 사용사유 제한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역량에 한계가 있었다면, 차라리 이 문제에서는 일단은 양보하면서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제대로 차별을 규제할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장치가 마련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특히,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용사유 제한을 전제로 2년의 사용기간 제한을 먼저 합의한 것에 대해서 되씹어 봐야 한다. 민주노동당에서 주장하였듯이 사용기간이 법으로 제한되면 2년마다 기존의 기간제 노동자를 다른 기간제 노동자로 대체하는 일이 대량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현실적인 정황을 고려했을 때 현재의 노동시장 상황에서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표를 벗어던지는 것이 물론 가장 중요할 테지만, 일단은 비정규직으로서라도 계속 일할 수 있는 것, 그러면서 조금씩이라도 고용조건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사용사유 제한을 아직 관철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2년의 사용기간 제한에 먼저 합의한 것은 잘못되는 경우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정황을 염두에 두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용기간 제한은 기간제노동 대신 정규노동을 사용하도록 유도되지 않는 경우에는 무용한 규제방식일 것이기에, 이와 관련된 보완적인 장치들이 마련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뒷북일 수도 있지만, 기간제한을 받아들였다면 계속 사유제한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법정 최저임금 수준을 높이고, 사회적 안전장치들이 충분히 마련되도록 하며, 근로감독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차별처우 판정여부의 범위를 기업에서 지역 노동시장으로 확대하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같은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방안 등으로 의제를 확장해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문제의식이다. 가능한 경우의 수에 모두 대비하기보다는 하나의 경우만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최선의 전망 갖되 차선이라도 확보하자 

한편 당연하게도 비정규노동 문제는 단순히 ‘입법’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좀 더 과감하게 표현하면, “비정규노동 문제는 중소기업 부문의 문제”다. 비정규노동자의 90% 이상이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있고, 또 임금수준이 정규노동자 대비 50% 대에 머물고 있으며, 더 나아가 대기업·중소기업을 불문하고 비정규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크게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이렇듯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중소기업의 낮은 임금 수준과 차별적 처우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따라서 비정규노동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시장지위 격차, 또는 잘못된 하도급 구조라는 산업구조를 개선하는 것을 통해서 중소기업 부문의 낮은 임금수준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과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는, 노동시장 전반적인 문제의 하위영역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비정규노동 보호입법이 마련된다고 해서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노동운동 진영이 입법문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비정규노동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지 벌써 6년이 지나갔다. 문제는 산적해 있는데 특정한 문제에 집중하느라 그나마 충분하지 않은 역량을 소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를 곱씹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현실 사회에서 노동 관련 법·제도 개혁 또는 정책대안 마련의 주체는 결국 노·사·정 삼자이다. 어느 일방만의 배타적인 주도에 의해서 사회적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아무리 노·사 간 그리고 노·정 간의 관계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여도, 그것의 돌파는 ‘투쟁’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더 나아가 단순히 투쟁과 교섭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시각도 충분하지 않다. 아주 조금이라도 법·제도 및 정책이 개선될 수 있도록, 또는 적어도 아주 많이 나빠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면, 어떠한 교섭이라도 필요하고 또 해야 한다. 최선의 전망을 갖되 차선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아니 최악이 아니라 차악이라도 얻어낼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대표의 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완전하게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충분하더라도 이상적 수준보다는 낮추어진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현 시점에서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노조운동, 비정규노동자 대표하고 있을까?

주지하듯이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주로 대기업 정규노동자들을 조직기반으로 하는 기업별 노동조합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별 노동조합을 지향하고 또 만들어 가고 있지만, 당분간은 기업 조직의 틀을 쉽게 벗어날 수 있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어지는 두 번째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다. 조직 및 운영 등 그 활동의 폭이 구조적으로 기업 내부로 한정되기 쉬운 기업조직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시장 전반 또는 지역 공동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비정규노동 사안을 과연 충분히 대표할 수 있는 것일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비정규노동 문제는 노동시장 전반의 문제이다. 따라서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논의의 초점이 기업 내부가 아니라 전국 및 지역 차원의 노동시장에 맞춰져야 한다. 그리고 논의의 대표 당사자들은 노사관계 전반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실질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용자 측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운동을 대표하는 양대 노총 역시도, ‘노동’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조직적 기초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와 같이 조직률도 낮고 조합원 분포도 고르지 못한 상태에서, 여전히 기업별 노동조합의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시장 전반에 대한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삼는 것 자체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니라 산업별 노동조합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산업별 노동조합이라도 그것이 기업 중심적 조직들의 수직적 결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면, 전국적 수준 또는 지역적 수준에서의 노동시장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역노동시장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좀 더 지역에 토대를 둔 노동조합 활동이 필요하다.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노동조합운동은 지역에 토대를 둔 것이라기보다는 ‘지역사회운동의 유기적 구성부분’이어야 한다.
‘지역에서 노동자공동체 만들기’라는 비전
노동조합운동의 동력이 기업 틀에 묶여 있는 경우, 그리고 비정규노동자보다는 정규직노동자가 조직의 주요 구성원인 경우, 노동조합운동의 투쟁은 자기 기업내부의 비정규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노동시장 전반에 걸쳐 있는 비정규노동 문제의 해결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조건에서는 노동조합운동 내에서 비정규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또는 이를 위한 교섭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투쟁의 주체는, 정규노동자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기존의 노동조합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비정규노동자들의 조직화가 헌신적인 노력 속에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고, 지역에 기초한 일반노조 건설을 위한 운동도 활기차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이러한 움직임이 비정규노동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 있거나 교섭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세력으로 전화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노동자들은 ‘기본생활의 문제’에서는 벗어나 있을지 모르나, 비정규노동자들은 여전히 바로 그 기본 생활의 문제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즉 이들의 투쟁은 임금을 얼마 더 받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기 위한 차원의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에 있는 정규직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연대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비정규노동자들은 스스로 투쟁의 주체로서 ‘자립’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노동조합운동은 ‘내부 분열’이라는, 치유를 위해서 오랜 시간이 필요한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규직노동자들에게 ‘규범’을 강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계급운동’이 분리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 조건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노동조합운동이 ‘지역 노동자공동체 건설운동’을 자신의 전망으로 삼고 매진할 때 가능하다 할 것이다. 기업의 벽을 허물면 지역의 다른 노동자들이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기업 조직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보이게 된다. 즉 같은 기업 조직에 속한 노동자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에서 같이 생활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고 느끼게 되고, 기업 내부의 이해당사자 문제만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이해관계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 공동체를 중심에 두는 관점에서 노동문제를 바라보게 되면 정규노동자의 문제와 비정규노동자의 문제가 별개의 것으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의 조직 수준을 기업에서 지역으로 전환시키는 조직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것, 또는 노동조합운동의 정체성의 기초를 기업조직에서 지역수준으로 전환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다. 이러한 ‘공동체적 노동조합운동(Community Unionism)’은 기업 노조들이 사회적 의제에 관심을 갖고 그 운동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의미해야 할 것이다. 
물론 기업별 노조가 지역 공동체로 시야를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곧 정규직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할 것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시피, 그러한 전망 속에서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금 노동조합운동은 ‘계급’ 없는 노동조합운동으로 될 수밖에 없다. 순진한 생각일 테지만, 노동자계급운동적인 노동조합운동만이 한국 사회의 양극화 해소의 밑거름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갈림길 앞에서, 책임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부도 사용자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끼리라도 계급적 신뢰를 튼튼하게 구축하여야 하는 것 아닐까? 정부와 사용자가 해주지 않는다면 노동자들끼리라도 스스로 자율적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정부와 사용자만을 탓하지 않고 노동자들 내부의 연대의 부족을 반성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강력한 연대를 이루는 것만이 정부와 사용자를 굴복시킬 수 있는 강력한 투쟁과 교섭력의 진정한 토대이지 않을까? 대답은 여전히 기존 노동운동의 몫이다. 
원래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비정규노동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대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왔는가? 또 그 역할을 자임할 만한 조직적 기반을 갖추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더욱 정진하면 된다. 만약 아니라면 그렇게 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한다. 현재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굳건한 신뢰를 이끌어내어 그것을 토대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리더십’의 형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조직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에서 지역 중심의 공동체적 노동조합운동으로, 노동조합운동의 정체성과 조직화 전략을 전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물론 길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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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