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자 나삼순 씨의 웃기지 않는 이야기

노동사회

청년노동자 나삼순 씨의 웃기지 않는 이야기

편집국 0 3,925 2013.05.19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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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일명 ‘비정규 보호법안’)과 노동부가 발표한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 방안(일명 ‘로드맵’)이 정부안대로 적용되었을 때 실제 비정규노동자의 삶은 어떠할지를 상상하여 쓴 것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조직 및 인물은 모두 가상임을 밝힙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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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삼순 씨는 특급호텔 총주방장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다. 그래서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연말이나 주말 등 호텔의 행사가 많을 때에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험을 쌓기도 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호텔에서는 ‘1년 계약직’으로 우선 고용하고 열심히 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제안하였고, 이에 나삼순 씨는 흔쾌히 응하여 파트타임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계약직으로 일을 하게 됐다. 
그런데 2006년 12월30일, 세 번째 체결한 근로계약 만료일을 하루 앞둔 날, 나삼순 씨는 인사팀 대리로부터 더 이상 재계약을 할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게 되었다. 해고 이유는 계약직을 장기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 새로 생겼기 때문이란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하나로 정규직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삼순 씨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비정규 보호법으로 인해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터라 실망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회사 관리자 설명에 의하면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것은 2007년 1월1일부터 계약직으로 채용된 경우만 해당된다고 한다.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생겼는지 이해되지도 않고, 그런 법이 생겼다고 해서 정규직은 시켜주지 않고 회사를 그만두라는 회사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삼순 씨는 5~6년간 계약직으로 죽도록 고생만하다 잘린 언니들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어느 날, 왠진 모르겠으나 합법적으로 잘리다

나삼순 씨는 해고가 되자마자 잠시 일을 접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지방노동사무소, 노동위원회, 노무사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정말 계약직을 오래 사용하면 안 된다는 법이 생겼는지, 그런 법을 이유로 해고를 해도 되는 것인지”를 문의하였다. 그러나 답변은 애매모호하기만 하였다. 회사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을 이유로 해고한 것은 부당하지만, 이를 법적으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규직을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든지 안했든지 간에 삼순 씨는 일단 근로계약 기간이 정해진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따져 들면 회사가 비정규직 보호법을 이유로 해고한 것이 아니라 다른 ‘합리적인 경영상의 사유’(근무평점, 조직개편에 따른 인력축소의 필요 등)를 제시하며 재계약을 할 수 없었다고 허위주장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 이유였다. 
법을 모르고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살아왔던 나삼순 씨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법’적인 설명이었다. 아무튼 나삼순 씨는 이길 가능성이 명확하지 않은 법적 다툼을 하느라 시간과 돈을 들이는 대신에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을 가입대상으로 하는 평등여성노동조합에 가입해서 다시는 이런 억울한 일을 겪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4개월여 동안 구직활동을 하며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무엇인지 교육을 받은 나삼순 씨가 드디어 S호텔에 취업하게 됐다. 3개월 계약직이다. 사실 3개월 계약직보다 좀 더 나은 1년 계약직에 취업이 될 뻔도 했다. 하지만 나삼순 씨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를 읊으며, “근로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해줄 것”을 요청하자 그 회사는 갑자기 회사사정이 생겼다면서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하려고 했다. 결국 나삼순 씨는 ‘일단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난 다음에 권리를 주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한 이후, 1주 동안의 연장근로시간은 몇 시간인지, 임금 구성항목에 연장, 야간 근로시간이 몇 시간이 포함됐는지, 휴가는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회사 인사담당자는, “우리는 법대로 한다. 자세한 건 출근해서 조리팀에 가서 알아보면 된다”면서 황급히 근로계약서를 챙겨 넣었다. 나삼순 씨는 근로계약서를 한 장 받고 싶었지만 더 토를 달았다가는 인사담당자가 당장 근로계약서를 찢어버릴 태세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계약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법에는 왜 근로계약서를 교부해주라는 내용은 빠졌는지 원망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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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워라! 근무시간 유연성, 새로워라! 수당 없는 야간근로 

해고로 인한 분노와 설움을 딛고, 새로 배치된 중식당으로 힘차게 다시 출근한 나삼순 씨! 그러나 첫날부터 근무스케줄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월 4회의 휴무는 비교적 중식당이 한산한 월요일이고, 화요일과 수요일은 16시부터 20시까지, 그리고 목, 금, 토, 일은 13시부터 22시까지가 근로시간이다. 이건 정말 죽음이다. 가장 바쁜 시간인데다 그것도 모두 오후시간대이니, 주행성 동물인 사람으로서 어찌 피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금, 토, 일은 반드시 연장근로가 수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31세의 건강한 삼순 씨로서도 기가 질릴 노릇이었다. 
삼순 씨의 근로시간이 이처럼 짜인 이유는 정규직들이 주간을 중심으로 근무를 하기 때문이었다. 이거 계약직에 대한 차별이 아니냐고 따져 묻자 중식당 매니저 왈, “저녁시간이 바빠서 계약직을 채용한 것인데 무슨 차별이냐? 경력이 쌓이면 훨씬 더 편해질 테니 열심히 일이나 해라”란다. 오히려 큰소리다.   
한편 S호텔에는 노사합의를 통해 도입할 수 있는 온갖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제도, 예컨대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보상휴가제 등이 정착돼 있었다. 노동조합이 수많은 구조조정 끝에 살아남은 조합원들로 구성되어 있어서인지, 아니면 노사화합상을 수차례 수상한 만큼 회사에서 노무관리를 정말 잘해서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때문에 삼순 씨는 주말에 연장, 야간근로를 해도 50%의 수당은 돈으로 받지 못하고 휴가로 써야 하는데, 계약직의 휴가 시기는 중식당 매니저가 일이 없는 때로 임의로 정하고 있었다.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 신청했더니…  

3개월 계약이 3회 갱신되고 난 뒤의 어느 날이었다. 나삼순 씨는 계약직인 자신은 야간과 주말에 근무스케줄이 집중되고 휴가 및 휴무일정이 강제로 정해지는 반면, 동일한 노동을 하는 정규직은 주간과 평일 중심으로 근무스케줄이 정해지고 휴가를 지정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해서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을 신청하였다. 차별시정신청 하기 전에 노동상담을 할 수 있는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상담을 해 보았더니, 답변이 한결같았다. 근무배정 관련해서 차별대우인지 아닌지를 판단한 전례가 없어서 승소가능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긍정적인 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해 볼 수 있는 것은 해보기로 마음먹은 나삼순 씨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차별시정신청을 위해 노무사까지 선임했다. 
차별시정신청을 제기하자 회사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답변서를 제출했다. 그 주된 내용은 ①계약직을 사용하게 된 이유가 업무량이 많은 야간시간의 인원충원을 위한 것인 점, ②계약직들은 책임이 없는 업무보조에 그치고 중요한 업무를 하기에는 경력이 부족한 점, ③근로계약 체결 시 1주 40시간, 1일8시간, 1주 12시간 내 연장근로의 범위에서 근로시간을 언제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사에 위임했고, 휴무도 회사사정에 따라 변경할 수 있다고 정한 점, ④휴가사용을 강요하지 않았고 경영상의 사정을 고려하여 휴가를 사용할 것을 권유한 것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동일했던 점 등등 때문에, 결국 ‘합리적인 차별’이라는 것이었다. 
나삼순 씨 측도 회사의 답변서에 대해, ①계약 체결 시 야간업무를 중심으로 하게 될 것이라는 언급이 없었던 점, ②나삼순 씨는 중식당 주방에서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점, ③법정근로시간 내에서 근로시간을 회사에 위임하고 휴무를 회사사정에 따라 변경할 수 있다고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은 정규직도 동일한 점, ④휴가사용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비교적 업무가 한산한 날에만 휴가사용을 했을 리 만무하다는 점 등을 들어 ‘부당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며, 근무스케줄 편성 및 휴가 사용에 있어서의 차별을 시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차별시정 신청을 한 지 3개월 후~, ‘기각’이라는 판정결과가 나왔다. 야간의 인력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계약직을 채용하였고, 계약직의 경력 및 담당하는 업무의 중요도를 고려했을 때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및 휴가사용과 관련해서는 강요했다는 입증자료가 없다는 것이 기각의 주된 이유였다. 나삼순 씨는 눈물을 머금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제기하였다.     

소수조합원 노조의 교섭신청? 그까이꺼 대충~

우여곡절! 좌충우돌! 끝에 나삼순 씨의 3개월 계약기간은 4회째 재계약되었다. 사실 나삼순 씨는 차별시정신청 때문에 이번에는 재계약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회사가 “차별시정신청을 한 것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한다”는 비정규보호법을 의식했던 것인지, 일단 재계약은 할 수 있었다. 
한편 평등여성노동조합은 나삼순 씨를 비롯해 조합원인 S호텔 비정규직들의 고용보장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S호텔 노동조합에게 평등여성노동조합에서 1명을 교섭위원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S호텔 노동조합은 ‘민주적 의사결정’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룰 뿐이다. 평등여성노동조합은 회사를 상대로 직접 교섭 요청도 해보았으나 회사는 “법대로 하자”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자율적으로 단일 교섭창구를 만들지 못한다면 과반수이상을 조직하고 있는 S호텔 노동조합과 교섭할 수밖에 없다면서 ‘합법’적으로 교섭을 거부한 것이다. 
단체교섭을 거부당한 평등여성노동조합은 조합원인 S호텔 소속 비정규직 20여명의 고용보장 및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집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회를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 회사는 단체교섭권이 없는 평등여성노동조합이 ‘무리한 주장’을 하기 위해 집회를 개최해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을 한다는 이유로 평등여성노동조합 및 나삼순 씨 등 조합원을 상대로 고소 및 집회금지 가처분신청, 손해배상청구 등을 하였다. 

노동자 자부심 무너뜨리는 ‘비정규’ 낙인    

S호텔에 3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한 나삼순 씨는 결국 4회째 재계약을 끝으로 더 이상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 회사입장은 2년 이내에 계약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2년이 되지 않은 나삼순 씨와 더 이상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은 회사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해고통보를 듣자마자 관할 노동사무소에 찾아갔다. 노동사무소의 근로감독관은 계약기간 만료라서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한다. 3개월 계약기간이 정해진 근로계약서에 본인이 서명하지 않았느냐고도 묻는다. 
맞다. 나삼순 씨가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정말 죽어도 서명하기 싫었지만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으면 실업자 생활을 면할 수 없어서 했다. 그런데 결국 그 서명 때문에 또 짤렸다.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비정규보호법을 달달 외울 정도로 노동법을 공부하고 실천도 했지만, 근로계약서의 본인 서명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보호 장치는 아무 것도 없었다. 
노동자로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던 나삼순 씨가 해고통지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 날. 현관 우편함에는 경찰서의 출석요구서, 카드대금 독촉장, 가압류통지서, 청첩장 등이 줄을 서서 삼순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비정규 보호법과 노사관계선진화 방안 하늘 아래 계약직노동자가 직업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꿈을 이루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