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

노동사회

'낯선 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

편집국 0 3,262 2013.05.19 03:23

 


108_book_01.jpg




대문자로 시작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단어는 본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잘 쓰이지 않는 사전적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디아스포라는 소문자 보통명사(diaspora),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형성된 ‘이산의 백성’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서경식 짓고, 김혜신 옮기고 돌베게 냄. 1만2천원.] 

‘낯선 자’로 살아가기의 불안함

특히 이 책의 작가는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세계 분할과 식민지 쟁탈전, 노예무역, 지역분쟁 및 세계대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세계화 등 몇 가지 외적인 이유에 의해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켜 디아스포라로 지칭한다.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들, 노예해방 이후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등장한 중국인 노동자들(쿨리),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하는 사이 대대로 살던 고향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 등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와 땅을 떠나도록 강요당한 사람들은 모두 ‘디아스포라’인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 한 세기 동안 식민지배,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군사정권에 의한 정치적 억압 등을 거치며 상당수에 달하는 사람들이 세계 각지로 이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600만명에 이르는 코리언 디아스포라 중에는 재일조선인인 작가 서경식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일본에 거주하지만 한국국적을 가졌고, 납세는 하지만 참정권은 없다. 그의 두 형(서승, 서준식)은 한국 유학길을 택했지만, 군사정권시절 정치범으로 투옥됐다. 

작가는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예술작품, 미술품들, 사람들을 기행하며 자신과 같이 한 사회에서 디아스포라, 즉 ‘낯선 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삶인지를 보여준다. 런던으로 망명한 마르크스,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되었다가 자살한 이탈리아 작가 프레모 레비, 그리고 윤이상, 레지스탕스 장 아메리, 나치에게 부모를 잃고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 시인이 된 파울 첼란, 재일조선인 화가 조양규, 니키 리, 데이비드 강, 이란계 미국 아티스트 시린 네샤트, 인도계 디아스포라 자리나 빔지 등 그가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무국적 또는 망명자로 타의에 의해 버림받은 이들이다. 작가는 그들의 흔적을 좇으며, 그들이 겪었던 차별의 아픔을 공감하며, 그들을 위로한다.

우리 속의 디아스포라, 우리 밖의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 내게는 무척 생소했던 이 단어의 뜻을 책 한권을 다 읽고 나서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나 자신도 곳곳에 퍼져서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에게 무관심했던 탓이리라. 문득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디아스포라인 외국인 산업연수생, 이민자, 불법체류자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과연 민족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자문해본다. 결국 나 역시도 디아스포라의 삶을 차별하는 자에 속하는 건 아닐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10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