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는 것에 대한 고찰

노동사회

착하다는 것에 대한 고찰

편집국 0 3,016 2013.05.19 07:24

 


moon_01.jpg집에 다녀오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3시간30분간 이어질 버스여행의 무료함을 달래줄 책 한권을 꺼내기 위해 책장을 바라보다 시선이 머무른 『착한사람 문성현』에서 10년 세월을 줄달음쳐 그 날의 감동이 어제의 일인양 새로워진다. 

8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이 책에서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는 단편이 바로 단편집의 제목으로 쓰인 <착한 사람 문성현>이다. 작가 윤영수는 50년대 후반 서울의 한 양반가에 태어난 뇌성마비 장애인 ‘문성현’을 태어난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차분하게 관찰해 나간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의 삶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못하고 여유가 생기면 할 수 있는 자원봉사의 대상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나에게 이 소설이 강한 충격이었던 이유는 장애인에게도 자아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 소설이기 때문이다.

살아있음에 대한 환희와 감동

<착한 사람 문성현>에는 그야 말로 ‘착한 사람’이 무더기로 등장한다. 뇌성마비를 앓는 장애인 주인공만이 아니라 이 가족 전체가 마치 단군 시절 백성처럼 어질다. 끊임없이 엄습하는 재난의 연속 속에서도 인간의 선한 바탕을 잃지 않는 이 집안사람들을 집요하게 그려내는 펜 끝에서는 작가의 오기마저 느끼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작가가 혼신의 힘으로 완성한 아름다운 영혼의 초상은 물론 주인공 문성현이다. 만 39세를 끝으로 고단한 육신으로부터 놓여난 주인공이 수많은 곡절을 거쳐 말년에 도달한 대긍정의 사유는 사는 일 자체의 존엄성을 곰곰이 반추하도록 압박하고야 만다. 주인공을 간병하는 두 여인네의 악착스러움마저 용서하는 그의 모습에 과연 ‘착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착한 사람 문성현>만이 폐부를 찌르는 감동을 선사하는 것만은 아니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신선함과 감동을 안겨줄 나머지 7편의 단편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압권은 <착한 사람 문성현>이다. 

나의 취미는 책읽기다. 책을 수집하는 것은 나의 또 다른 취미다. 책장을 가득 메운 책들에서 풍기는 냄새가 좋고, 켜켜히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을 철 지난 책들을 다시 꺼내어 읽는 재미는 9회 말 역전승으로 이겨낸 야구게임에 비길만하다.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흉물스럽게 의식하며 연명해야 하는 장애인의 괴로운 신음과 한 맺힌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지만 결국 어머니에게서 받은 헌신적인 사랑을 기억함으로써, 그리고 살아 있음의 환희를 깨달음으로써 생에 대한 비범한 긍정으로 나아가는 순간의 감동을 혼자만 갖기엔 너무나 벅차 많은 이들에게 선물했던 『착한 사람 문성현』. 최근 3~4년간 이 책을 선물한 사람이 없었다. 봄이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다시 선물하고 싶다.(윤영수 짓고, 창작과 비평 냄. 7,000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