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정복’ 야욕을 품고 외계로 돌아오다

노동사회

‘지구정복’ 야욕을 품고 외계로 돌아오다

편집국 0 2,897 2013.05.19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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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공계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사무직 등으로 7년간 일해 온 글쓴이가 회사를 그만두고 작년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에서 활동을 시작하기까지의 고민을 정리한 것입니다. 고액임금노동자 생활을 그만두고 막내 조직활동가로 삶을 바꿔보니, “왜 진작 그만두고 시작하지 못했는지 지금도 후회 된다”고 하네요.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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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내는 ‘외계인’입니다. 외계인이라고 해서 금성이나 안드로메다 은하계에서 날아온 손가락 세 개짜리 진짜 외계인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나 행동하는 양식이 워낙 독특해서 학생시절 같이 활동했던 학교 후배들이 지어준 별명입니다.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특이했던 건 제 아내가 아니라 오히려 조직 안에서 유별나게 말 안 듣고 조직 중앙간부 알기를 우습게 알던 제 후배들이었지만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저도 외계인이더군요. 저는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 조직에도 가입했었지만, <샤르만트>라는 고전기타 동아리에서도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물론 최근까지도 그 동아리 출신 동기들과 꾸준히 연락하고 만나고 했습니다. 이제는 다들 아이 한 둘은 가진 학부모이자, 다니는 회사의 주요 실무진이고, 가족의 건실한 아들, 며느리로 살아가고 있죠. 한동안 먹고 사느라 연락이 뜸하다 싶더니 어느 정도 사회에 적응하고 나서는 자주 모이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 가면 저도 그만 ‘외계인’이 되고 맙니다.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혈기 왕성한 20대를 보낸 사이임에도, 그들이 보기에는 유치원생까지 애국 조회시키는 기막힌 나라꼴을 비웃는 것도, 동기 결혼식에 전두환이 몇 만 원짜리 축전을 보냈으니 이제 두환이는 뭐먹고 사냐고 키득거리는 것도, 사위와 딸은 없고 아들과 며느리만 존재하는 우리 사회를 비웃는 것도 대단히 이질적이고 불편한 사고방식이었나 봅니다. 제 자신의 사고방식이 이상한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지만, 그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정말로 제가 외계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hskim_01.jpg열성 민주노동당원이자 눈칫밥 먹는 ‘직장인’ 

사회관계의 총체가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는 그동안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회사에서는 정신없이 일하고, 무능한 상사를 보면 엄청 씹어대는 ‘직장인’이고, 퇴근하면 당과 학교 후배들과의 만남 속에서만 지내는 민주노동당 ‘열성 당원’이었으니까요. 

주말에 집회가 열리면 신이 나서 사람들과 함께 돌아다니다가도, ‘동지’들과 떨어져 ‘회사원’의 신분일 때는 단기필마로 힘겹게 싸우던 노조위원장이 해고되거나, 대선을 앞두고 상무라는 인간이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하거나, 회사 건너편에 있던 정부종합청사 앞마당에서 이틀 건너 한 번씩 집회가 열리더라도 쥐 죽은 듯 동료직원들 여론만 살폈습니다. 오히려 운동권 물이라고는 먹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민주노동당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면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비겁하게 눈치나 보던 제 자신을 부끄러워하곤 했습니다. 

회사생활이 길어지고, 직급도 올라가면서 당원과 활동가들과의 인간관계보다 회사동료와 업체 직원들 간 관계가 더 많고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셔도 회사동료와 함께 소주 삼겹살을 먹는 것이 더 즐거워지고, 얘기를 해도 기계가 어쩌고, 로봇이 어쩌고 하는 회사 업무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5천만원에 육박하는 연봉을 가지고 여느 직장인들처럼 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그러다가 더 잘나가는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6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1년의 휴식 끝에 시화공단에 있는 중소기업으로 회사를 옮기고 난 후의 일입니다. 가서 보니, 토요일을 포함한 평일에는 아침 7시 조출회의서부터 밤 9시, 10시까지 이어지는 격무에 밀려 당 활동은커녕 지구당에서 날아오는 메일을 열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고, 일요일에는 마냥 누워 자기 바빴습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6, 7개월을 보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민주노동당 열성당원 역할을 하고, 행복한 남편과 아빠가 되리라는 계획이, 점점 평범한 기술자로서 자신의 모든 생활을 바쳐 온통 회사 일에 파묻혀 사는 상황으로 뒤바뀌었습니다. 제 ‘정체성’의 앞길에는 일과 돈에 환장한 관리직 노동자밖에 남질 않은 셈이었지요.

가족이 행복할 길 찾아, ‘회사’를 떠나다 

그쯤 해서 저는 제 인생과 회사생활과 운동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연세 드신 부모님과 4개월 된 아들 녀석의 인생에 대해서도, 굉장한 실력자가 되어 언젠가는 진보정당에서 떵떵거리며 일하겠다는 아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뒤집기 쇼와 허리 젖히기 묘기를 보이며 기저귀를 갈아 채우는 저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아빠들이 그러하듯이 이렇게 ‘괄목상대(!)’하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열심히 벌어야 될 텐데’하는 생각뿐입니다. 아내에게도 빨리 고소득 커리어우먼이 되라고 농담합니다. 

그렇지만 머릿속의 삶과 실제 생활의 심각한 차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갈등은 가족들에게는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내는 모습으로, 제 자신에게는 잦은 감기와 몸살, 온갖 염증과 부스럼으로 나타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저를 조용히 지켜보던 아내가 어느 날 진심으로 제게 말해 주더군요. ‘난 형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해.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하기를 바래. 이건 돈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야’라고.

제 꿈은 ‘평생 월급쟁이 엔지니어’였습니다. 회사생활 하면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머리가 허옇게 되어서도 구부정하게 공구가방 들고 출장 오는 독일이나 일본의 엔지니어의 모습이었습니다. 속으로는 어떤 고민과 상황에 처해 있는지 모르지만, 월급과 직급에 연연하지 않고 나이를 먹어서도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히 일하는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새로 만든 자회사로 직원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사장 동생을 자회사 사장으로, 사돈의 팔촌을 경리부장, 총리과장으로 앉히고는, 엉터리 연구소를 만들어 세금 빼먹고 국책사업비 지원금을 타먹는 모습이 중소 제조업체의 일반적인 모습임을 알고서, 더 이상 엔지니어로서 ‘회사’에서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잠투정으로 보채는 아이를 재워 놓고 밖에서 담배를 피워 물다가 문득 ‘이제는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야겠다’고 결심을 굳혔습니다. 부끄럽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새삼 과거의 기억과 분노를 기억해 낸 뒤의 일입니다.

“여러분, 함께 지구를 정복합시다!”

이십대 후반까지 형성되어 유지된 세계관은 그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 세계관이 된다고 합니다. 비록 학교 졸업 후 주구장창 회사 일에 매달려 살았지만, 다행히도 저는 이 거대한 자본의 소용돌이 속에서 분해되지 않고 남은 셈입니다. 학생시절 그 많던 동지들이 하나 둘씩 자본의 논리에 설득당하고, 협박당해 산산이 분해되어 가는 꼴을 보면서 온전하진 않지만 이나마 제정신을 차리고 살아온 제 자신이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 아마, 저와 제 아내를 UFO로 납치해서 ‘외계’의 생각을 주입시킨 외계인 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그동안 지구인 속에서 지구인처럼 살려고 애를 썼지만, 어차피 외계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외계인 식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없는 이상 여러분과 같은 외계인의 무리 속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외계 바이러스를 퍼뜨려 지구를 정복하려고요. 결국 작년 5월 말일로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그만둔 날, 마석 모란공원을 찾았습니다. 있는 힘껏 외계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같은 동포를 찾아내 지구를 정복하겠다는 야욕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외계인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