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8분’ 노동 증가가 부른 ‘10주 파업’

노동사회

‘하루 18분’ 노동 증가가 부른 ‘10주 파업’

편집국 0 2,950 2013.05.19 07:21

독일 공공부문에서 작년 2월에 분출한 노사갈등이 지금까지 부분적으로만 타결이 되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명목상으론 주당 1시간 반의 근로시간 연장을 둘러싼 의견대립이 핵심쟁점이다. 사실 주당 38.5시간을 주당 40시간으로 늘리는 문제를 놓고 10주 이상 파업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가는 모습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곧장 수긍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모든 파업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항상 복합적이다. 이번 파업의 배경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들이 숨어 있다. 몇몇 관련 사실들을 함께 놓고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 왜 ‘하루 18분’ 더 일하는 문제를 놓고 수십 만 명의 독일 공공서비스 부문 노조원들이 ‘10주 이상’ 일손을 놓고 사측과 대결을 벌이는지를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중요한 배경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 최근 독일의 주요 주 정부 선거에서 노조 친화적인 사회민주당(SPD)이 자리를 상실했다는 점, 둘째, 지난 총선에서 기독민주당(CDU)이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승리를 거둬 사민당과 ‘대연정’을 하고 있다는 점. 즉 보수적인 기민당이 연방정부 여당이 되면서, 비록 연정 때문에 약간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주 정부 수준에서는 기민당의 원래 지향이었던 ‘재정긴축’과 ‘노조 길들이기’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 셋째, 최근 노조원의 지속적인 감소를 경험한 독일 서비스부문 노동조합 베르디(Ver.di)에게 조직의 침체를 딛기 위하여 강도 높은 활력소가 필요했다는 점 등이다. 

하루 18분 연장? 1년 9일, 25만개 일자리!

사용자들이 주장한 것은 ‘주당 1.5시간 연장’이다. 사용자대표는 “이는 한 주에 90분 더 일하자는 말이다. 다시 말해 (주 5일 근무제이므로) 하루 18분 더 일하자는 것 밖에 안 된다”며, 노동조합의 경직성을 비판했다. 반면 브지르케 의장을 비롯하여 노조지도부는 “주당 1.5시간 노동시간을 늘리면 일자리 25만개가 날아간다”고 진단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일자리 상실 저지를 위해 궐기할 것”을 호소했다. 또 사용자들의 ‘하루 18분론’을 거꾸로 확대하여, “주당 1.5시간이면 한 달에 6시간이고 1년이면 72시간이다. 이는 일일 노동시간을 8시간 노동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의 9일 근무시간에 해당한다. 사용자들은 우리보고 1년에 9일을 공짜로 더 일하라고 한다!”며 조합원들에게 근로시간 연장의 부당함을 역설했다.  

한편 이번 파업은 ‘주당 노동시간 연장’이라는 단일의제를 두고 진행된 것이지만, 이것이 타결되는 과정은 조금 복잡했다. 독일 공공부문은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 이렇게 세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 파업은 그 중에서 주 정부와 지방 정부의 노사관계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협상과 분규는 각 수준별로 상이하게 이뤄졌고, 타결방식과 타결내용도 두 수준이 사뭇 달랐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공서비스 단체협약(TV?D)’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작년 2월 전까지 독일 공공부문에서는 종사자별로 각기 다른 단체협약이 체결되었다. 즉, 공공부문 종사자들은 사무직(Angestellte)과 생산직(Arbeiter)으로 나뉘어 고용조건을 결정하는 단체협약을 각기 따로 체결했다. 그러나 약 2년간의 집중적인 논의 끝에 공공부문에 성과급제 도입 등과 함께, 양대 종사자들 간의 차이를 철폐하고 단체협약들을 통폐합하는 의미를 담은 ‘공공서비스 단체협약’을 작년 2월에 체결하게 되었다. 이는 독일 공공부문 노사관계에서 매우 획기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단체협약을 주정부를 제외하고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사용자들만이 조인했다. 주정부 사용자연합(TdL)은 끝까지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그 결과 주정부와 노조의 협상이 결렬된 것이다. 또 지방정부의 경우 비록 단체협약에 조인을 하긴 했지만, 서독지역은 주당 근로시간을 38.5시간으로 하되 동독은 40시간으로 차등적용하기로 했다. 게다가 서독지역 지방정부의 경우, 소위 ‘개방조항(?ffnungsklausel)’을 두어 특정 주 산하의 지방정부들이 근로시간 연장을 놓고 개별적으로 노조와 독자적인 교섭을 통해 전국적인 통일규정에서 이탈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다. 

그 결과 작년 10월 개방조항이 포함된 새로운 협약이 발효되자마자, 니더작센, 함부르크, 바덴뷔르템베르크 등 3개 주에 속한 지방정부들이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연장하는 문제를 놓고 노조에게 개별협상을 제안했다. ‘개방조항’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한편, 작년 말까지도 주정부 사용자단체 연합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사용자들이 조인한 신규 협약의 조인을 계속해서 거부했다. 그 핵심 명목에는 마찬가지로 주당 근로시간 40시간화의 요구가 담겨 있었다. 

변수가 된 ‘공공서비스 단체협약’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올해 초 베르디는 앞에서 얘기한 3개 주 산하의 지방정부들을 대표하는 사용자들과 전체 주 정부 사용자대표 연합체를 상대로 파업을 추진했다. 노조는 이를 통해 3개 주 산하 지방정부들이 개방조항을 통해 근로시간을 연장시키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강경히 표출하면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자 했다. 또 주 정부 사용자 대표체들에게는 다른 정부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공공서비스 단체협약’을 조인할 것을 강하게 촉구했다. 

파업은 2월6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산하 지방정부들에서부터 시작되어 다른 주로 확산되었다. 또 서독지역 8개, 동독지역 1개 주들에 종사하는 노조원들 역시 찬반투표를 거쳐 2월13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파업은 동독지역의 나머지 주들로 확대되었고, 또 파업가담 업무분야들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다가 3월1일에 함부르크 주의 지방정부, 3월 15일에 니더작센 주의 지방정부 그리고 4월11일에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지방정부가 협상에서 타결을 보면서, 일단 3개 주 산하 지방정부들과의 개별교섭과 관련된 파업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주정부들의 경우 4월 말인 지금도 여전히 타결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함부르크 주 산하 지방정부들의 경우는 근로시간을 연령, 수입, 자녀 수 등 변수들에 연계 짓는 방안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즉, 고령의 고소득자이면서 자녀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노동시간을 그대로 두고, 대신 젊고 소득이 적으며 자녀가 없는 종사자들의 경우는 노동시간을 연장시킨다는 취지였다. 니더작센 주 산하 지방정부들(12만명 종사)의 경우에는 대체로 업무 강도를 기준으로 해서 노동시간의 차등을 두는 방식으로 협상의 타결을 보았다. 즉, 현장의 고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노동시간을 그대로 두고 대신 사무직 등 상대적으로 쉬운 업무를 하는 종사자들의 경우는 40시간으로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산하 지방정부들(22만명 종사)의 노조원들은 원래 가장 먼저 파업에 돌입하였고 또 가장 전투적으로 이번 파업에 임하였는데, 타결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3개 지방정부 연합체들 중에 가장 늦게 이루어졌다. 3월15일에는 공식적인 중재 절차까지 돌입했다가 끝내 타결을 보지 못했고, 이어 4월 초에 노사가 재차 협상을 벌이면서 4월5일 극적인 타결에 도달했다. 협상 결과 노사는 근로시간을 39시간으로 연장하기로 정했고, 이에 대해 노조원의 3분의 2 가량이 찬성을 해 결국 타결이 이루어졌다. 사용자들의 주당 노동시간 40시간화 추진은 결국 실패한 셈이다. 

“파업 동안 2만명을 조직했다”

한편, 주정부 대표체들의 경우 3월11일에 큰 협상이 있었으나 결국 타결에 실패했다. 그러자 정치권에서 공식적인 중재를 추구하자는 입장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노조도 이에 찬성하는 분위기로 나왔다. 대체로 중재를 촉구한 쪽은 사민당 소속 정치가들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기민당 정치가들이 “아직 더 노사자율로 협상할 여지가 남았음”을 역설하면서 반대했고, 결국 파업은 더욱 장기화되었다. 

4월 말 현재, 함부르크, 니더작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를 제외하고는 해당 주들 산하의 지방정부들은 이를 조심스럽게 관망할 뿐 협상 진전에 적극적인 조력을 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소위 ‘최대유리조항(Meistbeg?nstigungsklausel)’에 의거하여, 만일 주정부 사용자들이 노조와의 협상결과, 지방정부들과 노조가 체결한 협약보다 사용자에게 더 유리할 경우 좀 더 유리한 것을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방정부들은 최대유리조항의 발효를 기대하며 주정부들의 ‘선전(?)’에 은근한 후원을 보내고 있으며, 이는 주정부 대표와 노조의 협상에 매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한 복잡한 정치상황적 요인들의 작용에 더하여 이러한 제도적인 기제까지 작동하면서, 주정부 수준의 노사분규는 진정국면에 접어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노조는 지금까지 파업을 통해 이 부문 종사자들 중에 2만명의 새로운 노조원을 확보했고, 또 향후 1년 동안 파업을 지속할 파업기금을 보유하고 있다며, 사용자들에 대한 압박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은 타결의 임박을 점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구체적인 징후는 나타나지 않는 상태다. 다만 노사 양측은 조만간 재협상 일정을 잡아 놓고 있을 뿐이다. 

공공부문 10주 파업 인내하는 독일 정치권과 언론 

민간부문의 단체교섭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공공부문 역시 노사 간 갈등적 파트너십에 기초한 ‘상호양보’의 관행이 이번 파업과정에서도 상당정도 확인되었다. 위에서 소개한 3개 주의 지방정부들의 경우 분규를 겪긴 했지만 결국 노사가 상호 합의할 수 있는 적절한 묘안을 고안해내 경직된 대립의 굴레에서 지혜롭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현재까지 대립을 지속하고 있는 주정부의 경우도 조만간 마찬가지 모습으로 타결되리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예견할 수 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언제냐가 관건일 것이다. 다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적어도 언론과 정치권 모두 이를 조심스럽게 관망하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