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후진국의 국가경쟁력과 국민소득 '2만달러'

노동사회

노동후진국의 국가경쟁력과 국민소득 '2만달러'

편집국 0 3,054 2013.05.19 07:17

 


jspark_01.jpg세계화와 더불어 국가 간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는 요즈음,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위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틈새를 적절히 노려 국가들의 ‘성적표’를 비교하고, 이를 통해 이러 저러한 사업을 벌이는 국제기관들도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제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국제경영개발원(International Institute of Management Development, IMD), OECD 등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국제 평가기구들이 매년 국가의 성적표를 비교하는 지표들을 생산하고 있고, 이러한 기관들이 발표하는 지표들은 우리의 현실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언론들은 이러한 기관들의 평가점수가 조금이라도 내려가면 곧바로 무슨 큰 일이 닥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소위 ‘국제 평가기관’이 저지르는 초보적 모순 

문제는 이들 기관들에 의해 발표되는 지표들의 절대 다수가 국가의 전체 모습을 균형 있게 보여주기보다는 주로 기업의 경쟁력에 초점을 둔다는 점이다. 특히 IMD나 WEF 같은 기관들에 의해 발표되는 경쟁력 지표들은 명백히 ‘기업의 경쟁력=국가의 경쟁력’이라는 관점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기업의 경쟁력과 국가의 경쟁력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기업경쟁력 지표는 말 그대로 그 나라의 기업들이 다른 국가의 기업들에 비해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가를 의미하는 것인 반면, 국가경쟁력은 기업경쟁력으로 환원될 수 없는 훨씬 많은 요소들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를 기초로 하는 것이다. 

국가경쟁력이 국가의 기능과 능력 전반에 대한 총괄적인 평가라면, 기업경쟁력은 정치, 경제, 행정, 교육, 복지, 소득과 삶의 질 등 국가경쟁력을 구성하는 하위 요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그 나라의 국가경쟁력과 그 나라 기업들의 경쟁력은 거의 관련성이 없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 그 나라의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의 대다수가 외국기업들이고, 국내기업들은 극히 빈약한 경우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경쟁력을 기업경쟁력으로 둔갑시키는 사고는 극히 초보적인 논리적 모순임에도, 우리 국민들은 이미 이러한 방식의 논리에 ‘세뇌’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언론들은 매년 이러한 기관들의 국가경쟁력 지표가 발표될 때 마다 기업경쟁력과 관련된 지표들을 발표하느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경제 관료들은 이 수치가 몇 단계 낮아지거나 올라가는가에 따라 심기가 ‘롤러코스터’를 탄다. 엄밀한 의미에서 측정 자체가 매우 모호할 수 있는 ‘국가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순위가 몇 단계라도 낮아지면 한국경제에 금방 큰 일이 벌어질 것처럼 법석을 떠는 사람들에게 정작 국민들의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복지나 여성, 노동관계 부문 지표의 열악한 처지가 보일 리 만무하다. 기업경쟁력 평가 지표들의 경우에도 극소수 외국 경제 지도자들의 주관적 평판 등에 크게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주관적 평가 지표들이 과연 우리 국민의 삶의 질과 생활수준을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는지는 큰 의문으로 남는다. 

국가경쟁력 위해 국민 인권을 짓눌러라? 

단적인 예를 보자. 최근 몇 년간 외국의 기업가들은 중국의 국가경쟁력을 한국과 대등하거나 앞서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국가경쟁력을 올리기 위해 중국 수준으로 임금을 내리고, 노조를 억압하고, 인권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일까?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항상 최고 경쟁력을 지닌 국가의 지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경쟁력을 지키고,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과 노동자들이 싱가포르 같은 권위주의 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기업경쟁력 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러한 논리의 포로가 되어 있다. 기업경쟁력에 경도된 국가경쟁력 평가의 논리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민의 삶의 질과 인권도 희생될 수 있다는 전제적 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WEF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은 평가 대상이 된 전 세계 117개 국가들 중 세계 29위, 성장 경쟁력 지수는 이보다 높은 17위로 나와 다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외국의 평가기관들은 한국 기업의 성장 잠재력에 대해 대단히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그러나 국민과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훨씬 연관성이 큰 노동복지와 사회여건 부문에서 한국의 성적표는 여전히 초라하기 짝이 없다. 기업경쟁력 중 노사관계 부문의 평판은 77위에 불과하고, 경영진에 대한 평판도 51위로 낮은 편이다. 

OECD에서 집계하는 사회지표 부문의 성적표는 이보다 더 초라하다. 한국은 OECD 30개 국가들 중에서 사교육비 지출 비율은 확고한 1위를 차지한 반면, 공교육비 지출 순위는 최하위권인 24위에 머물고 있다. 삶의 만족도 역시 26위로 ‘바닥’에 근접해 있다. 노동시장과 고용, 양성평등 부문의 성적표는 더욱 초라하다.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매우 높고(3위), 노동 비용 경쟁력도 높은 반면(5위), 임시직의 비중, 노동시간, 산업재해, 노조 조직률, 단체협약 적용률, 여성의 사회적 지위 등은 OECD 국가들 중 여전히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은 향상되고, 성장 잠재력도 높아졌는데, 어째서 노동자들은 더 힘들게 살고, 국민들의 삶의 질은 개선되지 않는 것인가? 여기에 국가경쟁력과 기업경쟁력의 모순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아,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신기루

연초부터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원화 가치의 급격한 상승으로 달러로 환산한 우리 국민들의 연간 평균소득 수준이 조만간 ‘2만 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20여 년 전 지구촌의 최선진국이라고 우리가 부러워하던 국가들의 당시 평균 소득이 2만 달러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일터에서 내가 선진국에 가까운 경쟁력을 갖춘 회사에서 행복하게 일한다는 생각을 하는 노동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는 극히 의문스럽다.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획득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 중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역시 저임금 노동자들을 더 많이 쓰고, 하청 기업들을 더 쥐어짜고, 노동조합의 참여를 거부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주류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라도 기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런 방법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무수히 만들어내고, 이들을 더 많이 불러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으로 강해진 기업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을 호들갑을 떨며 두려워하는 것이 곧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한 길일까? 단순하지만 깊은 성찰이 절실히 요구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