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외노조를 ‘선택’한 공무원노조의 나아갈 길

노동사회

법외노조를 ‘선택’한 공무원노조의 나아갈 길

편집국 0 4,015 2013.05.19 07:12

공무원노조법이 실시된 지 두 달이 지났으나 공무원노동조합의 ‘설립’은 매우 더딘 양상이다.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4월26일 현재 공무원노조법에 따라 설립신고를 마친 노조 수는 20개이며 조합원 수는 2만5천여 명에 머무르고 있다. 이렇게 공무원노조 설립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공무원노조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전국 단위의 공무원노조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설립신고를 거부 및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법을 둘러싼 정부와 공무원노조의 갈등은 이제 2라운드로 접어든 형국이다. 법통과를 통해 정부 의지가 관철되었을지는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정책 실패의 결과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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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연세대에 모여 파업출정식을 벌이고 있는 전국공무원노조  - 출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

반쪽짜리 공무원노조법 개정해야  

공무원 노사관계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현행 공무원노조법의 개정이 필수적이다. 2004년 12월31일 국회를 통과하고 2006년 1월28일부터 발효된 현행 공무원노조법은 국제기준에 턱없이 미달하는 법안이다. 정부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이 법안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와 성격을 강변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단체행동권 보장 여부는 별도로 하더라도 예외 없이 보장해야 할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마저 제약을 가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현행법은 노조 가입대상을 6급 이하로 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행령에서 다른 공무원에 대한 지휘·감독권 행사자, 다른 공무원의 업무를 총괄하는 자 등을 노조에서 배제하고 있다. 또 단체교섭권을 보면 임금, 근로조건 등 경제활동 이외에 △정책 기획 또는 계획 입안 등 정책결정에 관한 사항, △공무원 채용·승진·전보 등 임용권 행사 내용, △기관 조직·정원에 대한 것, △예산 편성·집행에 관한 사항, △그밖에 기관 관리·운영에 대한 것 등을 교섭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공무원노조 및 민간 노동단체가 꾸준히 제기해온 현행법의 이러한 문제점은 2006년 3월29일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의 권고를 통해 그 정당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한편 공무원노조법은 그 입법내용 및 시행령 자체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1999년부터 설립되었던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운영 성과를 담아내지 못함으로써 공무원노조 주체들의 격렬한 반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 공무원들은 공무원노조의 전신(前身)이라 할 직장협의회를 통해 경제적 이익 향상뿐 아니라 공직사회 내부의 제도개선 및 부정부패 척결, 일터의 민주화를 위한 인사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와 같은 활동은 소수관료에 의해 지배되던 공직사회에서 변화와 혁신의 핵심동력이었다. 그러나 현행 공무원노조법은 이러한 활동을 법으로 보장하지는 못할망정 제약 요소만 부과했다. 이렇듯 공무원노조법이 발효되었음에도 노조 설립신고가 늘어나지 않는 것은 현행 공무원노조법 자체의 한계와 공무원직장협의회의 활동에서 확보되었던 권리 축소라는 두 요인이 중첩된 결과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공무원노조법을 둘러싼 공직사회 갈등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의 약속 위반에 있다. 한편으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야기하면서 노동권의 보편적 국제기준은 외면하는 일관되지 않는 참여정부 노동정치야말로 공무원 노사관계의 불안정성과 갈등을 확대하는 핵심 원인이다. 

모범 사용자 역할은 정부의 ‘의무’ 

현행 공무원노조법에 따른 노조 설립이 지지부진하고 공무원 노사관계의 파행 양상이 지속되자 정부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현행 공무원노조를 불법조직으로 규정하고 “건전하고 모범적인 공무원노사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설립신고를 하지 않은 기존 공무원노조의 지부 및 단위노조에 대한 해산 작업에 착수하였다(2006년 3월 행정자치부가 각 부처 및 산하기관에 보낸 『불법단체 합법노조 전환 추진방침』을 참고할 것). ‘불법단체’인 공무원노조의 합법노조 전환방침은 행정자치부를 중심으로 관계부처 및 검·경 등 유관 기관 간 긴밀한 공조체제 아래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전국공무원노조나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불법조직’인가 아니면 ‘법외노조’인가는 더 이상 토론대상조차 아니다. 노동운동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현재의 조직으로 발전했는지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당시 법외노조였던 전교조 초기의 구성원들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하고 있는 참여정부는, 권위주의 정부가 전교조에게 했던 잘못을 공무원노조 앞에서 답습하고 있다. 이렇게 노사관계를 형식적 법 논리로 처리하려는 발상을 벗지 못하는 한 ‘노사관계의 선진화’도 ‘모범적 노사관계’도 만들어질 수 없는 노릇이다. 

한편 한 국가의 노사관계 성격은 정부의 노동정책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의 직접적 ‘사용자’로서 정부가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즉, 정부가 어떤 노사관을 가지고 있는가는 그가 사용자로서 어떤 행태를 하는가를 통해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정부가 현재 보이는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은 노동배제의 노동정책의 총화이며 한국의 어두운 노사관계를 비추는 거울이다. 노동조합을 국가경영의 파트너로 인식하기보다는 배제의 대상으로, 더 나아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공무원노조를 박멸의 대상으로 보는 발상은 공무원 노사관계의 ‘일시적 안정화’는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후과가 부메랑이 되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자기 역할을 정립하지 못하는 한, 공무원 노사관계도 민간부문 노사관계도 작은 갈등이 구조적인 균열과 대립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이제 ‘정면 돌파’밖에 없다

공무원노조법 통과 이후 ‘합법화’를 둘러싸고 조직 내홍을 겪은 공무원노조 입장에서, 공무원노조법의 한계와 문제점을 대외적으로 확인시키는 ILO의 권고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노조의 앞길은 여전히 순탄치 않다. 현재 공무원노조는 행정자치부의 막무가내 식 탄압 속에서 법외노조로서 조직 사수 및 통합력을 높여가야 할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고 있다. 법외노조의 가시밭길을 선택한 공무원노조는 이제 변화된 환경에 조응할 수 있는 장·단기 전략을 시급히 재구성하고 그 기반을 형성해야 한다. 

공무원노조 앞에 놓인 과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부가 ILO의 권고를 짧은 기간 내에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입법기관인 국회가 공무원노조법 개정작업에 나설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노조가 현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정면 돌파’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공무원의 요구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공무원노조의 역할이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에 어떠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 공무원의 요구를 공공성 강화라는 의제와 어떻게 결합시켜 다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법외노조인 공무원노조가 추진해야 할 당면 과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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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

공공성 강화에 앞장서야

공무원 노조운동의 기반인 공공부문은 무엇보다도 공공서비스의 제공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특징이 공무원 노조운동이 민간부문 노조운동과 구분되는 핵심적인 차이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노동조합 역시 조직의 사업 및 활동 목표를 “공무원 노동조건의 개선과 향상에 국한하지 않고 공직사회의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에 두고 있다. ‘공직사회 개혁’이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자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노조가 주창하는 ‘공직사회 개혁’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이고 세부내용을 구체화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4년 동안의 공무원노조 활동이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과제를 주도적으로 실천하기보다는 ‘구호’ 식으로 사용했다는 비판적인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이지문, 2005, “공무원노조 부정부패 추방 활동 사례 및 현황에 대한 평가”를 참고할 것) 

이제 공무원노조는 조직의 정체성과 활동목표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도, 공직사회 개혁 과제를 ‘사회 공공성’의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담론으로 결합·발전시켜 제시하여야 하며, 그 실천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처럼 정부 주도 공직사회 개혁의 허구성을 지적하는 것뿐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몰아닥치고 있는 공공부문 파괴의 부정적 요소를 구체적으로 고발하고, 이것이 노동자와 서민 대중의 삶과 어떠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가를 적극 설파해야 할 것이다. 국민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정책의제에 대한 기동성 있는 대응과 체계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다. 예컨대 공직사회 내부의 비정규직 및 아웃소싱 확대 비판,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대응전략 개발, 공공 교통체계·저렴한 주택 공급·수도권 과밀화 해소·서울의 강/남북 격차 해소 등에 대한 정책대안 제시, 지자체 의회 및 예산 감시운동 등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노조가 조직자원의 상당부분을 정책역량에 투입해야 할 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학계와의 네트워크 구성에 나서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공공의제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공무원노조는 일본 지자체공무원노조가 주도적으로 설립한 지방자치종합연구소(1974년)의 활동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각 사업 영역별(복지, 건축, 세무, 교통, 농업 등) 공무원의 창의적 의제개발 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전교조가 매년 실시하고 있는 ‘참교육실천대회’를 공무원노조의 상황에 맞춰 주요 사업으로 받아 안을 필요가 있다. 

수세적 방어에서 공세적 개입으로 

법외노조 상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합법적인 단체교섭의 장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정부는 현행법을 내세워 “불법노조와 단체교섭은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상태에서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등을 배제한 합법노조와의 단체교섭은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 근본적인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런 점을 고려하여 공무원노조는 형식적인 교섭 틀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요구안을 어떻게 사회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킬 것인가를 중요하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공직사회 개혁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총액인건비제’, ‘공무원연금 개편’, ‘차등 성과급제’, ‘지방자치단체 사무의 아웃소싱’ 등은 공무원 노사관계에서 올해 하반기 피할 수 없는 쟁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노조가 이러한 사안을 단지 “공직사회의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거칠게 재단해 반대만 하거나, 사안별로 수동적인 대응에 나설 경우, 정부 주도의 ‘공직사회 개혁 담론’에 의해 압도될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따라서 공무원노조는 정부 담론에 맞설 수 있는, 공직사회의 변화와 자기개혁의 청사진을 주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면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정부 정책의 정당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가르고, “정당한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면서 공무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세적 투쟁 및 공론의 장을 형성해야 한다. 이렇듯 올해 하반기 노사관계를 주도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공직사회 개혁의 방향성과 추진 방도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갖추는 것이 관건적인 요소다.  
한편 공무원 구조조정의 거대 담론인 ‘작은 정부론’은 공공서비스를 약화시키는 대표적인 논리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공무원노조가 단지 현재 인력의 ‘고용보장’이라는 수동적인 방어 논리가 아니라,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공공서비스를 확대강화하기 위한 설득력 있고 포괄적인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공무원 수의 문제를 사례로 들어보겠다. 한국의 공무원 수는 2005년 12월 기준으로 91만452명(국가직 공무원 57만1982명, 지방직 공무원 33만8470명)이다. 이를 다른 경제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인구 1,000명 당 공무원 수가 18.5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적다. 71.7명인 프랑스나 70.4명인 미국뿐 아니라 31.4명인 일본, 24.7명인 노르웨이 등에 비해서도 훨씬 적은 수치다. 절대적인 수의 부족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보건, 복지 분야 공무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점이다. 한국의 보건 분야 공무원 수는 인구 1000명 당 0.11명으로, OECD 평균인 12.87명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사회복지 분야도 인구 1000명 당 0.22명으로 OECD 평균인 12.24명의 60분의 1도 안 된다. 교육 분야는 그나마 나아, 한국이 인구 1000명 당 12.67명으로 OECD 평균 24.12명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 분야의 공무원 자원이 취약하다는 것은 결국 한국 정부 및 지자체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교육, 복지, 의료 서비스의 수준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다. 적극적인 대국민 설득의 근거 논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노조는 이러한 논리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자기혁신과 효율성 문제 역시 진지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그동안 공무원노조의 활동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와 일반 국민들의 ‘지지 부족’은 과거 공무원의 모습에 대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공무원노조는 시민사회의 비판적 시각에 주목하지 못했다. 내부의 혁신과 성찰 없는 외부 도전에 대한 저항은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공직사회 내부에 고질화된 관료적이고 수직적 문화를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한, 누구도 공무원노조의 요구와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부처별, 기관별 울타리 깨고 산별노조로 거듭나기 

법외노조를 선택한 전국공무원노조와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앞에 놓인 최대 과제는 조직의 안정화와 확대다. 특히 공무원노조는 기관별로 복수노조가 허용되므로 외부적 탄압에 대한 대비 못지않게 복수노조에 따른 노·노 갈등을 피할 수 있는 적극적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 양대 공무원조직은 합법성을 쟁취하기 이전까지는 조직경쟁을 최소화하고, 공무원노조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작은 차이를 뛰어 넘어 공직사회 전체의 요구를 하나로 결집하는 상호 연대의 필요성이 어느 시기보다 중요한 때다. 

이와 같이 복수노조의 파행성을 극복하는 한편으로, 공무원노조는 기관별, 부처별 기업별노조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산별노동조합으로 나가야 한다. 현재 공무원단체의 조직 형태를 보면, 전국공무원노조는 ‘산별노조’인 반면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은 기관별 단위노조가 가입하는 ‘연맹체’로 구성되어 있다. 공무원의 임금 및 근로조건은 기관별로 차이보다는 공통 요소가 더 많다는 점, 사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투쟁이 공무원노조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공무원단체의 조직형태는 산업별 형태로 나가야 한다. 

먼저 공무원노조총연맹은 기관별·자치단체 별로 분산된 조직의 통합성을 높이기 위해, 산별조직 건설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한편 전국공무원노조 역시 전국 단일산별노조로 조직을 건설하였으나, 조직 운영 및 활동은 여전히 기관별·부처별 분산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산별조직의 강점인 조직의 집중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인력과 재정을 중앙 집중화하는 한편, 지역본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 기관별로 조직되었던 공무원직장협의회의 관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산별노조 강화를 가늠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산별노조의 집중성은 조직운영의 민주성을 기반으로 한다. 조직운영의 민주성을 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현장 토론’을 활성화하고 대의원 체계를 내실화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조합원의 의식 편차를 극복하고 공무원노조의 이념과 목표를 현장 분회 단위에 뿌리 내릴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현장 활동가’를 양성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훈련 프로그램 및 교육시스템의 체계화를 위해 대담한 구상과 투자가 필요하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으로 

법외노조의 길을 걷고 있는 공무원노조의 미래는 순탄하지 않다. 정부의 탄압에 못지않은 보수언론의 반(反)노조 캠페인, 관료적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 일반의 냉소주의, 조직 구성원 사이의 의식 편차, 합법화를 둘러싼 조직 내홍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해소하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이러한 상황은 조직 내부에서 타협주의와 경제주의가 강화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며 반대로 모험주의가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을 조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무원노조가 대·내외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진하는 데는 특별한 왕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의 운영원리를 노조활동 속에서 얼마나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소수 간부 중심의 노조활동에서 벗어나 조합원을 주체로 세우는 활동, 조직 내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치열한 토론과 결정된 사업에 공동으로 책임지는 규율의 확립, 국민에 ‘참봉사’하는 공직사회 만들기, 지역사회 진보적 네트워크의 구심적 역할 등은 공무원노조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당면 과제다.  

어찌 보면 노동운동의 발전은 우공이 산을 옮기는 일처럼 불가능을 현실로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이제 공무원노조에게도 그 역할이 주어졌다. 정권과 권력의 하수인이 아닌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행정서비스 개혁의 주도자로 공무원노동조합이 자리매김 되는 것, 이는 누구의 요구가 아닌 새롭게 출발하는 공무원노동조합 주체들의 자기 선언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