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처 활동가, 나는 누구인가!?

노동사회

사무처 활동가, 나는 누구인가!?

편집국 0 2,525 2013.05.19 07:40

‘돌아온’ 교선실장으로 지낸 지 3개월여가 흘렀다. ‘돌아온’이란 단어에 쳐진 따옴표는 한 연맹에서 무려 15년여를 보낸 가운데 1997년 자발적 퇴직 후 1999년 복직, 2003년 비자발적 징계사태 후 2004년 복직이라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교선실장으로 ‘돌아온’ 것을 강조하는 의미다. 첫 번째 퇴직은 나 자신의 재충전을 위한 ‘떠남’이었고, 두 번째 사무처 징계사태는 조직 내 갈등으로 인한 ‘떠밀림’이었다. 15년 활동 중에 가졌던 ‘떠남’과 ‘떠밀림’의 시간은 충전과 상처라는 전혀 상반된 결과를 안겨주었지만, 두 번의 계기 모두 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겹치기 피로 속 첫 번째 ‘떠남’, 그리고 재충전

학생운동을 졸업한 후 ‘금융권에 무슨 노동조합?’이라는 의문과 함께 사무금융 노동운동에 첫 발을 디뎠다. 정확히는 사무금융연맹 산하 증권사노동조합협의회(이하 증노협) 전문위원으로서 대중운동조직 소속 의욕 넘치는 활동가로서 삶을 시작한 것이다. 채용상근이 전무했던 증노협 첫 상근간부로서, 해야 할 역할은 무궁무진했다. 집행체계는 갖췄으나 사람이 하나이니 총무에서 선전, 교육, 문화, 정책, 조직 등 정말 전천후로 다 했다. 그나마 조직이 발전해 일꾼을 채용했겠지만, 그 한 사람이 더 나은 조직발전을 도모하는 일은 의욕일 뿐 그저 역부족을 실감할 따름이었다. 

1995년 활동공간을 상급단체인 연맹으로 옮기면서 사정은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두개 이상 부서 겸직은 지금까지 여전했다. 노동운동이 양적으로 팽창하여 사람도 돈도 과거보다는 확충되었을 법도 한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인 다역의 활동가가 불만이 있다한들 어찌하겠는가? 여전히 돈이 없고 그래서 사람이 부족하다는데…. 노동운동의 변함없는 영세함을 탓할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게 과연 그렇지가 않았다.  

젊은 혈기에다 노동운동 초년생의 드높은 열정으로 감내하기엔 ‘겹치기’ 역할이 가져다준 피로감이 너무 깊었다. 밤낮없이 바쁜 활동의 결과는 상근역량의 강화와 조직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아보였다. 더욱이 노동운동이 합법화되고 대중화된 만큼 조직 내 헤게모니를 잡기위한 갈등이 심화되었고, 그와 같은 갈등구조 속에 활동가들에 대한 ‘줄 세우기’ 역시 강요되었다. 운동의 전망이 흔들리고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결국 1996년 겨울 노동법개정투쟁을 끝으로 첫 번째 ‘떠남’의 선택이 이루어졌다. 이후 전혀 생뚱맞은 장소에서 한 1년간 호사스런(?) 재충전의 기회를 가졌다. 어려운 현실일수록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보라 했던가. 낯선 곳에서 되돌아보니 왜 그렇게 조급하게 달려왔는지 제대로 반성이 되었다. 낯선 곳의 노동운동처럼 나 자신의 운동 역시 조금은 더 낭만적이고 여유로워져도 되지 않을까하는, 배부른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다. 

‘떠밀림’이 준 의문, 우리는 소통하고 있는가?
  
재충전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운동의 현실과 조건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인데 ‘떠남’의 휴식으로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던 모양이다. 지난 시기 시행착오가 아쉬움으로 남았고 앞으로 잘해보겠다는 결기도 생겼다. 1999년 사무금융연맹에 다시 ‘돌아온’ 활동가는 미처 휴식을 갖지 못한 다른 활동가들을 위로까지 하며 혈기왕성하게 활동을 재개했다. 그 때 당시 연맹 집행부의 모토가 “불 꺼지지 않는 연맹”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그처럼 무식한 모토가 또 있을까마는, 나를 비롯한 모든 연맹 활동가들이 참으로 열성적이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약발’이 오래가지 않았다. 사무처 활동가의 현실은 여전했고 발바닥에 불나도록 바쁘지만 왜 바쁜지 자문할 기회도 없을 정도로 늘 결핍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사무처 활동가에 대한 ‘줄 세우기’가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나아가 있었다. 3년마다 치러지는 위원장 선거 때 사무처 활동가의 선거개입 여부를 전략적으로 쟁점화하는 경향까지 나타날 정도였다. 사무처 활동가의 선거운동이 왜 문제인지 논란거리로 남겨두더라도 사실관계를 왜곡하면서까지 전략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리하여 재충전의 ‘약발’은 끝나가고 그것이 바닥날 무렵 선거결과의 연장선으로 해석되는 사무처 활동가 해고 및 중징계라는 엄청난 사태를 맞고 말았다. 

활동가로서 헌신해온 조직으로부터 해고 및 중징계를 맞은 당사자들의 심정이야 논외로 치자.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민주노총 산하 두개의 연맹에서 사무처 징계사태가 빚어졌고, 심지어 한국노총 어느 연맹에선 사무처 해고 및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무엇을 웅변하는가? 겉으로 드러난 과격함의 차이가 있을 뿐 조직별로 사무처 활동가를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정말 정파나 파벌이 달라서일까? 조직운영상 요구되는 상식이 붕괴되었기 때문 아닐까? 상호 관계맺음과 갈등해소를 위한 시스템이나 의지가 부재해서 아닐까? 노동운동 조직마저도 위계화되어 상호 소통이 막혀있는 심각한 동맥경화 증세가 갈등을 극대화하고 사무처 징계라는 극단적인 사태를 야기한 것은 아닐까? 

‘사무처 활동가’의 목소리로 문제 풀자

징계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두 번째 ‘떠밀림’의 시기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가혹했으나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에게 더욱 냉정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때 사무처 활동가들 사이에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토론이 비공식적으로 있었던 적이 있다. 활동가가 무슨 노조냐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과연 그렇게만 일축할 수 있는가. 굳이 노조설립처럼 민감한 사안이 아니더라도 사무처 활동가의 정체성과 위상은 과연 어느 지점에 있는지 공통의 주제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같은 사무처 활동가이면서 자신에게도 가해질 수 있는 부당한 처사에 대해 지도부와의 관계여하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징계 자체보다 씁쓸한 일이었다. 선거결과에 따라 사무처 활동가의 활동력이 좌우될 정도로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마당에 상근역량 및 전문성 강화 등 활동가의 위상과 역할 제고에 관한 논의가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을 가졌더라도 사무처 활동가는 다 같은 활동가다. 비슷한 고민과 애환을 공유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한 목소리도 낼 줄 알아야 한다. 이제라도 스스로에게 반문해보자. 사무처 활동가, 나는 누구인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