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이 주인되는 민주주의 국가를 꿈꿨던 사람

노동사회

인민이 주인되는 민주주의 국가를 꿈꿨던 사람

편집국 0 3,038 2013.05.2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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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가 한 아기를 놓고 서로 자기 아기라고 우겨대니 난처할 수밖에. 그때 솔로몬 왕은 날이 시퍼런 칼을 들고 나와 ‘정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이 칼로 아기를 두 쪽 낼 테니 한쪽씩 가지고 가소’하며 칼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한 여자가 울음을 삼키며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순간 왕은 ‘밖으로 나간 저 여자가 바로 아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생모다’라는 명판결을 내렸다. 마찬가지로 미·소 중에 조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나라가 먼저 나갈 것이다.”
 -『여운형 평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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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_01.jpg광복 예순 한돌을 맞이한 2006년 8월의 대한민국은 시끄럽다. 전직 국방장관이라는 사람들과 이른바 보수우익이라는 사람들은 전시작전권 환수를 두고 북의 침략야욕 앞에 발가벗고 서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지난 60년간 이렇게나마 먹고살게 해준 게 누군데 미국을 이렇게 대접할 수 있느냐”며, “빨갱이들이 나라를 팔아먹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울대를 돋운다. “미·소 중에 조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나라가 먼저 나갈 것”이라는 여운형 선생의 말이 가슴에 꽂힌다. 한반도의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은 필요하다는 미국과 보수인사들의 주장과 대비되는 말이 아닌가.

민족 자주와 자존이란 무엇인가? 선생이 사시던 당시나 지금이나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흑백논리에 기반한 좌우의 대립은 멈추질 않고 있다.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미군정의 정책에 따라 과거청산을 이루지 못했음이 철천지한으로 남고, 끊임없이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의 입김에 흔들거리는 조국의 현실이 안쓰럽고, 전범들의 망령이 살아있는 신사를 참배하면서도 뻔뻔스럽게 고개 쳐드는 이웃 섬나라의 작태에 피눈물이 나는 8월이다. 장강의 물결처럼 도도히 흐르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극단으로 치닫는 보혁의 갈등과 진보운동의 침체를 맞이하는 2006년에 다시 선생의 삶과 행적과 사상을 생각해보는 이유는 바로 선생만이 가지고 있던 정세인식과 주장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의 나침판이 되길 원했던 사람

몽양 여운형 선생의 사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다. 생전에는 극우파는 물론이요 건국준비위원회 내의 좌파들에게도 끊임없는 방해와 견제와 질시와 테러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현재에 와서야 민족주의, 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개혁적 자유주의, 융합적 민주주의까지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치열했던 해방정국에서 친일파를 제외한 좌우의 공존과 합작을 위해 매진했다는 사실은 선생이 민주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였음을 알게 해준다. 선생 스스로 자신의 노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침반을 빗대어 들려준 일화가 있다. 항해를 할 때 배의 나침반 바늘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전후좌우로 파도에 따라 흔들리는 것은 배인데 나침반 역시 북쪽을 가리키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배가 요동치는데 나침반이 계속해서 한곳에 멈춰 있다면 그 바늘은 고장 난 것이니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좌우합작의 노선을 일관되게 고수하기 위해 선생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말이다. 선생의 정치노선은 대단히 원칙적이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원칙에 바탕을 둔 타협과 협상을 병행할 수 있었다. 즉, 해방 이후 선생이 추구했던 자주적 민족통일국가의 성취와 완성이라는 원칙은 일제치하에서 추구했던 완전한 민족독립의 연장이다. 

여운형 선생도 절망을 맛보았던 적이 있었다. 바로 해방이 되었을 때. 혹독한 식민통치 밑에서도 독립을 의심해보거나 낙심한 적 없었던, 일본의 패전을 정확히 예견하고 ‘건국동맹’을 건설해 광복 이후 조국의 운명에 대해 그 누구보다 철저히 준비했던 선생이 왜 해방이후 절망을 느껴야 했을까? 민족자존을 바탕으로 인민이 주인 되는 해방된 세상, 해방된 조국을 꿈꿨던 선생에게 미국과 소련 이라는 강대국의 등장과, 서로 다른 이념과 입장에 얽혀 반목과 대립만을 반복하는 동지들의 모습은 아득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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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매기 인간형이 바로 통일적 인간형이야. 그럼 어떤 게 통일적 인간형이냐. 몽양 여운형 선생이 스물한 살 때 독립운동하러 가시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노비문서를 불지르고 땅을 노비들에게 다 나누어줬어. 
돌아가실 때도 땅 한평 없이 가셨어. 49년도에 암살당한 백범선생도 뭘 남겼어? 입던 두루마기하고 신발밖에 남긴 게 없어. 장준하 선생도 땅 한평, 집 한 칸 안 남겼어. 
통일이라는 게 뭐야. 세계의 분열과 분단을 전제로 해서 한반도의 분단을 해결하는 거잖아. 양심이 분열되면 안 되는 거야. 사회적 분열을 통일하는 몸부림을 통해서 내적분열을 통일하는 인간상, 나는 그런 사람을 통일꾼, 통일적 인간형이라고 생각해.”
 - 백기완 선생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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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복잡해지는 8월. 백기완 선생의 말씀이 나에게,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의미를 되씹어본다.(이기형 짓고, 실천문학사 냄. 1만2천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