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볼래? 동냥할래? 동냥 할래!

노동사회

애 볼래? 동냥할래? 동냥 할래!

편집국 0 3,217 2013.05.24 12:05

새벽 4시, 아이와 씨름하다 잠이 들어 버렸나 보다. 밤에 끄적이던 원고는 지워버렸다. 졸았나 보다. 모니터에는 “jjjjjjjjjjjjjjjjjjjjjj”가 한참을 이어지다 그 끝에 커서가 깜박이며 멈춰 서있다.  

10년간 휴식 없이 이어진 단체상근 활동을 접고 육아휴직을 결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돌았냐? 얼마 못 간다, 옥상에서 뛰어내릴라, 등 살벌한 축하를 해주었더랬다. 낳은 지 두 달도 안 된 큰 아이를 두고 다시 일하러 나온 나를 기억하는 이들로서는 새로운 선택 앞에 선 30대 중반의 여성활동가를 보며 어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

엄마에게도 보호가 필요해!

밤 12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 누군가 물어올 때 “집에서 애기 보고 있어”, 라고 대답한다. “애기 보고 있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하루 15시간의 정규 노동시간과 9시간의 대기시간, 또는 철야노동. 휴일? 없다. 노동시간과 휴식시간, 식사시간의 구분이 없으며,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인턴십도 수습기간도 없이 시작되었지만 시작과 동시에 절대숙련을 요하는 일이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고 말하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정말 ‘보호’ 받을 필요가 굉장히 많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게다가 쉼 없는 상호작용과 감정노동 속에서 절대고독과 싸워야 한다. - 아, 방금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면서도 먹으려 든다. 아이 재우고 컴퓨터 앞에 앉았으나 다시 운다. 배가 덜 찼나 보다 - 아기에게는 오로지 주기만 해야 한다. 아기는 말이 없다. 같은 노동을 끝없이 반복해야 한다. 아기를 본다는 것은 절대시간, 절대고독과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지난 3월, 병원에서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한 달 정도는 여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여동생이 떠나고 아이 둘과 덩그러니 집에 남겨졌을 때 목구멍과 콧구멍으로 울컥 솟구치는 설움에 자신을 추스르기 힘겨웠다. 이 증세는 그 후로도 1주일 정도는 계속되었다. 이유가 무엇이냐, 이해를 못하실 분도 많을 것이다. 아이를 키워본, 아이들을 부양해 본 분들은 이 ‘울컥증’의 의미를 아시리라. 눈앞에 나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두 ‘사람’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각기 먹어야 하는 것이 다른 두 아이가 동시에 입을 벌릴 때 나는 절규했다. 내가 ‘신(神)’이냐?

집회 때 투쟁결의문을 읽어도 떨리지 않았다. 전국 수백 명의 활동가들 앞에서 활동사례발표를 할 때도 떨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연설원으로 총선 선거운동을 하던 때, 오히려 즐기시던 이 몸이 아니던가! 그런데 8살짜리 남자아이와 갓난 여자아이 둘의 애절한 눈빛을 마주하고 섰을 때 나는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저 둘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큰 아이는 갓난아기가 자든 안 자든, 울든 안 울든, 밥을 먹든, 응가를 하든, 딱지 치자, 끝말잇기 하자, 체스하자, 알까기 하자, 한자 마법 싸움하자, 윷놀이하자, 공 차자, 카드놀이 하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자, ‘하자’시리즈를 들이댄다. 

아, 대충 키우는 경지는 정녕 어디에!

자, 이제 하루일과 중 아주 약간만 공개를 하도록 하겠다. 갓난아이가 예의 경보음을 울리며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식사시간이 되었다며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위로는 소리로 아래쪽으로는 ‘쉬’와 ‘응가’로 연신 자신의 존재방식을 확인시켜 준다. 

그 때 큰 아이가 잠에서 깬다. 세수를 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고, 양말을 신어야 하고,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 책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들고, 학교에 가야 한다. 옷 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거나 발목이 조이는 양말이 제공되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선생님이 지각하는 학생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무리 절규해 보아도 아이는 급할 게 없다는 표정이다. 드디어 운동화까지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 큰 아이, 안도의 심호흡을 하는 그 순간, 아이가 돌아선다. “엄마 똥 마려!”

큰 아이는 네 시간 정도 학교에 있게 될 것이다. 그 사이에 어제 저녁 담가놓은 설거지를 해야 하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수건들, 컵들, 책들, 옷가지들을 대충이라도 제자리로 보내야 하고, 아기 젖병을 소독하고, 물을 끓여야 한다. 아기 손수건을 빨아야 한다. 여기에 며칠에 한 번씩은 세탁기를 돌려야 하고, 쌓여가는 먼지들도 제거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밥을 먹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하는 사이에도 아기는 먹고 자고 싸기를 반복한다. 

옛말에 지나가던 거지를 붙잡고 “동냥할래? 애 볼래?” 물었더니, 거지 왈, “동냥 할래!” 했다나. 이 말을 해준 엄마에게 물었다. 
“난 터울도 일곱 살이나 지는 애 둘을 키우는데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쁜데 옛날엔 어떻게 대여섯씩 키웠수?”  
“대충 키웠지” 
엄마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나는? 아, 대충 키우는 경지는 정녕 어디란 말인가.

가치관이고 뭐고 확 팽개치려다가…

이제 갓난아이는 세상에 난지 5개월을 지난 ‘중견아기’로 도약하고 있다. 침 흘리기, 옹알이하기, 소리 내 웃다가 딸꾹질하기, 팔다리 동시에 버둥거리기,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입에 넣기 등 다양한 기예를 연마 중이다. 그러나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 먹기엔 아직도 98% 부족하다. 큰 아이는 꿀맛 같은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다음 주면 학교에 가야 한다. 초등학교만 다니고 중학교는 절대로 안 가겠다고 결심한 큰 아이다. 느리고 굼뜨기로 치면 세계 1등감인 엄마가 “빨리!”, “어서!”, “냉큼!”, “서둘러!”를 적절히 섞어가며, 역시나 매우 굼뜨며 서두를 의사가 전혀 없는 아이를 닦달해서 학교에 보내는 일은 에너지가 매우 소모되는 작업이다. 가치관이고 세계관이고 다 팽개치는 의식의 배반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까지 쓰는 동안 약 3일 정도의 시간이 경과되었으며, 지금은 아침 9시 20분이다. 아침밥 줄 생각도 않고 컴퓨터 앞에 매달려 있는 엄마를 못 봐주겠다는 듯, 큰 아이가 컴퓨터 앞을 맴돌며 비아냥거리고 있다. “빨리 한다더니 왜 이렇게 느려?” “저리 가! 비디오 본다며! 야 베개 밟고 다니지 말랬지!” 

지구상의 모든 선배엄마들이여, 엄마의 노동력을 빨아먹어야만 살을 찌우는 이 어린 뱀파이어들과, 이를 고무 찬양하는 남성들의 간악한 혀끝으로부터 해방될 혁명의 프로젝트는 진정 불가능한 꿈이런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