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기구와 싸워 승리한 세계의 노동조합들

노동사회

국제금융기구와 싸워 승리한 세계의 노동조합들

편집국 0 3,749 2013.05.2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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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이 지난 2006년 4월 발간한 『대안을 향한 투쟁』(Fighting For Alternatives) 보고서의 번역본을 9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이 보고서는 노동조합 주도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일방적인 정책과 맞서 싸워 승리한 6개 국가의 투쟁사례를 담고 있다. 우리 현실과 다소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활동가들의 시야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연재를 시작한다. 원문은 ICFTU 홈페이지(
www.icftu.org)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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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004년 10월31일, 우루과이의 유권자들은 물 민영화를 금지하는 세계 최초의 구조개혁을 2/3 이상의 찬성으로 승인했다. 이 국민투표 결과는 “수돗물을 국가 소유의 법적 실체가 독점적으로, 직접 공급할 것”을 명확히 했으며, 이는 민주적 경제개발을 지지하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의 투쟁 역사 속에서 일대 이정표와 같은 사건이었다. 민주적 경제개발은 국제금융기구들의 사유화 의제나 다국적 기업의 협소한 이익보다는 국민 대다수의 일반 의지를 실현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루과이가 자국의 미래를 위해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처방에 저항한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지난 5년에 걸쳐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지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부금을 미끼로 하는 국제금융기구의 사적 이익 추구 즉 물과 전기, 그 밖의 기초서비스를 기업 통제하에 두려하는 경향과 싸워 중요한 승리들을 조직해냈다. 이 보고서는 우루과이 노동조합이 물 사유화를 둘러싼 역사적인 국민투표를 어떻게 이끌었는지 분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6개 국가의 사례를 다룬다. 우루과이를 제외한 5개 사례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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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공의 노동조합은 자국에서 가장 큰 철도 운송의 사유화 반대를 이끌었고, 공적 소유를 유지하기 위해 남아공 정부와 협상했다.   
 ●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의 5개 노총은 더 쉬운 해고를 목적으로 설계된 IMF와 세계은행의 노동개혁안을 반대하기 위해 차이를 젖혀두고 결집했다. 
 ● 아르헨티나: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은 아르헨티나 정부는 우편 서비스를 일개 기업에 인계하라는 세계은행과 IMF의 명령을 거부하고 사유화를 취소했다. 
 ●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공공부문을 사유화할 수 있는 정부 권리의 정당성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 재판에서 인도네시아의 헌법재판소는 IMF가 지원하는 주요 공공부문 사유화 계획에 거스르는 판결을 내렸다.     
 ● 탄자니아: 탄자니아 정부는 공공 상하수도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노동조합의 지원으로, 역시 IMF와 세계은행이 요구하는 물 사유화 계획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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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투쟁들은 세계 시민사회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어떠한 합의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 합의란 시민사회로부터 조언을 얻는 과정을 점차 늘리고는 있지만, 국제금융기구들은 주요 경제정책이 변할 때 자신들의 활동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공공 이익을 거의 고려않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IMF와 세계은행은 각국에 융자를 줄 때 그 조건으로, 채무국의 필요가 아니라 자유시장 및 사유화 이데올로기에 대한 국제금융기구의 충성심을 만족시키는 계획을 제출할 것을 강요해왔다. 또한 국제금융기구는 경제정책 결정과정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충분한 참여와 민주주의를 혐오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요즘 와서야 겨우 자신들의 실수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코스타리카와 잠비아, 불가리아,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최근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살펴보자.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에서 국제금융기구들은 융자를 수단으로 코스타리카의 국영통신·전력사업체인 ICE(Instituto Costarricense de Electricidad)를 포함하여 핵심 공공부문의 사유화를 압박했다. 그 결과 2000년 3월, 코스타리카 국회는 전력과 통신 부문에서 국가의 독점을 종료하고 ICE를 두 개의 회사로 쪼개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후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항의하고 노동조합들은 총파업에 돌입했다. 3천5백만 코스타리카 국민의 약 94%에게 전력과 전화통신을 제공해온 ICE를 모범적인 전력회사로 여겨온 사람들이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저항이 점점 더 거세지자 로드리게스(Miguel Angel Rodriguez) 당시 대통령은 같은 해 4월 노동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여 논쟁이 된 법안을 국회에서 철회했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이러한 저항에 영향 받지 않고 ICE의 사유화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무역협정(NAFTA)을 중앙아메리카와 도미니카 공화국까지 확장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는 중미무역협정(CAFTA)이 제안됐다. 그리고 이는 국제금융기구들이 압박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되었다. CAFTA의 조항들은 코스타리카 정부가 세계은행이 오랫동안 추진해온 기초서비스의 민영화를 지속하도록 요구했다. 세계은행은 2004년 4월, 새로운 “국가 협력 전략” 속에서 이러한 관계를 더욱 노골화했다. 

세계은행은 특히 ‘무역에 관한 장’에서, CAFTA 협정문이 좀 더 경쟁적인 환경조성과 경제 근대화를 위한 국가의무의 “핵심적인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CAFTA를 맺음에 따라, “이동전화 서비스, 인터넷, 사설 정보망 등의 공급과 자유가입보험 및 강제보험 등의 공급 모두가, 외국인투자건 국내투자건, 민간투자에 개방되는 것을 코스타리카 정부가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은행은 “민간투자 개방”이 2008년까지 각 영역에서 점차적으로 “완전 개방”에 도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코스타리카 정부가 직면한 “중대한 도전들” 속에서 “민간투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ICE에 관한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서 채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은행은 협정문의 부속문서를 통해, 코스타리카 정부가 이러한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국민정서, 심지어 의회활동마저도 개의치 말라고 지시했다. 세계은행은 “코스타리카의 제도적 환경에서, 국회의 승인을 얻고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핵심 개혁과 관계된 조건들은 그것에 동의하는 행정부의 통제하에 있어야지 의회의 결정을 따라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협정이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를 결핍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다행히도 코스타리카는 이 충고에 따르지 않았다. 미국 의회에서 CAFTA가 아주 근소한 차로 비준된 이후, 2005년 9월 코스타리카의 파체코(Abel Pacheco) 대통령은 CAFTA를 반대하는 대중 저항 때문에 협정문 의회 상정을 미룰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파체코 대통령은 “CAFTA는 아직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내용을 갖추지 못 하고 있다. 나쁜 CAFTA는 상정하지 않을 것이다. CAFTA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관건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이다. CAFTA는 우리에게 경이로운 축복이 될 수도, 대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잠비아의 경험은 세계은행이 융자조건을 반대하는 대중들에 맞서 어떻게 자신들의 비타협성을 드러내는지 보여준다.

잠비아 

사하라 이남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에 속했던 잠비아는 지난 40여년에 걸쳐 세계 최빈국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쇠퇴는 부패나 무능한 국정운영 등 내부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외부적인 충격, 특히 그 국가의 핵심 수출품인 구리 원자재 가격의 하락에 기인한다. 그러나 많은 개발 분석가들은 IMF와 세계은행의 독선적인 자유시장 정책들 또한 잠비아의 몰락에 무척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잠비아은행의 경제학자 시툼베코(Lishale C. Situmbeko)와 비정부기구인 ‘주빌리-잠비아(Jubilee-Zambia)’의 분석가 줄루(Jack Jones Zulu)가 최근 공동집필한 세계개발운동(World Development Movement)의 보고서는 국제금융기구들이 잠비아를 어떻게 망가뜨려갔는지 묘사하고 있다. 이들의 보고서, 『빚더미 운명의 잠비아(Zambia: condemned to debt)』 는 국제금융기구가 융자조건을 빌미로 강요한 정책들이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는지 상세하게 묘사한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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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부터 1996년까지 급속한 무역자유화에 따른 잠비아 제조업의 황폐화.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섬유산업이었는데, 지난 10여 년간 공장 수가 140개에서 8개로, 3만4천여 개였던 일자리는 4천여 개로 줄었다. 선진국에서 들어오는 값싼 중고 의류가 침체의 주된 이유였다. 
 ● 1990년대 IMF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목표는 상환문제에서 즉각적인 균형을 메우는 것이었지만, 같은 기간 무역적자는 오히려 증가했다. 
 ● 1991년 옥수수와 비료에 대한 국가보조금의 철폐 이후 시작된 농업의 쇠퇴. 이 정책이 “농업분야를 돕기보다는 침체와 억압의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은 세계은행조차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IMF와 세계은행이 융자조건을 통해 강요한 국가 소유 기업의 사유화는 1992년 이후 몇 개의 기업과 수천 개의 일자리를 붕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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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의 필자들은 “이러한 침울한 결과”가 “세계은행과 IMF의 정책들에 대한 불만을 확산시켰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공공의 저항은 간단하게 무시되고, “같은 약품이 더 많이 처방되는 일”이 되풀이 될 뿐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잠비아에서 세계은행과 IMF의 간섭”이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결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시툼베코와 줄루가 국제금융기구의 “민주성 결핍(democratic deficit)”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최근 부채 탕감의 조건으로 잠비아의 국영 전력사업체인 ZESCO와 국영은행 ZNCB를 사유화할 것을 요구했다. 잠비아 정부는 처음에는 이 국영기업들을 팔 것에 동의했으나 이내 곧 코스타리카에서처럼 거대한 저항에 부딪치게 되었다. 2002년 11월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잠비아의 노동조합들이 시민사회단체와 학생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 시위를 포함하여 많은 대중 반대행동들은 결국 잠비아 의회가 그 사유화계획을 백지화하도록 이끌었다. 행정부는 그 회사들을 팔기로 한 자신들의 초기 계획이 뒤집혀지는 것을 수용했다.          
    
그러자 IMF는 만일 사유화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그 대가로 잠비아가 채무탕감에서 10억 달러를 박탈당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신문들은 IMF의 국가 책임자(country representative)인 엘린(Mark Ellyne)이, 잠비아 정부가 그 회사들을 팔지 않는다면 “돈을 받지 못할 것”이라 단언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잠비아 재무부는 의회 투표결과를 무시하고 은행을 사유화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다시 뒤집을 것이라 발표했다. 그러자 잠비아 노동조합평의회 의장인 히카움바(Leonard Hikaumba)는 “IMF와 세계은행의 변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또 “우리는 우리의 전략분야를 압살하는 IMF와 세계은행의 방식에 너무나 실망스럽고 우려를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제금융기구의 독선에 저항하는 대중의 운동은 계속되었고, 잠비아가 자신들의 정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지지하는 국제적인 흐름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IMF와 세계은행은 결국 자신들의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ZESCO와 ZNCB의 국가 소유 지분 대부분을 그대로 유지하되 2004년까지 운영을 “영리화(commercialize)”하라는 게 IMF와 세계은행의 유일한 요구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IMF는 국제금융기구의 ‘과중채무빈국 외채문제해결전략(HIPC initiative, Heavily Indebted Poor Country initiative)’에 의거해 교육에 대한 보조 등 정부의 공공 지출에 재갈을 물리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잠비아 정부의 사회 개발을 위한 계획을 방해하기도 했다. 갈등은 2003년에 시작됐다. 잠비아 정부가 교사들의 월급을 인상하고 도시 거주자들을 위한 주거수당 제도를 도입하자(둘 다 IMF의 지시를 위반하는 행동이다), IMF가 대출을 동결하고 외채탕감계획을 연기한 것이다. 결국 잠비아 정부는 2004년 GDP의 8%를 지출 상한으로 정하고, “재무부가 교육부에게 교사들의 임금인상과 신임 교사 고용을 취소토록 강제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 결과 9천여 명의 교사들이 실업상태에 놓였고, 수백 개의 학교가 교사부족을 겪어야 했으며, 몇몇 학교에서는 학생 대 선생의 비율이 100:1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2004년 2월, 16년만의 전국적인 파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정책들에 대한 노동의 강력한 저항은 분명하게 IMF의 주의를 끌었다. 2005년 IMF가 자신의 방침을 뒤집고, 7천여 명의 교사들을 추가로 고용하기 위해 잠비아 정부가 네덜란드로부터 특별 보조금을 받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그러나 IMF는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는 대신 잠비아 정부를 비난했다. 2005년 6월 발표된 국가 보고서에서 IMF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예산 압박이 교사-학생 비율의 개선을 방해했다. 교육부는 부처예산에서 퇴직교사를 위한 부분을 삭제하지 않았고 이것이 고용창출능력을 압박했다. 그러나 2005년 예산책정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가 지적되었고 2004년 장부상의 부족분을 실질적으로 정리하여 7천여 명의 신임교사 채용을 위해 쓰자는 안건이 제기되었다.” 그렇지만 어쨌건 국제금융기구가 교사부족을 언급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진보를 나타내는 것이다.   

다음으로 불가리아에서 노조들의 반대가 어떻게 국제금융기구의 개혁계획을 철회하도록 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불가리아

2000년 8월 불가리아 정부는 교육체계의 운영개선을 위해 세계은행으로부터 8천340만 달러의 차관을 융자했다. 이로 인해 도입된 변화는 심각했다. 학교들이 통합되었고, 새로운 교과과정이 도입되었으며, 교사훈련 체계가 변화했고, 학급의 크기가 커졌으며, 교원의 숫자가 축소됐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은 2001년 봄까지 불가리아 노동조합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 ‘국제노동연대를 위한 미주센터(American Center for International Labour Solidarity, 이하 연대센터)’는 그 계획의 개요를 정리한 110쪽짜리 세계은행 보고서의 복사본을 입수했고, 이를 영어로 번역했다. 연대센터는 세계은행이 작성한 “실질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수혜를 받는 대표적인 사람들”의 목록에, 학생, 교사, 비정부기구뿐만 아니라, 노조까지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명백하게 거짓이다. 교사노조 중에 어떤 단체도 그 프로그램 논의에 참가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신들의 참여 없이 교육체계의 주요 개혁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노조들이 매우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 워싱턴 대표부에 따르면, 불가리아 교원노조들이 “다른 문제들은 우리들과 상의했던 불가리아 교육부가 그 개혁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며 자기들이 통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는 점이었다. 한편 불가리아 독립노조 총연맹(KNSB 또는 CITUB)과 노동총연맹(PODKREPA)에 각각 소속된 노조들, 또 국제자유노련 회원 노조들은 서로 그 문서가 제시하는 사실정보의 확인과 전망분석을 두고 경쟁했지만, 그 결과는 자주 뒷북이 되고 말았다. 어쨌건 노동조합들은 그 혁신이 공공 교육과 교사들의 노동조건에 심각한 충격을 주리라 생각했다.  

세계은행과 불가리아 정부가 그들의 혁신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전국적인 캠페인을 준비함에 따라, 교사노조들도 역공격을 조직했다. 연대센터의 절반을 불가리아에 대표부로 파견하기까지 했던 ICFTU 워싱턴 사무국의 도움을 얻어, 불가리아 교사노조들은 “연대행동계획”을 개발했다. 이 연대행동계획은 “세계은행의 교육혁신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분석하고, 교육체계 근대화를 위한 대안적인 제안을 담은 공동성명서를 작성하여 정부와 세계은행을 향해 발표하며, 이 개혁을 위한 공공 캠페인을 수행할 것”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또한 ICFTU와 연대센터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은행을 향한 이들의 호소는 “쇠귀에 경 읽기”였을 뿐이다. 노동조합들은 불가리아 교육부와 세계은행 프로그램을 논의할 수 있는 대화 틀을 획득하지 못 했다.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두 개의 교원노조가 한나절 동안 전국적인 작업 중단(work stoppage)을 조직했다. 이러한 행동은 세계은행 국가 감독관의 주의를 끌었다. 노동조합 사무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 감독관은 세계은행이 “실수를 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또한 노동조합과 직접 상담하기로 약속하고, 그 개혁을 전면적으로 교정하겠다고 제안했다. 결론적으로 “세계은행은 교육개혁을 완수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 계획이 사전에 대중들에게 공유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2004년 3월, 마침내 교육개혁 계획이 철회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자신들의 실수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척 하는 동안에도, 세계은행은  불가리아 정부가 해고보호 수단들을 없애고 많은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감퇴시키는 노동개혁 조치를 취하도록 IMF와 함께 압박하고 있었다. IMF가 바라는 바는 불가리아를 외채상환 조건의 “구조적인 표준”으로 만들려는 것이었으며, 곧 불가리아 정부에게 연공임금제도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노조를 자극했다. 2004년 불가리아 정부는, 이미 유럽연합(EU) 가맹 27개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불가리아의 평균임금을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음에도, 연공임금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2004년 11월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연장을 집어던지고 뛰쳐나와 거리를 점거했다.” KNSB와 PODKREPA는 인구가 1천만 명인 이 국가에서 4십만 명을 훨씬 웃도는 사람들이 이 저항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의 행동은 야당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회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2004년 10월 ICFTU와 유럽노동조합연맹(ETUC)의 간부들이 그들의 동료 노조활동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불가리아 정부 관료, 그리고 IMF와 세계은행의 대표들을 만나러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로 날아왔다. 국제금융기구들은 이미 불가리아의 노동규범이 EU 가맹기준을 “실질적으로 추월한 상태”기 때문에 자신들은 “불가리아에서 노동 유연성을 심화시키는 조치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을 들은 후 ICFTU는 이미 유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불가리아 노동시장에서 해고보호조치를 축소시키기 위해 압박을 가한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 묻는 문서를 IMF와 세계은행에게 전달했다.     
    
2005년 봄 불가리아에서 새 정부가 선출되면서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새 정부는 가장 먼저 IMF의 차관을 계획된 일정보다 빨리 상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불가리아가 외채상환 조건을 어겼을 때 IMF가 융자금 회수를 빌미로 협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하는 조치였다. 또 2006년 2월에는 불가리아 노동부가 IMF 상환조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연공임금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KNSB와 PODKREPA에게 매우 값진 승리였다. 경험 많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지급하는 불가리아의 사회적 관례와 권리를 지켜낸 중요한 투쟁이었던 것이다. 물론 국제금융기구의 노동시장 규제철폐 이데올로그들에게는 불쾌한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세계은행이 국제노동기준을 직접 조롱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은 우리를 이 장에서 논의될 마지막 국가, 인도네시아의 경험으로 안내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노동조합들이 단결하여 세계은행이 직접 투자한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위반사례들을 폭로하고 세계은행이 자신의 행동을 고치도록 설득했다.    

인도네시아

‘국제금융기구에 대응하는 아시아노동연대(ALNI, Asian Labour Network on IFIs)’는 노동조합, 학술단체, 비정부기구 등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다. ALNI의 인도네시아 지부는 2004년 발리에서, 세계은행이 주로 투자한 기반시설공사 사업장에서 핵심노동기준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조사연구를 수행했다. 3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먼저 세계은행의 사무국 사람들을 만났다. 사무국 사람들은 그 연구가 공정하게 진행되기만 한다면 협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세계은행은 그 사업의 주계약자와 믿을만한 협력업체, 즉 연구자들의 작업장 출입이 가능한 사업체들을 연구팀에게 소개해줬다. 거기서 ALNI의 연구자들은 지역 노동법뿐만 아니라, 아동노동법, 각종 차별에 관한 국제협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사례들을 발견했다.

ALNI가 연구한 세계은행의 ‘발리지역 기반공사사업(BUIP)’은 1997년에 시작되었으며, 발리 섬 전역에 걸쳐 수많은 곳에서 공공 토목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ALNI의 연구는 그 사업에 포함되는 여러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에게 받아낸 질문지와 인터뷰 결과를 토대로 구성되었다. 그 결과 연구팀은 △ 위험한 건설사업장에 아동의 배정(이는 아동노동 중에서도 최악의 것으로 취급받는다), △ 아동과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차별, △ 안전장비 부재와 형편없는 장비교육, △ 법정 산재보험 미가입 등 심각한 위반사례들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미 그 사업 과정에서 사고로 2명이 죽었을 뿐더러 조사에 응한 노동자들 중에서 34%는 한 번 이상 사고를 당했다고 대답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노동자들은 단 한 명도 노조에 속해있지 않았다. ALNI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세계은행, 인도네시아정부, 지방정부, 이 중 어떤 것도 세계은행이 투자하는 건설사업 현장에서 노동조건이 잘 준수되고 있는지 감시하지 않는다. 노동기준의 준수를 시찰하고 수속을 밟는 절차가 없다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법 위반이 만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연구팀은 이 사업에서 노동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3%라고 계산했는데, 이는 다른 대규모 토목공사들과 비교했을 때 극단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ALNI 연구팀은 세계은행이 앞으로 투자하는 사업에서 “인력자원의 정당한 활용”에 관한 절차를 수립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들은 또한 세계은행이 인도네시아 정부와 함께 세계은행의 투자 사업장에서 노동기준이 잘 준수되는지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개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투자금액에서 노동비용으로 배정된 비율이 정확하게 준수되는가”를 감시하고, 노동비용의 실제 비율이 인도네시아 법 틀에서 기본권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경우보다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ALNI 보고서와 그 속에 실린 권고는 인도네시아 언론으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연대센터의 포터(Rudy Porter)는, ALNI가 세계은행 사무국을 만나 그 연구결과를 제시하며 앞으로 진행되는 사업에서는 핵심노동기준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은행은 “대답이 없다.” 포터는 첨언한다. 

세계은행은 자신들이 강요하는 국제협약에 아동노동과 강제노동에 관한 핵심노동기준 준수가 포함되고 있다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단결의 자유를 위해서 혹은 차별에 반대하기 위해서 실제 이들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ALNI는 인도네시아 노동법이 핵심노동기준의 준수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세계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그들의 사업에서도 노동법이 준수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노동법 준수 감독은 자신들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정부에게 맡겨져야 하는 일이라며 피해간다. 어쨌든 ALNI는 이 문제를 가지고 세계은행을 계속해서 압박하고 있다. …… 이러한 점에서 ALNI는 세계은행에 관한 발리 연구를 주의 깊게 다양한 틀을 통해 다뤄야 할 것이다. 과거처럼 노동계급 대표들을 무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세계은행이 다음 사업에서는 노동기준을 준수하는 방식에서 중요한 변화를 보일지라도, 그들은 계속해서 감시되어야 한다.

어쨌든 인도네시아에서 ALNI의 경험은 노동조합이 노동조건 등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한다면 국제금융기구들이 반응할 수도 있음을 예증한다. 

지역 노동조합과 총연맹들은 자신의 국가에서 국제금융기구에 저항하는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이를 기반으로 국제노동조합운동 역시 국제금융기구에 저항하는 투쟁에서 중요한 승리를 성취할 수 있었다. 세계를 가로지르는 동맹의 활약을 통해, 국제노동운동은 국제금융기구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데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 보고서의 다음 장들은 국가 수준과 국제 수준 모두에서 노동조합이 승리를 거둔 사례들을 다룬다. 우루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로아티아,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탄자니아 등의 사례연구를 다루는 각 장들은 IMF와 세계은행에 맞서 노동조합이 거둔 승리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 다음 두 개의 장에서는 글로벌 이슈를 다루는 국제금융기구의 정책에 국제노동조합운동이 끼친 영향력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우선 국제노동조합운동이 어떻게 국제금융기구에게 핵심노동기준 문제를 제시했는지 설명하고, 다음으로 외채탕감을 위한 국제캠페인에서 노동운동의 역할을 논의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