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이 만 개나 되는데 또 짓겠다고!

노동사회

댐이 만 개나 되는데 또 짓겠다고!

편집국 0 3,822 2013.05.24 12:00

참으로 절묘했다. 강원도를 비롯한 전국에서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났던 7월18일, 언론들이 일제히 ‘댐 타령’을 해대기 시작했다. 일부 보수언론이 “동강에 댐이 있었더라면”, “물난리 뒤끝, 다목적댐이 아쉽다”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를 실으며 입질을 하자, 정부·여당은 냉큼 “다목적댐 건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화답했다.

수해지역 주민을 배려하는 척하는 이런 논의를 접하면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부 언론은 이번 집중호우 때 영월지역의 주민들이 긴급 대피한 사실을 언급하며 7억 톤짜리 동강 댐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마침 이날 점심을 함께 했던 고향이 영월인 지인의 한마디.

“동강 댐이 있었으면 대피할 일은 없었겠지. 다 수몰돼 벌써 떠나 있어야 했을 테니까.”



홍수피해 미끼로 댐 건설 낚기, 입질 오네~

물론 댐은 필요하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지적했듯 이번 수해는 댐과는 무관한 게 대부분이었다. 홍수 피해가 가장 컸던 강원도 정선, 인제, 평창 지역을 보자. 이들 지역의 수해는 대부분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와 상류의 계곡 범람이 그 원인이었다.

다분히 ‘인재’로 여길 만한 것도 눈에 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영월의 예를 보자. 영월지역에서는 수해를 대비해 제방을 높였다. 그런데 제방만 높였지 다리는 제방보다 2~3미터 낮게 방치해 뒀다. 하천의 물이 급격하게 불면 결국 다리는 물길을 막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물길이 막힌 홍수는 자연스럽게 제방을 압박하게 되는 것이다.

인근 하천이 범람해 쑥대밭이 된 평창군의 어느 마을의 예도 비슷하다. 이 마을에서도 지나치게 낮은 하천 다리가 문제였다. 물이 불자 이 마을 인근의 하천 다리 역시 떠내려 온 토석과 나무 등이 뭉쳐져 마치 댐처럼 물길을 막았다. 그러자 홍수는 새로운 물길을 찾아 마을 쪽으로 우회했고,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런 예를 염두에 두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댐을 짓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원인을 분석한 뒤 그에 따른 걸맞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상습적인 ‘수재지역’이었던 파주는 제대로 된 치수정책이 얼마나 큰 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다. 1996년, 1998년, 1999년 큰 수해를 입었던 파주 지역은 2000년부터 본격적인 수방 대책을 마련했다.

파주시는 제방과 다리를 높이고 배수 시설을 갖췄다. 그 덕분에 집중호우로 서울, 경기 일부지역에서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은 올해, 파주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애초 하천에 비해서 지대가 낮은 곳에 개발된 문산읍은 근본적으로 홍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역시 치수정책과 연계되지 않은 주먹구구식 도시 개발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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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22일 한탄강댐 건설 반대시위를 하고 있는 철원지역 군수, 의회의원, 주민들.  ▷ 환경운동연합 ]

이래저래 ‘정답’이 될 수 없는 댐 건설

사실 한국은 댐을 지으려고 해도 더 지을 장소가 없는 상황이다. 환경단체의 분석이 아니다. 2005년 10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국정과제회의는 “국내의 대규모 다목적댐은 국토 면적이나 수량 확보를 염두에 둘 때 지을 만큼 지었으므로, 앞으로는 댐을 건설하는 게 아니라 유지·관리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국내에는 댐이 많아도 너무 많다. 놀라지 마시라. 정부의 공식 통계를 보면 지난 수십 년간 건설한 댐은 무려 1만9천여 개나 된다. 높이 15미터 이상 되는 댐만 따로 세어도 1,217개나 된다. 이런 댐 위주의 치수 정책 때문에 한국은 세계 최고의 ‘댐 강국’으로 꼽히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몰지역 주민의 고통, 자연하천의 파괴가 있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댐을 짓고 또 지었음에도 정작 수해는 줄지 않았다. 홍수 피해액수는 매 10년마다 3.7배씩 증가하고 있다. 특히 1994년부터 2003년까지 최근 10년 동안의 피해 액수는 무려 1조7,100억 원이나 늘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간 수해 예방 및 복구를 위해 투입된 국가 예산도 무려 32조929억 원에 이른다.

지구 온난화 때문임이 분명한 강우 패턴의 변화도 댐 건설이 더 이상 현실에 부합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과거에는 ‘6~7월 장마’, ‘8~9월 태풍’이라는 패턴에 맞춰 수해피해를 예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국지성 호우와 초특급 태풍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댐 건설로 홍수 막겠다는 주장은 문제가 달라졌는데도 수십 년 전 ‘해법’만 고수하고 있는 꼴이다.

또 과거처럼 댐 건설을 밀어붙이기도 어렵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영월이 고향인 지인의 얘기에서도 알 수 있듯, 댐 건설은 엄밀히 얘기해서 “상류의 희생으로 하류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이다. 예전에야 권력이 ‘기침’ 한 번 하면 주민들이 알아서 기어 나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보상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탄강 댐의 경우 예산이 1조 원인데, 이 중 보상액이 7천억 원으로 실 공사비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1973년 준공한 소양감 댐처럼 29억 톤의 물을 가둘 수 있는 대형 다목적댐은 이젠 더 이상 지을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이래저래 더 이상 댐은 ‘정답’이 아닌 것이다.

‘댐 타령’ 도돌이표는 왜 지워지지 않나
  
그런데 왜 시대착오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댐 타령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바로 ‘건설족’이 망령이 된 댐을 끊임없이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1960~80년대에 토건자본은 댐 건설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관료와 정치인이 깊숙이 연루돼, 때로는 조직적으로, 때로는 개인적으로 이익을 도모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이런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수해피해가 나자마자 일부 보수언론이 총대를 메고 댐 타령을 하고, 건설교통부와 열린우리당이 곧바로 화답하는 꼴을 보라. 댐과 관련해서는 ‘1970년대의 논리’가 지금도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제대로 된 치수정책의 마련은 점점 더 요원해질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토건자본이 이익을 챙기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수혜를 입는 토건 노동자의 답답한 처신이다. 댐 타령만 하는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내 토건산업의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댐을 넘어서는 새로운 치수정책에 걸맞은 ‘21세기형 토건산업’의 전형을 고민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도 언급한 파주지역이 위치한 임진강 수계의 경우, 하천에 쌓인 퇴적물을 준설하는 것만으로도 30% 이상 물이 빠지는 효과가 난다. 또 1960~80년대에 검증 없이 무조건 지었던 노후화된 댐을 철거하는 일도 중요하다. 직강화(구불구불한 강변을 직선으로 만드는 작업)된 하천을 자연하천으로 다시 복원하는 일도 토건산업이 맡아서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댐 건설 말고도 토건산업이 담당해야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젠 토건노동자가 나서야 한다. 과거의 관성에 기대 관계-정계-언론계의 기득권층과 유착돼 댐 타령만 하는 토건자본의 논리에 과감히 토건노동자들이 “아니오”라고 외쳐야 한다. 왜 한국수자원공사 노동조합은 “이젠 변해야 산다”고 선언을 하지 못하고 있는가?

모두를 위한 토건노동자들의 “아니요!” 선언

부동산 값이 오르면 주택 공급을 늘리자고 하고, 연휴 기간에 차가 막히면 도로를 더 닦자는 게 바로 건설족의 논리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수해가 나자 댐을 더 짓자고 그들이 나서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번번이 피해를 입으면서도 그런 주장에 고개부터 끄덕이는 노동자·서민이다.

한 세기 전 중국의 작가 루쉰은 수없이 많은 굴욕을 당하며 살면서도 그것을 직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기만을 하면서 살아가는 ‘아큐’의 모습을 통해 민중의 각성을 촉구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댐 논란은 우리가 또 다른 아큐는 아닌지를 묻고 있다. 아큐는 죽기 직전에야 현실을 직시하고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다. 아무리 역사가 반복된다지만, 알면서 되풀이 당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