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건강보험이 무상의료의 뜻 세우도록 하기 위하여

노동사회

서른 살 건강보험이 무상의료의 뜻 세우도록 하기 위하여

편집국 0 3,680 2013.05.24 12:17

1977년에 시작됐으니, 건강보험제도가 내년이면 벌써 30살을 맞이하게 된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래도 무럭무럭 성장해왔다. 건강보험 연혁을 훑어보면 ‘확대·통합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모든 국민이 하나의 제도로 묶여 사회적 위험을 골고루 나눠 부담하는 통합형의 공적 건강보험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셈이다.

무상의료투쟁과 재정적자 설레발의 예정된 충돌

jhlee_03.jpg또한 2000년 재정적자 이후 4년 만에 건강보험 재정상황이 호전되고 무상의료투쟁이 본격화됨에 따라, 그동안 고질적인 문제였던 낮은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2005년에는 암 등 중증질환에 대한 부담경감,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급여확대, 분만 본인부담면제 등 약 1조 2천억여원 규모의 급여확대가 이뤄졌다. 그리고 올해에는 취학 전 아동의 입원비 면제 등을 포함해 대표적인 비급여였던 식대도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특히 작년 수가협상과정에서 2008년까지 보장성을 80%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한 약속이 지켜진다면 건강보험은 “반쪽짜리 보험”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외형 뿐 아니라 속내도 보다 내실 있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절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이런 성장의 역사는 곧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과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의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출범시기 의료보험통합운동(1995~2000년)을 시작으로, 건강보험재정파탄규탄운동(2001년), 건강보험재정통합과 수가인하 및 보험료 저지투쟁(2002~2003년)을 거쳐 왔다. 마침내 2005년에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기반으로 노동자서민의 건강권에 대한 요구를 전면화시키는 ‘무상의료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고, 현재의 결과는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일궈낸 소중한 성과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올해 건강보험재정이 적자날 것이라고 난리다. 담뱃값을 500원 인상하지 못하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어려울 뿐 아니라 보험료를 6.5%정도 인상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의 말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거의 협박하는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의 이런 설레발은 담뱃값을 인상해야 한다는 주무부처의 절박한 사정을 넘어, 올해 연말 건강보험 수가 및 보험료, 보장성 협상에 임할 정부의 입장을 미리 선전포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의 건강보험 전망 구체적으로 제시할 시기

한발 더 나아가 이번 국정감사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은 “성급한 보장성강화는 인기영합주의”, “있을 때 쓰고 보자 식” 등의 발언을 하며 모처럼 활발해지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논의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2008년까지 80% 건강보험 보장성을 달성하겠다는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이나 작년 합의사항이 지켜지려면 내년도 보장성을 결정하는 올해 연말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결과가 매우 중요한데, 지금 분위기라면 오히려 추진하기로 한 병실료 급여화 등의 보장성계획마저 좌초될 위기에 처해있다.

그 뿐이 아니다.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논의 또한 활발해지고 있다. 지금도 점점 커져만 가는 민간의료보험을 제도적 차원에서 활성화시키자는 것인데, 이는 어떤 흐름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 건강보험제도의 공적 내실화를 위협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향후 건강보험체계 재편논의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물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자는 주장이 어제 오늘 제기되어왔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분위기는 종전과 사뭇 다르다. 기존에 ‘논의’나 ‘추진검토’ 차원을 벗어나 의료를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는 종합적인 패키지의 하나로서 구체적인 계획들이 논의되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런 한편, 지난 8월 말 발표된 국가미래전략보고서 <비전 2030>에는 2030년까지 보장성 85% 달성하겠다는 계획이 담겨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 ‘의료보장 미래전략위원회’ 구성을 준비 중이다. 반가운 소식이긴 하나 앞에서 언급한 상황들을 고려하면 그리 흥이 나지만은 않는다. 중장기적인 계획과 비전의 중요함이야 모르는 것은 아니나, ‘비전’, ‘미래전략’ 혹은 또 다시 ‘공약’이란 이름으로 포장을 달리하면서 현재 노동자서민이 받고 있는 고통을 미래의 과제로 돌려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중장기 목표이자 비전인 ‘무상의료’ 역시 아직까지 대다수의 노동자서민에겐 정부의 장밋빛 환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현실의 쟁점들을 어떻게 돌파하며 구체적인 전망을 밝혀나갈 것인지 고민해야한다. 과제나 쟁점을 단순히 나열만 하더라도 열 손가락이 모자를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하반기 수가 및 보험료, 보장성 등과 맞물려 건강보험 재정문제를 중심으로 굵직한 쟁점이 형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을 시작으로 고민의 폭을 넓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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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인상률 19.1%… 의사파업 대가 서민 돈으로 치른 정부  

우리나라 의료구조상 건강보험 재정은 언제든지 불안해질 수 있다. 2000~2001년에 의사파업과 맞물려 의료계의 요구를 대폭 수용, 수가를 1년 사이에 무려 40%나 인상해 적자가 2조3천억이 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적자를 메운 것은 바로 노동자서민들이었다. 2000년 20%나 되는 보험료를 올린 이후 2004년까지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를 연평균 19.1% 인상해 왔지만 보장성은 입에도 담기 힘든 상황이었다. 정부와 의료계의 일방적 횡포에 항의하며 민주노총이 경실련, 농민단체협의회, 한국노총 등 가입자단체 대표들과 함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탈퇴했던 것도 이맘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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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건강보험 재정 파탄 대응책의 일환으로 2001년 1월 발효된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에 의거하여 발족된 건강보험 수가 및 보험료, 보장성을 결정하는 사회적 의결기구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대표단체로 참여했으나 2002년 11월29일 보험료 8.5%, 수가 2.97% 인상하는 결정에 항의하며 탈퇴했다가 2004년 11월 건강보험 재정흑자와 함께 보장성강화를 위해 다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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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노동자서민의 일방적 희생으로 어렵게 2003년에는 다시 당기수지 흑자로 돌아섰고, 2004년에는 누적적자까지 모두 해소하고도 누적흑자가 남았다. 그래서 그동안 미뤄놨던 보장성강화를 이제 시작 좀 해보려던 참이었는데, 또 다시 예전처럼 재정적자가 예상된다며 유턴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부발표에 발맞춰 여기저기서 근거 없는 주장들을 마구 떠들어지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실천되지도 않은 보장성강화로 적자났다는, 새빨간 거짓말 

먼저 정부가 ‘무리한 보장성강화’ 때문에 재정적자가 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언컨대 적반하장이다. 2004년과 2005년 건정심은 작년과 올해 보장성을 각각 1조 5천3백억여원과 9천2백억여원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바로 이것이 재정적자의 원흉인 듯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추가로 인상되는 급여확대분에 대응하여 보험료를 2.38%, 3.9% 각각 인상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를 했을 뿐 아니라, 악선전과는 달리 당기수지균형이라는 원칙을 맞추려면 2005년 급여확대는 오히려 이보다 훨씬 커져야 했으나 흑자로 돌아선 첫해임을 감안하여 여유자금을 남겨두기로 노동조합 측이 양보한 것이었다. 

그리고 올해 보장성과 보험료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보건 복지부가 처음 제안한 것은 보험료 6.84% 인상이었으나, 피부로 느끼기 어려운 낮은 보장성과 급격한 보험료 인상의 충격을 감안하여 2004년에 남겨두었던 9천7백억의 당기수지 흑자를 일부 활용하여 보험료를 3.9%만 올리기로 한 것이었다.

보장성강화 때문에 재정적자가 났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유력한 근거는 무엇보다도 실제 급여로 지출된 실적이 당초 예상했던 것에도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이다.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5년 실제 지출은 20%에 불과했고 2006년 역시 48%에 불과했다. 특히 올해의 경우, 식대급여가 상반기부터 지출될 것을 감안하여 보험료를 책정했지만 실제 식대급여화가 늦어져 급여지출이 하반기부터 진행됐다. 정부자료를 보더라도 식대, 양전자단층촬영(PET) 등 보장성이 확대된 영역에서 급여지출은 예상금액보다 오히려 약 5천억원 가량이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약속한 보장성강화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그 때문에 재정이 적자위기라는 떠드는 것은 정말 적반하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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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강화 위한 분담체계 정부는 고민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재정적자가 발생한 실제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법적 의무를 방기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이하 특별법)에 따르면 지역건강보험의 50%를 국고(일반회계 35%, 건강증진기금 15%)에서 지원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는 단 한 번도 이를 준수한 적이 없으며, 2000년부터 2004년까지 국고지원은 평균 38.6%에 불과했다. 이는 재정경제부나 기획예산처 등 재정담당부처들의 책임이 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올해 만료되는 특별법을 대체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에서는 국고지원이 오히려 현행보다 더 줄어든다는 점이다. 정부안은 총재정방식으로 지원형태를 바꾸고자 하는데, 그 규모는 총재정의 20%로 기존 23% 수준보다 오히려 축소된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2007년도 세출 예산안을 보면 건강보험 예산은 약 3조 2천2백4십억원 규모였던 올해에 비해 3.6%(-115,803백만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건강보험 재정안정화와 취약한 건강보험 보장성강화를 위해 적절한 사회적 분담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정부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며, 정부 또한 이를 강조해왔다. 그럼에도 국고지원에 대한 약속을 지킨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그러면서 오히려 축소하겠다는 개정안을 입법 발의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담뱃값 미인상으로 인해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건강보험의 수입이 1,466억원 감소했다고 변명도 덧붙인다. 이는 액면 그대로 보면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담뱃값 인상에 자신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정부는 담뱃값 인상 연기를 핑계 삼을 자격이 없다. 정부는 많은 반대에도 2004년 건강보험에 지원되는 일반회계 지출비중을 40%에서 35%로 줄이면서 대신 담뱃값이 포함된 건강증진기금의 비중을 15%로 높였다. 그만큼 건강보험재정이 담뱃값 인상여부에 따라 좌우되도록 만든 것이다. 담뱃값 인상 연기에 따라 줄어들게 될 건강증진기금 수입에 대한 책임은 또 다시 국민에게, 즉 건강보험료로 부담으로 돌아온다.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일반회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꽁수’를 쓰다가 결국 지금과 같은 상태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또한 낭비적인 진료비 지불방식도 문제다. 정부는 민간병원의 수익이 점점 높아지고 있음에도 이익단체에 밀려 수가를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수가 및 보험료 인상 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지만, 실제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은 부재한 상황이다. 여러 차례 수가협상에서도 드러났듯 병원들의 경영수지가 양호한데도 수가를 인상해줘야 했고, 이는 곧 국민이 부담해야할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작년과 올해 상반기 기관당 진료수익은 평균 23.7%나 상승했다. 비급여까지 포함하게 되면 50%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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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로 몇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하여     

이제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무상의료로 나아가기 위해 2006년 하반기 노동조합운동이 지향해야할 방향과 과제에 대해서 살펴보자. 첫째, ‘2008년 80% 보장성강화’ 목표는 중단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2008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 80% 달성을 위한 실질적인 계획을 이번 건정심 보험료수가 협상과정에서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특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를 급여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내년 1월 기준 병상의 보험적용의 차질없는 확대, 치과와 한방부문의 낮은 급여를 끌어올리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 등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올해에도 정부가 이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노무현 정부는 자신의 공약이 헛것이었으며,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는 셈이다. 노동자서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보장성강화가 진행돼야 보험료 인상에 대한 사회적 동의 또한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성강화는 매년 15%이상 높은 상승세를 보이며 무섭게 커져가고 있는 민간의료에 대한 노동자서민의 의존과 부담을 줄여나가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정공법이 될 것이다.

둘째, 올해로 시효가 만료될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을 제대로 개정해 정부분담을 높여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안정화와 취약한 건강보험 보장성강화를 위해 적절한 사회적 분담체계를 마련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분담률 규모가 최소 총재정의 25% 이상은 되어야 하며, 중장기적으로 일반회계에서 충당하는 비율을 높여가야 한다. 담뱃값이 포함된 건강증진기금은 애초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도시형보건지소, 지역거점병원, 재활병원, 노인요양시설 등 공공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투입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셋째, 2007년 건강보험 수가 협상은 유형별로 추진되어야 한다. 건강보험 수가협상을 유형별로 진행하는 것은 지난해 수가협상 과정에서 핵심적인 합의 사안 중 하나며, 올해 하반기에 최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할 내용이다. 이는 기존에 불합리하게 수가인상효과를 가져와 노동자서민에게 또 다시 부담을 안겨줬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며, 특히 총액계약제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올해 건강보험 협상은 요양기관의 특성을 고려하여 종합전문병원, 종합병원, 병원, 의원, 치과, 한방, 약국, 보건기관 등 유형별로 구분해 수가협상을 맺어야 한다. 벌써부터 의료계는 이를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만약 이를 거부하면 작년 유형별 계약을 전제로 인상한 수가 3.5%를 반환하라고 요구해야한다. 아울러 기존 낭비유발적인 행위별 수가제를 전면 개편해 하루 빨리 총액계약제를 전면시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 또한 아울러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