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를 위한 복지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노동사회

연대를 위한 복지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편집국 0 3,408 2013.05.24 12:12

한국의 사회보장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모든 국민이 사회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에 가입 가능하도록 법안이 정비되었고, 한 달 이상 고용될 경우 일용·임시직 노동자들도 사회보험에 가입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 예산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정부 예산중 복지부 예산은 1992년 7.2%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는 10.8%로 증대했고, 2006년에는 14.5%를 차지하고 있다. 수치상으로 보면, 15년 사이에 두 배가 증대한 셈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인 사회보장체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가?

emsung_02.jpg
[ 전체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비율은 이미 55%를 넘고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사회보험에 가입하기도 힘든 현실이다. 2006년 10월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 매일노동뉴스 ]

왜 지금 진보적인 사회보장체계를 이야기하는가 

첫째, 사회보장은 확대되고 있으나 전반적인 개혁의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와 일부 학자들은 “사회보장 예산 확대=진보적인 사회보장의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복지예산 확대가 사회보장구축의 전제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그러나 복지예산 확대가 곧바로 삶의 질 향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며 복지예산 확대가 곧 ‘진보적’인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확대된 예산이 모두 의사들에게 흘러들어가거나 고소득층에게 사용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복지예산확대를 진보적이라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현재 정부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예산확대 방안만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정판이 얼마 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비전 2030』이다. 누구에게서 걷을지, 걷은 돈으로 무엇을 할지,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지 보여주지 않는다면, 누가 쉽게 자신의 호주머니를 열겠는가? 또한 비전 없이 예산확대만을 주장하는 것은 사회보장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만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비전과 전망을 가지고 있느냐며, 그러한 측면에서 진보적 사회보장체계 구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사회가 급변하여 지금까지 겪은 것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노령화, 비정규노동자 증대를 그 대표적인 변화로 꼽을 수 있다. 인구가 노령화되면 연금과 의료에 막대한 지출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노인들은 병원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의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우리가 지출하게 될 의료비와 건강보험료 증가분은, 현행 민간중심의 의료서비스가 유지된다면 대부분 의사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된다. 또 비용증가를 건강보험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비정규노동자의 증가 역시 마찬가지 상황을 초래한다. 널려 알려졌듯이 이미 비정규노동자는 임금노동자의 55%를 넘어섰다. 비정규노동자는 사회보험에 가입하기도 어려우며, 가입해도 낮은 급여를 받는다. 이는 현행 사회보험이 정규직·남성노동자를 보험가입의 표준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보험이 필요한 집단이 오히려 배제되어, 결국 사회보험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새로운 사회보장의 개혁, 새롭게 등장한 소외층을 포괄할 수 있는 진보적인 개혁방향이 절실히 필요하다. 

포괄적 대상·적절한 급여·중층적 체계·사회적 연대 

진보적 사회보장의 핵심은 당연히 모든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다. ‘기본생활’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해야할 진보적 사회보장체계는 “사회의 구성원이 평균적으로 영위하는 삶을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것”이다. 즉 그 사회구성원이 장애든, 여성이든, 노숙자든 관계없이 평균적인 삶을 보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보적 사회보장이라는 것이다. 

또한 진보적 사회보장체계는 앞서 제기했던 새로운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장기간 유지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모델이여야 한다. 주로 사회보장과 관련되어 이야기되는 가치는 ‘효율성’과 ‘현실가능성’이다. 그러나 사회보장의 성과는 쉽게 측정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효율성은 적합한 가치가 아니다. 또한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현실가능성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동시에 진보적인 대안들이 항상 맥없이 무너졌던 것도 바로 이 현실가능성이라는 가치 앞에서였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회가 급변하고 새로운 위험들이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현실가능성만으로는 진보적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할 수 없다. 현실가능성이란 항상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가능한 개혁이며, 이러한 개혁으로는 더 이상 급변하는 사회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진보적 사회보장체계는 더 이상 현실가능성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대안 속에서 구성되어야 하며, 새로운 위험에 장기간 대처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진보적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첫째, 사회보장대상 선정이 포괄적이어야 하고 급여수준이 적절해야 한다. 사회보장의 대상자가 한정되어 있거나 급여가 적다면 사실상 기본생활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기본생활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중층적인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사회보험 중심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보험은 소득이 일시적으로 단절되었을 때 제공되는 것이며, 앞서 이야기 했듯이 정규직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체계다. 따라서 사회보험의 기본틀을 느슨하게 하고 동시에 비정규노동자의 저임금·고용불안정 등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여러 대안들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진보적 사회보장체계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 집단들의 연대 구성이 필수적이다. 집단들 간의 연대와 사회적 약속이 없다면 사실상 그 어떤 사회보장도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보적 사회보장의 중장기적 전망 

진보적 사회보장체계의 장기적 전망 마련에 있어 ‘기본소득’이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기본소득은 간단히 말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정도의 월급 혹은 용돈을 주는 제도”다. 그 사람이 일을 하고 있거나 노인이거나 상관없이 정해진 금액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 국가는 아직 없으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검토할 사항들이 있다. 또한 한국에 사회보장제도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쉽게 기본소득이 도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고려할 수 있는 중기적 전망은 기본생활보장과 그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현존하는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해나가는 것이다. [그림]은 기본생활을 파괴하는 요소들과 이에 대한 사회보장의 대응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emsung_01.gif

기본생활을 파괴하는 요소는 일시적 소득단절, 영구적 소득단절, 과도한 소비지출, 저소득·고용불안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일시적 소득단절, 영구적 소득단절만이 주요 기본생활파괴범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소비지출의 증대, 저소득·고용불안정문제가 새로운 사회적 위험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기본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보장의 대응은 첫째, 보편적 서비스의 확대다. 보편적 서비스의 대표적인 예가 보건의료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노인인구가 증가하면 의료영역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는 개인의 생활을 위협하는 요소이며 동시에 사회적인 비용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병원의 공공성을 강화하여 국가주도의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막대한 의료비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선진국들의 경우를 살펴봐도, 공공병원 중심인 영국의 의료비가 민간병원 중심의 미국에 비해 훨씬 낮다. 이는 의사들이 가져가는 비용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의 생활을 보장하는 전제로서 의료·교육·주택 등 보편적 서비스의 확대를 위해서는 공적관리를 통한 비용통제 역시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실업부조도입이다. 현재 한국에는 실업부조가 없다. 실업부조는 간략히 말해 “청년실업이나 장기실업자, 저소득자의 소득을 파악한 후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한국에서는 IMF 구제금융 이후 한동안 실업부조 도입이 논의되었으나 현실가능성이 없고 노동 동기를 낮춘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청년실업비율이 높고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집단이 많은 국가에서 사회보험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실업부조 도입은 진보적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실업부조 도입과 함께 공공부문의 서비스일자리 창출이 수반되어야 한다. 노인인구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증대함에 따라 보살핌노동을 사회화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서비스인력은 턱없이 부족하여,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 200만개에서 최대 400만개의 일자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공공부분 서비스일자리 창출은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서비스 확대를 위한 것이며 동시에 노동조건이 나쁜 비정규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의 고용을 안정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셋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강화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사각지대가 크고 급여가 낮다는 점이다. 기초생활보장의 대상자가 되기도 힘들고, 된다고 해도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상대빈곤선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진보적 사회보장체계는 ‘생산적 복지’, ‘노동연계복지’와는 달라야 한다. 생산적 복지와 노동연계복지의 핵심특징은 “노동을 전제로 복지를 제공하는 것”, 즉 일하지 않으면 복지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그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조건부수급규정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노동능력에 따라 일반수급자, 조건부수급자로 구분하고, 조건부수급자는 의무적으로 자활사업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능력유무를 판단하기가 애매할 뿐만 아니라, 실제 사업에서도 참여대상자의 특성이 무시되고 있어 자활사업의 성공률이 낮은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서 진보적 사회보장체계에서는 대상자 스스로 노동능력유무를 판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 같이 누구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능력을 가장 잘 판단하는 사람은 당사자기 때문이다.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은 실업부조를 통해 기본생활과 재취업을 지원받고, 정말로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기본생활을 보장받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자발적인 선택을 기초로 하는 진보적 사회보장체계는 ‘선 고용 후 복지’가 아니라 ‘선 보장 후 고용권리 보장’이라는 점에서 생산적 복지와 다르다. 

넷째, 사회보험제도의 개혁이다. 사각지대가 크고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집단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게 되어 있는 현행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기본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여가 적고, 기여한 기간이 짧더라도 막상 사회적 위험에 봉착했을 때 제대로 된 급여를 지급하는 ‘선 보장 후 기여’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세자영자-저소득노동자 연대 위한 요구와 전략 

emsung_03.jpg앞에서 진보적 사회보장의 체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체계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뭔가 허전하다. 한편으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가능성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적인 사회보장체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개지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운동적 요구들이 필요하다. 여기서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첫째, 저소득층 사회보험료 지원이다. 저소득층은 소득이 낮기 때문에 사회보험 가입을 꺼려한다. 또한 정부가 예고하는 것처럼 사회보험 부과·징수기능이 통합될 경우 예상치 못한 역효과로 저소득층의 집단적인 보험 탈퇴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을 통해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저소득층을 보호해야 한다. 

둘째, 사회보험의 보험료를 누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행 사회보험은 소득과 상관없이 보험료 비율이 동일하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의 직장가입자는 모두 임금의 4.5%를 보험료로 낸다. 그리고 일정부분 많이 낸 사람이 많이 가져가도록 되어 있다. 이는 저소득층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보험료를 누진적으로 적용하고, 동일한 액수를 지급하는 ‘균등급여’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균등급여의 대표적인 예는 기초연금으로서, “돈을 낸 것과 무관하게 노후에 누구나 일정금액의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균등급여비율을 높이면 낸 보험료와 관련 없이 큰 차이가 없는 액수의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저소득층이 제대로 된 급여를 받기 쉽다. 

그런데 첫째 방안과 둘째 방안은 서로 연동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저소득층의 사회보험료를 지원하고 고소득자의 보험부담을 높임으로써, 사회보험에 가입한 사람 모두가 사회보험을 통해 기본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사회보험 내에서 수직적 재분배를 강화할 수 있다. 게다가 고소득층의 보험부담 증대로 사회보험의 재정 역시 지속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셋째, ‘사회보장 보장성 강화를 위한 특별세’를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세는 고소득층, 특히 고소득 자영업자와 기업주를 대상으로 하는 목적세로서, 사회보장의 여러 가지 제도 실현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세수입은 소득세와 간접세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 서비스 확충, 건강한 일자리 창출, 실업부조의 재원 마련 등을 위해서는 사실상 소득세와 간접세의 비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도 보장성 강화를 위한 특별세 도입은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보장성 강화를 위한 특별세 도입은 우선 고소득층의 돈이 저소득층으로 흘러들어가는 전형적인 사회재분배로서 의미를 가진다. 또한 현재 사회보장을 둘러싸고 형성되어 있는 노동자와 자영자 간의 균열을 연대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사회보장의 현실은 영세자영업자와 소득이 낮은 노동자들 간의 이해관계를 분열시키고 있는데, 진보적 사회보장체계 실현을 위해서는 소득이 낮은 집단들 간의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세를 도입하고 특별세를 저소득층의 사회보장구축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이들 간의 연대가 가능한 조건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제시한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보험료 누진율 적용, △특별세 도입 등은 정책적으로 도입되어야할 과제라기보다는 운동적으로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연대가 바로 진보적 사회보장 구축의 시작이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