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아닌 양육을 실천하는

노동사회

교육이 아닌 양육을 실천하는 <씩씩이 어린이집>

편집국 0 3,817 2013.05.2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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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물을 마시고 있던 경녀이모를 본 윤주
윤주 - 이모 그거 뭐에요?
이모 - 이거? 이거 녹차물이야. 아이들한텐 별로 안 좋아.
윤주 - 왜요?
이모 - 녹차엔 카페인이라는 성분이 있어서 아이들은 이걸 마시면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도 한 대.
윤주 - 두근두근? 심장이 누굴 사랑해?
                    - 『씩씩이 어린이집 소식지』 (제30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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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남을 속일 줄을 모른다. 서 있는 사람 코도 베어간다는 서울의 얘기가 산골마을 기울어져가는 처마 밑에서도 통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21세기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순박하다. 도심 한가운데 주상복합 건물 2층 45평 공간에 30여명 천사들을 돌보고 사는 다섯 명의 ‘이모’들이 이 달의 주인공이다.

빈민운동에서 출발한 보육운동

지난 겨울 무렵부터였다. 주변에서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보육문제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이른바 ‘활동가’라고 하는 회의도 많고, 야근도 많고, 술자리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은 보육문제를 어떻게 고민하고 있고, 해결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게 된 시점이 말이다. 

언젠가 취재를 위해 어린이집 선생님 한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지나가는 말로 가장 힘들게 하는 학부모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노동조합 활동가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부모”라는 의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긍 못할 이유가 아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회의다 파업지원이다 집회다 늦은 귀가가 일상인 사람들이니 부모가 데려갈 때까지 아이를 돌보고 있어야 할 보육교사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가 없을 게다.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어있는 현실이지만 법으로 주어진 출산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하기 힘든 게 우리네 상황 아니던가.

그런데 관악지역의 한 시민단체를 찾았을 때 활동가 부모들에게 환영받는 보육시설이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그곳이 바로 오늘 소개할 <씩씩이 어린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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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서초동 비닐하우스촌에서 지역 빈민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낮이면 부모들은 일을 나가고 없는 빈민촌에 아이들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지역운동의 일환으로 놀이방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서초동과 봉천동 일대 세 곳의 보육시설 선생님들의 연대모임도 시작되었죠. 연대모임을 갖던 <꽃동네 놀이방>, <재롱동이 아가방>, <씩씩이 어린이집> 세 곳이 1997년 11월 무렵 통합을 해서 새롭게 탄생한 게 <씩씩이 어린이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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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이 어린이집> 이경려 대표교사 들려준 설립배경이다. 1980년대 산업화에 따른 도시의 부흥 이면에는 ‘판자촌’, ‘달동네’라는 그림자가 있었다.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은 농활, 공활을 떠나듯 빈활이라는 이름의 빈민가 봉사활동을 떠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서초동 비닐하우스촌, 봉천동 달동네 판자촌을 찾았던 이들의 눈에 맞벌이를 위해 떠난 부모들이 남겨둔 아이들이 먼저 찾아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터. 그래서 곳곳에 놀이방, 아가방, 어린이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비닐하우스촌, 판자촌은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하나하나 사라져갔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좀 더 싼 외곽도시로, 다세대주택의 반지하방으로 옮겨가게 되고,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초고층의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그나마 봉천동 지역엔 아직까지 반지하방으로 찾아든 이주빈민들이 많아 그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만들게 된 것이다. 

‘아동학대’하는 노조활동가?

다른 보통의 보육시설과는 태생부터가 다르니 당연히 그곳을 책임지고 있는 선생님들도 자연 이른바 의식화(?)가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이라는 권위적 호칭보다는 ‘이모’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생활공동체, 자연친화적 보육, 인권을 존중하는 보육을 목표로 요리 이모를 포함한 여섯 명의 이모들이 서른 두 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씩씩이 어린이집>의 이모들은 어린이집 생활을 ‘교육’이 아닌 ‘양육’이라고 정의한다. 한글을 깨우치고, 영어 단어하나 기억하는 것보다 잘 놀고, 자연의 섭리에 맞춰 살아갈 줄 알고, 몸도 마음도 건강한 어린이로 키우는 것말이다.

대체로 이런 방침을 이해하거나 동참하고자 하는 부모들이 많다. 어린이집에는 이른바 ‘활동가’라 불리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 반 정도 된다고 한다. 덕분에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온 아이들이 월요일이면 어느 집회를 다녀왔다거나 어느 회의를 다녀왔다며 떠드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심지어 부모가 손을 잡고 같이 가자고 하면 “회의야 세미나야?”라고 묻는 아이도 있단다. 회의라면 아무래도 아이 스스로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만 세미나라면 꼼짝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도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또래 아이들이 가져야 할 공통의 가치관과 지식범위를 벗어나는 체험들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활동가의 아이들 중에 특이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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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조 간부분이 너무나 바쁘게 일을 하시는 겁니다. 저희 이모들이 이분을 ‘아동학대’로 고발을 하려고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어요. 아이를 방임하는 것도 아동학대입니다. 사회에서 가장 약자가 바로 아이들이죠. 이 약자인 아이들에게 아무리 바빠도 관심을 가져야 해요. 성장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족이 가정이 단단해야 조직도 단단해질 수 있는거 아닌가요? 조직에서도 개별 구성원의 가정을 존중하고 지켜줘야 노조도 살아남고 더 발전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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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보육교사분들도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즉 아이를 맡기는 곳의 선생님이기 전에 최저임금 이하의 노동조건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 동지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