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재앙’ 몰고 온다

노동사회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재앙’ 몰고 온다

편집국 0 5,518 2013.05.24 12:08
 

ygkang_02.jpg1990년 5월16일, 당시 영국의 존 검머 농무부 장관은 “영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감염에서 안전하다”며 자신의 네 살짜리 딸을 데리고 영국산 쇠고기가 든 빵을 전 국민 앞에서 먹었다.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가 ‘인간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을 유발한다는 대중의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행동이었다.

그러나 5년 뒤인 1995년, 영국에서 인간광우병에 걸린 19세 청년이 최초로 사망했다. 현재 영국에는 1만4천여명이 인간광우병에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전 세계 인간광우병 환자의 90%가 영국인이다. 유럽이 인간광우병 공포에 휩싸였던 1990년대 한국은 조용했다. 그런데 새삼 ‘광우병 도래’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광우병, 치료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재앙

추석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에서 유통된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3년 12월에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생기면서 3년 가까이 수입이 중단됐다. 수입이 중단되기 이전 국내에서 소비되는 쇠고기의 50%가 미국산 쇠고기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식탁의 큰 변화를 예상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다. 특히 그동안 비싼 값 때문에 쇠고기를 먹을 엄두를 못 냈던 서민의 상당수는 반가워할 일이다. 

그런데 정작 소비자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8월에 대도시 주부 6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0.4%는 ‘미국산 쇠고기가 다시 수입되더라도 구입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바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감염을 우려한 것이다.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를 먹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광우병이 얼마나 위험하기에 이렇게 무서워하는 것일까? 일단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인간광우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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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에는 소 광우병과 같이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리는 증상을 보이며 죽게 된다. 잠복기는 길어 때로는 감염된 지 몇 십 년 뒤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단 증상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3개월에서 1년 안에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현재로서는 치료 방법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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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다. 실상을 알고 나면 더 섬뜩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인간광우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변형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 이 변형 프리온은 쇠고기를 고온에서 굽거나 끓여도 사라지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광우병 소의 성분이 함유된 화장품, 의약품도 광우병 감염 위험이 있다며 폐기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는’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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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11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에서 보건의료단체연합 회원들의 퍼포먼스 장면.  ▷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

쇠고기 안 먹는다고 광우병 안 걸릴까?

광우병의 위험과 관련해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영국에서 발생했다. 1997년 8월 영국에서는 인간광우병으로 24세의 한 여성이 사망했다. 이 여성은 11년 동안 육류를 전혀 섭취한 적이 없는 채식주의자였다. 쇠고기는커녕 육류를 입에도 대지 않은 사람이 광우병으로 사망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바로 그녀가 먹은 채소가 문제였다. 좀 더 정확하게는 그 채소류의 비료로 쓰인 닭똥이 문제였다. 광우병 소의 시체를 이용해 만든 ‘동물성 비료’가 닭에게 공급됐고, 그 닭의 똥은 채소를 위한 비료로 사용됐다. 결국, 광우병을 유발하는 물질이 광우병 소, 닭, 채소를 거쳐 이 여성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인간광우병에 대한 대중의 불안을 의식한 탓인지 정부 역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강조해왔다. 정부는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의 살코기는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한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격렬한 논란 끝에)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한 일본의 사정을 살펴보면 이런 정부의 주장을 믿기 쉽지 않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압박에도 ‘2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2001년 6월 광우병 소가 처음 발견되자 일본 정부는 아예 모든 소에 대해서 광우병 검사를 했다. 그 결과 21개월, 23개월 소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됐다. ‘30개월 미만’이 결코 안전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이 입증된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12~17개월의 소만 수입하고 있다.

그럼 살코기만 수입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신뢰할 만할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정범 공동대표는 이렇게 증언한다. “최근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 32명 중 8명의 근육(살코기)에서 광우병 유발 물질이 발견됐다.” 서울대 수의대 우희종 교수도 동감한다. “유럽에서는 쇠고기 살코기를 먹인 고양이가 광우병에 감염된 사례가 보고됐다.”

최근에는 수혈을 통해서 인간광우병에 감염된 사례가 3건이나 보도돼 이런 증언에 힘을 실어준다. 영국에서는 2003년 12월 수혈을 통한 인간광우병 감염 환자가 처음으로 확인된 데 이어 2006년 2월에는 수혈을 통한 세 번째 인간광우병 감염 환자가 보고됐다. 혈액이 위험하다면 혈액이 드나드는 살코기도 광우병 감염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은 당연하다.

한국에도 인간광우병 의심환자 있어

한국 역시 결코 광우병 안전지대가 아니다. 앞에서 잠시 지적했듯이 국내에서는 아직 인간광우병 ‘공식’ 사망자가 보고된 바는 없다. 그러나 인간광우병 ‘비공식’ 사망자는 적어도 두 사람이 있다. 2001년 3월 서울대병원은 인간광우병 증상으로 사망한 36세 환자에 대해서 결국 최종 판단을 유보했다. 당시 인천의 또 다른 병원에서도 40대 환자가 인간광우병 증상을 보이다 사망했으나 역시 최종 판단은 유보됐다. 인간광우병 확진을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부검에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은 탓에 생긴 일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2005년 2월 인간광우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최초로 발생했다.

사실 정부 역시 이런 인간광우병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지난 9월4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한 농림부 측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고백해 큰 충격을 줬다. “학자로서 30개월 이하의 미국산 쇠고기가 절대로 안전하다고 확실하게 답할 수 없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으면 될 것 아니냐.”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일단 수입되면 아무리 소비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꺼리더라도 결국 입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야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고 외면하면 그만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학교급식의 미국산 쇠고기 반찬에 노출될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산 쇠고기의 값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학교급식, 병원급식, 군대급식, 기업급식 등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대량으로 구입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사실 인간광우병의 희생양은 현 세대가 아니라 우리들의 아랫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잠복기가 최대 30~60년이 되는 인간광우병은 ‘어른’보다는 ‘아이’에게 더 치명적이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도박

그럼에도 왜 정부는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집착할까?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확인되기 전까지 한국은 일본, 멕시코와 함께 미국산 쇠고기의 3대 수입국이었다. 한국은 연간 8억 달러(약 8천억원)어치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했다. 정치적 영향력이 큰 미국 축산업계로서는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는 ‘꼭’ 이뤄져야 할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안달하자 미국 정부는 ‘옳구나!’ 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한미 FTA가 달성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한국 정부는 계속 한미 FTA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무관함을 강조하지만 전후 정황을 살펴보면 진실이 무엇인지 빤히 보인다. 지난 8월4일 미국 상원의원 31명이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한미 FTA 협상이 끝나기 전 반드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돼야 한다”는 내용의 경고 서한을 보낸 것은 단적인 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지 않을 경우 한미 FTA가 무산될 수도 있음을 대통령에게 경고한 것이다.

한미 FTA를 통해 한국이 얻을 게 무엇인지조차도 논란이 분분한 마당에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는 ‘위험한 도박’을 하는 이 정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아이의 학교급식 식탁에 미국산 쇠고기가 오르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현 상황이 분통이 터지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