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길: 미국 자동차산업의 위기와 노동조합의 선택

노동사회

막다른 길: 미국 자동차산업의 위기와 노동조합의 선택

편집국 0 5,578 2013.05.24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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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문은 「레이버노츠」(Labor Notes) 2006년 9월호에 실린 “End of the Road: If the Auto Industry is Dead What does that Mean for Workers?” (
http://labornotes.org/magazine)이다. 필자인 마크 브레너(Mark Brenner)는 「레이버노츠」의 공동편집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매사추세츠-앰허스트 대학 정치경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생활임금운동에 관여하고 있으며, 제인 슬로터(Jane Slaughter)는 전미자동차노조(UAW)에서 활동하였고 지금은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노동운동에 관한 독립 저널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그녀의 저작으로 「팀 신화와 노동의 선택」(1996, 강)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각주는 모두 역주임을 밝힌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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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yoo_01.jpg1980년대 미국산 자동차 시보레(Chevrolet)는 스스로를 “미국의 고동치는 심장”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 자동차산업은 보조생명장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다들 얘기한다. 작년 11월, 시보레를 생산하는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는 2008년까지 25,000개의 일자리를 없애고 12개 공장의 문을 닫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소식은 거대 자동차부품사인 델파이(Delphi)가 파산을 선언하며, 앞으로 3년 동안 적어도 10여개의 공장을 폐쇄하고 24,000개의 일자리를 삭감하겠다고 발표한 지 한달 만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올 1월 포드(Ford)가 2012년까지 30,000개의 일자리 감축 계획을 발표하여 이 파란의 최후를 장식했다.

이런 일이 있기 몇 달 전,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는 자동차산업 퇴직노동자의 의료보험 비용에서 10억 달러에 달하는 삭감안을 받아들이도록 자동차노조(UAW)를 설득했다. 디트로이트에는 내년도 노사 교섭에서 ‘빅3(제너럴 모터스, 포드,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노조에게 제시할 비용절감 방안에 대한 소문이 넘쳐났다. 그렇지만 평조합원들은 이에 대해서 노조지도부로부터 행동은 고사하고 어떤 항변의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언뜻 보기에도 자동차산업의 문제는 극복될 수 없는 듯 했다. 미국의 전체 자동차산업계는 수십억 달러의 적자에 시달렸고, 외국의 경쟁업체들은 빅3의 시장점유율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었다. 미국의 자동차 대기업들은 휘발유 먹는 데는 귀신인 트럭이나 SUV 차량을 팔아서 순익을 낼 뿐이었다. 그것도 차량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수천 달러의 인센티브가 없었더라면 판매는 더 저조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정에 직면하여 자동차도시(디트로이트)와 월 스트리트의 분석가들이 자동차산업 시대의 종말을 확신하는 것도 놀랍지 않았다. 그들도 대안이 없어 비탄에 빠질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은 궁핍하게 지내거나 일자리를 내놓아야 할 판이다.

지난 한 세기에 걸쳐 자동차산업은 미국 경제의 버팀목이었고, 주식회사 미국의 선도자였다. 지금의 대격변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파산을 발표한 델파이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밀러는 현재의 위기가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암시했다. “나는 여러분들이 델파이의 경험을 현재 미국과 전 세계에서 충돌 중인 경제적·사회적 흐름들이 폭발한 하나의 시험적 사례로 봐 주었으면 한다.”

미국 자동차산업은 수백만 노동계급 대중에게 생활임금을 제공해왔다. 그렇다면 지금 디트로이트는 그 생명에 종지부를 찍고 있는 걸까?

hgyoo_02.jpg제너럴 모터스의 호시절

세월이 항상 디트로이트에 가혹했던 것은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의 자동차 공장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산업계의 군주로 군림했다. 비록 자동차노조 위원장인 월터 루서가 정부가 보장하는 공적연금과 공공의료보험이란 비전을 제시하면서 임기를 시작했지만, 이미 그 정책은 노조가 교섭테이블에서 빅3로부터 조합원만을 위한 일종의 사적 복지국가(private welfare state)를 따냈을 때부터 무뎌지고 말았다. 

민간보험과 관대한 조기퇴직급여에 덧붙여, 그들은 경기순환에 따른 일시해고가 발생하더라도 그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보충 실업급여”를 받는다. 이로써 그들은 연간보장임금(guaranteed annual wage)이라는 월터 루서의 사회민주주의적 이상에 도달한 것이었다. 생산성 향상에 따른 연간 3%의 임금인상 이외에, 자동차 노동자들은 물가에 연동된 생계비 상승분을 임금으로 지급받았고, 그 이후 학자금과 각종 법률서비스 지원도 부가되었다. 

철강과 고무산업의 노조들도 유사한 협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광산·전화·화물운송·전기산업 노동자들도 자동차노조의 뒤를 좇아가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의료보험 및 퇴직급여와 함께 꾸준한 임금인상의 패턴은 노조조직률이 높은 산업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이러한 패턴은 노조가 있건 없건 간에 미국의 모든 사용자들로 하여금 높은 수준의 기준들을 마련하도록 만들었다.

도금한 착취공장

이러한 관대한 임금 및 부가급여를 가능케 했던 생산성의 꾸준한 상승은 손익계산으로 따지자면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루서의 말을 빌자면, 공장이 “도금한 착취공장”(gold-plated sweatshop)으로 존속함을 뜻했다. 주물공장과 조립라인은 여전히 비인간적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2~3년쯤 일하려고 입사를 하지만 결국엔 그 급여수당에 발목을 잡히고는, “그래봤자 겨우 30년인 걸”이라고 하기 일쑤였다.  

정신을 마비시키는 단조롭고 강도 높은 노동, 높은 산업재해율, 공장 안의 열기와 연기 그리고 기름때 등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은 일과 후에 술에 찌들어 갔다. 일례로, 디트로이트 소재 크라이슬러(Chrysler) 공장의 흑인노동자 제임스 존슨이 두명의 감독자와 한명의 동료 노동자에게 총을 난사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배심원단이 공장을 둘러보고서 야만적인 작업환경과 작업장의 인종차별주의가 존슨을 정신질환으로 몰고 갔다고 결론을 내린 일도 있었다. 

그러나 작업 현장의 일상으로부터 멀어져버린 자동차노조 간부들은 공장의 착취적 환경보다는 거기에 금박을 입히는 일에 더욱 매달리게 되었다. 그들은 돈 액수로 가늠할 수 있는 이익을 추구했다. 루서는 기술과 생산성이 가져올 이익을 굳게 신뢰하며 자동화나 생산속도 증가에 반대하지 않았다. 노조 간부들은 스스로를 경영진의 파트너로 생각하게 되었고, “제너럴 모터스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고” 결국 자동차노조 조합원들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모습은 경영의 주도권과 그들의 어리석음이 도전받지 않아 왔음을 말해준다. 초기부터 자동차노조는 저렴한 자동차 정책에 동조해 싸움을 포기했고, 그 후에는 연료비효율기준을 올리려는 연방정부의 정책에 맞선 자동차업체 반대로비에 동참하기까지 했다. 또한 자동차노조는 스스로를 노사관계 질서의 수호자로 기꺼이 나서서 1930년대에 개발된 단체행동 전술과 작별을 고했다. 

내리막길

이렇듯 협력과 침묵이 계속되면서 노조는 1979년 자동차산업을 뒤흔든 위기에 대응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 한 번 더 자동차노조는 다른 노동운동이 뒤따라 올 새로운 길을 열어갔다. 그러나 이번에 선택한 새로운 길은 양보와 노동-경영 간의 명시적인 협조의 길이었다. 

2차 대전 이후의 경기 침체 및 호황기 동안 미국 사용자들이 단체협약을 위반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아코카의 크라이슬러사가 1979년 가을 도산의 위기에 처하자 자동차노조가 책임을 떠안았다. 크라이슬러의 노동자와 퇴직자들은 예전에는 신성불가침이었던 협약 패턴에서 벗어나 2억3백만 달러, 즉 노동자 1인당 2천 달러로 추정되는 양보교섭을 하게 되었다. 추가적인 삭감이 뒤따랐다. 1981년 1월 크라이슬러의 노동자들은 10억 달러에 해당하는 양보를 했다. 그 이듬해 불황이 극심해지자 자동차노조는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에서도 비용 삭감의 협약안을 받아들였다. 

철강 산업의 어느 노조 간부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새로운 교섭 환경을 묘사하며, “노사협상을 둘러싼 전체 환경이 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요구할 자격이 없는 걸 요구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전미식품상업노조의 한 간부는 “크라이슬러 이후에 모든 게 변했다”고 지적했다. 

정육업에서 항공산업과 교육업에 이르는 미국의 사용자들은 임금 삭감을 요구했고 이를 얻어냈다. 1982년 미시간 주의 병원노조는 모든 교섭 테이블마다 사측으로부터 “제너럴 모터스는 임금을 동결했다”는 말을 듣곤 하였다고 보고했다. 경제 불황을 사측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권력을 재배분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경쟁의 수용

금전적인 양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 운동철학의 뚜렷한 변화였다. 사용자가 보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하는 게 노조의 과제라는 견해를 수용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노동강도 강화와 일자리 축소를 포함해 생산성 향상에 이바지해야 했다. 이를 위하여 도입된 “팀(team) 구상”은 자동차산업으로부터 나머지 제조업 및 비제조업 부문으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제너럴 모터스와 도요타가 합작으로 운영하는 캘리포니아 소재 프레몬트 공장이 이 팀 구상의 최선두 주자였고, 그곳은 곧 생산성 향상의 비밀을 찾아다니는 수많은 경영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다. 1990년에 오면 『포천』이 선정한 1천대 기업 중 85%가 적어도 하나 이상의 종업원 참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보고됐다. 

자동차노조가 업계와 맺은 담합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이윤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뭐든지 하라, 단 빅3에 속한 (계속 그 수가 줄어드는) 노동자의 임금과 부가급여가 유지되는 한에서. 그 “뭐든지”에는 린 생산(lean production), 국내외 무노조 사업장으로의 외주화, 1999년과 2000년 제너럴 모터스 및 포드의 부품공장의 매각(52,000명의 노동자 감원), 그리고 현재의 경영자인수(buyout)까지 포함되었다. 1978년에 제너럴 모터스에는 46만6천여명의 노동자가 일했지만 2006년에 그 수는 11만2천여명에 불과하다. 

거품경제에 취하여

10여년의 내리막길 이후 1990년대에는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업계에 행운이 찾아오는 듯했다. 1980년대 판매호조를 보인 것 중 하나인 미니밴(mini-vans)이 여전히 잘 팔려 그것만 가지고 빅3는 국내시장의 약 8% 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일본의 경쟁사들이 자체 모델을 도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디트로이트의 점유율은 75%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서 시장지배를 유지했다. 

하지만 빅3의 진정한 황금광은 1990년대 SUV 차량의 기록적인 성장이었다. 1990년대 초반 전체 자동차 및 트럭 시장의 7%에 불과하던 것이 90년대 말에 가면 거의 20%에 육박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자동차 판매고가 1990년대 후반에 급상승하였는데, 이 시기에 미국인들 대부분의 실질임금이 지난 15년 만에 처음으로 상승했다. 연료비효율기준의 문제 또한 사라지는 듯 보였다. 1990년대 동안 휘발유 가격은 대부분 1갤런 당 1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을 유지했다. 미니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디트로이트의 해외경쟁자들을 제치고 빅3가 SUV 시장을 지배했다. 

이렇듯 새로운 틈새시장에서의 판매 호조와 주가 상승에 고무되어,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거인들은 10년 전에 놓친 듯 보였던 전 세계적인 시장지배력의 회복을 꿈꾸었다. 게다가 기존의 전 세계적인 사업망에 더해, 빅3는 적극적인 합작 및 전략적 투자를 시도했다. 이를 통해 사브·피아트·스즈끼·대우·재규어·볼보·랜드로버 등을 인수하였다. 물론 투자는 쌍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해서 1998년 크라이슬러는 다임러 벤츠에 넘어가기도 했다. 

기업분할과 구조조정

또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업계는 국내 사업을 재구축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부품생산 부문을 독립된 회사로 분할한 후 신규고용 인력에 대한 임금삭감을 시도했다. 제너럴 모터스는 아메리칸 액슬(American Axle)과 델파이를, 포드는 비스테온(Visteon)을 분사했다. 

크라이슬러는 미국에서 “모듈 생산”을 개척함으로써 외주화를 새로운 단계로 확대하였다. 톨레도 소재 지프 공장의 경우 그동안 자동차 조립라인의 핵심으로 간주되어온 차체·섀시·도장 공정들은 앞으로 크라이슬러 소속이 아닌 노동자들이 사내에서 더 낮은 임금으로 수행하게 될 것이다. 

또한 크라이슬러와 포드는 자동차 생산보다는 금융서비스 부문에 더 관심을 나타내어 회사의 역량을 금융서비스 쪽으로 점점 더 이전하고 있다. 실제 2000년에 오면 이 두 기업의 금융자회사들(GMAC, Ford Credit)은 기업 전체 순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된다. 

노동자에게 들려온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미국의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에게 1990년대는 분명히 희비가 엇갈린 혼동의 시기였다. 한편으로 노동자들은 일방적 양보와 공장폐쇄의 10년 이후 이제는 일자리 안정과 지속적인 임금 상승의 회복에 안도했다. 

다른 한편 자동차산업에 새롭게 투자된 돈의 많은 부분은 외국계 기업들 -도요타·마츠다·BMW·닛산·혼다·메르세데스- 로부터 나왔다. 이 기업들이 최초로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중서부 자동차공장 밀집지대의 경계를 넘어 남부지역으로 공장을 이전시켰다. 이러한 “현지공장들”(transplants)은, 빅3가 수직적 통합을 외주화로 대체함으로써 1990년대에 번성했던 부품업체들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노조 작업장을 견지하였다. 

자동차산업의 노조조직률은 잘 나가던 1980년대 동안 62%에서 50%로 하락하였고, 번영의 1990년대에 그 하락 속도가 더 빨라져 2000년에는 37%까지 내려갔다. 자동차노조는 신규 노동자들을 조직할 의사도 또 그럴 능력도 없음이 밝혀졌다. 단지 1930년대에 자동차산업에서 수십만명의 미조직노동자를 조직해냈던 열정, 활동력, 비전을 오늘날의 노동조합이 다시 갖추는 게 무엇 때문에 불가능한지 사람들이 의아해 할 뿐이다. 

그 대신 자동차노조는 기존 조합원의 상태유지에 집중하여 단체협상과 단체행동에서 빅3로부터 신규투자와 고용안정의 약속을 받아내는 데 몰두했다. 예를 들어 1998년에 제너럴 모터스의 핵심 부품공장 두 곳에서 54일간 파업이 벌어져 대부분의 제너럴 모터스 북미 공장들이 멈추게 되었고, 그 결과 노조는 두 공장에서 2억 달러의 신규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점점 줄어드는 양질의 일자리를 지키려는 자동차노조의 싸움은 불행히도 훨씬 더 거대한 국가 전체적인 수준의 파고에 맞서는 일이었다. 1990년대는 소득 불평등의 폭발적 악화를 목도한 시기였다. 상당부분 그 불평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는 최고경영자의 소득(1989년에 노동자 평균 임금의 71배에서 2000년에는 300배로 상승하였음)과 유례없을 정도로 상승한 주식시장 덕분이었다. 1990년대에 나타난 2차 대전 이후 최장기간의 경제 호황은 놀랍게도 하위 소득계층에게는 별 도움이 되질 않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노조에 의해 대표되는 노동자 비중의 감소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불안정성에 더해 제록스, IBM, AT&T 등 주식회사 미국의 대표적 법인들에서 대규모 조직축소가 단행되었다. 이러한 정리해고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규모의 화이트칼라 전문직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결국 국민들은 흑자 기업들이 수만명의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모는 광경에 점차 익숙해져 갔다. 

당시에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1990년대에 가장 큰 사태는 ‘확정급여형 연금제도’로부터 401(k)와 같은 ‘확정기여형 연금’으로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주식시장이 해마다 두 자리 수의 수익률을 달성할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경기후퇴가 발생하자 베이비붐 세대는 그들의 퇴직연금이 공중에서 사라지는 걸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빅3 자동차노조 조합원들은 원래의 확정급여형 연금을 유지한 얼마 안 되는 사람들 중 일부였다. 

추락

이러한 추세는 2000년의 주식시장 침체와 결합되어 자동차산업의 생산량 축소와 노동력 감축을 야기했다. 경기후퇴는 특히 디트로이트에 심각한 영향을 줬고, 유가 인상은 10년 전에 디트로이트를 먹여 살린, 연비효율이 낮은 SUV와 미니밴 차량의 소비 감소로 이어졌다. 최근 5년 동안 빅3의 시장 점유율은 66%에서 58%로 하락했다. 이러한 판매 부진은 대폭적인 가격 할인정책이 없었더라면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국내 상황이 이렇게 악화될 때 빅3는 전 세계적인 기업 인수에 나서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제너럴 모터스는 2000년에 피아트의 지분 20%를 인수하는 데에 24억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그 뒤 5년 후 그 거래를 종료하며 20억 달러를 다시 지불하였다. 포드는 재규어에 50억 달러를 투입하였으나 여전히 적자 상태에 있다. 비슷한 시기에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을 통해 탄생한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는 오늘날 주식시장의 가치로 봤을 때 합병 전의 다임러 벤츠 혼자만의 가치보다 더 적게 나가고 있다. 

막대한 재정적 출혈과 보잘 것 없는 성과로 인하여 작년 디트로이트 자동차업계는 조직축소를 통해 보다 수익성 있는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필사적인 조치를 취했다. 델파이는 파산을 선언했고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는 55,000개의 일자리를 없애겠다고 나섰다. 그 이후 빅3는 모두 한 목소리로 그들의 경영악화를 노조로 조직된 부문의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관대한 임금과 연금 그리고 의료보험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경영진들은 책임을 회피하면서 미국 자동차업체의 조야한 디자인과 저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해묵은 불만을 회사가 제공하는 의료보험과 연금 혜택을 누리는 자동차 노동자들에게로 향하게 했다. 자동차 업체들은 중산층 미국인들의 뿌리 깊은 근심과 불안을 활용하여, “당신에게는 미래의 연금도 일말의 고용안정도 없는데, 왜 그들은 이 모든 걸 가져야 하는가?”라고 속이 뻔히 보이는 메시지를 전파해 왔다. 

이러한 변화의 규모와 속도는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를 지키려는 싸움에서 제 목소리를 내려고 분투하는 자동차노조의 노력을 무색케 하였다. 

누가 신경이나 쓰는가?

혹자는 누가 신경이나 쓰는가라고 비꼴 수도 있다. 사실 자동차노조는 100만명 이상이 종사하는 자동차산업에서 단지 40만명 남짓만을 대표할 뿐이고, 사측이 노조에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저숙련 노동자가 시장에서 받는 임금 및 부가급여 수준에 더 근접해지라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제조업은 20세기의 산업이지 않은가? 우리는 서비스와 첨단기술 산업의 미래와 함께 하는 탈산업적(post-industrial) 경제에 도달해 있지 않은가? 미국은 제품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면 나머지 세계에서 만들면 되지 않는가?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동차산업의 위기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놓치는 것이다. 다운사이징은 회계사가 회계정산표 상의 숫자를 없애는 문제가 아니다. 없어진 일자리는 특정한 지역사회에 집중된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로저와 나>(Roger & Me)로 유명해진 미시간 주 플린트가 전형적인 사례다. 이러한 대규모 감원과 공장폐쇄는 미국 중서부지방 전역으로 확대될 것이고 엄청난 사회경제적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동차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업종의 기업들도 빅3의 행동을 좇아갈 것이다.

첨단기술 기업들이 그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구글(Google)은 전 세계적으로 6천명 남짓한 인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는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이 일단락되면서 사라진 7만개의 일자리와 비교할 때 새 발의 피와 같다. 

어떻게 하면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망가뜨리지 않고 자동차산업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경영진들은 매년 수십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적극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정부를 단일보험자로 하는 공공의료보험(single-payer health insurance)이다. 

제너럴 모터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민간의료보험 구매자로 가입자가 110만명에 이른다. 작년에 제너럴 모터스의 민간의료보험 지출은 53억 달러에 달해 그 회사가 자동차 생산을 위해 지불한 철강 구입비용보다 많았다. 이 보험 가입자의 절반은 제너럴 모터스의 퇴직자들이어서, 미국 노령인구의 1%가 제너럴 모터스가 구입한 민간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을 정도다.

과거 유산이라는 신화

빅3는 과거 종업원들과의 약속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유산의 비용” -여기에는 퇴직연금 급여도 포함된다.- 이 그들의 현재 사업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말하지만, 빅3 모두 앞으로 당분간 충분한 규모의 연금 및 퇴직자 의료보험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감추고 있다. 만약 의료보험비가 그처럼 무거운 부담이라면 왜 비용이 훨씬 더 저렴한 공공의료보험 도입운동에 동참하지 않는가? 캐나다는 정부가 단일보험자인 공공의료보험제도를 운영 중이고 이는 기업에게도 비용을 더 적게 들게 한다. 이로 인해 캐나다 소재의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 공장의 경우 대규모 비용 삭감의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작년 가을 퇴직자 의료보험 급여에서 10억 달러를 양보하는 대신에 “보편적 보장”(universal coverage)을 추구하겠다는 자동차노조의 선언에도, 제너럴 모터스의 최고경영자는 미국 의료보장의 위기에 관한 연방의회의 특별청문회에 제출된 자료에서 전국민의료보험제도에 관해서는 일말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가 사업상 이득이 된다는 말이거나 의료보험 비용의 지출이 사실은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둘 다 아니라면 사용자들은 노조를 대놓고 공격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일 터다. 

1914년에 헨리 포드가 일당 5달러 제도를 도입했을 때, 그는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지불하길 원한다고 했다. 오늘날 델파이나 비스테온의 신규 종업원들은 시간당 14.5달러를 번다. 그 액수는 빅3에 고용된 노동자 임금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2007년에 새로운 단체교섭이 진행될 경우 이들 신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강력히 주장할 게 확실하다. 

만약 미국의 대다수 노동자들이 제너럴 모터스 대신 월마트(Wal-Mart)에서 임금을 받는다면 미국은 어떻게 될까? 4년제 대학 졸업장이 없는 이들 -전체 노동력의 약 70% 정도- 의 평균 실질임금은 지난 30년 동안 정체되었거나 하락하여 현재 시간당 15달러 이하를 맴돌고 있다. 헨리 포드가 일괄조립라인을 완성할 당시에 제조업 일자리의 임금은 경제 전체의 평균 수준과 거의 같았지만, 20세기 말에 그것은 평균 임금보다 25% 가량 더 높은데, 이는 부분적으로 자동차노조와 같은 노동조합의 존재 덕분이다. 

새로운 각본을 위하여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자동차산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디트로이트의 경영자들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조언은 자동차노조에게 훨씬 더 큰 압력으로 작용한다.  

1930년대의 사회적 격변 속에서 출현한 자동차노조의 선구자들은 애초에 노동조합을 당시 대공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대한 사회운동의 일부로 바라보았다. 

현재 직면한 난관은 60년 전보다 더 크지만, 자동차노조는 어리석게도 황금기의 각본을 아직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델파이의 파산 이후 분출한 평조합원들의 반란은 조합원들이 투쟁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그들만으로는 그 일을 해낼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자동차노조는 대담성과 초창기 노조조직가들이 보여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초창기 조직가들은 노조본부의 단순한 생존 그 이상의 목표를 추구하였다.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그들의 투쟁은 수백만명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점점 더 많은 노동 대중들이 의료보장의 혜택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 국민 공공의료보험제도를 위한 투쟁은 새로운 노동자운동을 활성화시킬 잠재성을 갖고 있다. 그러한 운동의 재점화는 자동차노조의 창립자들의 유산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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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Walter Reuther, 1946~1970년 동안 UAW 의장을 역임했고 1952년 산별노조회의(CIO) 의장으로 취임하여 1955년 미국노동조합총연맹(AFL)과의 통합을 주도함. 이하 모든 각주는 역자 주임.
2) 30-years-and-out retirement benefits, 30년간 회사에서 일한 후 관대한 퇴직급여와 의료급여가 보장되는 조건으로 정년 전에라도 조기에 퇴직할 수 있는 제도.
3) 평조합원이 적극 참여하는 연좌파업과 동맹파업 위주의 전술.
4) 기업이 매각하려는 사업부 또는 계열사를 현 경영진이 중심이 되어 인수하는 것.
5) 확정급여형에서는 노동자가 퇴직 후 수령하는 연금급여가 사전에 확정되어 있어 급여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반면, 확정기여형은 사용자의 부담금만 미리 정해져 있을 뿐 노동자가 받는 미래의 연금액은 주식시장 등에서의 적립금 운용 수익에 따라 가변적인 제도로 연금급여의 금융시장 의존성이 강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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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