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노조살상무기 ‘단체협약 해지’에 연대로 맞서며

노동사회

신종 노조살상무기 ‘단체협약 해지’에 연대로 맞서며

편집국 0 3,468 2013.05.24 12:27

최근 들어 많은 사업장에서 악용되는 법의 맹점이 있다. 현행법상 해지통보 후 6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상실되는 점을 이용한 단체협약 일방해지다. 세종병원 사측 역시 1987년 노동조합이 세워진 이후 지속적인 노동조합 탄압을 자행해 왔다. 지난 해 5월에는 근로자위원 선거에 사측이 개입한 증거가 드러났고, 일상적인 노동조합 탈퇴공작은 물론 일방적으로 노동조합 사무실을 축소하는 일도 서슴지 않아왔다. 그러던 중 2005년 단협체결을 위한 14차례의 교섭 도중 노조가 단협안을 제시하지도 않았는데 기존 단협안보다 후퇴한 개악안을 제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2005년 8월 세종병원 사용자 역시 노동조합에 단체협약 일방해지를 통보해왔다. 더구나 노동조건 저하, 인사징계권의 확대·강화, 노동조합활동의 축소 등을 담은 개악안을 제시하며 의도적으로 교섭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

2006년 1월 쟁의조정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일부 사측의 안을 수용하더라도 파국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제안을 하였으나 사측은 이마저도 ‘노동조합 요구안 전면수용불가, 사측 개악안 전면수용’을 주장하여 결국 파업을 유도(?)하며 조정을 결렬시켰다. 더구나 노동조합은 2~년에 걸친 사측의 노조탈퇴공작으로 조합원 감소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이미 벼랑 끝에 서있다. 물러설 곳이 없다”라는 공통된 문제인식 속에 투쟁을 결의하고 2006년 1월18일 지부장의 삭발단식을 시작으로 투쟁에 돌입했다. 그렇게 181일간의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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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보일배투쟁을 마친 세봉병원노동조합 조합원들.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도조합 세종병원지부 ]

‘단체협약 해지’라는 신종 노조살상무기

파업에 돌입하자 사측은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용역깡패 고용과 직원구사대 강제동원을 통해 노동조합 죽이기에만 관심을 보였다. 모든 조합원들과 파업을 지지해준 부천지역 노동동지, 보건의료노조 간부들을 상대로 경찰에 고소고발, 인사위원회 회부, 경고장 발송, 출입금지 및 업무방해 가처분신청 등 악덕자본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노조탄압행위를 자행했다. 행정적 탄압만이 아니었다. 용역깡패 35명을 동원해 조합원들의 식당과 화장실 출입마저 봉쇄했고, 선전활동을 폭력으로 막는 행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보건의료노조 차원의 집중집회와 지역연대투쟁, 비정규 장기투쟁사업장들의 공동투쟁이 지속적으로 이뤄졌지만 사측의 탄압은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다면 조합원들은 지쳐갈 것이고 승리에 대한 확신도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러던 3월 중순 집중집회 도중 사측은 경찰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집회대오를 향해 물대포 난사와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고, 때마침 각 방송사와 언론매체에 이 장면이 보도되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의 수수방관행위와 사측의 용역깡패를 동원한 폭력행위와 단협일방해지, 교섭회피 등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적 관심은 물론 여론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합원들의 투쟁에 대한 정당성은 더욱 확고해졌다. 또한 3월말에는 사측이 제기한 출입금지 및 업무방해 가처분신청이 대부분 기각되었다. 반대로 노동조합에서 제기한 ‘직장폐쇄 금지 및 단체교섭응락 가처분신청’은 대부분 수용되어 조합원의 병원 출입과 선전활동을 인정받았고, 사측은 10일내로 단체교섭에 즉각 응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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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은 노조와 노동자는 약자, 사측은 강자로 표현하고 있으면, 세종병원 사측은 나쁜놈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체 직원 540명중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직원은 29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보건의료노조에서 지원 나온 외부인입니다. 언론은 물론이고 경찰, 법원까지 모두 노조에 유리하도록 상황을 방치하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 세종병원 사측 관계자

“세종병원이 이번 싸움에서 밀리면 우리나라 중소병원은 존립할 수 없습니다. 병원계가 물리적으로 도울 수는 없지만 심정적으로 지지를 할 것입니다” 
- 중소병원협회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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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2일 전국중소병원협의회 정기이사회 자리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노동자로서의 기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생존을 위해 투쟁의 길을 선택한 노동자들을 대하는 자본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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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의료노조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참석한 집중집회.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도조합 세종병원지부 ]

귀중한 상을 주신 노동형제들에게 감사드린다!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대표자가 빠진 채 형식적인 모양새만 갖추는 교섭태도를 보였다. 용역깡패들의 상주와 노동조합활동에 대한 감시·통제와 폭력행위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에 노동조합은 대대적인 병원내선전전과 시민서명운동, 삼보일배투쟁, 사측과 경찰서 인권위제소, 조합원 전원 릴레이 단식, 6인 무기한 단식투쟁 등을 배치하며 사측의 성실한 자세를 끌어내기 위한 각 투쟁을 끊임없이 배치하였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자본에 대항에 힘없는 노동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질기게, 질기게 저항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7월19일, 181일의 기나긴 싸움은 노사 간 잠정합의로 일단락되었고, 7월25일 단체협약 조인식을 진행함으로써 단체협약을 지켜내고 노동조합의 깃발을 다시 한 번 굳건히 세워낼 수 있었다. 이날 노동부의 중재로 합의된 내용은 △단체협약 해지 철회와 새로운 단체협약 체결 △주5일제 관련 연월차휴가수당 보전, 생리휴가수당을 전 직원에게 건강수당으로 지급, 연장근로수당 가산금 50% 지급 △부당노동행위 금지 △민·형사상 고소고발, 손해배상·가처분신청과 이의신청 복귀 후 즉시 취하 △조합간부와 조합원의 징계문제 해결 △7/25일 업무복귀 △7/25일 보안요원(용역깡패) 계약 해지 등이다.

사측과의 길고 험난한 싸움에서 승리한 세종병원 노동자들에게 노동운동 진영은 귀중한 상을 주었다. 지면을 통해서나마 우리의 투쟁에 함께 해준 지역 주민들과 노동형제들에게 감사의 말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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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세종병원지부 선정요인

◈ 세종병원지부는 사용자의 집요하고도 폭력적인 노동조합 와해 공작에 맞서 35명이라는 소수의 조합원이 한 명의 이탈도 없이 굳게 단결하여 2006년 1월18일부터 181일간의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민주노조를 지켜냈다. 이것은 민주노조를 사수하여 전체 노동자의 노예화를 막기 위해 소수 조합원들이 발휘한 희생성과 헌신성의 발로라고 볼 수 있으며 막강한 자본의 권위를 이겨내고 181일의 투쟁을 지속시켜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노동조합의 강인한 조직성과 투쟁성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 단체협약 해지라는 사용자의 신종 노조탄압음모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백일하에 드러냄으로써 노동법의 허점을 폭로하고 노동운동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끝내 단체협약을 지켜냄으로써 노동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운동에 용기와 희망을 던져주었다.

◈ 가진자들에 의해 약자를 억누르는데 이용되고 있는 용역깡패의 횡포를 사회문제로 드러내고 이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굴하지 않고 끝내 용역경비를 철수시켜냈다. 이는 노조의 강인한 투쟁력의 결과물이며 노동운동의 정의는 어떤 폭력에도 반드시 승리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차원의 집중투쟁, 조합원 1인당 월 1,000원 투쟁지원금 모금, 비정규 장기투쟁사업장 지원투쟁에 적극적 참여 등을 조직할 수 있었던 것은 일사불란한 산별투쟁의 산물이다. 이 투쟁은 최근 노동운동 혁신의 최대 중심과제로 대두한 산별건설과 산별교섭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확인시킴으로써 노동운동의 발전전망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지난한 투쟁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지역연대투쟁을 통해 중소사업장의 민주노조를 지켜냈는바 이는 노동자계급의 지역적 연대와 공동투쟁이 얼마나 긴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준 귀중한 사례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보건의료노조 세종병원지부는 181일간의 투쟁기간 동안 조합원 전원이 이탈없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일방적 단체협약해지를 통한 노동조합 와해음모를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용역경비의 잔혹한 폭력성을 사회문제화 시켜내고 강인한 투쟁력으로 용역깡패들을 철수시켜 냈으며, 산별투쟁과 지역연대투쟁을 일궈 중소사업장의 승리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과정과 성과는 전태일노동상 선정기준인 ‘희생성과 헌신성, 조직성, 투쟁성, 노동운동과 민중에게 끼친 기여도, 노동운동에 미치는 교훈과 발전전망’ 에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하여 심사위원 전원합의로 제15회 전태일노동상 단체로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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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