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된 민주노총 혁신, 그리고 우리 활동가들

노동사회

무산된 민주노총 혁신, 그리고 우리 활동가들

편집국 0 2,982 2013.05.24 12:25

2006년 9월19일 민주노총 조직혁신안을 논의하던 대의원대회가 정족수 미달로 유회되면서 조직혁신안이 다음 집행부의 과제로 넘어갔다. 2004년부터 조직적인 논의를 거쳐 대의원대회의 결의를 앞두고 있었던 조직혁신안 처리가 또다시 유보된 것이다. 최소한의 시급한 몇 가지 과제를 우선 혁신과제로 제출하였으나 그 나마도 처리되지 못했다. 민주노총 내외로부터 쏟아지고 있는 혁신요구가 또다시 대의원대회 무산이라는 최악의 모습으로 좌절된 것은 민주노총이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고 있으며 향후 전망도 매우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목소리는 높지만 혁신의 길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혁신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는 이유들이 바로 민주노총 혁신과제 목록에 올라와 있는 그것들이기 때문이다. 대의원대회가 조합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을 처리하고 있다거나, 현장 대중의 동의와 참여에 기반을 두지 못하는 사업의 한계 등등. 바로 혁신하여야 할 과제들에 발목이 잡히면서 당면한 혁신사업이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 

내외의 따가운 시선에도 당면한 과제들을 처리하지 못하는 민주노총 혁신의 전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민주노총은 자체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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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19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조직혁신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대의원들. ]

대의원대회 무산까지 혁신안이 걸어온 길

2004년 민주노총은 혁신사업을 중요한 과제로 내걸고 혁신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조직체계 △의결체계 △재정혁신 △교육 △조직문화 등의 과제를 설정하고 조직논의를 진행했다. 9개월여에 걸친 설문조사와 쟁점토론, 조합원 현장토론회 등을 거쳐 만들어진 혁신안은 당면한 혁신과제를 주로 담고 있었다. △노동운동의 방향 △조직문화 △미조직 조직화를 비롯한 조직 강화 방안 △조직체계 재편 등은 장기적 과제로 설정하고 민주노총에서 조직적 결정으로 추진이 가능한 시급한 과제들을 우선적으로 제출했다. 

조직혁신위원회는 조직적 과제로 △민주노총 차원의 산별전환 투표 실시, △산별건설 사업을 총괄하기 위한 산별특위 건설, △산별시대에 적합하도록 산별연맹-민주노총 지역본부-총연맹의 역할 재조정 및 정비를 제출했다. 의결체계와 관련해서는 △대의원 조합원 직접선거로 선출을 통한 조직 민주주의 실현, △대의기구에 비정규노동자를 비롯한 소수할당제 도입을 포함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민주노총이 당면한 최대 과제의 하나인 재정자립화를 위해서 ‘책정된 의무금 100% 납부 → 의무금 현실화(인상) → 조합비 정율제’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기했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는 비리 등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내부의 제도적 장치로 규율위원회 설치안을 제출했다.

2005년 9월 대의원대회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조합원 의견수렴과 토론을 거쳐 마련된 혁신안의 포괄적인 내용이 처리되었으나 시행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하지 못했다. 2005년 9월 대의원대회에서 구체적으로 확정한 내용은 2006년 민주노총 차원의 산별전환투표 실시와 산별건설특위 구성이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지지기반을 심각하게 침식하고 있었던 비리문제를 처리할 자정기구로서 규율위원회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로 구성이 결정되지 못했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지 못하였던 규율위원회는 이후 제도를 마련했음에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06년 민주노총 집행부는 2005년 혁신위원회가 제출한 혁신방안을 일부 수정하여 대의원대회 의결을 추진하였다. 집행부 내외에서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집행부는 임원직선제를 혁신안에 포함시켜 대의원대회에 상정하였다. 그러나 1년여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대의원대회에 상정된 혁신안은 의결정족수 부족이라는 사태를 맞아 또 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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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116주년 노동절 기념대회에 참여한 민주노총 조합원들. ▷ 민중의 소리 ]

혁신은 남이 아닌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

말로는 모두 “혁신! 혁신!”을 외치고 있음에도 혁신을 위한 걸음마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혁신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혁신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위로부터의 혁신을 많이 본다. 순수한 아래로 부터의 혁신은 혁명과 같은 급격한 소용돌이 속에서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혁신은 아래로부터 이루어져야만이 가능하다. 민주노총에서 위로부터의 혁신은 명백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상층이 가지는 권력자원 자체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주노총 상층에서 주도되는 혁신이 힘있게 추진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중앙은 조합원이 참여해야 혁신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래서 2004년 구성된 혁신위원회는 ‘좋은 계획’을 만들기보다 ‘조합원이 동의하는 계획’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혁신이 나아가질 못하니,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중앙에서 추진하는 혁신방향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일까? 그러나 조합원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현장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혁신에 대해서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조합원들도 현재의 노동조합운동의 혁신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럼 민주노총 중앙에서도 원하고 현장 조합원들도 바라는 혁신은 왜 지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규율위원회의 사례를 살펴보자. 민주노총의 중앙과 산하조직을 강타한 비리사건을 계기로 규율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수호 집행부의 퇴진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규율위원회를 긴급히 구성하고 활동에 들어갔으나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규율위원 선출이었다는 반대에 부딪치면서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규율위원 선출이 규정에 따라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혁신사안의 긴급성을 고려해 조직적인 결의를 거쳐 구성되었음에도 선출절차상 문제가 제기되었다. 규율위원회 활동에 ‘이해관계’가 작용했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 2006년에는 규정에 정한 절차에 따라 규율위원을 선출하려 했으나 후보사퇴 등의 사정으로 규율위원회가 구성되지 못하였다. 

규율위원회를 둘러싼 일련의 혼선을 두고 규율위원회 활동과 이해관계가 있거나, 정파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는 게 현실이다. 결국 규율위원회는 식물 기구가 되고 말았다. 자신이 혁신의 대상이 되는 혁신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혁신은 남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명제가 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혁신안을 처리해야할 대의원대회의 유회도 그렇다. “명분상 반대하기 어렵지만 실질적으로 반대하는” 대의원들이 회의장을 떠났다는 분석이 있다. 당당하게 반대하기보다는 반대하고 욕먹는 선택을 기피하고 있다. 대의원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현주소다. 대의원은 조합원과 지도부를 연결하는 핵심적인 고리이다. 민주노총 내부민주주의의 중요한 지점에 대의원들이 있다. 그렇지만 대의원들이 조합원과 민주노총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잦은 대의원대회 무산과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급급해하는 현실이 민주노총 대의기구의 실을 말해주고 있다.  

민주노총의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많다. 그렇지만 조직혁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간부’와 ‘활동가’라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혁신사업 추진을 둘러싼 논란의 과정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조합원 대중과 상층 지도부를 연결해줘야 할 대의원과 간부, 활동가들이 대중조직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민주노총에서 원활한 의사소통과 이에 기반한 내부조직력 강화, 그리고 대중적 동의에 기초하는 조직혁신의 길은 멀기만 하다.

강제된 변화마저도 기회로 만들 용기가 필요해

혁신은 지금까지 내가 하던 방식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민주노총에서 혁신을 추진해야할 위치에 있는 간부들의 상당수는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을 옭죄어 오고 있는 위기는 멀리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아니, 진정한 위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굳이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현재 위치가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고 희망을 위해 불확실한 미래에 뛰어들 열정과 용기가 없다. 자신의 현재에 안주하고 싶고, 자신의 작은 이해를 지켜줄 사람들과 정파 앞에서는 판단이 전복된다. 그리고 억지 논리가 동원된다. 책임을 다른 정파, 다른 조직에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진정성은 간 곳 없다. 혁신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자체적인 혁신을 통해 새로워질 수 없는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민주노총이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 많지 않은 그 시간이 흐른 뒤 민주노총에게 다가올 것은 외부의 변화에 의한 강제일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기 변화에 성공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조직은 외부에 의해서 변화가 강요받게 됨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운다. 

조합원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고, 국민들이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변화하고 있고, 우리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조건이 격변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변화하지 않는 민주노총의 입지와 활동 공간을 크게 좁힐 것이다. 더욱이 복수노조 시대는 내부로부터 변화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에게는 엄청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변화는 위기와 기회의 땅을 동시에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변화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면 변화는 위기로 다가올 뿐이다. 이를 명심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