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국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그리고 노동조합

노동사회

기업국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그리고 노동조합

편집국 0 3,607 2013.05.24 12:51

벌써 3백여일, 대한민국 서울에서도 자본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아셈타워 앞에서 근 1년 동안을 집회와 농성을 거듭하고 있는 10명도 채 안 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전국화학섬유노동조합 라파즈한라-우진산업지회 소속 해고자들이다. 이들은 그동안 강원도 동해 라파즈한라시멘트 옥계공장 앞에서의 장기간 농성투쟁을 비롯해, 프랑스대사관, 상공회의소, 라파즈한라시멘트 서울사무소가 위치한 아셈타워 등을 옮겨 다니며 상경투쟁을 지속해왔다.

라파즈한라-우진산업지회 노동자들의 투쟁은 KTX 승무원들의 투쟁이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만큼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또 운동진영 내에서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사례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불법파견-비정규차별 문제는 물론이고,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노동탄압이라는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라파즈는 프랑스 본사는 물론이고 약 70여개의 진출 국가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관련하여 모범적인 의무이행을 선도해왔다고 자타가 인정해온 터였다. 그러한 기업의 반노동적 행태라는 점에서 이 투쟁사례는 향후 우리 운동진영이 다국적 기업의 CSR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을 갖고 대응을 해야 할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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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착취·노조분쇄·국제협약 위반, 척척 맞는 삼박자

프랑스계 다국적기업인 라파즈(Lafarge)는 시멘트부문 세계 2위의 업체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한라시멘트를 인수하여 ‘라파즈한라시멘트’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진출했다. 현재 강릉시 옥계에 본공장과 항만공장을 두고 있으며, 광양 등지에도 여러 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라파즈는 한라시멘트를 직수한 직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 특히 기존 업무를 하청업체에 외주를 주는 방식의 광범위한 아웃소싱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옥계 본공장 및 광산과 항만공장을 기준으로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현재 정규직 5백여명, 사내하청업체 약 5백여명으로 변화되었다.  

우진산업은 라파즈가 한라시멘트를 인수하면서 기존 장비과가 수행하던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설립된 회사다. 그런데 우진산업의 대표이사와 현장소장 등은 구조조정 당시 명예퇴직을 한 한라시멘트 관리직이었다. 거기에다가 우진산업은 기존 장비과 업무를 어떠한 변경 없이 그대로 수행함은 물론,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업무만을 위탁받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라파즈한라와 우진산업은 형식적으로는 별개로 보일지라도 실질에 있어서는 사업경영상의 독립성을 찾아볼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할 것이다.

우진산업이 라파즈한라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시멘트 제조 설비에 중장비를 이용하여 시멘트 부원료 투입하는 업무, △공장청소, △원료운반 업무 등이며, 소속 노동자들은 이에 따라 △청소, △덤프트럭 운전, △로우더 운전 등으로 직무가 구분된다. 한편, 우진산업은 옥계본공장 안의 사무실에 현장소장과 대리, 여사원 등을 상주시키기는 한다. 그러나 이들 관리자가 수행하는 업무라고는 오전 8시와 오후 4시 경에 이루어지는 조례와 종례 시간에 라파즈한라시멘트로부터의 지시사항을 공지하고 출결사항 체크하는 것뿐이다. 또한 소속 노동자들의 작업이 24시간 3교대로 수행됨에도 관리자들은 주간 시간 이외에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관리자들의 업무에 애초부터 구체적인 작업 지시·감독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할 수 있다.

실제 진술 및 조사를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우진산업 노동자들은 라파즈한라시멘트 소속 정규직원 또는 중앙통제실로부터 직접 또는 무전통신을 이용하여 구체적인 작업지시 및 감독을 받고 업무를 수행했다. 또 작업별로 약간 상이하기는 하나 작업의 개시와 종료 시에 정규직원의 확인서를 받으며 업무를 수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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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3,150원 노동자들의 노조건설과 원청의 번개같은 개입 

우진산업 소속 노동자들은 사내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상당히 열악한 근로조건을 감내해왔다. 이들은 최저임금보다 겨우 50원 많은 3,150원을 시급으로 받으며, 한 달에 통상 150~200시간에 달하는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해왔다. 이렇게 살인적인 시간외노동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최대한의 시간외노동을 수행하여야만 일정한 수입(약 130~150만원)을 수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진산업의 업무가 원청의 작업스케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외노동에 대한 노동자 당사자의 선택권이 철저하게 부정되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한 이유였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조건이 이유가 되어 우진산업 노동자들은 2006년 3월7일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이후 2~3차례에 걸쳐 우진산업 사측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우진산업은 준비시간이 필요하다며 연기를 요청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라파즈한라시멘트로부터 ‘업무조정안’이 시달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2006년 3월 말 전격적으로 폐업을 단행했다. 그 업무조정안은 우진산업이 수익을 내고 있는 위탁업무를 타 사내하청업체로 변동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노동조합이 설립된 지 겨우 이틀 만에 전격 통지된 것이었다. 게다가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우진산업 폐업 이후 다른 사내하청업체로 고용승계를 해주는 조건으로, 노동조합 해산 및 탈퇴를 내걸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원청인 라파즈한라시멘트의 개입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특히, 업무조정안은 계약기간 중임에도 기존 위탁도급계약서 상의 도급업무 내용과 비용 등을 전면적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원청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적극적인 의지 없이 하청업체가 단독으로 이를 처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또한 우진산업의 당시 경영상태는 악화는커녕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조력에 힘입어 점점 확장되고 있는 중이었고, 대표이사 또한 폐업 직전까지도 폐업에 대한 일체의 의사표시가 없었다. 우진산업의 폐업 및 노동조합 탄압-해고 사건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라파즈한라시멘트라는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 사람들, 딴 나라에서는 안 그랬다던데…

우진산업의 폐업 이후, 결국 우진산업과 여타 사내하청업체들이 공언한 바대로, 노동조합 탈퇴를 거부한 이들은 고용승계가 되지 않았다. 이후 조합원들은 옥계와 서울을 오가며 지난한 복직투쟁을 전개하면서 불법파견,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한 법률적 대응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9월23일 강원지방노동위원회는 우진산업 소속 해고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대하여, “불법파견으로서 파견법 상 고용의제 조항에 의거하여 2년 이상 계속근로한 해고노동자들의 경우 라파즈한라시멘트 소속 노동자이므로 우진산업의 폐업과는 관계없이 라파즈한라시멘트가 직접 고용하라”는 요지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후 제기된 <단체교섭 거부에 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대해서는 “라파즈한라시멘트는 우진산업지회의 정당한 교섭상대방으로서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하라”는 내용을 요지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라파즈한라시멘트는 현재까지도 지방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하여 원직복직은 물론 일체의 단체교섭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라파즈한라 우진산업지회는 화섬노조와 국제화학에너지광산일반노련(ICEM)의 조력을 받아, 산업자원부의 OECD 연락사무소에 라파즈를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제소했다. 이와 더불어 ICEM은 라파즈와 체결한 국제산별협약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국제 노사관계에 관한 협약’ 위반에 관한 법률적 대응을 검토 중에 있다.

우선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 제소 건에 대해 살펴보자.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다국적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제고하기 위하여 1976년 제정된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뇌물방지, 소비자 보호 등을 추가하여 2000년 6월 새롭게 개정한 가이드라인이다. 우진산업지회가 제기한 위반사항은 △결사의 자유 침해, △하청업체의 가이드라인 위반 행위 조장·방조, △고용형태에 따른 노동자 차별, △저임금 구조를 악용한 사실상의 ‘강제노동’ 방조 및 강요, △정리해고의 일방적인 강행, △경영진 대표의 면담 거부 등이다. 이와 관련한 해당 제소는 현재 OECD 한국 연락사무소에 계류 중이다. 

다음으로 라파즈가 ICEM과 체결한 국제산별협약 위반 건의 경우를 살펴보자. 라파즈는 지난 2006년 9월12일, ICEM를 비롯하여 국제건설목공노동자연맹(IFBWW), 세계건설목공노조연맹(WFBW) 등의 국제산별노조들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국제 노사관계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 협약에서 라파즈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원칙과 작업장 권리 선언, △ILO의 다국적기업 및 사회정책에 관한 원칙 선언, △국제연합(UN)의 세계협약(Global Compact),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등을 준수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이러한 제소들과 관련하여 현재 우진산업지회 해고노동자들이 라파즈 소속 노동자인가라는 문제가 명확히 규명된 것은 아니다. 또한 협약 위반에 대한 국제법적 제재수단에 대한 충분한 논의 및 검토가 요구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라파즈가 스스로 준수하겠다고 약속한 국제적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준과 협약을 위반했다는 사실 자체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기업국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시민사회의 대응 

앞에서 상술한 것과 같이, 라파즈한라는 사내하청업체를 이용하여 불법파견 및 비정규직 구조를 확립함으로써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기반한 차별과 착취를 자행했으며, 사내하청업체의 폐업이라는 전형적인 방식을 통하여 노동3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최근 자주 볼 수 있는 노동탄압 사례다. 그러나 라파즈한라-우진산업은 이뿐 아니라 국내 진출 다국적기업의 노동탄압 사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운동진영에게 새로운 고민과 대응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라파즈는 본국인 프랑스나 다른 진출국에서는 CSR에 대한 국제적 기준 및 산별협약에 대한 자기책임을 게을리 하지 않다가, 유독 국내에서는 반노동적 행태를 지속하고 있음에도, 노동운동진영은 물론 전 사회적으로도 라파즈의 이중적 행태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제어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다국적기업에 대해 혹시 왜곡된 인식이 존재하는 것인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또 CSR의 핵심 사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고용·노동규범이 국내에서는 너무나도 과소하게 인식되는 것은 아닌지 철저한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