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산별노동조합 출범의 경과·쟁점·과제

노동사회

운수산별노동조합 출범의 경과·쟁점·과제

편집국 0 3,682 2013.05.24 12:49

1994년 3월16일, 서울지하철노조, 부산지하철노조, 철도노조 산하 전국기관차지부협의회(전기협)는 전지협을 결성하고 같은 해 6월23일부터 25일에 걸쳐 파업에 돌입했다. 폭력적 탄압에 의해 진압되기는 하였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지협은 곧바로 택시, 화물, 버스 조직들에 운수산별 건설을 제안하고 1995년부터 운수노동자학교를 진행하였다. 이후 1997년에 개최된 2기 운수노동자학교에서는 ‘업종소산별 → 운수연맹 → 운수산별 → 공공운수대산별’이라는 개략적인 산별건설 경로가 제출되었고,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운수노동자 고유의 슬로건이 채택되었다.

hhjung_01.jpg

지난 10여년 공공·운수 부문의 역사 

한편 1990년대 중반은 그전부터 임금가이드라인과 총액임금제 등으로 정권과 자본의 집중공격을 받던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본격적인 공동대응을 추진하고 있던 시기였다.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은 1995년 공공부문노동조합 대표자회의(공노대) 설치, 1996년 서울지하철, 한국통신, 의료보험, 조폐공사, KBS 등 5개 노조가 참여한 공공5사 공동투쟁을 거쳐, 1999년 3월에는 민철노련, 공공연맹, 공익노련이 통합하면서 공공운수사회서비스연맹(공공연맹)을 결성한다.

민철노련이라는 주요 주체가 공공연맹에 결합하면서, 운수부문의 버스, 화물, 택시 조직들은 각개약진하였다. 이 중에서 화물분야의 발전은 경이적이기까지 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조합원이 2천여명에 불과했던 화물노련은 도로운송분야의 지입제도입과 항만분야의 구조조정으로 고사의 위기에까지 직면했었다. 그러나 1996~97년 노개투 과정에서 항만하역 장비를 거의 멈추는 위력적인 파업을 전개하였고, 1999년에는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이후 공항 지상서비스 분야로의 조직확대, 신선대-우암 부두파업을 거쳐 순식간에 조직규모를 6천명 이상으로 늘렸으며, 도로운송분야의 지입제 확대에 맞서 2002년에는 화물연대를 결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3년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현실로 만들어 내고 조직규모가 한때 4만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또한 버스노조협의회와 택시연맹추진위도 1997년에 합법화되면서 운수산별노조의 주요한 조직적 주체로 자리 잡았다.

공공연맹에서도 조직확대는 주로 운수분야에서 이루어졌다. 1999년부터 항공일반과 조종사노조, 인천·대구·광주·서울 도시철도 등 지하철 조직들이 대거 가입하였고, 2002년에는 철도노조가 가맹함으로써 11만의 거대연맹으로 발전하였다.

2003년 철도, 화물연대 파업과 운수연대 결성

마침내 2003년, 4월에는 철도노조가 파업 직전에 극적인 노정합의를 이루어냈고, 5월에는 화물연대가 온 세상을 뒤흔들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였다. 하반기에는 철도노조와 화물연대가 또 다시 파업에 돌입하여 각각 집중적인 타격을 받고 좌초하고 말았다. 이러한 철도노조와 화물연대의 파업 실패는 역설적으로 운수산별의 절박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2003년 12월, 제3기 운수노동자학교를 개최하면서 운수노조연대회의(운수연대)의 설치가 제안되었다.

운수연대의 주요결합대상은 독자적인 연맹을 운영하고 있던 버스, 화물, 택시와 함께 공공연맹에 소속된 철도노조, 5대 도시의 6개 지하철 노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두 개의 조종사노조와 아시아나항공노조였고, 공식출범은 2004년 2월이었다. 출범에 이어 운수연대는 2004년 하반기 철도·화물·택시의 공동투쟁을 전개하였고 “낮은 수준의 공동투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여름에 전개된 궤도노조들의 공동투쟁은 큰 아쉬움을 남기고 정리되었다

그런데 2005년부터 제기된 공공 및 운수분야의 산별노조 건설논의는 자칫 상호 충돌할 요소를 안고 있었다. 즉 철도, 지하철, 항공조직들은 공공연맹과 운수연대에 중복 결합돼 있기 때문에 조직지형과 발전전망에 있어 공통의 요소와 함께 갈등과 이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직 ‘운수산별’만을 조직전망으로 하고 있던 화물, 버스, 택시 조직과는 달리 ‘공공부문의 운수조직’이라는 또 다른 지향을 가지고 있는 궤도, 항공 분야 조직들 사이에는 운수라는 공통성과 함께 공공성에 대한 이해차이, 그리고 연맹을 달리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겹쳐있었다. 때문에 2005년 제4기 운수노동자학교에서는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공공대산별과 운수산별을 동시추진하고 상호추동한다”는 입장이 원칙으로 정돈되었다.

운수산별 우선 건설이냐 통합산별 일시건설이냐

2005년은 공공-운수 산별건설을 둘러싼 논쟁으로 한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연맹은 “2005년 말까지 가맹조직 전체를 지역조직을 골간으로 하여 일시에 전환한다”는 안을 제출하였고, 운수연대는 “선 운수산별 건설 후 통합산별” 이라는 단계론을 제출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지하철 조직을 중심으로 “궤도업종(소)산별 건설 후 운수산별 혹은 통합산별을 건설”이라는 안까지 나오면서 논쟁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전개되었다. 2005년 4월 운수노동자학교에서 정돈된 동시추진 상호추동 원칙은 타당했지만 이것을 현실화시키는 데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2005년 7월부터 공공, 버스, 택시, 화물 4연맹 대표자 회의를 진행한 결과, 4연맹을 하나의 단일조직으로 통합한다는 데에는 입장을 일치하였지만 상과 경로에 대해서는 4조직 4색이라 할 정도로 복잡한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상층의 논의는 현장과는 유리된 채 진행되었고, ‘선 운수산별건설론’과 ‘통합산별 일시건설론’으로 대별되는 논의는 각개약진의 양상으로 추진되었다. 결국 공공연맹의 지역조직을 골간으로 하는 일시적 산별전환론은 수정과 번복을 거듭하였고, 운수연대는 이렇다 할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지루한 논의 끝에 2006년 2월13, 4연맹 대표자회의는 “2007년 말까지 통합산별 건설을 목표”로 “운수산별과 공공산별 건설을 추진”하자는 취지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합의는 논쟁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기보다는 조직적 지형을 감안한 현실적 타협의 성격이 컸지만 어쨌든 산별건설운동은 탄력을 받게 되었다. 운수연대는 운수노조추진위원회(운노추)로 전환하였고 4연맹은 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로 전환하였다. 통추위는 2006년 9월까지 통합을 목표로 하였다. 하지만 이후 과정에서 대의원대회 통합결의가 10월, 11월로 계속 연기되었다가 12월26일에는 성원미달로 유회되는 아픔까지 겪는 끝에, 2007년 1월16일 비로소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연맹으로 통합하여 출범하게 됐다.

운노추는 우여곡절 끝에 2006년 11월11일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에 운수노조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그 첫 걸음이라 할 10월23일 전국운송하역노조 대의원대회에서 근소한 표차로 운수산별전환결의가 부결되면서 상임위원장이 사퇴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그러나 11월12일에서 15일까지 진행된 택시, 철도, 화물의 집중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비율로 산별전환이 가결됨으로써 전화위복이 되었고, 12월15일로 예정됐던 출범은 민주노총 투쟁일정에 따라 연기되어 마침내 12월26일 실현되었다. 이로써 철도, 화물연대, 운송하역, 버스, 택시, 항공의 5만 조합원을 망라하는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위원장 김영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드디어, 출범! 그러나 여전한 쟁점 

한편 이보다 앞서 공공연맹의 사회보험노조 등 3만여명은 2006년 11월30일 전국공공사회서비스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그리하여 15만에 달하는 4연맹의 통합과 공공노조와 운수노조가 각각 출범하였다. 드디어 2006년 12월15일 철도, 택시, 화물 모두 압도적인 찬성으로 운수산별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시아나항공노조와 운송하역노조까지 가결됨으로써 운수산별 건설은 순탄하게 진행될 듯했다. 그러나 통합연맹은 막판에 커다란 쟁점이 형성되면서 좌초의 위기로까지 치달았다.

쟁점이 표면에 드러난 것은 통합예정일인 12월26일을 1주일쯤 앞두고 각 연맹별 입장을 정돈하는 자리에서 택시연맹이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하면서부터였다. △명칭문제, △상근자급여문제, △통합연맹의 위상문제 등 그동안 잠복되어 있던 쟁점들에 대해서 전반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졌고, 통합이 연기되거나 무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은 주요한 쟁점들은 출범 후 2~3개월의 과도기를 두고 이 기간 동안 정돈하는 것으로 정리되면서, 일단은 통합을 성사시키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2006년 12월26일 운수노조의 창립 대의원대회는 순탄하게 진행되었지만, 곧이어 진행된 통합연맹 창립 대의원대회는 준비부족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루하게 진행되는 동안 성원미달이 확인되어 단 한가지의 안건도 처리하지 못한 채 유회되고 말았다. 그러나 해를 넘겨 2007년 1월19일에 개최된 통합연맹 창립대회는 애초의 우려와는 달리 큰 문제제기 없이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이날 대의원대회 결과 임성규 준비위 집행위원장을 상임위원장으로 하고 공공노조와 운수노조 위원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과도기 지도체계를 선출함으로써 통합연맹은 또 하나의 분수령을 넘게 되었다.

“과정으로서의 산별노조”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운수노조는 많은 한계를 안고 있고 무수히 많은 과제를 가지고 있다. 먼저, 양적인 문제이다. 5만명이 결코 작은 수는 아니지만 애초에 10만명 정도를 예상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조종사노조, 선원노조, 지하철노조 등이 결합하지 못한 것은 중요한 문제다. 2007년 5월로 예정된 정기대의원대회까지는 최소한 이들 조직은 운수노조에 결합할 수 있도록 통합연맹(공공운수연맹)과 운수노조 및 해당노조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광범위한 미조직-비정규노동자를 조직하는 문제와 어용노조의 민주화를 통한 조직확대는 운수노조의 핵심적인 과제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철도노조(철도본부)가 초기 조직의 ‘기관차’라면 운송하역(공항항만운송본부), 버스, 택시, 화물연대는 운수노조의 ‘성장엔진’에 되어야 한다.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이들 업종에서 대대적인 조직확대를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산별노조운동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질적 수준의 문제이다. 운수노조는 “과정으로서의 산별노조운동”을 표방한다. 낮은 수준에서 준비된 조직으로부터 산별노조를 건설하고, 양적 확대와 질적 강화를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내용을 다 갖추고 형식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른바 “무늬만 산별”이라도 일단 형식을 만들고 내용을 채워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노동운동의 조건이고 현실이라고 본다. 철도노조와 같은 거대 공기업정규직 노조와 노동자성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화물연대 같은 대규모 비정규조직이 함께하는 운수노조는, 완성된 산별로 출발하는 것이 아닌 100만 운수산별로 가는 ‘전초기지-베이스캠프’를 자임한다.

마지막으로 운수노조 자체의 조직발전 전망과, 동시에 공공운수연맹 차원의 산별전환 및 통합산별 전망이 아직은 불투명하다는 것을 제기할 수 있다. 2007년 1월16일 통합연맹의 출범은 어떤 면에서는 임시봉합에 가까울 수 있다. 내부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십수년에 걸친 운수산별노조운동은 공공운수대산별의 지향을 잃지 않고 추진되었던 만큼, 무리하지 않는다면 판을 깨는 지경으로까지는 추락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100만 운수산별노조’를 향하여!

2006년 12월26일 선출된 운수노조 지도부는 2007년 4월까지를 임기로 하는 과도적인 지도부이다. 운수노조는 3월 중앙위원회, 4월 직선 임원선출, 5월 정기대의원대회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1차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운수노조는 누구나 지적하는 ‘준비부족’ 혹은 ‘졸속적 출범’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하지 않으면 먼 훗날에나 기약이 가능한 일이라면 부족한대로 출범을 시켜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과도지도부는 한편으로는 큰 욕심 없이 초기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실무적인 이전을 하면 된다는 홀가분함 못잖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바로잡기 힘들다는 부담감 역시 느끼고 있다.

초기 지도부는 먼저 집행체계를 정연하고 효율적으로 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철도, 운송, 화물, 버스, 택시, 항공의 6개 업종본부를 골간체계로 하는 운수노조는 중앙과 업종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사업집행체계와 역할분담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사업의 제로섬상태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하여 공공운수연맹과의 관계가 정립되지 못하면 ‘옥상옥’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음으로 초기지도부는 △지역조직 건설, △규정규칙 정비, △2007~08년 사업계획을 대중적 토론을 통하여 확정하고 힘 있게 집행하는 토대를 만들고자 한다. 운수노조는 “업종에서 지역으로 이행”하는 조직발전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업종을 고착화시키는 것은 기업별노조의 온존과 연맹체계로의 후퇴를 의미한다. 운수노조는 낮은 수준의 조직형태로 출발하지만 가능한 지역부터 지역본부를 구성하여 지역조직으로의 이행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하고 초기지도부는 이를 위한 토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또 그동안 많이 지적된 준비부족의 문제도 규정-규칙에 대한 대중적 토론을 통하여 극복하고자 한다. 운수노조 규약은 많은 부분을 하위규정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토론과 의견수렴이 필요하며, 이 과정을 운수노조에 대한 이해와 결합도를 높이는 계기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듯이 운수노조의 객관적 전력은 엄청나다. 각 업종본부의 투쟁만으로도 능히 사회를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조직인 만큼 이러한 전력을 분산소모할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통해 유연하고 다양한 교섭과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운수노조는 산별적 교섭의제의 설정과 이를 관철하기 위한 교섭 및 투쟁전략을 대중적 토론을 통하여 수립할 것이며, 짧게는 대선투쟁을 포함한 2007~08년 사업계획 속에서, 길게는 100만 운수산별이라는 야심찬 구호에서 드러나듯 “사회변혁운동에 복무하는 산별노조운동”의 전망을 세워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운수노조 초기지도부는 힘 있는 선거를 통한 정식지도부의 출범시키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6개 업종에 걸친 5만의 전국조직이 불과 3개월의 준비로 조합원 직접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대단히 방대한 과제이다. 조합원 직선에는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처장뿐만 아니라 200명당 1명씩 선출하는 대의원까지 포함된다. 선거구를 확정하는 문제가 조직을 정비하는 과정일 정도로 복잡한 타산과 조직별 조율이 필요하다. 선거과정이 조합원 참여의 과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운수노동자들은 꼭 10년 전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구호로 시작하여 마침내 운수산업노조를 출범시켰고, 이제 ‘100만 운수산별’을 향한 첫 단추를 채우고 있다. 인무원려불성대업(人舞遠慮不成大業), 즉 멀리 내다보지 못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운수노조는 멀리 내다보되 세심하게 전후좌우를 살펴 세상을 바꾸는 조직으로 성장해 나가고자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