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노사관계 전망

노동사회

2007년 노사관계 전망

편집국 0 3,516 2013.05.24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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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07년 1월17일(수) 오후 4-6시
발표: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
토론: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
사회: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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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올해는 매우 뜻 깊은 해다. 1987년 민주화운동, 노동자대투쟁으로부터 20년이 되는 해이고, 1997년 IMF 외환위기로부터 10년이 되는 해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노동조합의 과제는 과거나 지금이나 큰 폭의 변화가 보이질 않는다. 그만큼 노동조합 운동이 지체되었다고 여길 수도, 또 외부환경이 녹록치 않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만 해도 이제야 본격적인 흐름으로 대두되고 있다. 올해는 또 어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할지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에게서 들어보도록 하겠다.

발표

forum_02.jpg노사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마도 경제정세일 것이다. 세계경제는 지금까지의 빠른 성장세가 둔화하겠지만 급격한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경제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2003년 멕시코 칸쿤 각료회의 이후 난항을 겪는 DDA 협상은 올 상반기에 협상이 다시 시작되지만, 농업 협상에 대한 입장차이가 심해서 쉽게 타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지부진한 DDA를 대신해 확산일로에 있던 양자 간 FTA 혹은 지역무역협정은 아마 계속될 것이다. 

국내 경제로 돌아와서, 지난해에는 5%대의 성장을 보였지만 올해는 대체로 4.3%로 예측들을 하고 있다. 수출 증가세가 주춤하고 내수 호전을 기대하기 어려워 성장 둔화가 예상된다는 얘기인데, 아마 이렇게 된다면 사용자 측에서는 임금상승률을 억제하려고 할 것이고, 예의 ‘고임금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려 노동조합의 임단투 교섭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도 바깥에서는 한창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 진행 중인데, 한미 간 핵심 협상은 비공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상식으로는 협상타결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한국 정부가 주요 쟁점에 대해 모든 것을 양보하는 ‘묻지마 체결’로 갈 가능성도 있다. 만일 한국 정부가 고위급(대통령) 정치 협상을 통해 3월 이전에 굴욕적으로 협정을 체결한다면 한미FTA 대응은 ‘비준저지 투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FTA에 대해서 무척 적극적인 편이어서 EU(유럽연합), 중국과도 지난 해 말부터 협상을 위한 접촉을 하고 있다. 민중진영이 지금은 한미 FTA 저지에 집중하고 있지만, 총체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한 시기이다.

정치정세는 역시 12월 대통령 선거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수구 보수세력, 자유주의적 개혁세력, 진보진영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한판 쟁투의 장을 펼칠 것이다. 물론 지금은 한나라당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반면, 범여권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각개약진 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양강 구도’로 가지 않겠나 싶다. 대선 변수는 크게 세 가지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움직임,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한나라당의 분열.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카드가 열우당의 혼란을 잠재우고, 한나라당을 분열시킬 가능성이 있고, 남북정상회담도 여전히 사용가능한 반전카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큰 흐름을 접어둔다면 진보세력 입장에서는 민주노동당의 대선 전략이 가장 큰 관심거리일 것이다. 여태껏 전체 민중의 대안적 정치세력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기대에 못 미쳤던 게 당의 현실이었다.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노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관점에서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비정규직 고용보장과 차별해소가 핵심

이제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노동시장의 상황부터 살펴보자. 2003년 이후 비정규직 규모가 55%대에서 큰 폭의 증감 없이 꾸준한 수준을 유지하며 ‘구조화’ 하고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도 절반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통계 수치들을 놓고 보면 우리의 노동시장의 분절 구조가 ‘고착화’ 하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만 심각한 것도 아니다. 사업체 규모별로도 큰 폭으로 벌어져 있다.  

올해 7월1일부터는 지난해 통과된 비정규법이 시행된다. 기존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바로는, 계약해지를 하거나 업무 자체를 아웃소싱 할 계획이라고 하는 응답이 80% 가까웠다. 실제 철도공사 새마을호 직접고용 업무 외주화, 2년 이상 계약자에 대한 재계약 거부 그리고 단체협약 파기 등 공공부문에서는 당장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밝힌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에서도 기간제 상시 지속 업무는 무기계약 전환이 원칙인데도 지금 현장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올해는 더욱 심화될 것이 틀림없다. 

한편 작년 말 우리은행의 노사가 비정규직 3,100명을 정규직화 하기로 합의한 것을 두고 논란이 많다. 정규직 임금동결을 조건으로 취업규칙과 정년을 보장하되, 여타 근로조건 격차는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자는 내용이었다. 금융노조는 우리은행식 해법을 올해 산별노조 교섭의제로 상정해 확대할 방침이라고 하고, 이미 국민은행은 우리은행식 해법을 도입하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우리은행식 해법은 긍정성과 부정성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의 고용과 노조 가입이 보장된 점은 긍정적이지만, 직군분리가 고착되고 차별이 내재화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정규직 양보론’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부정적 요소가 숨어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입법이 시행되는 올해는 아마도 제조업을 비롯한 다수 사업장에서는 계약해지나 아웃소싱 등으로 간접고용이 대폭 증가할 가능성이 크고, 은행과 공공부문에서는 우리은행식 해법이 모색될 여지가 있다. 만일 금융노조가 산별의제로 우리은행식 해법을 추구하여 확산을 시킨다면, 그 사회적 파장은 무척 클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고용 보장과 차별해소 문제는 임단협 시기의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관련 대책이 올 6월에 확정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싸고 공공부문 노사 간에도 큰 쟁점이 형성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는 전략을 유지하면서 정규직 양보론에 기초한 양보교섭으로 압박할 것이고, 비정규 노동자들은 어느 해보다도 더 투쟁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노동조합 차원의 전략이 시급히 수립되어야 한다.

또한 비정규문제 관련해서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기본권과 비정규입법 시행령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특수고용 문제는 2월 임시국회와 4월 임시국회에 집중될 것이다. 그런데 일정을 보면 이즈음에 민주노총과 각 산별노조의 선거가 줄줄이 있다. 개별 노동조합들도 임단협을 준비하는 시기라 투쟁 동력을 집중하기가 곤란한 시기다. 특수고용 노동자 기본권 관련한 입법안이 민주노동당의 단병호 의원안, 열린우리당 조성래 의원안, 이밖에 정부 법안과 우원식 의원도 별도 법안을 준비 중인데, 대국회 교섭 전략과 사회쟁점화 방안을 면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입법 시행령의 쟁점은 △기간제 교사의 사용기간 제한 예외조항 포함 여부와 △파견업종의 확대 문제이다. 즉, 기간제의 경우, 변호사, 변리사, 노무사와 함께 공공부문의 기간제 교사를 ‘전문직?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에 포함시켜 사용기간 제한의 예외조항에 둘 것인지가 쟁점이 될 것이고, 파견 관련해서는 현행 26개 업무로 한정된 파견 업종을, 예컨대 유통서비스 업무, 콜센터 업무 등으로 확대하느냐 마느냐가 쟁점이 될 것이다. 파견업종 대상의 확대 여부가 시행령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이번 법 개정의 성과라고 자부하는 ‘차별처우 시정’도 지금은 매우 포괄적인 내용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차별시정의 절차, 방법, 범위 등에 대한 내용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관련해서 노동위원회의 차별시정위원회의 구성원 선출도 중요한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현대자동차와 사내협력업체의 파견법 위반 사건이 무혐의 판정을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정부가 불법적 파견업의 확대를 조장한 꼴이 되었다.

비정규 법의 시행의 효과는, 물론 2년이란 기한이 있어서 2009년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나타나겠지만, 지금껏 반복갱신이 아무런 제약 없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기간이 정해졌으므로 간접고용이 대폭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고용을 한다 해도 비교대상이 없는 분리직군제로 갈 확률도 높아졌다.

비정규직 노사관계의 전면 등장

노조조직률을 보면 1998년 19.8%를 최대로 하여 점점 하락하고 있는데, 1990년대 후반에는 12%대, 2004년에는 10%대에 들어섰다. 조직률 하락의 요인을 노동조합의 관점에서 얘기한다면, 첫째 비정규직이 지나치게 확산된 점, 둘째 산업구조가 변화했는데 노동조합의 조직화는 미처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던 점, 셋째 기업별노조의 조직화의 한계, 넷째 노조운동에 대한 사회적 지지도의 하락을 들 수 있다. 

조직률이 하락하면서 노동조합의 노동자 대표성도 동시에 약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눈여겨 볼 것은 노동자 구성과 조합원 구성의 ‘비대칭성’이다. 임금근로자의 80% 가까운 대다수는 100인 미만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는데 반해, 이중에서 조합원은 전체 조합원의 22.8%에 지나지 않는다. 즉, 노동자의 8할이 100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데, 조합원 가운데 2할만 그러한 사업장에 있는 것이다. “전체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말하기가 쑥스러울 정도다. 이뿐 만이 아니다. 비정규 노동자의 수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 서서 845만명이지만, 이중 노조조직률은 2.8%, 고작 24만명이다. 중소영세사업체와 비정규 노동자를 예로 들었는데, 이 두 범주는 따로따로 얘기할 성질이 아니다. 이 둘은 마치 바늘과 실 같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방금 얘기한 대로 100인 미만에 8할의 노동자가 있다면, 동시에 규모가 작은 사업장일수록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즉, 이 교집합에 대한 산별노조 차원의 연대임금정책이나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 같은 것이 고민되고 법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만, 초라한 ‘대표성’과 ‘조직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통계 속에 나타난 심각성은 현실 운동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노사관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기업 노사관계가 안정화되는 반면 비정규 및 중소영세 사업장의 노사관계는 격화하는, 이른바 ‘노사관계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4년에는 총 노사분규 가운데 73%가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고, 재작년에는 69%였다. 작년에는 비정규입법, 로드맵 같은 중앙단위 쟁점이 형성되었고, 민주노총 차원의 총파업으로 인해 완성차들의 파업이 장기화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노사관계의 양극화 현상은 점차 심화될 전망이다. 예컨대 작년 민주노총 소속 구속자 수는 총 2백명이었는데, 이 가운데서 170명 정도가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KTX 여승무원 불법파견, 포스코 파업, 화물연대 파업 등 비정규 관련 파업이 사회적 쟁점이 된 것도 노사관계의 양극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노동시장적 특징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지만, 거꾸로 비정규직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인 노사관계 제도화조차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대립과 갈등으로 치달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 밖에 작년에 통과된 로드맵 중에서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도 올해 쟁점이 될 것이다. 

새로운 노동배제, 민주노총의 고립

작년을 기점으로 중앙단위의 노사정대화가 파탄에 이르면서 중앙단위 사회적 대화기구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우선 노사정위원회의 개편 방안이 나왔다. 노사정위원회와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와의 통합 방안까지 거론되는 것으로 봐서는 변화의 폭이 클 것 같으나, 현 정부 내에서 정리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공히 노사정위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에 정권의 변화에 따라 그 가닥이 잡힐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설립 중인 노사발전재단이다. 노사발전재단을 통해 보수양당이 한국노총을 끌어안고, 노·경총 간 야합구조를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노사발전재단을 통한 사회협약기구 재편은 신자유주의 개혁과 노사협의체제의 절충을 모색하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등장한 뉴라이트 노동연합 같은 보수적 노동운동의 등장 문제다. 종합적으로는 노사관계를 둘러싼 지형이 민주노총을 배제 혹은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대부분 산별노조로 전환되었다. 민주노총 산별 조직률은 65.5%로, 32개  산별, 50만9천여명 정도다.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데, 올해는 더 많은 기업별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할 것이다. 따라서 올해 임단협 시기에 산별교섭 구조의 확립과 내실화가 핵심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금속과 보건은 사용자단체 구성 및 산별협약 강화를 요구할 것이고, 비정규 차별처우 개선, 산별 최저임금제, 사회연대적 임금 등 산업정책 요구가 집중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교섭구조가 정규직-비정규직 간 이원화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것을 얼마만큼 차단하는가도 관건이다. 그리고 노조와는 반대로 사용자측, 특히 완성차 사용자들은 산별교섭을 될 수 있으면 피해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산별교섭 테이블 형성 자체가 최대 쟁점이 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로드맵 교섭에서 산별교섭 제도의 입법화를 요구했었지만 끝내 달성해내지 못했다. 특히 올해는 교섭의무 부과, 단체효력확장제도 개선, 초기업단위 협약의 우선적용 명시 등을 주 내용으로 산별교섭제도화를 위한 입법안을 다시 제출할 필요가 있다. 

이밖에 사회공공성과 관련해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산재보험, 부동산정책, 사회보험통합 등 작년 주요 현안과제였던 의제들을 추진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들이 진행될 전망이며, 이와 관련한 사항들이 올해에도 쟁점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두운 전망, 희망은 어디에…

이제껏 제시한 쟁점들이 과연 올해 어떻게 풀릴지,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 전망을 해보겠다. 먼저 법제도 개선 투쟁 관련해서, 사실 작년에 터진 비정규입법과 로드맵 등은 각각 1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사항들이었는데, 어쨌든 이것들이 일차적으로 마무리된 시점이라 올해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진 정도로 그칠 것이다. 산재보험 개정과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문제 등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그러나 한미FTA 저지 투쟁은 전체 사회운동 진영의 공통의제가 되어, 만일 정부가 합의를 할 경우 전체 운동의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이밖에 공무원 연금법 개정은 대선을 앞둔 정부가 무리하게 드라이브를 걸 형편이 되질 않아 입법 처리가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총 법제도 개선투쟁의 역사를 보면 투쟁과 교섭의 모범적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것 같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비정규 입법 등 쟁점화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투쟁동력의 한계나 결정과 집행의 불일치 속에서 원론적 반대에만 매달리다 개악안 처리로 결론이 나는 식이었다. 뭐랄까, 이제는 ‘구조적 문제’라고 해도 될 정도다. 주체 역량을 무시한 총파업 만능주의와 최대강령주의, 타협 없는 원칙고수,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식, 혹은 중앙과 산별 그리고 사업장 간의 역할 분담 없이 내리꽂기 식으로 대응한다면, 이번 선거에서 어느 집행부가 들어서더라도 현장의 공동화를 막을 방법은 없을 것 같다. 투쟁의 외침은 있으되 깃발만 나부끼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초라함이 계속될 것이다. 

총연맹의 지도력이 ‘정파적 셈법’이 아닌 ‘책임지는 지도력’으로 탈바꿈 되어야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제도개선 투쟁은 ‘요구안 마련-현실적 목표-정책참가 및 교섭’과 ‘투쟁력-대국회 입법 활동’ 등 다차원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제도개선 투쟁은 전체 투쟁의 한 부분일 뿐이다. 저지가 가능한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데 마치 전부를 쟁취 가능한 양 선동하는 것은 오히려 무책임한 짓이다. 제도개선에서 미흡한 것은 현장투쟁으로 돌파하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아울러 법제도는 시장의 힘에 비해서 언제나 미약하다. 이 관계와 고리를 잘 알고 대응해야 한다.

또한 당분간은 더 이상 사회적 대화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총 선거의 결과와 별개로 객관적 조건이 그렇다는 얘기다. 사회적 대화로 풀어갈 핵심 쟁점이 없는 까닭이다. 특수고용 문제는 정부입법안이 추진 중이고, 산재도 이미 입법예고 된 마당에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추진할 이유는 별로 없다. 민주노총도 누가 당선되더라도 별도 교섭을 추진해야 실익이 없고, 하반기에는 대선으로 집중되어 입법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정부가 연석회의와 노사정위원회의 통합을 매개로 하여 향후 사회적 대화의 틀을 재편하는 등 정부 주도의 논의구도를 예상할 수도 있지만, 현재 여권의 재집권이 쉽지 않고 대통령의 권력누수로 인해 이 가능성이 실현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오히려 한국노총 중심의 노사발전재단이 강화되고, 민주노총이 배제되는 양상은 실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노사공동의 고용안정 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이 확대되는 방식을 예상할 수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올해 노사관계의 핵심은 산별이다. 따라서 이번 현대차 성과급 문제는 샅바싸움이자, 대리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 금속노조는 두산중공업을 비롯해 대공장노조를 산별교섭에 끌어 들이는 데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산별노조의 전진과 후퇴가 결정 날 것이다. 다만 지금부터 준비해도 벅찰 판에 총연맹 선거, 금속 선거, 공공 선거, 그리고 공공과 운수 통합대의원대회 등 겹겹이 선거라 내부 준비가 유실될 우려가 있다. 그럭저럭 준비가 되더라도 만일 산별노조가 기업별 틀을 벗어나는 사회연대적 내용을 의제로 제출하고 대표성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산별교섭의 의미 있는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런데 투쟁의 확산만큼 조직화가 따라가 주지 않는 게 문제다. 소수투쟁 중심도 극복해야 하고, 비정규조직화 기금마련과 활동가 양성을 총연맹의 센터만의 사업으로 치부하는 것도 극복해야 한다. 대중적 조직화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

최근 현대차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어느 때보다도 민주노조운동 죽이기와 고립화 전략이 강화되고 있다. 노동운동 내부도 분파성과 도덕성 문제로 민주노조운동은 자승자박하고 있다. 아울러 조합원들의 실리주의는 심화되고 있으며, 비정규직과의 연대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노동자들 간의 계급적 단결의 토대마저 흔들리고 있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에 나온 세 후보 모두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저마다의 복안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만, 세 후보 모두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지금의 노조 운동 양태를 감안한다면, 조합원 대중을 주인으로 세우는 민주성의 확대보다는 정파적 투쟁을 전 조직으로 확산하여 오히려 조합원의 외면을 불러 올 위험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봤는지 묻고 싶다. 차라리 ‘승자독식 선거 구조’가 아닌 지지도에 따라 선출하는 ‘정파명부식 선거제도’의 도입으로 정파들이 건강한 노선경쟁을 통해 책임 있는 의견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노동운동의 혁신은 아마도 실리와 연대 사이에 대립각을 세우고 연대성의 회복을 위한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갈 때 자연스럽게 쟁취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선 얘기가 빠질 수 없다.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한국노총은 서두를 이유가 하등 없을 것이다. 선택의 폭이 다양하단 얘긴데, 하지만 이를 유의미한 노동자정치세력화 모델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반면 민주노총이 지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동자와 전체 민중진영을 대표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당원직선제에서 벗어나서, 예를 들어 민주노총 전 조합원의 대선후보 경선 참여, 민중사회진영이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 참여 등의 다양한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 서민을 대변한다면, 그에 걸맞은 대표성을 획득하는 프로세스를 이번 대선에서 보여 줌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하고, 새롭게 위상을 정립하는 계기로 삼는 방안도 고려해 봄직하다. 

사회자  2007년이 권력교체기에 노동조합의 상황 진단과 몇 가지 대안을 들었다. 발제를 듣고 보니 오늘 날씨처럼 밝기보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럼 이제 배규식 본부장에게서 토론을 듣도록 하겠다.

토론

forum_03.jpg우선 노사관계의 큰 흐름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한국노총은 이런 노동정치를 잘 읽는데, 민주노총은 심하게 얘기해서 거의 ‘색맹’ 수준 같다. 머리 박고 싸우기는 잘하지만 이 싸움을 어디로 끌고 갈지에 대한 비전은 갖추고 있질 않아서 매번 ‘반대 투쟁’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잘라 말해서, 2007년도는 노동계에 굉장히 불리한 지형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관계를 보면, 1990년대 중반까지는 노사관계가 노동시장을 규율하는 일정한 정합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제외한다면 노동시장이 노사관계의 규정력을 벗어나 거의 방치 수준에 와 있다. 그 근거들을 몇 가지 들겠다. 첫째, 무노조기업의 경우 노사협의회가 노동조합의 대체물로서 기능하고 있다. 교섭, 협의, 임금결정 보고 등이 노사협의회에서 이뤄지고 있다. 노동조합이 포괄하는 노동자보다 큰 범위에서 노사협의회가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산업구조의 측면에서 대규모 사업체의 고용력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마치 노조의 조직률 특성과 동전의 양면 같은 꼴이다. 축소된 고용력은 노동조합의 힘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셋째, 기업별노조체계에서 기업 내부에 미치는 노동조합의 영향력은, 현대차처럼 안 건드리는 게 없을 정도로 막강하지만, 공장 울타리만 넘어가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게 현실이다. 즉 노동시장의 규율에 대한 영향력이 거의 무(無)에 가깝다.

이런 조건 속에서 결국 민주노총, 노동운동, 진보개혁세력의 정치사회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고, 올해 대선에서 후보로 유력한 인물들의 지지율은 한나라당 후보와는 심한 격차가 있다. 국민들이 등 돌리기는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이번 현대자동차 성과급 지급을 둘러싼 여론을 한번 봐라. 재작년부터 터지기 시작한 노동운동의 비리 사건과 국민적 여론을 거스른 투쟁방식에 대해서 국민이 염증을 내는 거다. 

그리고 발표자도 얘기했지만,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 틀에서 배제되고 고립이 심화되었다. 작년 ‘9?11 합의’가 그 정점이다. 이제 민주노총은 장외투쟁이라는 선택 말고는 없다. 하지만 이 방식은 민주노총을 더 심한 고립에 빠뜨리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노사관계의 지형과 외부환경 변화에 둔감한 채, ‘전투적 투쟁’만을 일삼아 현실감 없는 노동운동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작년에 뉴라이트 신노동연합이라는 조직이 떴다. 노사관계에 대한 보수적 개혁을 기치로 들고 나온 것이다. 단순히 이것만을 놓고 보면 안 된다. 정치지형의 변화(대선)와 함께 읽는다면 우려할 일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일부 학계를 중심으로 노사관계의 보수적 개혁을 위한 서명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노동계를 사방에서 포위하고 들어오는 것인데, 노동계의 ‘역포위’ 전략이 없다. 이 정도가 올해 노사관계를 어둡다고 얘기할 수 있는 몇 가지 근거이다.

이젠 쟁점별로, 발표자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얘기하겠다. 우선, 모두가 산별노조가 중요하다고들 말은 하는데, 명확히 무엇을 지향하고자 하는지 잘 나타나지 않아서, 혹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닌지 싶다. 물론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지만, 산별노조는 기업별노조와는 전혀 다른, 그래서 새로운 지배구조(governance)를 구축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지배구조는커녕 ‘어느 정파가 지도부를 잡느냐’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 것 같다. 산별노조 건설을 기존 기업별노조나 산별연맹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산별노조를 고민한다면 ‘중앙집중의 정도’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한 의제들은 교섭, 파업, 활동방침, 징계 등에 관한 의사결정, 그리고 재정과 조합비의 배분 및 사용용도 등 셀 수 없이 많다. 인사나 의사결정방식, 내부 조직체계, 집행부 내부의 분업 문제도 있다. 가령, 외국의 경우 노동조합의 2인자는 재정담당이다. 우리는 어떤가. 대의원대회 결정은 형식이고, 위원장 맘대로 하지 않나, 그래서 비리가 생기고. 이런 과도한 위원장 집중 체계는 산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올해 덩치가 커진 금속노조는 사용자 측과 교섭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진통과 갈등이 클 거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올해에 개별교섭을 한다 해도, 내년부터는 사용자 측이 산별노조를 교섭상대로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옛날처럼 금속노조가 강력한 투쟁력을 바탕으로 산별 인정투쟁을 한다고 해서 사용자 측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물론 조그만 사업장 일부에서는 그럴 수 있지만,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에서 얻는 이익이 뚜렷하지 않다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 산별교섭 이전에 ‘사전협의’ 방식을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사용자들에게 산별교섭 준비단을 구성하여 스스로의 내용과 의제를 준비하도록 요구하고, 공동워크숍을 꾸리기도 해야 한다. 특히 사용자 측이 갖는 쓸데없는 거부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조합의 유연한 태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가령, 사용자 측이 교섭구조 단순화와 기업별교섭 시 쟁의권 포기 등을 요구할 수 있는데, 산별교섭의 비용절감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으로서는 노조의 준비 부족, 사용자들의 거부감 그리고 대외적 조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산별교섭이 갈등만을 낳고 성사에 상당한 곤란에 부닥칠 가능성도 있다. 2007년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은 산별노조들이 얼마나 내부의 통일된 지도력을 구축해서 조직 내부의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큰 목표로 향하느냐가 중요하다. 만일 이번에 산별교섭이 완전히 실패한다면, 우린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다. 산별교섭이란 ‘역사적 실험’을 앞에 두고, 노조가 준비 부족이나 정파 간 이해관계 때문에 전체 노동자 앞에 죄를 짓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만 얘기하겠다. 첫째는 교섭 상대가 불분명하거나 형식적 사용자와 실질적 사용자가 분리되어 있어서 교섭이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산별노조나 비정규노조들의 투쟁도 중요하지만, 시민단체나 여성단체와의 적극적인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령 미국의 ‘청소부에게 정의를!(Justice for Janitors)’ 운동도 사실 노동조합만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사회운동단체가 모두 결합해서 ‘지역캠페인’처럼 이루어졌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경우 KTX의 사례가 모범적인 것 같다. 

둘째, 우리은행식 해법에 대한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 이 사례가 발표된 직후 민주노총이 낸 논평을 보고,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사용자들은 상시고용이 필요할 경우 이 해법을 많이 강구할 것이다. 이 해법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노동자에 대한 획일적 관리를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특수한 형태다. 이제는 이 시스템이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직무가 더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체계로 갈 것이다. 이때는 직무에 따른 임금체계로 바뀔 수밖에 없다. 물론 영국이나 미국처럼 너무 세부화 되어도 문제가 된다. 직무에 따른 숙련도, 전문성, 지식, 곤란 등등에 따른 차이는 인정하는 방식으로 가야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직 우리에게는 이것을 시행할만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 제대로 직무를 분석하고 여기에 맞춰서 직무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아마도 사용자 측에서는 부분적으로나마 이것을 연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제도 개선문제에 대해서, 이제는 중기적 전략과 현실적 전술을 구분 좀 했으면 좋겠다. 작년 로드맵 당시에 보니까 민주노총은 스스로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는 구조더라. 정파 때문에. 로드맵 막판에 가서 민주노총의 행로를 보니까 어떻게 할지 가는 길이 다 보이더라.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사실 민주노총 식의 어중간한 태도를 갖고서는 구체적 협상에서 성공할 수 없다.

<전체토론>

질문자  1987년으로부터 20년이 흘렀다. 노동조합운동이 형식적으로 발전은 했지만 정체되어 있어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셀 수 없이 많다. 우선 무엇에 집중하여 장기적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발표자  토론자의 논평에 대하여 많은 부분 공감을 하면서도 몇 가지 수준에서 반론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민주노총이 잘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노총이 잘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한국노총의 현재 행태는 과거를 떠올리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모습이기는 하다. 하지만 한국노총의 로드맵 성사과정은 퇴행적이었다. 그리고 총체적으로도 한국노총이 한국의 양극화 해결에 대하여 올바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은행식 해법 관련해서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만 긍정성과 부정성이 동시에 있으므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단, 분리직군화를 통한 차별의 내재화를 그대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현재 금융노조의 입장도 그나마 정규직화의 대안이 되니까 하는 것이지 분리직군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은 아닌 것으로 안다. 다음으로 산별교섭에 대해서는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산별과 관련한 연구 흐름이 너무 과도하게 산별의 ‘관료화’에 대한 우려에만 치중한 나머지 아래로부터의 통제장치를 강구하는 데만 골똘해 있다. 말씀하신대로, 산별노조다운 지배구조 등 총체적인 그림에 대한 연구진들의 연구노력이 필요하고, 그 성과를 민주노총이 적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다. 

장기적으로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해서 노동조합의 대응은 수세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런데도 1990년대 초의 투쟁방식으로 돌파한다는 식이 여전히 현재의 노조활동을 규정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조직, 투쟁, 의식화는 3박자가 같이 가야 한다. 올해 비정규직 투쟁만을 놓고 봤을 때, 총연맹/산별/지역본부가 일반 대중들을 의식하고 조직화하는 계기로 삼는다면(조직화 모델을  만든다면) 대안이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산별교섭에서도 다양한 격차가 심화되어서 무엇을 고리로 극복할지 참 답답하다. 중장기 전망을 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스웨덴은 연대임금전략이었는데 한국에서 적용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하부영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이 ‘원-하청 관계’를 고리로 하자고 제안했는데, 아이디어 측면에서 생각해 볼 게 많다. 

끝으로 질문자의 지적처럼 민주노총이 부닥친 도전이 매우 거대해서인지 노사관계 전망이 매우 어두웠다. 민주노총의 지도부 선거가 끝나고 나면 좀 더 적극적인 대안이 마련될 것으로 짐작한다.

토론자  비관적 전망을 벗어날 수 없는 게 아쉽다. 지도부가 바뀌어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정말 위기다 싶으면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도입해야 하는데, 노력이 부족하다. 옛날 얘기를 하나 하자면, 1984년에 현장에 들어온 새로운 노동운동 세력들의 활동을 보고 선배들이 매우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방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문제제기하고 해결하려고 했으니까. 아마도 그 정도의 자기 혁신이 없다면 이 위기를 돌파하기 어려울 것이다. 질문자가 무엇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하고 질문했는데, 우리가 밥을 안 먹고 살 수 없듯이 노동조합은 임단협도 하고, 투쟁도 하고, 조직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관성적으로 진행되는 것이지만 ‘접근하는 관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임단협을 옛날과 다른 방식으로 하고자 한다면, 가령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사이에 임금인상 차등 요구를 제시하면서, 현장에서 토론도 하고, 도대체 노동자들 간에 ‘연대’란 게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이런 게 필요할 것이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먼저 토론을 시작하는 거다. 기업별노조에 갇혀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의식이 굳어져 있다. 기업 틀로 찍어 나온 사람이 그 틀 벗어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껍데기를 바꾸면 모든 게 바뀌는 거로 생각하면 안 된다.

질문자  와서 얘기를 들어도 속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옛날을 돌이켜보아도 지금처럼 고생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어느 한군데서도 공감을 받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운동하는 사람들이 다 우울증이 걸린 것 같다. 노동운동은 노동자만의 운동이 아닌데, 지금 민주노조운동은 국민들로부터도 욕을 먹고 있다. 국민들이 지금 생활에 만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지금 자식들 가운데 비정규직 한 사람 없는 가정은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야 국민들에게서 공감을 얻는데, 이 정도도 못 읽어 내는 것 같다. 그리고 종이호랑이식 총파업은 여론으로부터 지지를 못 받을 것이다. 국민들로부터 ‘저 문제는 나랑 관계있다. 우리 아들, 딸이랑 관계있다’라는 생각을 하게끔 해야 하는데, 하루 먹고 살기 위해서 빨리 가서 계약도 하고, 일도 해야 하는데 길만 막히니까, 다른 데에 대한 불만이 온통 노동자 파업에 쏠리는 것이다. 지금은 1년 내내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종이호랑이식 총파업으로는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파업에 참여하는 주체들도 그 내용을 제대로 알고 하는 것 같지도 않더라, 아주 극소수들만이 자신들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질문자  우리은행식 해법은 아주 제한적인 범위에서 가능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비정규직 입법의 긍정적 효과가 우리은행식 해법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하다. 그리고 산별과 비정규직 사업이 그나마 올해 성과를 남겨야 하는 부분이 될 것이므로 계획을 짜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선관련해서, 한국노총은 당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나서 노조의 선택 폭이 넓어진 것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민주노총도 특정 정당 지지로부터 벗어나는 게 어떤지 싶다. 올해가 민주화 20년, IMF 10년이 되는 해라서 뭔가 희망찬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게 없다. 

마지막으로 제안을 한다면, 어떻게 보면 동일노동 동일임금보다 연대임금정책에 가까운 것은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일 거다. 현실성이 없을 수도 있지만, 최저임금제가 있듯이 ‘최고임금제’를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보통 임금격차 완화 방식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혹은 임금피크제 같은 방식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결국 노동조합이 수세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반면 최저임금의 몇 배, 이렇게 최고임금을 정하고 그 이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기금으로 내놔라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오히려 노동조합이 공세적으로 나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토론자  노조운동하는 사람들이 그전보다 겸손해하는 부분이 부족한 것 같다. 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 과거 민주노조운동 진영에 있었던 신노동연합의 어느 인물을 보면서, 저 사람이 저렇게 바뀌도록 주변 사람들은 뭘 하고 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노조 간부들은 자꾸 메말라 가고 정파논리에만 빠져 있어 안타깝다.

우리은행식 해법은 여러 반응을 불러 올 수 있다. 공공부문은 기존 비정규직과 재계약하지 않고 새 비정규직을 채용하거나 아예 아웃소싱을 하는 방식을 취할 것 같아 올해 중요한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비해 우리은행은 좀 낫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승진의 기회를 열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다만 일단 긍정성이 있다면, 받아들여서 개선할 점을 고쳐나가는 식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사협의회에 대해서도 개입을 해야 한다. 노조와의 연계를 어떻게든 맺어야 한다. 노사협의회를 노조의 오른팔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산별노조가 되면 기업 내부에서 어느 정도 철수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노사협의회의 역할이 부각되므로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최고임금제를 제안했는데, 차라리 세금 거둬들이는 것에 착목해야 한다. 앵글로색슨 국가(영미형)의 경우 임금격차가 우리보다 크지만, 재산세의 경우 그들은 우리보다 약 36배 정도의 많은 세금을 내더라. 우리도 이것을 연구해서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노동조합운동에 도움 될 조세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

사회자  오늘 나온 얘기를 보면 올해 한 해만에 해결될 문제들은 아닌 것 같다. 그동안 노동조합운동이 발전해 가면서 발생한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에 대해서 2007년에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 것 같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해 주신 두 분과 나머지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리며 제52차 노동포럼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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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18호